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해방이전의 생애와 업적
1) 해방이전까지의 생애와 학문
2) 조선사편수회와 진단학회
2. 해방이후의 이병도
1) 해방이후의 생애와 업적
2)한국현대사에서 이병도의 위치
3. 이병도의 사관과 학술
4. 이병도를 둘러싼 논쟁
Ⅲ. 결론
Ⅱ. 본론
1. 해방이전의 생애와 업적
1) 해방이전까지의 생애와 학문
2) 조선사편수회와 진단학회
2. 해방이후의 이병도
1) 해방이후의 생애와 업적
2)한국현대사에서 이병도의 위치
3. 이병도의 사관과 학술
4. 이병도를 둘러싼 논쟁
Ⅲ. 결론
본문내용
자격을 심사하는 사람은 박사이고, 해방 직후 남한에서는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병도의 남한 사학계에서의 위치는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다. 박사 학위를 소지한 몇 안 되는 학자들 중의 한사람인 이병도의 문하에서 많은 사학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의 인맥과 영향력은 자연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그의 학문이 당대의 각 정권과도 긴밀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사가 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등 권력자들의 국사학 창출로 이어지고 있는 이병도의 국사 연구 행로는 그야말로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 역사적 이론 근거를 마련하는 연구로 계승되어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 입장에서는 한국의 랑케와 비유 된다.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의 문헌고증 논문작성법이 근대적 수준으로 향상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으며 특히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어왔던 한사군(漢四郡)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나 삼한의 위치와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 기자동래설 임나일본부설의 부인 등은 우리나라 상고사(上古史)를 토착사회의 자체적인 발전과정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Ⅲ. 결론
이상으로 이병도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평가를 해방을 중심으로 크게 두 시기로 구분지어 알아보고 그의 사관과 영향에 대해 서술하였다. 일본 유학과 일본인 역사가의 교육을 통해 사학계에 입문한 점과 조선사편수회활동, 부족했던 지식인으로써의 활동 등은 이병도가 이룬 학문적 업적의 반대편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논쟁이었다. 해방 이후도 그가 학술계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으나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통한 관찬사학이라는 폐단의 원흉이 되었고 그가 사학계에 구축한 거대한 인맥은 다른 관점의 역사학이 발붙이지 못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도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서 그의 삶과 업적을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 모두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여 평가에 있어서도 양자의 입장을 모두 다루고자 했다.
끝으로 이병도에 대한 조사를 통해 학자의 양심이나 사회적 의무 무엇을 친일로 볼 것인가와 같은 외면적 문제 이외에, 동일한 개인의 삶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평가와 서술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서론에서 밝혔듯 올바른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양자의 입장을 모두 충분히 검토하고 고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으며 이는 객관적 판단에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한영우. 『역사학의 역사』 서울 : 지식산업사, 2002.
김정희. 『이병도 사관과 그 비판』 한국반민족연구소
조동걸. 『현대한국사학사』 서울 : 나남출판, 1998.
조동걸 외.『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서울 : 창작과 비평사, 1994.
신형식. 『韓國史學史』 서울 : 삼영사, 1999.
그러나 그는 학문적 입장에서는 한국의 랑케와 비유 된다.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의 문헌고증 논문작성법이 근대적 수준으로 향상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으며 특히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어왔던 한사군(漢四郡)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나 삼한의 위치와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 기자동래설 임나일본부설의 부인 등은 우리나라 상고사(上古史)를 토착사회의 자체적인 발전과정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Ⅲ. 결론
이상으로 이병도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평가를 해방을 중심으로 크게 두 시기로 구분지어 알아보고 그의 사관과 영향에 대해 서술하였다. 일본 유학과 일본인 역사가의 교육을 통해 사학계에 입문한 점과 조선사편수회활동, 부족했던 지식인으로써의 활동 등은 이병도가 이룬 학문적 업적의 반대편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논쟁이었다. 해방 이후도 그가 학술계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았으나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통한 관찬사학이라는 폐단의 원흉이 되었고 그가 사학계에 구축한 거대한 인맥은 다른 관점의 역사학이 발붙이지 못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도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서 그의 삶과 업적을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 모두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여 평가에 있어서도 양자의 입장을 모두 다루고자 했다.
끝으로 이병도에 대한 조사를 통해 학자의 양심이나 사회적 의무 무엇을 친일로 볼 것인가와 같은 외면적 문제 이외에, 동일한 개인의 삶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평가와 서술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서론에서 밝혔듯 올바른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양자의 입장을 모두 충분히 검토하고 고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으며 이는 객관적 판단에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한영우. 『역사학의 역사』 서울 : 지식산업사, 2002.
김정희. 『이병도 사관과 그 비판』 한국반민족연구소
조동걸. 『현대한국사학사』 서울 : 나남출판, 1998.
조동걸 외.『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서울 : 창작과 비평사, 1994.
신형식. 『韓國史學史』 서울 : 삼영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