당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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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당의 미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당나라는?
2. 정치
3. 제도
4. 문화
〈당의 미술 연보 (618~907)〉

당나라 전기의 세계사적 사건과 상황은?
당나라 중기의 세계사적 사건과 상황은?
당나라 말기의 세계사적 사건과 상황은?

본문내용

신. 천보연간(天寶年間:742~755)을 중심으로 궁정화가로서 활약하였다. 특히 궁정풍속과 미녀도(美女圖)에 뛰어났다. 작품으로는 《궁중칠석걸교도(宮中七夕乞巧圖)》 《망월도(望月圖)》 등이 전해지며, 송대(宋代)에 휘종(徽宗)이 그의 원화(原畵)에서 모사(模寫)하였다고 전해지는 《도련도(搗練圖)》(보스턴미술관 소장)가 유명하다.
758~764 안진경삼고- 안진경삼고 [顔眞卿三稿] 중국 당나라 서법(書法)의 대가 안진경(顔眞卿:709~785)이 남긴 행초서(行草書)의 대표적 필적 세 가지.
안진경은 해서행서초서 3체에 모두 독창성과 우수성을 발휘하였으며 그의 행초서 중에서 특히 유명한 필적은 그의 삼고(三稿)이다. 즉 《제질문고(祭姪文稿)》 《고백부문고(告伯父文稿)》 《쟁좌위고(爭座位稿)》로서 이들 글씨는 모두 글씨를 쓴다는 의식이 없이 졸연간에 휘갈겨 쓴 초고 그대로의 필적이어서 더욱 자연의 묘미가 있고, 진귀하게 여겨지는 글씨이다. 이 삼고 중 《제질문고》와 《고백부문고》는 758년(乾元 1) 이후에 쓴 것이며 《쟁좌위고》는 그로부터 6년 후인 764년(廣德 2)에 쓴 것이다. ① 제질문고:이 법첩(法帖)의 진적(眞蹟)은 송대(宋代) 선화내부(宣和內府)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원대(元代)에 와서 조원례(曹元禮)가 입수, 선우 추(鮮于樞)에게 전해졌고 그 후 장안(張晏)이 입수하였다. 명대(明代)에 이르러 은사례(殷司隸)에게 옮겨졌고 다시 몇 사람을 거친 후 그 존재여부가 분명치 않다가 지금은 정운관(停雲館)에서 모각(摹刻)한 것이 전해진다. 진적은 베이징[北京] 고궁박물원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엄주산인고( 汲 州山人稿)에는 \"공의 행압(行押)의 묘가 여일 극치한 것은 이 원고뿐이다…\"라고 칭찬하였다. ② 고백부문고:백부(伯夫)를 제사지낸 제문이며 선화서보(宣和書譜)에도 있고 각본(刻本)으로 전해진다. 엄주산인고에는 \"이 법칙은 제질문고와 동법으로 둔좌울발(頓挫鬱勃)은 약간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였다. ③ 쟁좌위고:764년에 안진경이 정양군왕(定襄郡王) 곽영부(郭英父)에게 보낸 편지인데, 그 내용은 좌위(座位:官品)를 논한 것이라서 \'논좌위첩(論座位帖)\'이라고도 하며 \'여곽복야서(與郭僕射書)\'라고도 한다. 당시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정양군왕이던 곽영부가 조정의 신임을 기화로 교만사치하여 조정신하의 서열좌위까지 무시하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그의 비행을 점잖게 나무라고 반성을 촉구한 것이다. 이 쟁좌위첩의 진적은 송대(宋代)에 장안에 살던 안사문(安師文) 집에서 발견되었는데 《소동파집(蘇東坡集)》에 \"안진경공의 다른 글씨에 비해 가장 기발하고 특이하다\"라는 평이 실려 있다. 손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쓴 것에 도리어 안진경의 참모습이 나타나 있다.
768년 대운사(大雲寺) - 중국 당(唐)나라 중기의 마니교(摩尼敎) 사원.
대운경사(大雲經寺)대운광명사(大雲光明寺)마니사(摩尼寺)파사사(波斯寺)라고도 한다. 당나라는 안사의 난 때 위구르의 힘을 빌어 평정했으므로, 그가 믿는 마니교 회당 건립을 허락하였다.
768년(대력 3) 대운사가 세워지고, 3년 뒤에는 형(荊)양(揚)홍(洪)월(越)의 여러 주(州)에도 같은 이름의 사원이 세워졌으며, 807년(원화 2)에는 뤄양[洛陽]타이위안[太原]에도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백의백관의 교도가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지냈다. 843년(회창 3) 폐불(廢佛) 직전의 탄압으로 폐사되었다.
◎주방 (周昉 , ? ~ ? ) 중국 당나라 때의 화가.
자 경원(景元). 산시성[盈西省] 창안[長安] 출생. 선주장사(宣州長史)를 지냈다. 문예서화일반에 두루 뛰어났으나 특히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 능하여 채색유려(彩色柔麗)의장경간(衣裝勁簡)보살단엄(菩薩端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물묘사에 있어 동시대의 한간(韓幹)이 인물 형태를 묘사한 데 대하여, 주방은 신기(神氣)까지를 묘사하였다고 한다. 덕종(德宗)의 명에 의하여 장경사(章敬寺)에 벽화를 그려 절찬을 받았으며, 수월관음상(水月觀音像)에서 새로운 화풍을 창조한 것으로 전한다.
▲ 장욱 張旭 ( ? ~ ? )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때(8세기 후반)의 서예가.
자 백고(伯高). 장쑤성[江蘇省] 우현[吳縣] 출생. 초당(初唐)의 서예의 대가 우세남(虞世南)의 먼 친적이다. 술을 몹시 좋아하고 취흥이 오르면 필묵을 잡았으며, 때로는 머리채를 먹물에 적셔서 글씨를 쓰는 등의 취태(醉態)가 있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장전(張顚)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욱에게 필법(筆法)을 배운 안진경(顔眞卿)은 그의 서법(書法)이 진정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초서를 잘 썼으며, 얼핏 보아서 분방하게 느껴지는 광초(狂草)에도 그 바탕에는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의 서법을 배운 소양을 엿볼 수 있다. 장욱이 자신의 서풍(書風)을 세우게 된 유래를 적은 《자언첩(自言帖)》이 전해진다.
※ 왕묵(王墨, ? ~ 804? ) - 중국 당(唐)나라 때의 화가.
왕묵(王)왕흡(王洽)이라고도 쓰나 명확하지 않다. 당나라 덕종(德宗) 무렵인 8세기 후반에 활약하였으며 항용(項容)을 스승으로 소나무돌산수를 즐겨 그린 수묵화가이다. 산수의 형상이나 대기의 변화를 먹으로 표현하여, 뒷날의 발묵법(潑墨法)의 시조가 되었다. 선묘(線描)를 중시하는 중국 회화사상에서는 당초에 큰 평가를 받지 못하였으나, 송(宋)나라 때에 문인화가 성하게 되자 왕유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나라 때의 조방(粗放)한 화풍의 창시자로서 주목할 화가이다.
840~845년 추정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 - 중국 당(唐)나라 때의 화가전(畵家傳).
화가전(畵家傳)으로서 저자는 주경현이다. 시대는 대략 중국 당나라 9세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경현(朱景玄)이 찬(撰)하였다. 찬술연대는 문종(文宗)의 사후(840), 회창(會昌)의 폐불(廢佛:845) 이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대(唐代) 97명의 화가를 신(神)묘(妙)능(能)일(逸)의 4품(品)으로 나누고, 다시 신품(神品)을 상중하로 나누어 격(格)을 붙였다.
당나라 말기의 세계사적 사건과 상황은?
동양과 서양은?
814년 →페니키아인 북아프리카에 카르타고 식민시 건설.
843년 → 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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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2.19
  • 저작시기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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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5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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