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목차
용과용의 대격전
단재의 역사전기소설
개화기의 우국 소설
꿈하늘
용(龍)과 용(龍)의 대격전
단재의 역사전기소설
개화기의 우국 소설
꿈하늘
용(龍)과 용(龍)의 대격전
본문내용
해야 한다는 과제를 문학작품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즉, 문학의 공리적 측면을 중시하여 민족의 영웅을 상상 속에서 재창조하려는 의도에서 역사전기 소설을 지은 것이다. 한편 애국계몽기에는 많은 작품들이 번안되었는데 단재 또한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번안하면서 국가를 부흥시킨 다른 나라의 위인들을 소개하고자 했다. 한마디로 역사전기소설은 국권상실에 처한 민중들의 민족애와 저항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재는 「을지문덕」(1908), 「이순신전」(1908), 「최도통전」(1909) 등의 역사전기소설을 남겼다.
개화기의 우국 소설
개화기 문학은 대체적으로 1894년 갑오경장 이후부터 1910년에 이르는 시기의 문학을 지칭한다. 간혹 1910년대 후반까지 잡기도 하나 이후의 신소설은 통속적이고 친일적인 성격이 강화되어 개화기 문학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개화기 문학으로서의 신소설이 대체적으로 그 특성에 있어서 친일적 징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신소설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일보의 <일념홍>과 <혈의 누>에서 비롯하여 경남일보의 <옥련당>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 감각에 있어서는 확실히 일본을 플러스적인 준거집단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극단적으로는 이인직의 <은세계>에서는 지식 계층인 주인공들이 자보적인 항일무장 투쟁의 주도 세력인 의병까지도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면모를 보고 개화기 문학의 전반에 있어서의 저항성의 결여를 속단 지적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오해일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신소설과는 다른 형태의 개화기 문학인 역사전기소설에서 민족주의적 저항의 주제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신소설만이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역사전기소설은 거의 무시되다 시피 하였다. 그것은 개화기 역사전기류 중의 대다수가 외국 서적의 번역 내지 번안인데다가 서구적인 현대문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좁은 의미의 문학, 즉 ‘순문학’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문성숙,『개화기 소설론 연구』, 새문사, 1994, p29 - 역사소설의 경우 이를 역사서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소설로 이해해야 할 것인 지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이며, 전통적인 ‘傳’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전기소설도 그것이 개인적인 전기인지 전기체 소설인지 논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역사소설과 전기소설이 지니는 장르상의 혼합적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개화기의 역사전기소설은 당시 민족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지식인이나 선각자들이 뚜렷한 주관과 판단을 가지고 번역번안했거나 창작한 것들이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적 진실과 전기적 진실만을 집요하게 다루려고 했던 소설론자의 태도에는 시대적으로, 사상적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이유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개화기라는 변혁기에 이룩된 서사문학적 성과이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사실은 당시 생산자인 작가나 소비자인 독자 그리고 소설론 담당자들이 역사전기소설을 소설 갈래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개화기 시대의 우국소설로 분류되는 역사전기소설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1) 개화기시대의 역사소설
개화기 역사소설은 「萬國歷史」와 같이 서양의 일반 역사를 소개하려는 의도로 번역된 것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대체로 세 갈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독립사」,「서사건국지」등 서양 각국의 독립사 내지는 건국사류이며 둘째,「중동전기」,「파란말년전사」등 전쟁사류 셋째, 「월남망국사」,「인도망국사」,「조선망국사」등과 같은 국가의 흥망을 다룬 것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서양 각국의 건국사, 전쟁사, 망국사들에 투영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기록이면서도, 그러한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외세 침략에 직면한 당대 민중들을 각성시키려는 의도로 번역된 것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성숙,『개화기 소설론 연구』, 새문사, 1994, p32
그런데 이러한 책들의 대부분이 일역본의 중역이었다. 일본이 서양에서 발전의 모형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침략의 수법도 배우기 위해서 번역했던 것들을 다시 옮겨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는 시각을 마련하고자 했으므로 혼란이 생길 수 있었다. 이에 대처하는 논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집권층의 무능과 민족의 역량을 혼동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한 작품 중에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애급근세사」는 중국어본을 저본으로 해서 장지연이 번역하고 박은식이 서문을 썼는데, 당시 침략 당하고 있던 중국 쪽의 관점은 문제의 핵심을 분명하게 하는데 유리했다. 이러한 역사소설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국가의 흥망을 다룬 부류인데 「월남망국사」는 놀라운 충격을 주는 명저여서 1906년 이래로 거듭 번역되면서 널리 읽혔다. 그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월남의 집권층에 외세를 끌어들여 부귀를 얻으려는 자들이 있어 망국을 초래하게 되었다. 프랑스가 가혹한 수탈과 야만적인 살육을 일삼으니 문명국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남인들은 독립투쟁을 하고 있으면 침략자를 격퇴할 수 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4』, 1994, 322면.
이러한 내용은 당시 조선의 처지와 깊은 연관이 있어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찾았다. 따라서 출판사도 수지를 맞출 수 있었기에 세 차례나 각기 다른 문체로 번역되었다.
먼저 현채의 번역은 전형적인 국한문체이다. 저자 반패주가 월남에서 탈출하기 어려웠던 사정을 말한 대목에서 한 구절을 들면 “至於僕(지어복)은敵(적)의 (역)히忌疾(기질)라, 곳國內(국내)에通(통)보關律港(관율항)이라도得(득)지, 몰지니, 엇지出境(출경)키望(망)하리오.”라고 했다. 주시경의 번역은 발행자의 서문에서 말했듯이 한문을 모르는 이들도 다 보게 하기 위한 순국문본이다. 그 대목을 “나는 더구나 법국사람이 뎨일리고 미어는쟈라 심지어 나라안에셔도 나루를 건느거나 셩문에 드나드는 표지가잇는 나는 이표지도 엇을수업스니 엇지 외국으로 나가기를 바라리오”라고 했다. 이익상의 번역 또한 순국문으로 되어 있지만 한자어를 국문으로 적은 것이 더 많다. 그 대목을 “나 더욱됴
개화기의 우국 소설
개화기 문학은 대체적으로 1894년 갑오경장 이후부터 1910년에 이르는 시기의 문학을 지칭한다. 간혹 1910년대 후반까지 잡기도 하나 이후의 신소설은 통속적이고 친일적인 성격이 강화되어 개화기 문학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개화기 문학으로서의 신소설이 대체적으로 그 특성에 있어서 친일적 징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신소설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일보의 <일념홍>과 <혈의 누>에서 비롯하여 경남일보의 <옥련당>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 감각에 있어서는 확실히 일본을 플러스적인 준거집단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극단적으로는 이인직의 <은세계>에서는 지식 계층인 주인공들이 자보적인 항일무장 투쟁의 주도 세력인 의병까지도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면모를 보고 개화기 문학의 전반에 있어서의 저항성의 결여를 속단 지적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오해일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신소설과는 다른 형태의 개화기 문학인 역사전기소설에서 민족주의적 저항의 주제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신소설만이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역사전기소설은 거의 무시되다 시피 하였다. 그것은 개화기 역사전기류 중의 대다수가 외국 서적의 번역 내지 번안인데다가 서구적인 현대문학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좁은 의미의 문학, 즉 ‘순문학’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문성숙,『개화기 소설론 연구』, 새문사, 1994, p29 - 역사소설의 경우 이를 역사서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소설로 이해해야 할 것인 지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이며, 전통적인 ‘傳’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전기소설도 그것이 개인적인 전기인지 전기체 소설인지 논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역사소설과 전기소설이 지니는 장르상의 혼합적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개화기의 역사전기소설은 당시 민족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지식인이나 선각자들이 뚜렷한 주관과 판단을 가지고 번역번안했거나 창작한 것들이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적 진실과 전기적 진실만을 집요하게 다루려고 했던 소설론자의 태도에는 시대적으로, 사상적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이유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개화기라는 변혁기에 이룩된 서사문학적 성과이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사실은 당시 생산자인 작가나 소비자인 독자 그리고 소설론 담당자들이 역사전기소설을 소설 갈래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개화기 시대의 우국소설로 분류되는 역사전기소설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1) 개화기시대의 역사소설
개화기 역사소설은 「萬國歷史」와 같이 서양의 일반 역사를 소개하려는 의도로 번역된 것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대체로 세 갈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독립사」,「서사건국지」등 서양 각국의 독립사 내지는 건국사류이며 둘째,「중동전기」,「파란말년전사」등 전쟁사류 셋째, 「월남망국사」,「인도망국사」,「조선망국사」등과 같은 국가의 흥망을 다룬 것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서양 각국의 건국사, 전쟁사, 망국사들에 투영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기록이면서도, 그러한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외세 침략에 직면한 당대 민중들을 각성시키려는 의도로 번역된 것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성숙,『개화기 소설론 연구』, 새문사, 1994, p32
그런데 이러한 책들의 대부분이 일역본의 중역이었다. 일본이 서양에서 발전의 모형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침략의 수법도 배우기 위해서 번역했던 것들을 다시 옮겨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는 시각을 마련하고자 했으므로 혼란이 생길 수 있었다. 이에 대처하는 논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집권층의 무능과 민족의 역량을 혼동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한 작품 중에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애급근세사」는 중국어본을 저본으로 해서 장지연이 번역하고 박은식이 서문을 썼는데, 당시 침략 당하고 있던 중국 쪽의 관점은 문제의 핵심을 분명하게 하는데 유리했다. 이러한 역사소설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국가의 흥망을 다룬 부류인데 「월남망국사」는 놀라운 충격을 주는 명저여서 1906년 이래로 거듭 번역되면서 널리 읽혔다. 그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월남의 집권층에 외세를 끌어들여 부귀를 얻으려는 자들이 있어 망국을 초래하게 되었다. 프랑스가 가혹한 수탈과 야만적인 살육을 일삼으니 문명국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남인들은 독립투쟁을 하고 있으면 침략자를 격퇴할 수 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4』, 1994, 322면.
이러한 내용은 당시 조선의 처지와 깊은 연관이 있어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찾았다. 따라서 출판사도 수지를 맞출 수 있었기에 세 차례나 각기 다른 문체로 번역되었다.
먼저 현채의 번역은 전형적인 국한문체이다. 저자 반패주가 월남에서 탈출하기 어려웠던 사정을 말한 대목에서 한 구절을 들면 “至於僕(지어복)은敵(적)의 (역)히忌疾(기질)라, 곳國內(국내)에通(통)보關律港(관율항)이라도得(득)지, 몰지니, 엇지出境(출경)키望(망)하리오.”라고 했다. 주시경의 번역은 발행자의 서문에서 말했듯이 한문을 모르는 이들도 다 보게 하기 위한 순국문본이다. 그 대목을 “나는 더구나 법국사람이 뎨일리고 미어는쟈라 심지어 나라안에셔도 나루를 건느거나 셩문에 드나드는 표지가잇는 나는 이표지도 엇을수업스니 엇지 외국으로 나가기를 바라리오”라고 했다. 이익상의 번역 또한 순국문으로 되어 있지만 한자어를 국문으로 적은 것이 더 많다. 그 대목을 “나 더욱됴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