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사대부풍속
1. 양반의 특권
2. 호랑이보다 무서운 양반
3. 명분과 허례와의 이율배반
4. 서민들의 시각
Ⅱ. 사대부진출
Ⅲ. 사대부문학
1. 사대부 문학의 특징
2. 고려시대 사대부 문학
3. 조선시대 사대부 문학
4. 관료적 문학
5. 처사적 문학
6. 방외인 문학
Ⅳ. 사대부시조
1. 도가적 삶을 지향한 시조
2. 도가적 삶을 구현한 시조
3. 장생불사를 희원한 시조
Ⅴ. 사대부가사
1. 사대부가사의 정의
2. 사대부가사의 현황
3. 사대부가사의 서술방식
1) 유기적 서술
2) 삽화적 서술
3) 연쇄적 서술
4. 사대부가사의 작가의식
1) 완상과 풍류
2) 비판과 우국
3) 사모와 찬송
4) 도덕과 교화
Ⅵ. 사대부교육
참고문헌
1. 양반의 특권
2. 호랑이보다 무서운 양반
3. 명분과 허례와의 이율배반
4. 서민들의 시각
Ⅱ. 사대부진출
Ⅲ. 사대부문학
1. 사대부 문학의 특징
2. 고려시대 사대부 문학
3. 조선시대 사대부 문학
4. 관료적 문학
5. 처사적 문학
6. 방외인 문학
Ⅳ. 사대부시조
1. 도가적 삶을 지향한 시조
2. 도가적 삶을 구현한 시조
3. 장생불사를 희원한 시조
Ⅴ. 사대부가사
1. 사대부가사의 정의
2. 사대부가사의 현황
3. 사대부가사의 서술방식
1) 유기적 서술
2) 삽화적 서술
3) 연쇄적 서술
4. 사대부가사의 작가의식
1) 완상과 풍류
2) 비판과 우국
3) 사모와 찬송
4) 도덕과 교화
Ⅵ. 사대부교육
참고문헌
본문내용
써, 초시·복시·전시의 단계로 실시했다. 무과에 응시할 수 있는 신분적인 제약은 문과에 비해 너그러웠다. 기술관 채용을 위한 잡과에는 역과·의과·산과·음양과의 4과가 있었다. 이는 사역원 전의감 관상감 형조 등 관서의 기술관원을 채용하기 위한 것으로 초시와 복시의 2단계가 있었다. 문·무과는 주로 고급 관료를 원하는 양반들이 많이 보았고 잡과는 잡학생도는 7품이하의 전·현직 관리가 응시할 수 있는 하급관료 선발시험이었다. 또 무과로 승진하려는 발판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과는 조선 후기에 와서 여러 차례의 외란으로 국가의 궁핍한 재정 보완, 하층민들의 신분 상승을 목적으로 남발되어 양인뿐만 아니라 천민들 까지 응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만과라고도 불리워졌다. 과거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식년시가 원칙적인 것이었으나 임시, 부정기적인 과시로 국가에 큰 경사가 있을 때 당하는 증광식, 국왕이 성균관에 친거하여 실시하는 알성시, 보통 경사 때에 행하는 별시 등이 있었다. 이러한 별시는 양반들의 관료 차지에 대한 요구를 무마하기 위하여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등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양반층을 회유하고자 하는 목적에서였다. 식년시보다는 별시가 많았다. 과거제는 문·무의 관료를 임용하기 위한 정도였지만 그 밖의 음직 또는 남행이라고 하는 예외규정이 있었으니, 학행과 덕망이 뛰어난 자를 추천하는 천거와 유공자의 자손이 특서되는 문음 등이 그것이다. 과거제는 중기이후 점차로 문란해져서 오히려 음관으로 출세하는 자가 많았고 따라서 이시대의 관직을 문·무·음의 3종으로 나뉘어졌다.
Ⅲ. 사대부문학
1. 사대부 문학의 특징
화려한 수식을 일삼는 풍조를 청산하고 질박하고 내용 있는 문장, 사물자체를 존중하며 마음이 바른 도리를 찾자는 사고방식에서 고문과 신유학을 중시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출”의 삶에서 나타난 관료적 문학과 “처”의 삶에서 나타난 강호문학, 처사적 문학으로 나뉠 수 있다.
2. 고려시대 사대부 문학
권문세족의 횡포와 탐욕을 공격하고 고려사회에서 학문적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한 몫을 했다. 관리이면서 관리보다 백성의 입장에서 기술하며 권문세족을 비판하였고 조선시대 성립이전의 문제의식을 특징으로 삼는 작 품이 많았다. 일찍이 이규보에게 보이기 시작한 비판과 창조의 기품을 이으면서 그 시대 문제의식을 표현해 내었는데 성리학을 표방하여 고려를 혁신하고자 한 첫 세대는 안향, 백이정, 우탁 등이다. 대표적 인물은 최해, 안축, 이제현, 이곡, 윤이형, 백문보, 정보, 전녹생, 이색, 이달충, 정추, 김수용, 정몽주, 이존오, 이숭인, 이종학 등이 있다.
3. 조선시대 사대부 문학
당시 문학론의 초점은 “도”를 밝히는 것. “문”은 “도”를 밝히는 그릇(정도전)이라 평하고 도문일치의 관녕을 세웠다.“도”중심의 사림파와 “문”중심의 관학파가 대립하기도 하였는데 도가 근본임은 명분일 뿐이고 조선관인 사회의 실제는 문이 중시되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문학을 크게 관료적 문학과 처사적 문 학 또 처사적 문학에서 파생된 방외인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4. 관료적 문학
권력과 토지를 차지하여 정계에서 기득권을 구축하고 있는 훈구파 들의 문학으로서 왕조 사업을 이룩한다며 문학의 정신적 기능을 중시하고 격식에 맞게 잘 다듬어진 표현을 자랑했다. 한문학이야 말로 지위나 능력을 입증 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보고 한시의 수준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조선초기: 정도전,권근등
│집현전 출신:김수온,이석형,이개,박팽년,성삼문,신숙주등
│성종대:서거정,이승소,강희맹,성간,성현등
└중종이후:이행,남손,박은,노수신,정사룡,황정욱등
5. 처사적 문학
지방의 사대부들이 중소지주로서의 위치에 만족하지 안고 중앙정 계로 진출을 꾀하며 새왕조 창조의 명분을 철저히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사림파들의 문학으로 성리학을 한갓 명분이 아닌 도학으로 실천하며 도학이 근본이고 문학이 말단이라는 생각이 기본이었다. 표현자체보다는 거기에 따르는 의미를 중요시했고 강호가도를 구현하는 시조나 가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의 학통을 이어 영낙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김종직의 제자들을 시작으로 유호인, 이주, 남효온, 조위, 김일손,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서경덕, 이언적, 이황, 조식, 이이, 박순, 성혼, 정철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6. 방외인 문학
조선전기 사대부들은 한문학으로 신분사회를 굳히려 했는데 이러 한 상황에서 반발도 있을 수 있고 은둔과 방랑의 성향도 나타났다. 훈구파를 비판하며 그렇다고 사림파를 지지하지도 않으며 처사적 문학에서 떨어져 나간 형태로 사대부 사회의 모순적 산물이다. 처사적 문인으로 언급했던 남효온 서경덕, 조식도 약간 상통 하는 면이 있고 대표적 인물은 김시습이다.
Ⅳ. 사대부시조
16~17세기의 도가적 시조 문학은 당쟁과 사화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당시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선비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산림에 은거하면서 도학에 몰두하는 반면, 시문을 수 없이 남겼다.
1. 도가적 삶을 지향한 시조
서호 눈 진 밤의 비치 낫 제
학창을 님의고 강고로 나려 가니
봉해에 우의선인을 마조 본 예라.
- <허강(1520~1592), 출전 송호유고> -
눈이 내려 낮과 같은 서호 강가를 학창을 여미어 입고 강 언덕을 내려가니 봉래산의 깃옷을 입은 신선을 마주 본 듯하다고 정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선계에서의 유선이 아니라 현실적 삶의 공간에서 유선이다. 곧 현상계에 있으면서 신선세계를 동경하여 그것을 관념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서호의 자연 경관물은 이미 현상으로 나타나는 자연물이 아니라 허강에 있어서는 선경이며, 자신은 선계에 오른 신선이 된 듯하다. 자아 흥취가 이미 도도한 상태여서 굳이 선계를 꿈꿀 필요가 없다.
소재적 측면에서도 봉해 즉 봉래산이 등장하고 있다. 신선설의 기원에 대해서 고대 산악신앙과 결부시켜 제국의 동북 연안의 명산을 제사하는 팔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들 명산의 제사를 맡은 무축 축도들 사이에서 먼저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 설화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시인은 선적 공간인 봉래산을 소재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Ⅲ. 사대부문학
1. 사대부 문학의 특징
화려한 수식을 일삼는 풍조를 청산하고 질박하고 내용 있는 문장, 사물자체를 존중하며 마음이 바른 도리를 찾자는 사고방식에서 고문과 신유학을 중시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출”의 삶에서 나타난 관료적 문학과 “처”의 삶에서 나타난 강호문학, 처사적 문학으로 나뉠 수 있다.
2. 고려시대 사대부 문학
권문세족의 횡포와 탐욕을 공격하고 고려사회에서 학문적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한 몫을 했다. 관리이면서 관리보다 백성의 입장에서 기술하며 권문세족을 비판하였고 조선시대 성립이전의 문제의식을 특징으로 삼는 작 품이 많았다. 일찍이 이규보에게 보이기 시작한 비판과 창조의 기품을 이으면서 그 시대 문제의식을 표현해 내었는데 성리학을 표방하여 고려를 혁신하고자 한 첫 세대는 안향, 백이정, 우탁 등이다. 대표적 인물은 최해, 안축, 이제현, 이곡, 윤이형, 백문보, 정보, 전녹생, 이색, 이달충, 정추, 김수용, 정몽주, 이존오, 이숭인, 이종학 등이 있다.
3. 조선시대 사대부 문학
당시 문학론의 초점은 “도”를 밝히는 것. “문”은 “도”를 밝히는 그릇(정도전)이라 평하고 도문일치의 관녕을 세웠다.“도”중심의 사림파와 “문”중심의 관학파가 대립하기도 하였는데 도가 근본임은 명분일 뿐이고 조선관인 사회의 실제는 문이 중시되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문학을 크게 관료적 문학과 처사적 문 학 또 처사적 문학에서 파생된 방외인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4. 관료적 문학
권력과 토지를 차지하여 정계에서 기득권을 구축하고 있는 훈구파 들의 문학으로서 왕조 사업을 이룩한다며 문학의 정신적 기능을 중시하고 격식에 맞게 잘 다듬어진 표현을 자랑했다. 한문학이야 말로 지위나 능력을 입증 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보고 한시의 수준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조선초기: 정도전,권근등
│집현전 출신:김수온,이석형,이개,박팽년,성삼문,신숙주등
│성종대:서거정,이승소,강희맹,성간,성현등
└중종이후:이행,남손,박은,노수신,정사룡,황정욱등
5. 처사적 문학
지방의 사대부들이 중소지주로서의 위치에 만족하지 안고 중앙정 계로 진출을 꾀하며 새왕조 창조의 명분을 철저히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사림파들의 문학으로 성리학을 한갓 명분이 아닌 도학으로 실천하며 도학이 근본이고 문학이 말단이라는 생각이 기본이었다. 표현자체보다는 거기에 따르는 의미를 중요시했고 강호가도를 구현하는 시조나 가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의 학통을 이어 영낙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김종직의 제자들을 시작으로 유호인, 이주, 남효온, 조위, 김일손,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서경덕, 이언적, 이황, 조식, 이이, 박순, 성혼, 정철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6. 방외인 문학
조선전기 사대부들은 한문학으로 신분사회를 굳히려 했는데 이러 한 상황에서 반발도 있을 수 있고 은둔과 방랑의 성향도 나타났다. 훈구파를 비판하며 그렇다고 사림파를 지지하지도 않으며 처사적 문학에서 떨어져 나간 형태로 사대부 사회의 모순적 산물이다. 처사적 문인으로 언급했던 남효온 서경덕, 조식도 약간 상통 하는 면이 있고 대표적 인물은 김시습이다.
Ⅳ. 사대부시조
16~17세기의 도가적 시조 문학은 당쟁과 사화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당시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선비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산림에 은거하면서 도학에 몰두하는 반면, 시문을 수 없이 남겼다.
1. 도가적 삶을 지향한 시조
서호 눈 진 밤의 비치 낫 제
학창을 님의고 강고로 나려 가니
봉해에 우의선인을 마조 본 예라.
- <허강(1520~1592), 출전 송호유고> -
눈이 내려 낮과 같은 서호 강가를 학창을 여미어 입고 강 언덕을 내려가니 봉래산의 깃옷을 입은 신선을 마주 본 듯하다고 정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선계에서의 유선이 아니라 현실적 삶의 공간에서 유선이다. 곧 현상계에 있으면서 신선세계를 동경하여 그것을 관념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서호의 자연 경관물은 이미 현상으로 나타나는 자연물이 아니라 허강에 있어서는 선경이며, 자신은 선계에 오른 신선이 된 듯하다. 자아 흥취가 이미 도도한 상태여서 굳이 선계를 꿈꿀 필요가 없다.
소재적 측면에서도 봉해 즉 봉래산이 등장하고 있다. 신선설의 기원에 대해서 고대 산악신앙과 결부시켜 제국의 동북 연안의 명산을 제사하는 팔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들 명산의 제사를 맡은 무축 축도들 사이에서 먼저 봉래·방장·영주의 삼신산 설화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시인은 선적 공간인 봉래산을 소재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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