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정보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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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문헌정보학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동양의 문헌정보학
1)중국
2)한국
3)일본

2. 서양의 문헌정보학
1) 고대 - 그리스, 로마,
2) 중세 - 수도원 도서관, 대학도서관
3) 근대 - 미국의 도서관, 유럽의 도서관

본문내용

그리스 도서관
그리스의 알렉산더대왕이 정복하여 명명한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학문의 중심지로서 여기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이집트의 고대사회의 최대 도서관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이집트의 프톨레미 1세때 시작되어 프톨레미 2세에 완성되었으며 그리스문헌에 대한 체계적 연구도 행하였다. 70여만 파피루스 권자본을 소장한 이 대형 왕실도서관의 장서관리는 학자들이 맡아 행하였으며 이들은 왕실의 교사라는 높은 신분을 부여받았다. 그리스의 저명한 학자인 칼리마쿠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으로 초대되어 이 방대한 도서관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피나케스목록을 만들었다. 120권의 파피루스 권자본으로 구성된 이 목록은 당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모든 장서를 시부와 산문부로 나누고 각부를 다시 10개 주제로 구분하고, 저자명의 알파벳순으로 배열하였는데 이 목록은 최초의 표준서목으로서 그 후 모든 고문헌서지의 기틀이 되었다.
소아시아의 페가몬 도서관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경쟁적인 위치에 있어 상호자극을 받고 발전되었으며, 당시 20여만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다. 이 도서관은 이집트로부터 파피루스의 공급이 중단되자 양피지와 독피지를 개발하여 파피루스보다 더 내구성이 우수하고 현대 도서와 같은 코덱스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진일보한 장서를 다량으로 소장하게 되었다. 페르가몬이 BC 41년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하자 페르가몬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합병되었다.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서를 수집하고 이를 지인들에게 개방했으며, 이는 그리스의 학문에서 뿐만 아니라 고대문화 전반에 걸쳐 상당한 규모의 장서를 갖춘 사설도서관이었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도 그리스에는 그 당시의 희곡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둔 도서관으로 도서를 가질 수 없는 독자에게 널리 개방되던 공공도서관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BC 47년 로마의 황제 시저의 침입시 대량 파괴되었으며, 391년 데오도시우스의 명에 의해 나머지가 소실되었고, 일설에 의하면 일부 남아있던 장서는 642년 오스만터어키의 정복자인 오라르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현재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② 로마 도서관
로마의 건국정신은 상무주의로서 건국초기에 문화정책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초기 500년간은 도서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점차 나라의 기틀이 안정되어감에 따라 무력으로 정복한 이집트와 그리스의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로마의 장군들은 그리스의 많은 도서관장서를 전리품으로 챙겨와 개인 저택에 문고를ㄹ 설치하는 등 귀족계급사회에서 개인문고가 경쟁적으로 증가하였다.
시저는 도서관론을 저술한 바로의 협력으로 대규모 공공도서관 설립을 계획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고 그의 친구인 폴리오에 의해 39년에 아벤틴의 언덕에 로마 최초의 공공도서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로마 도서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2C 초에 황제 트라자누스가 설립한 울피아 도서관이며, 국가의 중요 공문서를 보관하는 고문서관으로 사용되었다. 로마의 공공도서관은 공공이념에 매우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수도를 비잔틴으로 옮겨서 이를 콘스탄티노플이라 칭하고 여기에 큰 도서관 여러 개를 설립하였다. 이중 왕립도서관은 기독교 관계 종교문헌을 주로 보관하였으며 로마가 멸망된 후 수세기 동안 존속하였다. 로마의 도서관에서도 파피루스 권자본이 주제나 표제에 따라 책꽂이나 상자에 배열되었고, 이를 가죽으로 싸거나, 항아리, 디리석통 등에 넣어 보존하였다. 3C가 되어 로마의 도서관에는 종이를 접어서 만든 현대의 도서 형태의 고책자본, 즉 코덱형태의 도서가 등장하게 되었다.
로마의 도서관은 수차례의 큰 화제와 5C경 로마의 완전한 함락으로 문명의 자취가 파괴되었다. 다만 화산폭발로 매몰되었던 헤라클레니움과 폼페이 두 도시의 발굴로 인하여 대규모의 개인 도서관 유적이 발굴되어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
4) 중세
① 수도원 도서관
392년에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로서의 특권을 획득하게 되었고 이 역사의 전환과정에서 고대 문화의 상징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성난 기독교인들의 손에 의해 391년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이교 금지령에 의해 로마의 수많은 신전이 폐쇄되었고 그 안에 있었던 도서관도 없어져 버렸다. 로마의 도서관들은 대부분 신전안에 있었다. 476년 로마의 함락이후 북방의 반달족 등의 침입으로 그리스, 로마의 고대 문화는 파괴되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건설되었던 수많은 고대의 도서관들도 대부분 파괴되었다. 중세의 도서관은 기독교 교회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학문은 주로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는데 수도원에 부설된 도서관은 종교서적이나 고전 등 각종 필사본을 수집하였으며, Scriptorium이란 필사실을 두어 필사승들로 하여금 고전 문헌의 사본작업을 통하여 많은 장서를 모아놓았다. 수도원의 도서관은 그 은둔적 특성 때문에 그 당시의 혼란스런 전쟁의 화를 면하고 고전보전을 담당할 수 잇었다. 로마의 귀족이었던 카시오도루스는 6C중엽에 이태리 남부에 비바라움 수도원을 창설하고 이곳에서 고전과 기독교관계 서적을 대규모로 수집하여 한편 필사생을 훈련시켜 사본의 형태적인 미와 원문의 정확한 번역을 강조하며서 필사본 생산을 장려하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장될 뻔하 많은 중요 고대 문헌들을 고대에서 중세로 전달케 한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인 마인프랑켄지역에는 8C 초에 보니파스가 풀다 수도원을 설립하였는데 도서관에 필사본실을 설치하고 사본제작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다른 수도원 도서관의 모범이 되었다. 색소니지방에는 코르베 수도원이 있었는데 이는 8C말 서방세계에서 가장 도서의 생산을 많이한 서사실을 가진 코르비수도원 도서관 장서를 모체로 하여 설립되었고10C경에는 독일에서 가장 많은 장서량을 보유하게 되었다. 독일의 남서부지바아 슈바비아에 위치한 갈렌수도원은 8C 중엽부터 이미 모범적인 서사학교가 있었고,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말드 원장에 도서관을 설립하여 많은 장서를 수장하게 되고 11C 초까지 독일 수도원 문화의 원형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11C 독일의 레겐스브르그는 사본채식에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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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15
  • 저작시기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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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8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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