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침례교의 역사
Ⅱ. 침례교의 특징
1. 의례적 측면
2. 교리적 측면
3. 조직적 측면
4. 대사회적 측면
Ⅲ. 침례교의 기원
Ⅳ. 침례교의 세계사적 전개
Ⅴ. 일제하의 한국 침례교
Ⅵ. 광복 후의 한국 침례교
Ⅶ. 결론
Ⅱ. 침례교의 특징
1. 의례적 측면
2. 교리적 측면
3. 조직적 측면
4. 대사회적 측면
Ⅲ. 침례교의 기원
Ⅳ. 침례교의 세계사적 전개
Ⅴ. 일제하의 한국 침례교
Ⅵ. 광복 후의 한국 침례교
Ⅶ. 결론
본문내용
회의 선교 지원을 받으면서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은 서서히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 측은 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선교자금을 이용하여 교세를 확장시키고자 타교파의 목회자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이 때 타교파의 목회자들은 침례교의 신앙을 철저하게 이해해서라기보다 미남침례회의 풍부한 선교자금을 이용하여 보다 자유로운 목회활동을 하기 위해서 침례교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은 숫적으로는 교세를 확장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지만 선교자금을 관장하는 선교사를 중심으로 소위 진보파(혁신파)와 보수파(노장파)로 나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진보파는 영입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친선교사 계통이었고, 보수파는 펜윅의 지도 아래 일제하에서부터 활동하였던 반선교사 계통이었다.
결국 이들 사이의 내분이 표면화되어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은 두 개의 총회로 분열되고 말았다. 먼저 1959년 4월 25일 선교회의 지원을 받는 몇몇 교단의 지도자들과 전입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대전의 대흥동침례교회에서 소위 대전총회가 열리고 그 곳에서 기독교한국침례회라는 교단이 출현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25일 그 때까지 총회를 주도해 온 교단의 지도자들이 포항침례교회에서 소위 포항총회를 개최하고 한국기독교침례회라는 교단을 설립하였다. 한국 침례교의 이러한 분열은 선교부와 총회의 정책적 갈등, 타교단 교역자의 무분별한 영입으로 인한 부작용, 총회 내의 여러 파벌, 그리고 거기에 편승한 한국인과 선교사의 개인적 감정 혹은 한국인 사이의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결국 민족의 자긍심 대 선교부를 등에 없은 실제적 이권의 싸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열로 인해 특히 기독교한국침례회 측은 선교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다. 그러나 1963년에 대전총회에서 일부 한국교역자들이 선교사들의 비행과 그들의 정책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선교사 배격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5년을 전후하여 신학교 출신 교역자들이 전입파를 반대하고 선교부의 독주를 견제하며 주권을 회복하려는 세력으로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 입어 1968년 4월 소장파 목사들의 추진에 의해 두 개의 교단이 통합되어 ‘한국침례회연맹’이라는 교단이 출현하였다.
9년간의 교단 분열로 인해 한국 침례교는 분명히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한국 침례교로 하여금 세계의 침례교와 궤를 같이 하는 명실상부한 개교회 중심의 침례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미남침례회와의 연합으로 인해 한국 침례교는 독자적인 발전을 보지 못하고 미남침례회에 예속되어 있는 교회에 불과하다는 자성(自性)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한국침례회연맹은 1976년 교명을 다시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한국침례회는 근래에 침례교 세계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할 정도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지금까지 광복 후 한국의 침례교를 주로 기독교한국침례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이외에도 대한기독교침례회, 한국성서침례회, 그리고 대한선교침례회연합회라는 침례교 교단이 있다. 대한기독교침례회는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1946년 동아기독교가 감목체제를 회중체제로 바꾸고 임원 명칭도 변경하는 등 조직을 일신하려고 할 때 일제하의 구체제를 옹호하는 교인들에 의해 조직된 교단이다. 그리고 한국성서침례회는 1954년에 들어 온 미국성서침례회에서 비롯된 교단이며, 대한선교침례회연합회는 1971년에 들어 온 미국선교침례회에서 비롯된 교단이다.
Ⅶ. 결론
17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된 침례교의 역사는 어언 4백여 년에 가깝다. 짧지 않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해 온 침례교의 특징과 세계사적 전개 과정을 짧은 글에서 모두 서술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침례교의 특징과 역사를 서술하면서 필자의 견해가 많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여기에서 부언해야 할 것은 본 논문이 침례교의 특징과 역사를 침례교 내부에서 완벽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은 침례교 내부에서 발간한 연구 업적들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 논문은 어디까지나 일반 교양인이나 일반 개신교 신자들에게 침례교라는 하나의 교파를 이해시키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침례교의 특징과 역사적인 전개를 이해하는 데에는 몇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침례교에 대한 소개 책자가 다른 교파에 비해 비교적 적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는 세계기독교사에 관한 서적은 거의가 장로교와 감리교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중심으로 침례교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서구에서 발간된 침례교에 관한 연구서적들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침례교는 침례교 내부에서 발간된 이러한 연구서적들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데 매우 인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 침례교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광복 이전의 사료가 소위 원산사건으로 인해 거의 소실되었기 때문에 교단 차원에서 조차 한국 침례교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펜윅이 독립선교사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일제하의 한국 침례교에 관한 자료들이 외국에 보관되어 있지도 못하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교단 분열 기간을 거치면서 이것의 후유증으로 인해 교단 내부에서 조차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직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필자로서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이외의 한국 침례교의 활동을 살필 수 있는 자료를 입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고문헌
로버트 G. 토벳트, 浸禮敎會史(허 긴 역), 침례신학대학출판부, 1984.
로버트 A. 베이커, 침례교발전사(허 긴 역), 침례회출판사, 1968.
김장배, 한국침례교회의 산증인들, 침례회출판사, 1981.
에드워드 콜, 침례교의 유래(임성택 역), 생명의 말씀사, 1995.
조효훈, 침례교회의 의식, 요단출판사, 1988
그리하여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은 숫적으로는 교세를 확장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지만 선교자금을 관장하는 선교사를 중심으로 소위 진보파(혁신파)와 보수파(노장파)로 나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진보파는 영입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친선교사 계통이었고, 보수파는 펜윅의 지도 아래 일제하에서부터 활동하였던 반선교사 계통이었다.
결국 이들 사이의 내분이 표면화되어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은 두 개의 총회로 분열되고 말았다. 먼저 1959년 4월 25일 선교회의 지원을 받는 몇몇 교단의 지도자들과 전입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대전의 대흥동침례교회에서 소위 대전총회가 열리고 그 곳에서 기독교한국침례회라는 교단이 출현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25일 그 때까지 총회를 주도해 온 교단의 지도자들이 포항침례교회에서 소위 포항총회를 개최하고 한국기독교침례회라는 교단을 설립하였다. 한국 침례교의 이러한 분열은 선교부와 총회의 정책적 갈등, 타교단 교역자의 무분별한 영입으로 인한 부작용, 총회 내의 여러 파벌, 그리고 거기에 편승한 한국인과 선교사의 개인적 감정 혹은 한국인 사이의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결국 민족의 자긍심 대 선교부를 등에 없은 실제적 이권의 싸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열로 인해 특히 기독교한국침례회 측은 선교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다. 그러나 1963년에 대전총회에서 일부 한국교역자들이 선교사들의 비행과 그들의 정책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선교사 배격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5년을 전후하여 신학교 출신 교역자들이 전입파를 반대하고 선교부의 독주를 견제하며 주권을 회복하려는 세력으로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 입어 1968년 4월 소장파 목사들의 추진에 의해 두 개의 교단이 통합되어 ‘한국침례회연맹’이라는 교단이 출현하였다.
9년간의 교단 분열로 인해 한국 침례교는 분명히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한국 침례교로 하여금 세계의 침례교와 궤를 같이 하는 명실상부한 개교회 중심의 침례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미남침례회와의 연합으로 인해 한국 침례교는 독자적인 발전을 보지 못하고 미남침례회에 예속되어 있는 교회에 불과하다는 자성(自性)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한국침례회연맹은 1976년 교명을 다시 기독교한국침례회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한국침례회는 근래에 침례교 세계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할 정도로 세계에서 주목받는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지금까지 광복 후 한국의 침례교를 주로 기독교한국침례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이외에도 대한기독교침례회, 한국성서침례회, 그리고 대한선교침례회연합회라는 침례교 교단이 있다. 대한기독교침례회는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1946년 동아기독교가 감목체제를 회중체제로 바꾸고 임원 명칭도 변경하는 등 조직을 일신하려고 할 때 일제하의 구체제를 옹호하는 교인들에 의해 조직된 교단이다. 그리고 한국성서침례회는 1954년에 들어 온 미국성서침례회에서 비롯된 교단이며, 대한선교침례회연합회는 1971년에 들어 온 미국선교침례회에서 비롯된 교단이다.
Ⅶ. 결론
17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된 침례교의 역사는 어언 4백여 년에 가깝다. 짧지 않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해 온 침례교의 특징과 세계사적 전개 과정을 짧은 글에서 모두 서술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침례교의 특징과 역사를 서술하면서 필자의 견해가 많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여기에서 부언해야 할 것은 본 논문이 침례교의 특징과 역사를 침례교 내부에서 완벽하게 서술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은 침례교 내부에서 발간한 연구 업적들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 논문은 어디까지나 일반 교양인이나 일반 개신교 신자들에게 침례교라는 하나의 교파를 이해시키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침례교의 특징과 역사적인 전개를 이해하는 데에는 몇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침례교에 대한 소개 책자가 다른 교파에 비해 비교적 적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는 세계기독교사에 관한 서적은 거의가 장로교와 감리교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중심으로 침례교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서구에서 발간된 침례교에 관한 연구서적들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침례교는 침례교 내부에서 발간된 이러한 연구서적들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데 매우 인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 침례교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광복 이전의 사료가 소위 원산사건으로 인해 거의 소실되었기 때문에 교단 차원에서 조차 한국 침례교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펜윅이 독립선교사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일제하의 한국 침례교에 관한 자료들이 외국에 보관되어 있지도 못하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교단 분열 기간을 거치면서 이것의 후유증으로 인해 교단 내부에서 조차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직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필자로서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이외의 한국 침례교의 활동을 살필 수 있는 자료를 입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고문헌
로버트 G. 토벳트, 浸禮敎會史(허 긴 역), 침례신학대학출판부, 1984.
로버트 A. 베이커, 침례교발전사(허 긴 역), 침례회출판사, 1968.
김장배, 한국침례교회의 산증인들, 침례회출판사, 1981.
에드워드 콜, 침례교의 유래(임성택 역), 생명의 말씀사, 1995.
조효훈, 침례교회의 의식, 요단출판사,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