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부.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하버마스
1-1.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활동
1-2. 하버마스의 활동
제2부. 노동개념과 상호작용
2-1. 헤겔의 노동개념
2-2. 마르크스의 노동
2-3. 하버마스의 후기 산업사회에 대한 현실인식
제3부. 의사소통 행위이론
제4부. 체계와 생활세계
제5부. 하버마스와 사회운동
1-1.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활동
1-2. 하버마스의 활동
제2부. 노동개념과 상호작용
2-1. 헤겔의 노동개념
2-2. 마르크스의 노동
2-3. 하버마스의 후기 산업사회에 대한 현실인식
제3부. 의사소통 행위이론
제4부. 체계와 생활세계
제5부. 하버마스와 사회운동
본문내용
그렇다면 문화이론 혹은 문학이론에서 하버마스의 제반 논의중 받아들일 부분은 없는 것인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대량문화의 생산물과 생산과정을 말하면서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고안했고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긍정적 문화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구체적 문화영역에 대한 언급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하버마스의 고민은 '생활세계의 합리화'나 '생활세계와 체계 사이의 경계 투쟁'등 보다 포괄적인 영역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점에서 발전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하버마스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생활세계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형식적인 의사소통의 구조이고, 개인화의 과정, 규범의 추상화와 보편화, 그리고 문화적 전승에 대한 반성을 통해 진행되는 그 구조의 분화과정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 속에서 논의의 진전 가능성은 볼 뿐이다. 하버마스의 이론들이 모순 없는 완결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분석적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과학적 합리성이라는 영양분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주사하면 마르크스주의를 회생시킬 수 있다는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반대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위기의 원인이 합리성이라는 암세포에 있기 때문에 그 암세포를 수술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는 처방을 제시한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역사적 유물론의 구성요소를 분해하여 그 의도를 좀더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기획을 추진했으며, 1989년의 혁명을 목도하면서 '비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약한 부활'을 주장하기도 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하버마스의 주제들을 검토함에 있어 핵심적인 것은 '생산 패러다임에서 의사소통 패러다임으로의 전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정당한 자리매김을 해주면서도 마르크스의 근본적 결함을 반성하게 해 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여기서 아도르노의 "절대에 대한 주장을 확고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만사를 진리 개념을 강조해서 그로부터 연역해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라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를 느낀다. 이는 비판이론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론의 핵심을 이해하는 한 단초를 제공한다.
하버마스가 패러다임의 전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비판이론'의 전통과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이데올로기의 혼돈 혹은 이데올로기의 소멸 논의의 확산속에서 비판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신에 기반한다.
모든 논의는 발전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발전이나 정체 또는 퇴보의 길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절대에 굴종하는 것이 아닌 '실천'과의 연계속에서 비판적 재구성을 시도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그 갈림길을 달리 한다.
하버마스가 평가받고 앞으로도 계속적 논의의 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는 이 갈림길에서 취한 하버마스의 비판적 그리고 실천적 재구성의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거기에 하버마스 이론의 핵심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 참고문헌 >
마틴 제이, 황재우 외 역, {변증법적 상상력}, 돌베개, 1981.
위르갠 하버마스, 강영계 역, {인식과 관심}, 고려원, 1983.
위르갠 하버마스, 장은주 역, {의사소통의 사회 이론}, 관악사, 1995.
윤평중,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교보문고, 1993.
조정옥 외, {사회철학대계 3}, 민음사, 1993.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탈현대 사회사상의 궤적}, 새길, 1995.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의 명저 20}, 새길, 1993.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대량문화의 생산물과 생산과정을 말하면서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고안했고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긍정적 문화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구체적 문화영역에 대한 언급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하버마스의 고민은 '생활세계의 합리화'나 '생활세계와 체계 사이의 경계 투쟁'등 보다 포괄적인 영역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점에서 발전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즉 하버마스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생활세계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형식적인 의사소통의 구조이고, 개인화의 과정, 규범의 추상화와 보편화, 그리고 문화적 전승에 대한 반성을 통해 진행되는 그 구조의 분화과정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 속에서 논의의 진전 가능성은 볼 뿐이다. 하버마스의 이론들이 모순 없는 완결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분석적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과학적 합리성이라는 영양분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주사하면 마르크스주의를 회생시킬 수 있다는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반대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위기의 원인이 합리성이라는 암세포에 있기 때문에 그 암세포를 수술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는 처방을 제시한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역사적 유물론의 구성요소를 분해하여 그 의도를 좀더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기획을 추진했으며, 1989년의 혁명을 목도하면서 '비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약한 부활'을 주장하기도 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하버마스의 주제들을 검토함에 있어 핵심적인 것은 '생산 패러다임에서 의사소통 패러다임으로의 전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정당한 자리매김을 해주면서도 마르크스의 근본적 결함을 반성하게 해 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여기서 아도르노의 "절대에 대한 주장을 확고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만사를 진리 개념을 강조해서 그로부터 연역해내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라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를 느낀다. 이는 비판이론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론의 핵심을 이해하는 한 단초를 제공한다.
하버마스가 패러다임의 전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비판이론'의 전통과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이데올로기의 혼돈 혹은 이데올로기의 소멸 논의의 확산속에서 비판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신에 기반한다.
모든 논의는 발전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발전이나 정체 또는 퇴보의 길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절대에 굴종하는 것이 아닌 '실천'과의 연계속에서 비판적 재구성을 시도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그 갈림길을 달리 한다.
하버마스가 평가받고 앞으로도 계속적 논의의 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는 이 갈림길에서 취한 하버마스의 비판적 그리고 실천적 재구성의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거기에 하버마스 이론의 핵심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 참고문헌 >
마틴 제이, 황재우 외 역, {변증법적 상상력}, 돌베개, 1981.
위르갠 하버마스, 강영계 역, {인식과 관심}, 고려원, 1983.
위르갠 하버마스, 장은주 역, {의사소통의 사회 이론}, 관악사, 1995.
윤평중,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교보문고, 1993.
조정옥 외, {사회철학대계 3}, 민음사, 1993.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탈현대 사회사상의 궤적}, 새길, 1995.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의 명저 20}, 새길,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