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인물과 시대상황]
1. 마르크스의 생애
2. 엥겔스의 생애
3. 마르크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특징
II. [공산당 선언 제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정의
▶ 부르주아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 부르주아의 위기와 프롤레타리아의 발전
▶ 저자의 생각
III. [공산당 선언 제 2장]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IV. [마르크스의 주장에 대한 반박]
1. 현존 사회주의
2. 현대 자본주의
3, 노동자계급
V. 『공산당선언』의 현대적 의의
1. 마르크스의 생애
2. 엥겔스의 생애
3. 마르크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특징
II. [공산당 선언 제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정의
▶ 부르주아의 특징과 역사적 의의
▶ 부르주아의 위기와 프롤레타리아의 발전
▶ 저자의 생각
III. [공산당 선언 제 2장]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IV. [마르크스의 주장에 대한 반박]
1. 현존 사회주의
2. 현대 자본주의
3, 노동자계급
V. 『공산당선언』의 현대적 의의
본문내용
이른바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확산되면서 번져갔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의 예측은 빗나갔다. 게다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노동자 계급에 의한 러시아혁명이 스탈린의 유혈 전제주의로 타락했다는 사실은 그의 주장이 다시 한 번 틀렸음을 입증해준다. 즉,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는 민주주의의 확대와 계급의 궁극적 철폐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대체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보다 훨씬 더 야비한 폭군정치로 귀결된 것이다. 이 결과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고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몇몇 국가들도 경제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즉,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을 주장하던 마르크스의 예측과 달리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착취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2. 현대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 확산되고 정착이 되면서 이로 말미암아 이윤중심의 성과측정, 독점기업의 탄생, 경제적 양극화, 경기 불안정 등의 문제점을 낳고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수정, 보완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중에 있다. 이는 곧 자본주의에 대해 반대하던 마르크스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준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시대 이후에 변화했다. 노동당 지식인이었던 앤터니 크로스랜드와 존 스트래치는 [사회주의의 미래]와 [현대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계급투쟁과 국유화는 더 이상 사회주의 정치에 적합하지 앉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우선 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적인 세계 경제의 호황을 이끌었다. 또한 오늘날의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이렇게 변화한 자본주의를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부르주아가 의사, 학자, 시인 등의 지식인들 마저 노동자로 전락시키면서 노동자들을 지배하고 독점적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들은 기업에 개인적 지분을 거의 갖지 않고 있으며, 단기 이윤보다는 장기 성장을 지향하는 경영자들이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노사간의 갈등에 있어서 고용주들이 일방적인 임금삭감, 공장 폐쇄 등의 악랄한 조치를 실시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러한 점들은 마르크스가 폄하하던 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니라 자체적인 정화작용을 거쳐 조금 더 완전한 이데올로기로 진화하기 위한 과도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3, 노동자계급
노동자계급은 마르크스가 생각한 형태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육체노동자는 노동력 중 소수일 뿐만 아니라, 중간계급의 생활수준과 생활양식을 누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지배적이다. 마르크스의 예상과 달리 실질임금 역시 지난 세기 동안 꾸준히 상승했다. 몇 번의 공황기가 있긴 했지만 자본주의를 통한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전통적인 계급 구분이 와해되고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서로 적대자로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무정형의 방대한 중간계급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즉, 절대적인 착취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틀렸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V. 『공산당선언』의 현대적 의의
오늘날의 현실에선 제 2세계라고 불리던 사회주의 국가, 공산주의 국가는 모두 몰락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렇게 마르크스를 논의하고 『공산당선언』을 읽는다. 성경이외에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는 말까지 있으니,『공산당선언』의 파워가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공산주의 국가는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공산당선언』을 읽고 있는 것일까? 현대 사회의 『공산당선언』의 의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공산당선언』은 거시적인 역사적 안목과 실천적인 행동강령을 결합시킨 매우 드문 본보기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즉 그것은 우리가 현재 어디에 와 있으며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지시해 준다. 『공산당선언』에서 중요한 것은 150여 년 전 에 마르크스가 구상했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닌 그것을 관통하는 기본 정신이다. 마르크스가 아무리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계속적으로 발전하여 노동계급운동의 성장을 가로막을 지도 모를 여러 문제들을 모두 예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우리는 『공산당선언』을 고도의 역사적인 문헌, 경제적정치적인 분석서, 심지어는 예언서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선언』은 말 그대로 학문적인 저작이 아니며 2월 혁명 직전의 정치적 격동기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쓰여 진 정치적 강령, 즉 하나의 선언일 뿐이다. 우리가『공산당선언』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통해 실천운동을 끊임없이 재조직하는 자세이다. 현실의 자본이 더욱더 세분화 되었다면 우리의 분석 또한 마르크스를 넘어서 세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산당선언』의 가치는『공산당선언』만큼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분명한 열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속에는 혁명을 일으키자는 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해부와 그것을 토대로 한 냉철한 비판의식이 생생히 담겨있다. 인간 역사를 자본의 힘이 인간성을 지배하게 된 역사로 본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이었다. 철학자 피터 싱어가 ‘인간 존재의 소외 상태에 관한 통찰’ 이라고 표현한 내용과 같이 자본의 힘이 인간 개개인을 자기 자신과 서로로부터 소외시켜왔다는 또 다른 주장은 현대사회에서도 매우 유의미하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공산당선언』의 또 다른 사상은 역사에 관한 것이다. 마르크스 이전 까지 역사는 자신을 이끄는 추동력을 무시한 채 자기의 달콤한 길을 걸어왔다면, 마르크스주의의 등장으로 최초로 역사가 그 실제 토대위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이 지배권을 얻기 위해 싸우고 정치, 종교, 철학 등을 추구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우선 먹고 마시고 집과 옷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 따라서 노동해야 한다는 자명하면서도 과거에는 간과되었던 사실이 마침내 역사적 권리를 얻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마르크스 이전에는 역사란 영웅이나 왕의 역사였다. 그러나 마르크스 이후에는 이 높은 이들의 삶을 가능케 했던 민중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자리를 부여받았다. 최초로 역사가 입체적인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2. 현대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 확산되고 정착이 되면서 이로 말미암아 이윤중심의 성과측정, 독점기업의 탄생, 경제적 양극화, 경기 불안정 등의 문제점을 낳고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수정, 보완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중에 있다. 이는 곧 자본주의에 대해 반대하던 마르크스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준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시대 이후에 변화했다. 노동당 지식인이었던 앤터니 크로스랜드와 존 스트래치는 [사회주의의 미래]와 [현대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계급투쟁과 국유화는 더 이상 사회주의 정치에 적합하지 앉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우선 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적인 세계 경제의 호황을 이끌었다. 또한 오늘날의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이렇게 변화한 자본주의를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부르주아가 의사, 학자, 시인 등의 지식인들 마저 노동자로 전락시키면서 노동자들을 지배하고 독점적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들은 기업에 개인적 지분을 거의 갖지 않고 있으며, 단기 이윤보다는 장기 성장을 지향하는 경영자들이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노사간의 갈등에 있어서 고용주들이 일방적인 임금삭감, 공장 폐쇄 등의 악랄한 조치를 실시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러한 점들은 마르크스가 폄하하던 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니라 자체적인 정화작용을 거쳐 조금 더 완전한 이데올로기로 진화하기 위한 과도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3, 노동자계급
노동자계급은 마르크스가 생각한 형태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육체노동자는 노동력 중 소수일 뿐만 아니라, 중간계급의 생활수준과 생활양식을 누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지배적이다. 마르크스의 예상과 달리 실질임금 역시 지난 세기 동안 꾸준히 상승했다. 몇 번의 공황기가 있긴 했지만 자본주의를 통한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전통적인 계급 구분이 와해되고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서로 적대자로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무정형의 방대한 중간계급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즉, 절대적인 착취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틀렸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V. 『공산당선언』의 현대적 의의
오늘날의 현실에선 제 2세계라고 불리던 사회주의 국가, 공산주의 국가는 모두 몰락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렇게 마르크스를 논의하고 『공산당선언』을 읽는다. 성경이외에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는 말까지 있으니,『공산당선언』의 파워가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공산주의 국가는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공산당선언』을 읽고 있는 것일까? 현대 사회의 『공산당선언』의 의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공산당선언』은 거시적인 역사적 안목과 실천적인 행동강령을 결합시킨 매우 드문 본보기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즉 그것은 우리가 현재 어디에 와 있으며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지시해 준다. 『공산당선언』에서 중요한 것은 150여 년 전 에 마르크스가 구상했던 구체적인 내용이 아닌 그것을 관통하는 기본 정신이다. 마르크스가 아무리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계속적으로 발전하여 노동계급운동의 성장을 가로막을 지도 모를 여러 문제들을 모두 예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우리는 『공산당선언』을 고도의 역사적인 문헌, 경제적정치적인 분석서, 심지어는 예언서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당선언』은 말 그대로 학문적인 저작이 아니며 2월 혁명 직전의 정치적 격동기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쓰여 진 정치적 강령, 즉 하나의 선언일 뿐이다. 우리가『공산당선언』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통해 실천운동을 끊임없이 재조직하는 자세이다. 현실의 자본이 더욱더 세분화 되었다면 우리의 분석 또한 마르크스를 넘어서 세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산당선언』의 가치는『공산당선언』만큼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분명한 열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속에는 혁명을 일으키자는 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해부와 그것을 토대로 한 냉철한 비판의식이 생생히 담겨있다. 인간 역사를 자본의 힘이 인간성을 지배하게 된 역사로 본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이었다. 철학자 피터 싱어가 ‘인간 존재의 소외 상태에 관한 통찰’ 이라고 표현한 내용과 같이 자본의 힘이 인간 개개인을 자기 자신과 서로로부터 소외시켜왔다는 또 다른 주장은 현대사회에서도 매우 유의미하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공산당선언』의 또 다른 사상은 역사에 관한 것이다. 마르크스 이전 까지 역사는 자신을 이끄는 추동력을 무시한 채 자기의 달콤한 길을 걸어왔다면, 마르크스주의의 등장으로 최초로 역사가 그 실제 토대위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이 지배권을 얻기 위해 싸우고 정치, 종교, 철학 등을 추구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우선 먹고 마시고 집과 옷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 따라서 노동해야 한다는 자명하면서도 과거에는 간과되었던 사실이 마침내 역사적 권리를 얻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마르크스 이전에는 역사란 영웅이나 왕의 역사였다. 그러나 마르크스 이후에는 이 높은 이들의 삶을 가능케 했던 민중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자리를 부여받았다. 최초로 역사가 입체적인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