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기 전에
2. 탐정소설의 형식,그리고 철학
3. 책을 위한, 독서를 위한 책
4. 진리란 빛
5. 결론
6. 참고문헌
2. 탐정소설의 형식,그리고 철학
3. 책을 위한, 독서를 위한 책
4. 진리란 빛
5. 결론
6. 참고문헌
본문내용
과 담론 과정을 담지한 은유적 표현물이다. 어떤 메시지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지점이 아니라 여러 가지 수많은 사회적인 담온들이 가로지르는 교차점이 바로 텍스트란 말이다.7-1)
하나의 텍스트가 열리는 것은 작가와 그 텍스트 자체가 세계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텍스트를 비의도적인, 완전히 자율적인 텍스트로 보는 구조주의와 신비평의 입장은 여기서는 맞지 않는다. 텍스트는, 작가의 의도에 따른 주도면밀한 구성과 장치로 이루어져 있고, 독자는 그 속에서 일종의 미로 찾기 놀이를 하는 가운데 자신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문화적 소통의 마당이다.
한 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이 책을 좀 더 이해하려면 이 책 저변에 깔린 그 수많은 텍스트,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읽는 게 좋을 것이란 얘기이다. 이 책의 사건인 연쇄살인 역시 책에 의한 사건이었고, 그 『시학』이란 책에 대한, 지식에 대한 열망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소설 내내 작중인물들은 수많은 책들과 위인들의 말들을 인용한다. 그리고 소설의 서문 역시 어느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다. 좀 더 좁게 보자면 이 책은 책으로 시작하고 책에 대한 소설이 된다. 연간 독서량이 부끄러울만큼 낮은 우리나라이고, 더구나 대학생들은 필요에 의한 책이 아니면 책보다는 공무원 시험책이나, 인터넷을 더 찾고는 한다. 이것은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고, 사회만의 잘못도 아니겠으나 그 와중에도 좋은 책 한권 읽을 시간 없다고 투덜대는 나의 또래의 젊은이들을 보면 뭐라고할 말이 없어진다. 다행히 20살 공부는 안하고 잡다한(내 아버지의 표현이다.)것에 투자해서 어느 정도 읽어둔 것이 있는 게 안심이다. 책을 위한 책. 그리고 책벌레, 혹은 독서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쓰여진거라 믿겨지는 『장미의 이름』에서 에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같은책.pp.23
8-1)Ibid., p. 643.
그렇다면 <장미의 이름>은 열린 텍스트인가, 닫힌 텍스트인가. 우선 사회적인 면을 떠나서라 할지라도, 각각의 텍스트들이 상호 연관적으로 관계를 갖고 있다. 각 페이지마다 주석이 다른 책에 비해 엄청나게 달려 있음을 보거나, 글 부분 부분 마다 나오는 석학 에코가 공부를 했고 읽었을 텍스트들이 진하게 묻어나 있기에 열린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에 대해서는 어떤가.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에코는 작품을 끝낸 후에 해석은 독자들에게 맡긴다고 했다. 예를 들어 책 제목에 나오는장미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에 장미란 이름을 넣은 것은 장미가 너무 의미가 많아서어떤 의미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벌써 <장미의 이름>에서 복잡한 기호학적 유희를 벌이는 에코의 교활한(?) 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거기서 독자는 단 하나의 해석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진다. 작가는 해석의 열쇠를 주지 않고 혼란스럽게 하면서 결국 해석의 자유를 준다. 그러므로 <장미의 이름>의 읽기는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해체와 재구성의 방식을 띈다고 볼 수 있다. 미로에서 헤메는 것 같은 그 자체와 그 속에서 독자는 스스로의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들을 거듭 짜맞추는 일종의 조합 놀이를 벌이며, 거기서 <장미의 이름>의 의미는 무한히 창출된다. 이를 에코는 <장미의 이름> 텍스트 자체가 지닌 구조적 풍요로움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만 가다가 교훈이나 감동을 얻는 식의 텍스트가 아닌, 독자 스스로 고민하고 사유하게 하는 열린 텍스트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에코는 자기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등산과 같다고 말한 듯 하다.문은 열려 있다. 독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은 열려 있으나, 그 속으로 들어가고 그 길을 헤쳐나가는 길은 독자들의 준비가 충분히 되있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반찬이 가득 차려진 한정식 한 상이 눈 앞에 있어도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4. 진리란 빛
진리란 무엇인가. 영원 불변하는 것이 진리인가. 이 책에서는 진리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다룬다. 과연 소설 속의 윌리엄은 중세 가톨릭의 진리에 따랐는가. 지금 현대인이 보는 윌리엄이야 말로 진리를
하나의 텍스트가 열리는 것은 작가와 그 텍스트 자체가 세계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텍스트를 비의도적인, 완전히 자율적인 텍스트로 보는 구조주의와 신비평의 입장은 여기서는 맞지 않는다. 텍스트는, 작가의 의도에 따른 주도면밀한 구성과 장치로 이루어져 있고, 독자는 그 속에서 일종의 미로 찾기 놀이를 하는 가운데 자신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문화적 소통의 마당이다.
한 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이 책을 좀 더 이해하려면 이 책 저변에 깔린 그 수많은 텍스트,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읽는 게 좋을 것이란 얘기이다. 이 책의 사건인 연쇄살인 역시 책에 의한 사건이었고, 그 『시학』이란 책에 대한, 지식에 대한 열망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소설 내내 작중인물들은 수많은 책들과 위인들의 말들을 인용한다. 그리고 소설의 서문 역시 어느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다. 좀 더 좁게 보자면 이 책은 책으로 시작하고 책에 대한 소설이 된다. 연간 독서량이 부끄러울만큼 낮은 우리나라이고, 더구나 대학생들은 필요에 의한 책이 아니면 책보다는 공무원 시험책이나, 인터넷을 더 찾고는 한다. 이것은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고, 사회만의 잘못도 아니겠으나 그 와중에도 좋은 책 한권 읽을 시간 없다고 투덜대는 나의 또래의 젊은이들을 보면 뭐라고할 말이 없어진다. 다행히 20살 공부는 안하고 잡다한(내 아버지의 표현이다.)것에 투자해서 어느 정도 읽어둔 것이 있는 게 안심이다. 책을 위한 책. 그리고 책벌레, 혹은 독서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쓰여진거라 믿겨지는 『장미의 이름』에서 에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같은책.pp.23
8-1)Ibid., p. 643.
그렇다면 <장미의 이름>은 열린 텍스트인가, 닫힌 텍스트인가. 우선 사회적인 면을 떠나서라 할지라도, 각각의 텍스트들이 상호 연관적으로 관계를 갖고 있다. 각 페이지마다 주석이 다른 책에 비해 엄청나게 달려 있음을 보거나, 글 부분 부분 마다 나오는 석학 에코가 공부를 했고 읽었을 텍스트들이 진하게 묻어나 있기에 열린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에 대해서는 어떤가.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에코는 작품을 끝낸 후에 해석은 독자들에게 맡긴다고 했다. 예를 들어 책 제목에 나오는장미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란 제목에 장미란 이름을 넣은 것은 장미가 너무 의미가 많아서어떤 의미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벌써 <장미의 이름>에서 복잡한 기호학적 유희를 벌이는 에코의 교활한(?) 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거기서 독자는 단 하나의 해석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진다. 작가는 해석의 열쇠를 주지 않고 혼란스럽게 하면서 결국 해석의 자유를 준다. 그러므로 <장미의 이름>의 읽기는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해체와 재구성의 방식을 띈다고 볼 수 있다. 미로에서 헤메는 것 같은 그 자체와 그 속에서 독자는 스스로의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들을 거듭 짜맞추는 일종의 조합 놀이를 벌이며, 거기서 <장미의 이름>의 의미는 무한히 창출된다. 이를 에코는 <장미의 이름> 텍스트 자체가 지닌 구조적 풍요로움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만 가다가 교훈이나 감동을 얻는 식의 텍스트가 아닌, 독자 스스로 고민하고 사유하게 하는 열린 텍스트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에코는 자기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등산과 같다고 말한 듯 하다.문은 열려 있다. 독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은 열려 있으나, 그 속으로 들어가고 그 길을 헤쳐나가는 길은 독자들의 준비가 충분히 되있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반찬이 가득 차려진 한정식 한 상이 눈 앞에 있어도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4. 진리란 빛
진리란 무엇인가. 영원 불변하는 것이 진리인가. 이 책에서는 진리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다룬다. 과연 소설 속의 윌리엄은 중세 가톨릭의 진리에 따랐는가. 지금 현대인이 보는 윌리엄이야 말로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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