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사론 (月明師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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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사론 (月明師論)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月明師는 어떤 인물인가?
Ⅲ. 작품의 一瞥
1. 兜率歌
1-1. 兜率歌 창작동인
1-2. 兜率歌 작품 분석
1-3. 兜率歌 성격
2. 祭亡妹歌
2-1. 祭亡妹歌 창작 동인
2-2. 祭亡妹歌 작품 분석
2-3. 祭亡妹歌 성격
Ⅳ. 결론

본문내용

마침내 꽃의 임무는‘旣而日怪卽滅’의 순간에 이르자 완벽하게 달성된다. 꽃은 이처럼 놀랍게도 변화의 마력을 소유하고 있다.
비정상의 상태를 정상의 상태로 환원시키는 일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한「도솔가」의 꽃, 그러므로 그것은 어차피‘광명의 사도’로서 의미를 갖는다. 원상으로 복귀한다는 것은 곧 광명의 세계를 되찾는다는 뜻이다. 그 비밀이‘기이일괴즉멸‘에 이르러 분명하게 판명된 것이다.
2. 祭亡妹歌
2-1. 제망매가의 창작 동인
祭亡妹歌는 『삼국유사』 권5 感通 제7 〈월명사 도솔가〉에 이어진 글로 나타나는 노래이다. 일연은 도솔가에 기술하고 난 뒤에,
월명은 또 일찌기 죽은 누이를 위해 제를 베풀었는데, 鄕歌를 지어 제사하였더니 갑자기 미친 듯한 바람이 일어 紙錢을 날려 서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라고 기록하고 이 노래를 실었다. 이로 볼 때, 이 노래는 월명이 일찍이 죽은 누이를 위해 제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문득 회오리 바람이 일더니 지전을 날려 서쪽으로 사라지게 했다는 내용이다.
월명사는 노래를 통하여 생사무상 때문에 일어나는 번뇌를 종교적인 신념, 즉 미타신앙으로 극복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다지고 있다. 이는 미타신앙이 창작 동인에 적지 않은 영향으로 적용한 것 같다. 따라서 제망매가의 창작 동인을 미타신앙과의 연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륵에 관계되는 신앙 형태가 주로 국가적 관심사나 집단과 관계되는 사회적자연적 현상에 결부되어 나타난다면 아미타 신앙에 관계되는 설화의 내용은 주로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아미타는 ‘무량수’, 아미타불을 ‘무량수불’이라고도 하는데 시간적공간적으로 무량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아미타불은 중생을 가련히 보고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구제하려는 신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미타불은 현세불로서 현세의 중생들이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면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면 된다고 해서 서민층도 쉽게 믿을 수 있는 신앙으로 여겼다.
미타신앙이 경덕왕대에 가장 성행했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미타 신앙의 ‘중생구제’ 요소가 당시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에게 생사 윤회하지 않는 극락에의 왕생을 보장할 수 있는 신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미타신앙은 원효경흥의숙 등에 의해 계급과 관계없이 누구나 아미타불을 소리 내어 부르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극락왕생을 실증하는 설화가 민중을 미타신앙의 세계로 몰아갔다.
다음으로 누이의 요절을 바라보는 월명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작가의 현실 인식은 곧 작품 창작의 내적 동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슬픔은 죽음이다. 그것도 하나 뿐인 혈육이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다. 그래서 월명의 슬픔은 더했는지도 모른다. 월명은 누이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승에서 못다한 누이의 짧은 삶을 다음 생애서는 반드시 극락왕생하여 복된 삶을 누리게 해야 한다는 혈육으로서, 미륵부처님을 모시는 불제자로서 사명으로 느꼈을 것이다. 후일 미타찰에서 누이와 재회를 위해, 불도의 완성을 위해 월명은 반드시 누이를 서방정토에 왕생시켜야만 했다. 그만큼 월명의 소망은 간절했다.
월명은 서방정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으며 누이의 혼이 극락정토에 반드시 이를 것임을 확신했다. 누이의 정토왕생을 비는 노래는 무엇보다 향가가 적당했을 것이다. 일찍이 신라 사람들은 향가를 숭상하는 자가 많았고 가끔 천지 귀신을 감동하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닐 만큼 신통력이 있었고 월명 또한 향가에는 누구보다 능숙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죽은 누이의 혼백을 천도하기 위해 49제를 올릴 때 회오리 바람이 일면서 지전이 서쪽으로 날아가면 하늘에서 아름다운 항아의 모습이 나타나 마치 광덕이 서방정토로 갈 때와 같은 신비한 광경이 나타난다.
이는 월명의 소망대로 누이가 서방정토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당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서방정토의 모습일 것이다.
살고 죽는 길은
예 있으니 두려워서
나는 간다고 말도
이르지 못하고 갈 수야.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태어났으나
가는 곳 모르겠도다
아아, 미타찰에서 만나볼까 내
도 닦아 기다릴까 김장동 : 『천년 신비의 노래』(국학자료원, 2007), p.144.
요절한 누이를 바라보는 월명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미타신앙의 영향을 받아 서방정토의 극락왕생을 비는 향가의 창작 동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배한순 : 앞의 책, pp.60-66.
2-2. 제망매가 작품 분석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의 승려이자 낭도였던 월명사가 지은 祭亡妹歌는 삼국유사 권 제5 월명사 도솔가조에 실려서 전해오고 있는 10구체 노래로서 같은 시대 사람 충담사가 찬기파랑가와 더불어 삼국유사에 실린 신라가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歌名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누이의 죽음을 애도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이 노래는 옛시대 詩歌로는 보기 드물게 詩的 기교에 성공하여 높은 詩的 경지를 개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인간의 生死觀과 죽음 의식을 심각하게 노래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탈속한 승이지만 국선지도임을 자처하고 향가의 시송을 즐겨 부른 가인 명월! 피리를 불어 달을 멈추게도 했다는 풍류인 월명으로서는 혈육을 나눈 누이의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생에서 생사의 길을 누이의 죽음을 통하여 보게 되고 인생 무상함을 두려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별의 인사도 없이 떠나가버린 누이가 원망스러워 못견디는 심정을 가을바람의 낙엽으로 비유하고, 한 가지에 나서 자란 오누이지만 가는 곳을 모른다는 꾸밈없는 원초적인 이념에서 말미의 세계 사후의 거처를 어이 알 수 있겠느냐고 노래하였다.
生事路隱
此矣有阿未次伊遺
吾隱去內如辭叱都
毛如云遺去內尼叱古
於內秋察早隱風未
此矣彼矣淨良落尸葉如
一等隱枝良出古
去奴隱處毛冬乎丁
阿也 彌陀刹良逢乎吾
道修良待是古如
(향찰 원문)
生死路
예 이샤매 저히고
나 가다 말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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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17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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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0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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