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사회주의 계열 국가건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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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복 후 사회주의 계열 국가건설운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광복 후 사회주의 계열 국가건설운동

<목 차>

Ⅰ. 서론

Ⅱ. 광복전후 사회경제적 구조

Ⅲ. 인민공화국 수립과 활동
1. 해방정국과 조선인민공화국 결성
2. 인공의 정권구상

Ⅳ. 인민공화국의 해소

Ⅴ.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것은 남한 내에 어떠한 세력이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느냐에 있게 되었다. 보수주의자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으면 미군의 역할은 해방군이 되고 좌익이 장악하고 있으면 점령군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남한의 우익을 강화시켜 이들을 통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또한 반공지도자를 지지하고 이를 강화시켜야 하는데 여기에 도전을 하는 사람은 좌우익을 막론하고 추방 억압되며 정치권력의 참가가 거부되는 원칙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직접적으로 남한에서 최고정부를 구성할 권한이나 재산의 처분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미국은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일본인을 남한에서 추방시키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본래의 사명이었다. 이를 위해 남한에서 잠정적으로 질서가 회복될 때까지 주둔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군정은 협의적 의미에서 교전국 일방의 군대가 타방의 육지상의 영역에서 진주한 후 피점령국의 권력을 배제하고 자국고유의 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광의적으로는 군사적,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주민의 생명, 재산의 보호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행정작용 이외에 입법, 사법의 역할까지 행사하는 경우의 점령지역의 정치를 의미한다. 미군정은 형식상으로는 미국인에 의한 입헌적 독재정부라고 할 수 있다. 미군정의 실시는 남한 내에 두 개의 권력이 존재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국제적인 정통성을 가진 미군정이고 다른 하나는 남한의 주민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토착권력인 인공이다. 근본적으로 해방직후의 자주적인 국가건설운동은 미국과 양립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미군정과 남한의 진보적인 세력들은 미군정의 힘 앞에 체념을 하든가 아니면 직접적인 저항으로 나타났다. 만약 인공의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대외정책을 고려해 볼 때 친미적인 보수주의자에 의해 장악되었다면 미국은 이를 인정하였을 가능성은 많다. 사회주의 세력이 장악한 남한은 미국의 대한정책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개념임으로 이를 용인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인공의 운영을 통해 민중들은 독립의 맛을 보게 되었으므로 일본인의 재산도 마음대로 차지하였다고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남한의 상황은 공산주의 건설에 매우 좋은 바탕을 제공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불안정한 정세와 미래에 대한 명백한 정책의 부재 및 조속한 국가주권에 대한 민중의 희망부재 등은 미군지역내의 민중들을 좌익급진주의로 몰아부칠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정세는 미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이러한 좌익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고, 힘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그 대상은 남한내 최고의 조직이며 전국적인 조직인 인공을 대상으로 취해진다. 미군정의 열악한 효율성과 소규모의 점령군으로서는 대응하기 힘들므로 식민지기구의 이용을 통해 남한내의 급격한 정치적인 움직임을 분쇄하고, 상황을 미군에게 유리하게 호전시키려 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0월 10일 아놀드가 인공거부성명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인공은 해방이 연합군의 전승의 결과이지만 독립은 민주주의적 해결에 의하여 수행해야 하며, 그 독립은 자주적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조선의 완전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족통일이 절대적으로 요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공이 미군정과 병립하는 것을 일제의 잔재소탕과 조선의 자주독립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공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미군정의 인공에 대한 일련의 조치가 조선 민중의 의사에 반대되는 것이며, 미군정은 해방군으로써 한국 내에서 식민잔재의 척결과 자주독립을 위해 존재하므로 인공과 미군정이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미군정은 인공을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인공이 정당으로 등록을 하게 하여 인공을 하나의 당으로 격하시키면서 미군정의 정통성을 위해 인민공화국의 ‘국’자의 삭제를 요구하였으며 인공의 해체를 종용하였다. 이처럼 인공이 미군정에 의해 부정당한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민의 자치능력을 부정당한 것이었다. 결국 인공은 미국의 부정아래 정부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포기하고 다음해 ‘중앙인민위원회’라는 형태로 남아 명맥을 유지하다가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그리고 그 지도부는 각자의 길로 돌아가 독자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인공의 국가건설운동은 실패하게 되고 미군정이 강화되고 배타적인 권위와 강제력을 독점하였다.
이러한 남한에서의 국가건설운동의 실패는 미군정의 강화로 나타나며, 미군정은 정부로서의 기능을 강화함과 동시에 정부로서의 배타적인 권위와 강제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또한 인공의 붕괴과정은 미군정이 배타성의 확보를 위해 좌익의 정치세력을 제압하고 정치경제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궁극적으로 미군정은 이러한 인공의 탄압과 해체를 통해 군정의 국가기구 자체의 토착화를 남한 내에서 실현해 나갔다.
Ⅴ. 결론
해방 후 우리나라의 사회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의 공산당이 아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와는 다른 이념으로 접근하려 하였다. 남한에서의 사회주의 계열의 국가건립은 우리민족에 바탕을 둔 통일조국을 뜻하였다. 외세에 의하지 않는 우리 손으로 만드는 조국, 이것이 그들이 내건 목표이자 꿈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국가건설운동은 좋은 방향이었다고 판단된다. 거기다 이들의 이념은 일본제국주의 청산 및 농민 및 여성의 인권보호라는 점 민주주의 토착화 시키려는 노력 등을 아주 높게 평가하고 싶다. 비록 외세의 또 다른 목적에 의하여 해체되었지만 이들의 노력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몫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의 이념이 이러했기 때문에 무조건 배척하는 자세가 아닌 이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에 의하여 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는지를 정확히 판단하여 평가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윤덕영, 1991, 815직후 사회주의 세력의 국가건설운동에 관한 연구, 연세대 사학과
윤덕영, 1992, 해방직후 사회주의 진영의 국가건설운동, 연세대 사학과
문재윤, 1993, 여운형의 정치노선에 관한 일 연구, 경북대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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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2.22
  • 저작시기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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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19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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