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백월산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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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다고 했으니, 어찌 선후가 뒤바뀜이 이와 같이 심했을까―이 사실을 듣고 정유년(757)에 사자를 보내어 큰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백월산 남사(白月山南寺)라 했다. 광덕(廣德) 2년―『고기』에는 대력 원년이라 했는데 또한 잘못이다―갑진(764) 7월 15일에 절이 완성되었다. 다시 미륵존상을 만들어 금당에 모시고, 액호(額號)를 현신성도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 했다. 또 아미타불상을 만들어 강당에 모셨는데 남은 금물이 모자라서 몸에 두루 바르지 못했으므로 아미타불상에는 또한 얼룩진 흔적이 있었다. 그 액호는 현신성도 무량수전(現身成道無量壽殿)이라 했다. ...(후략)
경덕왕이 백월산 남사를 세우고 미륵존상을 금당에 모시고 아미타불상을 만들어 강당에 모셨는데 남은 금물이 모자라 얼룩진 흔적이 있었다. 나라에서 만든 절에 금물이 모자라서 얼룩이 졌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부분 역시 앞의 해석과 같은 맥락이다.
결론
<남백월산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이야기는 단순히 미륵신앙과 아미타신앙을 믿는 두 사람이 모두 성불했다는 의미로만 여길 수는 없다. 나는 이야기를 차이점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점에 주목해서 이야기를 해석해보았다. 미륵신앙을 믿는 부득이 아미타 신앙을 믿는 박박보다 중생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먼저 성불한 점은 의의가 있다. 그 의의는 당시 신라사회에서 존재하는 두 불교 신앙형태에서 집필자인 일연이 소승적인 아미타신앙보다 대승적인 미륵신앙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승려인 일연이 불교가 현실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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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9.01.02
  • 저작시기2008.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2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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