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가면극의 지역적 분포․ 내용
1. 서울, 경기도의 산대놀이
2. 황해도의 탈춤
3. 경상남도의 야류와 오광대
4. 경상북도의 하회별신굿탈놀이
5. 강원도의 강릉관노가면극
6. 함경남도의 북청사자놀음
7. 남사당패의 덧뵈기
Ⅲ. 결론
Ⅱ. 가면극의 지역적 분포․ 내용
1. 서울, 경기도의 산대놀이
2. 황해도의 탈춤
3. 경상남도의 야류와 오광대
4. 경상북도의 하회별신굿탈놀이
5. 강원도의 강릉관노가면극
6. 함경남도의 북청사자놀음
7. 남사당패의 덧뵈기
Ⅲ. 결론
본문내용
면서 매귀, 즉 지신밟기를 해 주고 받은 기부금으로 가면극을 준비해, 정월 14일 밤에 파방굿과 오광대가면극을 거행했다. 의흥계의 정기총회는 정월 14일 외에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열렸는데, 이때도 오광대놀이를 놀았다. 특히 4월초 봄놀이에는 사또놀음의 일부로 가면극을 연행했다.
놀이내용은 제1과장 문둥탈, 제2과장 풍자탈(양반과장), 제3과장 영노탈, 제4과장 농창탈(영감 할미과장), 제5과장 포수탈로 구성되어 있다.
고성오광대는 경남 고성군 고성읍에 전승되고 있는 가면극으로서,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고성에서 처음 오광대놀이를 시작한 것은 조선 말엽 남촌파 서민층 한량들이었다고 전한다. 조선 말엽 고성 읍내에는 북촌파와 남촌파라는 풍류모임이 있었다. 북촌파는 무랭이의 박씨 문중 어느 사랑방을 중심으로, 비교적 부유층인 선비들이 고전악기와 오음육률을 즐기며 소일하던 풍류모임을 말한다. 남촌파는 남촌 천씨 문중 사랑방을 중심으로, 서민층 한량들이 주로 시조창과 매구놀이를 즐기며 소일하던 풍류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고광대놀이를 언제 누가 어디서 배워 왔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고증이 어렵다. 어쨌든 고성오광대가 현재와 같은 놀이로 짜임새를 갖게 된 것은 1920년 무렵 통영오광대와 창원오광대의 영향인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고성 지방에서는 괴질이 크게 번지고 있어씩 때문에 남촌파 한량들은 고성읍에서 서북방으로 약 십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무이산의 문수암으로 병을 피해 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들은 시조 등 풍류놀이로 소일하다가 점차 오광대놀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 연희되고 있는 고성과 통영오광대의 내용은 과장의 구성, 대사, 등장인물, 가면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성과 통영오광대가 모두 창원오광대에서 배워 온 놀이지만, 각기 상당한 윤색의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성오광대에는 다른 지방의 오광대나 야류와 같이 병신춤인 문둥이과장과 정체확인형식의 영노과장이 있으며, 파계승과장의 내용이 간단하고, 할미가 죽은면 봉사가 독경을 한 후 상여소리를 부르며 상여를 내가는 등 경남 지방 가면극의 독자성과 향토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
예전에는 대개 정월 대보름날 객사 마당이나 시장 거리에서 오광대를 놀았다고 하며, 그 외에 봄에 꽃이 필 무렵이나 단오날, 그리고 가을에 단풍이들 때도 놀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로 보아 고성오광대는 신앙적 성격은 약하고 오락적 성격이 강함을 알 수 있다.
놀이내용은 제1과장 문둥북춤, 제2과장 오광대놀이(양반과장), 제3과장 비비놀이, 제4과장 승무, 제5과장 제미주놀이(영감 할미과장)로 구성되어 있다.
가산오광대는 경남 사천군 축동면 가산리에 전승되고 있는 가면극으로서,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음력 정월 2월부터 14일까지 매구꾼(풍물패)이 풍물을 울리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해 주고, 보름날 저녁에는 조창 앞마당에서 오광대 가면극을 놀았다. 예전에는 가면극을 연행하기 위해서 궤짝에 보관해 두었던 가면을 꺼낼 때, 놀이꾼들이 모인 가운데 양반역을 맡은 사람이 간단하게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보름날 초저녁에 가면극의 공연을 알리는 의미에서 \'조창오광대\'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말뚝이, 양반, 무당, 풍물의 순서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길놀이도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생략하고 있다.
가산오광대는 병신춤이 문둥이과장, 정체확인형식의 영노과장, 말뚝이 대사의 확대, 봉사의 독경 등 경남 지방 가면극의 독자성과 향토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일 계통의 가면극인 수영야류, 동래야류,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등 다른 야류나 오광대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놀이내용은 제1과장 오방신장무, 제2과장 영노놀이, 제3과장 문둥이춤, 제4과장 양반춤, 제5과장 중놀이, 제6과장 영감 할미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4. 경상북도의 하회별신굿탈놀이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리에서 전승되어 온 가면극으로서,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하회의 가면극은 마을굿의 일종인 별신굿을 거행할 때 놀았다. 별신굿에서 가면극을 놀았던 곳은 하회의 이웃마을인 병산이 있다. 그 외에 경북 예천의 청단놀음, 경북 경산의 자인팔광대놀이, 강원도 강릉의 관노가면극 등이 마을굿에서 연행된 가면극이다.
별신굿은 보통 십 년에 한 번씩 신탁에 의해 임시로 행해지는 큰 규모의 서낭굿이다. 하회에서는 매년 정월 15일과 4월 8일에 평상제를 지내다가, 부정기적으로 별신굿을 거행했다. 하회리의 서낭신은 \'무진생 서낭님\'으로 열일곱 살의 처녀인 의성 김씨라고 하고, 혹은 열다섯 살에 과부가 된 서낭신으로 동네 삼신의 며느리신이라고도 전한다.
별신굿을 거행하기 전해의 음력 12월 15일에 신의 뜻을 물어 별신굿이 결정되면, 12월 29일 마을 대어르이 동사에 모여 상임 제주인 \'산주\'의 주관 아래 탈놀이꾼 열두 명, 회계를 맡은 유사 두 명, 가면을 관리하는 청광대, 무동 등을 선정했다. 이들은 음력 12월 30일부터 별신굿이 거행되는 정월 15일까지 엄격한 금기 아래 동사에서 합숙하며 연습에 임했다.
가면극에 사용되는 가면은 동사에 보관되어 왔으나, 수십 년 전 동사에 화재가 난 이후로 산주의 집에 보관했다고 한다.
놀이내용은 제1과장 주지춤, 제2과장 백정놀이, 제3과장 할미놀이, 제4과장 파계승놀이, 제5과장 양반 선비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하회가면은 한국적인 표정을 갖고 잇으며, 한국인의 골격과 용모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각 배역에 따른 등장인물의 개성도 가면에 잘 나타나므로, 한국 나무가면 가운데 걸작으로 꼽힌다. 여러 방증자료에 의하면, 하회가면은 고려시대 중기인 11-12세기까지 소급된다.
5. 강원도의 강릉관노가면극
강릉관노가면극은 원래 강릉단오제 때 행해지던 가면극으로서, 가면극 자체가 주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에 속해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관노들에 의해 연희도던 가면극이었다. 옛날에는 음력 5월 1일
놀이내용은 제1과장 문둥탈, 제2과장 풍자탈(양반과장), 제3과장 영노탈, 제4과장 농창탈(영감 할미과장), 제5과장 포수탈로 구성되어 있다.
고성오광대는 경남 고성군 고성읍에 전승되고 있는 가면극으로서,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고성에서 처음 오광대놀이를 시작한 것은 조선 말엽 남촌파 서민층 한량들이었다고 전한다. 조선 말엽 고성 읍내에는 북촌파와 남촌파라는 풍류모임이 있었다. 북촌파는 무랭이의 박씨 문중 어느 사랑방을 중심으로, 비교적 부유층인 선비들이 고전악기와 오음육률을 즐기며 소일하던 풍류모임을 말한다. 남촌파는 남촌 천씨 문중 사랑방을 중심으로, 서민층 한량들이 주로 시조창과 매구놀이를 즐기며 소일하던 풍류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고광대놀이를 언제 누가 어디서 배워 왔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고증이 어렵다. 어쨌든 고성오광대가 현재와 같은 놀이로 짜임새를 갖게 된 것은 1920년 무렵 통영오광대와 창원오광대의 영향인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고성 지방에서는 괴질이 크게 번지고 있어씩 때문에 남촌파 한량들은 고성읍에서 서북방으로 약 십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무이산의 문수암으로 병을 피해 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들은 시조 등 풍류놀이로 소일하다가 점차 오광대놀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 연희되고 있는 고성과 통영오광대의 내용은 과장의 구성, 대사, 등장인물, 가면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성과 통영오광대가 모두 창원오광대에서 배워 온 놀이지만, 각기 상당한 윤색의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성오광대에는 다른 지방의 오광대나 야류와 같이 병신춤인 문둥이과장과 정체확인형식의 영노과장이 있으며, 파계승과장의 내용이 간단하고, 할미가 죽은면 봉사가 독경을 한 후 상여소리를 부르며 상여를 내가는 등 경남 지방 가면극의 독자성과 향토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
예전에는 대개 정월 대보름날 객사 마당이나 시장 거리에서 오광대를 놀았다고 하며, 그 외에 봄에 꽃이 필 무렵이나 단오날, 그리고 가을에 단풍이들 때도 놀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로 보아 고성오광대는 신앙적 성격은 약하고 오락적 성격이 강함을 알 수 있다.
놀이내용은 제1과장 문둥북춤, 제2과장 오광대놀이(양반과장), 제3과장 비비놀이, 제4과장 승무, 제5과장 제미주놀이(영감 할미과장)로 구성되어 있다.
가산오광대는 경남 사천군 축동면 가산리에 전승되고 있는 가면극으로서,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음력 정월 2월부터 14일까지 매구꾼(풍물패)이 풍물을 울리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해 주고, 보름날 저녁에는 조창 앞마당에서 오광대 가면극을 놀았다. 예전에는 가면극을 연행하기 위해서 궤짝에 보관해 두었던 가면을 꺼낼 때, 놀이꾼들이 모인 가운데 양반역을 맡은 사람이 간단하게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보름날 초저녁에 가면극의 공연을 알리는 의미에서 \'조창오광대\'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말뚝이, 양반, 무당, 풍물의 순서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길놀이도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생략하고 있다.
가산오광대는 병신춤이 문둥이과장, 정체확인형식의 영노과장, 말뚝이 대사의 확대, 봉사의 독경 등 경남 지방 가면극의 독자성과 향토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일 계통의 가면극인 수영야류, 동래야류,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등 다른 야류나 오광대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놀이내용은 제1과장 오방신장무, 제2과장 영노놀이, 제3과장 문둥이춤, 제4과장 양반춤, 제5과장 중놀이, 제6과장 영감 할미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4. 경상북도의 하회별신굿탈놀이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리에서 전승되어 온 가면극으로서,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하회의 가면극은 마을굿의 일종인 별신굿을 거행할 때 놀았다. 별신굿에서 가면극을 놀았던 곳은 하회의 이웃마을인 병산이 있다. 그 외에 경북 예천의 청단놀음, 경북 경산의 자인팔광대놀이, 강원도 강릉의 관노가면극 등이 마을굿에서 연행된 가면극이다.
별신굿은 보통 십 년에 한 번씩 신탁에 의해 임시로 행해지는 큰 규모의 서낭굿이다. 하회에서는 매년 정월 15일과 4월 8일에 평상제를 지내다가, 부정기적으로 별신굿을 거행했다. 하회리의 서낭신은 \'무진생 서낭님\'으로 열일곱 살의 처녀인 의성 김씨라고 하고, 혹은 열다섯 살에 과부가 된 서낭신으로 동네 삼신의 며느리신이라고도 전한다.
별신굿을 거행하기 전해의 음력 12월 15일에 신의 뜻을 물어 별신굿이 결정되면, 12월 29일 마을 대어르이 동사에 모여 상임 제주인 \'산주\'의 주관 아래 탈놀이꾼 열두 명, 회계를 맡은 유사 두 명, 가면을 관리하는 청광대, 무동 등을 선정했다. 이들은 음력 12월 30일부터 별신굿이 거행되는 정월 15일까지 엄격한 금기 아래 동사에서 합숙하며 연습에 임했다.
가면극에 사용되는 가면은 동사에 보관되어 왔으나, 수십 년 전 동사에 화재가 난 이후로 산주의 집에 보관했다고 한다.
놀이내용은 제1과장 주지춤, 제2과장 백정놀이, 제3과장 할미놀이, 제4과장 파계승놀이, 제5과장 양반 선비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하회가면은 한국적인 표정을 갖고 잇으며, 한국인의 골격과 용모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각 배역에 따른 등장인물의 개성도 가면에 잘 나타나므로, 한국 나무가면 가운데 걸작으로 꼽힌다. 여러 방증자료에 의하면, 하회가면은 고려시대 중기인 11-12세기까지 소급된다.
5. 강원도의 강릉관노가면극
강릉관노가면극은 원래 강릉단오제 때 행해지던 가면극으로서, 가면극 자체가 주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에 속해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관노들에 의해 연희도던 가면극이었다. 옛날에는 음력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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