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黃眞伊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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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황진이黃眞伊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1. 시대적 배경
2. 연구 방향

Ⅱ. 본론
1. 조선시대 기녀제도
가. 기녀의 역할
2. 황진이의 생애
가. 출 생
나. 기녀로서의 황진이
(1) 기녀가 된 이유
(2) 기녀 황진이의 면모
(3) 황진이의 남자들
다. 죽 음
3. 황진이의 시조 연구
가. 기녀시조의 특징
나. 황진이의 시조

Ⅲ. 결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견구의 밥이 되게 하라는 유언은 너무나 가혹한 자학의 채찍이었다. \"새가 죽으려고 하매 그 울음이 슬프다\"라는 말과 같이 황진이가 임종 할 때는 그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창기로서의 자기위치를 인식하고 한말일 것이다. 백호 임제가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다가 다음과 같은 추도의 시조를 지어 치제하여 조야의 비난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황진이가 죽은 뒤의 후일담으로 전해진다.
청초의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지금도 개성 동문밖에 황진이의 무덤이 아직 남아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나 광복 전에도 있었건만 그나마 민족의 비극은 이런 곳에도 미치었다. 중국사신으로 하여금 “너희 나라에 천하의 절색이 있도다”라고 감탄케 했다는 그 아름다운 자색도 옥을 굴리는 듯한 청아한 노래 소리도 영영 이 지상에서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영원한 성좌 위에서 그가 남기고 간 향기로운 사조의 여향이 그윽히 퍼지고 있는 한 황진이는 구원의 여성으로 길이 우리민족의 가슴속에 피어날 것이다.
3. 황진이의 시조 연구
가. 기녀시조의 특징
기녀시조는 기녀라는 작가군의 특수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작품으로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몇 수를 제외한 대다수 기녀의 작품이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16, 17세기에 지어진 작품이다. 또한 이 시기의 조선조의 유교 이념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인지라 작품에 드러나 있는 작가의 성격도 주로 사대부 남성에게 버림받은 기녀자신의 이별의 한과 체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절개를 고집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주제별 분류를 통하여 살펴보면 좀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초기의 작가인 소춘풍의 작품에는 유혹의 정서가 깊게 드러나 있으며, 홍장의 작품은 이별의 정한을 담고 있다. 조선 중기의 기녀 작가들은 주로 애정과 별리의 정서를 드러내는 작품을 남겼고 기녀의 주 업무인 유희를 위한 시조를 짓기도 하였는데 황진이의 시조가 이에 속한다. 황진이는 총 6수의 작품 중 4수의 작품에서 애정과 별리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으며, 각각 1수씩의 작품에서 유혹과 인생무상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조선 후기의 작가 성격의 특징으로는 애정과 별리에 관한 작품 이외에도 부동의 작품처럼 전대의 사건을 본보기로 하여 당대의 세태를 경계하는 내용의 작품을 지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작가들의 본업이 기녀인지라 그것이 님과 함께하고 싶은 애틋함이든, 혹은 이별에서 오는 애끓는 심정이든, 주로 자신들의 애정사를 작품 속에 토로하였다는 점을 조선 시대 전체에 걸친 기녀시조의 작가 성격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신은경, 「妓女時調 硏究」, 연세대 석사학위논문(2003), 11-12면.
나. 황진이의 시조
황진이의 문학을 학자들은 기류문학이라고들 흔히 말한다. 조선시대의 기녀들은 신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매우 독특한 존재였다. 기녀들은 남존여비의 사회 통념 하 에서 남성이 느낄 수 없었던 한을 안고 살아야 했던 여성인 동시에 그 본질이 하층계급인 천인집단에 속하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양반가의 여성이나 민간의 일반여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 한편으로 기녀는 다른 동시대의 여성들로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던 기이한 존재였다. 특히 남녀 간의 교제면 에서 그러했다 기류문학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한과 멋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황진이도 기녀였기에 그러한 한과 멋을 작품 속에 쏟아 부었다.
그의 작품은 6수가 전하는데 진본 『청구영언』에 3수는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고, 1수는 『해동가요』에 너머지 1수는 『근화악부』에는 무명씨 작으로 되어 있고, 황충기, 「여항인과 기녀의 시조」, 국학자료원, 1999, 140면.
『대동풍아』에 실려 있는청산은 내 뜻이요...는 황진이의 작품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실정이다. 하지만 언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 맥락과 수법이 여타시조와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이별의 회한을 노래한 것으로 황진이가 시조의 형식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시조입니다.
靑山은 내 뜻이요 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이 작품은 황진이가 지족 선사를 파계시킨 뒤 헤어지면서 지은 것이라 한다. 자신의 마음은 청산에 비유하여 일편단심의 마음을 표현하고 님의 정은 흘러가는 물에 비유하여 잠시 스쳐가는 것에 불과할 지라도 님 역시 자신을 그리워 할 것이라는 황진이의 자신감이 드러나 있는 시조라 하겠다.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이 작품의 ‘어론님’은 선전관 이사종으로 볼 수 있는데, 황진이는 이사종과 사귀다 이별한 뒤에도 그를 오랫동안 그리워했다고 한다. 동짓날은 밤이 가장 긴 날로 이 긴 밤 시간을 잘라내어 이불아래에 넣었다가 님이 오신 밤에 모두 펴내리라는 독특하고도 절묘한 생각으로 님에 대한 그리움과 님이 오신 밤이면 님과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표면적으로는 기다리는 이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짙게 베어있는 시로서 여성이 아니고서는 빚을 수 없는 멋을 지녔고 허리 춘풍 니불 등의 통속적이 시어들이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오히려 구체적 그리움이 드러나 신선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이 시조는 틀에 박힌 별한과 상념을 초월하여 겨울밤 고독을 따뜻한 봄밤의 만남의 환희로 대응시키고 있다. 세속적인 의미로서의 별한이나 상념은 말할 것도 없고 시대개념마저도 능히 초월한데서 멋을 보여준 작품이다.
내 언제 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月沈三更에 올 뜻이 전혀 없네
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이 시조는 화담 서경덕의 아래 시조에 화답하여 지은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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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5.26
  • 저작시기2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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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3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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