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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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라고도 한다. 작자의 《심우가(尋牛歌)》 《낙도가(樂道歌)》와 아울러 가사체 문학(歌辭體文學)의 원형이 된 작품이다. 불교의 포교를 목적으로 한 노래로서 현재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 장판(藏板) 속의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과 《신편보권문(新編普勸文)》 부록으로 실려 있다.
와 같은 작품이 현재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왕가>의 효시설은 그 작가인 나옹 화상이 고려 말의 실제 인물이라는 점에서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 하지만 <서왕가>가 최초의 시가라는 견해의 주된 난점은 한글 위주인 이 작품이 한글 창제 이전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춘곡>의 표기가 15세기의 표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현존하는 「불우헌집」초간본은 1768년경에 간행된 것이다. 그러므로 <상춘곡>은 작품의 창작 후 300년 후에 문집에 수록된 셈이다. 따라서 문집을 발행할 당시의 표기로 곡을 수록했다고 본다면 <상춘곡>을 가사의 효시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유육례, 「불우헌 정극인의 시가문학 연구」, 조선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창작동기
사대부의 시가에서 강호가도의 형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는 그들의 사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들의 사상적 바탕은 물론 유교이고 따라서 조선시대의 모든 문학작품에는 유교사상이 크게 반영되고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항상 예찬한 것은 은둔, 도피사상에 안빈낙도하는 생활이었다.
사대부는 고려 말이래 지속되어 온 공전(公田)으로 설정된 토지 사유와 함께 더욱 인정되고 발전되어 ‘농장’으로 불리었다. 이것이 조선전기 사대부문학의 강호가도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사대부의 출사와 은거는 이러한 사대부들의 토지 소유로 인한 경제적인 바탕을 배경으로 이루어 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대부의 이러한 경제적 바탕은 은거하여 선비의 겸허함을 지키며 유유자적할 수 있는 생활의 바탕이 되었다.
정극인은 서두를 통해 산림에 묻혀, 초가를 푸른 시냇물 앞에 두고, 송죽이 울창한 가운데 풍월주인 노릇이나 하는 것이 적막한 일이고, 천지간에 남자로 태어나 구태여 찾을 바가 아님을 전제로 삼고서, 그런 생활을 여러 모로 변명하고 합리화했다. 옛 사람의 풍류를 따르는 길이 거기 있다 하고, 지극한 즐거움을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거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부귀와 공명이 자기를 꺼리니 청풍이나 명월이 아닌 다른 벗이 없다고 해서 내심을 더 드러냈다. 밀려나서 은거를 하는 것이 바라지 않던 바일수록 자기는 신선인 양 자부하고, 세속의 먼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엾다고 해야 심리적인 보상이 이루어졌다. 요컨대 상춘곡은 자연과 화합하는 즐거움을 찾는 미의식을 겉으로 표출하면서 관직에 대한 욕망을 저버리지 못한 정극인의 내면심리가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분석
紅塵(홍진) 번거롭고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에 뭇친 분네 이내 ‘이내’는 ‘이 나의 생활’의 준말로써, 지은이는 번거로운 속세에 묻힌 사람들에게 나의 생활을 강조하여 말하고자 하고 있다.
生涯(생애) 엇더고.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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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9.04.17
  • 저작시기2009.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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