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는 조조의 공격을 막아낸다. 이로써 유비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게 되며 형주를 차지한 후 자신의 기반을 얻게 된다. 이후 삼국의 기본적인 형세가 갖추어진다. 소설의 제 47회~제 56회까지 해당한다.
(1) 연환계(連環計)
적벽전이 결정적으로 승패가 갈린 것은 화공 때문이었다. 만약 화공이 아니었다면 조조군이 패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큰 손실을 입진 않았을 터이고, 막강한 실력을 가진 조조는 다시 재기하여 동오와 촉을 지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오가 화공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연환계 때문이었고 그 주인공은 방통이다.
“와룡과 봉추 가운데 한 사람만 얻어도 중국을 잡을 수 있다”는 사마휘의 말에 나오는 봉추는 이름이 방통(龐統)으로 당시 동오에서 식객으로 지내고 있었다. 주유의 계책에 따라 방통은 2번째 동오의 진영을 방문한 장간(蔣幹)을 따라 강을 건너 조조 진영에 간다. 조조는 오래 전부터 방통의 소문을 들어온 터라 함께 군영을 돌아보며 가르침을 청하였다. 방통은 이 기회를 잡아 제안을 하였다. 수전에 익숙하지 않은 북방 병사들은 배멀미로 전투를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배들을 사슬로 묶어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조조가 방통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정욱 등 참모는 만약 동오가 화공으로 나오면 위험하다고 지적했으나 조조는 겨울에 동남풍이 불 리 없다고 일축한다. (제 47회)
(2) 불에 그을린 석벽
조조군을 화공으로 공격하는데 마지막 한 가지 문제는 바람이었다. 바람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불어야 화공이 성공할 것이다. 제갈량은 남병산에 제단을 쌓고 동남풍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그러자 과연 11월 20일 밤이 되자 풍향이 바뀌어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당시 조조군의 본진은 강릉(江陵, 형주)에 있었으나 선단은 오림(烏林, 호북성 洪湖현)에 있었기에, 주유는 배를 거느리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오림의 맞은편인 적벽(赤壁, 호북성 蒲圻현)에 진주하였다.
감택(澤)이 거짓 항복 서신을 가져간 탓에, 조조는 이를 믿고 황개(黃蓋)의 항복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개의 배는 마른풀을 싣고 11월 21일 안개가 일어나는 밤 동남풍을 타고 오림의 조조군에 다가갔다. 황개가 거느린 20척의 배는 일제히 불을 쏘며 공격하였다. 조조군의 배는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어 불기둥에 휩싸이게 되었다. 오림의 영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의 불길로 강 남쪽에 있는 석벽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붉은 석벽을 사람들은 ‘적벽’(赤壁)이라 하였다. (제 49회)
(3) 화용도(華容道)
한편 미리 하구(夏口)로 돌아간 제갈량은 조조군이 패할 것이라 예상하고 퇴로를 차단할 장수를 파견하면서 오직 관우에게만은 임무를 주지 않았다. 관우가 불만을 표하자 제갈량은 관우가 조조를 풀어줄 것을 염려해서라고 말한다. 관우는 결연히 명령을 청하여 화용도(華容道, 호북성 監利)로 가서 매복한다.
불더미 속을 겨우 탈출하여 도망 나온 조조는 오림의 서쪽 의도(宜都)에서 겨우 숨을 돌리다가 조운(조자룡)의 군대와 맞닥뜨렸고, 호로구(葫蘆口)에서 매복한 장비의 군대에
(1) 연환계(連環計)
적벽전이 결정적으로 승패가 갈린 것은 화공 때문이었다. 만약 화공이 아니었다면 조조군이 패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큰 손실을 입진 않았을 터이고, 막강한 실력을 가진 조조는 다시 재기하여 동오와 촉을 지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오가 화공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연환계 때문이었고 그 주인공은 방통이다.
“와룡과 봉추 가운데 한 사람만 얻어도 중국을 잡을 수 있다”는 사마휘의 말에 나오는 봉추는 이름이 방통(龐統)으로 당시 동오에서 식객으로 지내고 있었다. 주유의 계책에 따라 방통은 2번째 동오의 진영을 방문한 장간(蔣幹)을 따라 강을 건너 조조 진영에 간다. 조조는 오래 전부터 방통의 소문을 들어온 터라 함께 군영을 돌아보며 가르침을 청하였다. 방통은 이 기회를 잡아 제안을 하였다. 수전에 익숙하지 않은 북방 병사들은 배멀미로 전투를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배들을 사슬로 묶어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조조가 방통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정욱 등 참모는 만약 동오가 화공으로 나오면 위험하다고 지적했으나 조조는 겨울에 동남풍이 불 리 없다고 일축한다. (제 47회)
(2) 불에 그을린 석벽
조조군을 화공으로 공격하는데 마지막 한 가지 문제는 바람이었다. 바람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불어야 화공이 성공할 것이다. 제갈량은 남병산에 제단을 쌓고 동남풍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그러자 과연 11월 20일 밤이 되자 풍향이 바뀌어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당시 조조군의 본진은 강릉(江陵, 형주)에 있었으나 선단은 오림(烏林, 호북성 洪湖현)에 있었기에, 주유는 배를 거느리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오림의 맞은편인 적벽(赤壁, 호북성 蒲圻현)에 진주하였다.
감택(澤)이 거짓 항복 서신을 가져간 탓에, 조조는 이를 믿고 황개(黃蓋)의 항복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개의 배는 마른풀을 싣고 11월 21일 안개가 일어나는 밤 동남풍을 타고 오림의 조조군에 다가갔다. 황개가 거느린 20척의 배는 일제히 불을 쏘며 공격하였다. 조조군의 배는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어 불기둥에 휩싸이게 되었다. 오림의 영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의 불길로 강 남쪽에 있는 석벽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붉은 석벽을 사람들은 ‘적벽’(赤壁)이라 하였다. (제 49회)
(3) 화용도(華容道)
한편 미리 하구(夏口)로 돌아간 제갈량은 조조군이 패할 것이라 예상하고 퇴로를 차단할 장수를 파견하면서 오직 관우에게만은 임무를 주지 않았다. 관우가 불만을 표하자 제갈량은 관우가 조조를 풀어줄 것을 염려해서라고 말한다. 관우는 결연히 명령을 청하여 화용도(華容道, 호북성 監利)로 가서 매복한다.
불더미 속을 겨우 탈출하여 도망 나온 조조는 오림의 서쪽 의도(宜都)에서 겨우 숨을 돌리다가 조운(조자룡)의 군대와 맞닥뜨렸고, 호로구(葫蘆口)에서 매복한 장비의 군대에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