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케에 대하여(부제: 과거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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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랑케에 대하여(부제: 과거사실이 진실로 어떠했는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론
역사, 과거의 사실을 찾아서

II.본론
1. 랑케
2. 랑케 사학의 특징
(1) 엄격한 사료비판
(2) 도덕적 중립성과 정치사관
(3) 철학으로부터의 독립
(4) 역사에 있어서의 󰡐신의 손길󰡑
(5) 세계사의 과제
(6)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
3. 랑케사학의 객관적 사관 주장이유
4. 랑케사학에 대한 비판
5. 랑케의 또 다른 면

III. 결론
랑케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가 남기고자 한 것

본문내용

고려하지는 못했다. 연구방법에 있어서 그는 자신을 해소한다는 태도는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선 불가능한 일이거니와 사물의 내면에로 몰입하는 행위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역사사상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는 개체사상과 결부된 국가사상은 현실적으로 권력지향에 응용될 수 있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의 체제를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의도를 세력균형 속에서 스스로 수정해 나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상호간의 대립투쟁 속에서 상호 파괴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그가, 부르크하르트와는 달리, 미래전망을 결여라고 있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실로 그는 미래전망은 모호했고, 그것은 그의 역사사고에서 별다른 작용을 하지 못했다.
그에 대해서는 당대에서뿐만 아니라 후세에서도 적지 않은 비판이 있었다. 민족주의자들은 그의 세계시민적 태도를 비판했고, 도덕주의자들은 그의 윤리적 中道主義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런가 하면 물질주의자들은 그의 애매한 超越主義를 비난했다. 몸젠은 그의 90회 생일 때, 선생님은 우리들 가운데 가장 관대한 분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넌지시 항의했는가 하면, 지벨은, 그가 역사를 정치가적인 눈이 아니라 예술가적인 눈으로 관찰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보다 더 강한 반발은 민족통일과 자유를 위한 정열적인 투사이자 역사이론가였던 드로이젠에게서 나왔다. 즉, 그는 빌헬름 4세가 세습황제로 추대된 후 랑케와 동석한 자리에서 이 老大家로부터, 젊은 역사가들의 현실주의적 태도가 과도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우리들과 선생님 중에서 누가 역사를 보다 더 잘 이해했는지를 언젠가는 역사가 알게 해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러한 불만과 비판들보다 더 철저하게 방법론적으로 랑케를 비판하는 공격은 19세기 말의 람프레히트에 의해 제기되었다.
5. 랑케의 또 다른 면
랑케는 역사를 과학이며 동시에 예술로 생각했다. 랑케는 필연적으로 과학과 예술이 동시에 공존하는 학문으로서의 역사를 생각했다. 랑케는 사실의 독립성과 객관성 그리고 개체성에도 진지한 관심을 가졌고 보편사에도 지대한 관심을 두었다.
랑케는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 했다. 이 말은 국내에서 흔히 \'실제로 있는 그대로\' 라는 말로 번역되어, 역사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랑케는 과거 사실을 추구하면서, 실존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본질적 진실로서의 사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사실의 수집과 발견뿐 아니라 사실의 진정한 의미로 중시한 것이다. 랑케는 과학적 방법을 통한 과거 사실의 복원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보편사\'로서의 의미 파악도 중요시 했다. 요컨대 랑케가 역사학을 통해 추구한 것도 과거 사실의 리얼리티 였다. 랑케에게는 과학적 랑케와 예술적 랑케의 양면이 존재한다. 다만 과학적 랑케의 모습이 당시 어떤 측면보다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부각된 것이다.
과학적 랑케와 예술적 랑케가 동시에 가능했던 것은 랑케가 역사 이론가라기보다는 실제 역사가라는 사실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를 \'자아의 소거\'를 주장한 역사 이론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긴 생애동안 탁월 하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역사 저술로 전설이 된 실제 역사가였다. \"지난 4세기 동안의 로마교황, 종교 개혁 시대의 독일사, 라틴 및 게르만 제 민족의 역사, 세계사\"등의 역사서를 저술했다. 사실 그를 위대한 역사가로 기억 하는 것은 역사 이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위대한 역사서 때문이다.
III. 결론
- 근대 역사학의 두 거장 : 랑케와 E.H.카 -
랑케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가 남기고자 한 것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는 과학적인 학문으로서 역사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과거 사실의 절대성과 객관성뿐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떻게 사료에서 탐구하고 추출 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또한 과거 사실 그 자체를 위해, 사료의 저자와 연구자의 오류와 편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랑케는 역사를 \'구수한 옛날이야기\'나 \'영웅들의 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사실 그 자체를 발견 하려고 하는 과학적 탐구의 결과로서 제시 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해서 랑케가 역사를 더 이상 재미없는 이야기 혹은 단물 빠진 껌처럼 딱딱하고 지루한 이야기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한 영화감독은 \" 사실에만 너무 얽매이면 그 순간 문화는 재미없어진다. \" 라고 말했다. 물론 랑케도 소설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월터 스콧의 [퀀틴 더 워드]를 탐독했고 이 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랑케는 과거 사실이 이런 \"낭만주의적 허구 보다는 더 아름답고 적어도 더 흥미로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궁극적으로 역사는 역사 논문의 논리적 주장이 아니라 풍요롭고 경이로운 인간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험이나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여 풍요로운지 모르는 사람은 항상 역사책의 글자만을 재미없게 쳐다본다. 그리고 나선 \'사실\'은 재미 없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은 글자 이면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경험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 랑케가 도입한 언어적 비판 방법이나 세미나, 사실 그 자체와 사료에 대한 존경심과 숭배도 알고 보면 과거 사실 즉 인간의 경험을 제대로 보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랑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경험을 제대로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As it actually happened\" 그것이 진실로 어떠했는가를 위해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로 부터도 그 어떤 학문에서도 부터도 독립 할 수 있고 역사는 이리저리 끌려달리는 죽은 학문이 아니라 스스로 독립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살아있는 학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랑케는 이렇게 역사 이론의 진행뿐 아니라 실로 그와 함께 세계사의 진행을 의미 있는 그 무엇으로 생각하게 하었던 위대한 역사가이자 위대한 역사 저술가 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조지형,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랑케&카,(김영사 2006)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정종화
  • 가격2,0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8.10.18
  • 저작시기2008.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86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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