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과학기술 협력의 필요성
Ⅲ. 각국의 과학기술 정책
Ⅳ. 러시아와 일본의 과제
Ⅴ. 끝으로
참고문헌
Ⅱ. 과학기술 협력의 필요성
Ⅲ. 각국의 과학기술 정책
Ⅳ. 러시아와 일본의 과제
Ⅴ. 끝으로
참고문헌
본문내용
티브 제도 도입에 의한 성과 유발을 촉진하고, 경제성 원칙에 입각한 연구사업 선정, 기업과의 계약 연구제 도입에 의한 연구소 독립채산제 유도(25%의무화)등이 시도되었다.
1968년에는 국가 연구개발에 있어서 큰 변화를 추구하였다.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 대형 장기국책과제의 추진과 미래 예측 기업의 도입에 의한 연구 사업 기획 기능을 강화하고 둘째, 연구사업에 기업과 연구기관이 공동 참여제도로서 SPA설치를 추진하여 SPA를 통한 연구, 개발, 생산의 연계를 추진하며 셋째, 각 부별로 연구 사업 지원을 위한 HDGKQ 연구지원자금제도를 실시하고 넷째, 경제성 위주의 인센티브 제도를 계속적으로 추진하는것이었다. 그러나 연구기관간 및 기술개발 단계별 관련기관의 유기적 협동문제가 난제로 남았다.
브레즈네프 시대에서 중요한 ① 「국가과학기술 위원회」의 관계 부처에 대한 조정권한 강화, ② SPA의 연구기관화 추진, ③ 대형과제에 대한 연구사업단 개념도입 및 전용 연구시설제공, ④ 우선순위에 따른 집중 예산지원, ⑤ 품질에 따른 가격제도 도입 등을 추진.
과학 기술 체제개혁은 ‘83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산권이 없는 국가과학기술 위원회의 한계성으로 실질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여러차례 시도된 개혁에도 불구하고 기존 체제의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실질적으로 구체화되고 효율적으로 추진된 내용은 그리 많지가 않다.
2)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과학기술정책 요약
1985년 3월 , 고르바 초프가 안드로 포프의 뒤를 이어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됨으로써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1986년 제 27차 공산당 대회에서 고르바초프는 이른바 ‘과학기술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창하면서 이전의 과하기술 체제를 과감히 타파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발표된 주요 내용을 보면 ① 연구사업의 예측 및 기획 기능 대폭 강화, ② 연구관리의 과도한 중앙집중 제한과 연구기관에의 권한 이양에 의한 유연하고 역동적인 연구조직 형성, ③ 대형 국책과제에 대한 연구조정 기능 대폭 강화, ④ 젊고 유능한 연구원의 대거 채용을 목적으로 하는 인사 쇄신정책등이었다.
이와 같은 정책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조치들이 구체화되었다. 첫째는 연구소에 대한 자율성의 확대와 상업적 계약 시스템의 허용이다. 1989년 , 스탈린 시대의 독재적 잔재로 비난을 받아왔던 소련 과학아카데미가 산하연구소에 대하 연구과제 선정 및 수탁 연구비를 확대할수 있는 제한적 자율성을 부여하였다. 이어‘ 90년에는 소련정부가 공식적으로 과학 기술의 정책기조를 통제에서 지원으로 전환한다고 천명하였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권한 축소와 함께 예산지원도 대폭 삭감되어버렸다. 결국 각 연구소들은 개인 기업, 지방 정부 및 공화국, 은행, 반독점 기금 등에서 추가 지원을 모색하게 되었고, 기업가적 성향의 과학기술자들은 스스로 벤처기업을 설립해 나갔다.
둘째, 군수산업의 민수화 추진이다. 세계적인 군축모드에 편승하여 민수 부문에서 부족한 소비제품을 군수제품에서 보충하고 고도의 군수 기술을 민수 기술과 접목함으로써 제품의 질을 향상시킬수 있다는 전략하에 ‘88년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89년 대비 ’91년 예산 14% 삭감
군수 물자의 축소과정에서 발생하는 군축잉여재원을 민수화 자금으로 전환하여 민수화를 추진하는 군수업체에 저리로 융자해주고 있다. 민수 전환업체로 600여 개를 승인하였고 , 분야는 항공우주, 정보산업, 자동차, 기계, 전자, 선박 등이다. 특히 90여 군수업체에 대해서는 탱크공장을 승용차 공장으로 전환하는것 같이 공장 전체의 완전 전환을 계획하고 있으며, 나머지 업체는 현재 90% 수준의 군수물자 생산라인을 축소, 40~60%를 민수 생산으로 돌리는 부분 전환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셋째, 과학기술 체제의 재조정이다. ‘91년 11월 기존의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로 복원되었고 각 공화국 별로 독자적인 과학 아카데미를 운영하게 되었다. 특히 종전의 국가과학 기술 위원회, 각 부, 연방 과학 아카데미 소속으로 있었던 연구소들은 각기 관할 공화국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2. 일본의 과학기술 정책
1) S&T의 제도화(획일화)와 전문화(1868-1945)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부가 붕괴되고 새로운 메이지 시대가 ‘제국 정부의 재건립’의 선포에 따라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도쿠가와 가와 연방체제의 계승 뿐 아니라 그 2세기 반을 되돌리는 긴 고립정책의 종결을 가져왓다. 메이지 개정은 황제 무츠히토에 의해 진행되어
1968년에는 국가 연구개발에 있어서 큰 변화를 추구하였다.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 대형 장기국책과제의 추진과 미래 예측 기업의 도입에 의한 연구 사업 기획 기능을 강화하고 둘째, 연구사업에 기업과 연구기관이 공동 참여제도로서 SPA설치를 추진하여 SPA를 통한 연구, 개발, 생산의 연계를 추진하며 셋째, 각 부별로 연구 사업 지원을 위한 HDGKQ 연구지원자금제도를 실시하고 넷째, 경제성 위주의 인센티브 제도를 계속적으로 추진하는것이었다. 그러나 연구기관간 및 기술개발 단계별 관련기관의 유기적 협동문제가 난제로 남았다.
브레즈네프 시대에서 중요한 ① 「국가과학기술 위원회」의 관계 부처에 대한 조정권한 강화, ② SPA의 연구기관화 추진, ③ 대형과제에 대한 연구사업단 개념도입 및 전용 연구시설제공, ④ 우선순위에 따른 집중 예산지원, ⑤ 품질에 따른 가격제도 도입 등을 추진.
과학 기술 체제개혁은 ‘83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예산권이 없는 국가과학기술 위원회의 한계성으로 실질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여러차례 시도된 개혁에도 불구하고 기존 체제의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실질적으로 구체화되고 효율적으로 추진된 내용은 그리 많지가 않다.
2)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과학기술정책 요약
1985년 3월 , 고르바 초프가 안드로 포프의 뒤를 이어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됨으로써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1986년 제 27차 공산당 대회에서 고르바초프는 이른바 ‘과학기술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창하면서 이전의 과하기술 체제를 과감히 타파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발표된 주요 내용을 보면 ① 연구사업의 예측 및 기획 기능 대폭 강화, ② 연구관리의 과도한 중앙집중 제한과 연구기관에의 권한 이양에 의한 유연하고 역동적인 연구조직 형성, ③ 대형 국책과제에 대한 연구조정 기능 대폭 강화, ④ 젊고 유능한 연구원의 대거 채용을 목적으로 하는 인사 쇄신정책등이었다.
이와 같은 정책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조치들이 구체화되었다. 첫째는 연구소에 대한 자율성의 확대와 상업적 계약 시스템의 허용이다. 1989년 , 스탈린 시대의 독재적 잔재로 비난을 받아왔던 소련 과학아카데미가 산하연구소에 대하 연구과제 선정 및 수탁 연구비를 확대할수 있는 제한적 자율성을 부여하였다. 이어‘ 90년에는 소련정부가 공식적으로 과학 기술의 정책기조를 통제에서 지원으로 전환한다고 천명하였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권한 축소와 함께 예산지원도 대폭 삭감되어버렸다. 결국 각 연구소들은 개인 기업, 지방 정부 및 공화국, 은행, 반독점 기금 등에서 추가 지원을 모색하게 되었고, 기업가적 성향의 과학기술자들은 스스로 벤처기업을 설립해 나갔다.
둘째, 군수산업의 민수화 추진이다. 세계적인 군축모드에 편승하여 민수 부문에서 부족한 소비제품을 군수제품에서 보충하고 고도의 군수 기술을 민수 기술과 접목함으로써 제품의 질을 향상시킬수 있다는 전략하에 ‘88년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89년 대비 ’91년 예산 14% 삭감
군수 물자의 축소과정에서 발생하는 군축잉여재원을 민수화 자금으로 전환하여 민수화를 추진하는 군수업체에 저리로 융자해주고 있다. 민수 전환업체로 600여 개를 승인하였고 , 분야는 항공우주, 정보산업, 자동차, 기계, 전자, 선박 등이다. 특히 90여 군수업체에 대해서는 탱크공장을 승용차 공장으로 전환하는것 같이 공장 전체의 완전 전환을 계획하고 있으며, 나머지 업체는 현재 90% 수준의 군수물자 생산라인을 축소, 40~60%를 민수 생산으로 돌리는 부분 전환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셋째, 과학기술 체제의 재조정이다. ‘91년 11월 기존의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로 복원되었고 각 공화국 별로 독자적인 과학 아카데미를 운영하게 되었다. 특히 종전의 국가과학 기술 위원회, 각 부, 연방 과학 아카데미 소속으로 있었던 연구소들은 각기 관할 공화국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2. 일본의 과학기술 정책
1) S&T의 제도화(획일화)와 전문화(1868-1945)
1868년 도쿠가와 막부 정부가 붕괴되고 새로운 메이지 시대가 ‘제국 정부의 재건립’의 선포에 따라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도쿠가와 가와 연방체제의 계승 뿐 아니라 그 2세기 반을 되돌리는 긴 고립정책의 종결을 가져왓다. 메이지 개정은 황제 무츠히토에 의해 진행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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