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 송연 연구의 의의
본론 : 1.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흐름
2. 프롤레타리아 연극 운동의 흐름
3. 송영의 생애와 작품세계
4. 호신술 작품분석
결론 : 송영 연구의 맺음말과 요약
본론 : 1.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흐름
2. 프롤레타리아 연극 운동의 흐름
3. 송영의 생애와 작품세계
4. 호신술 작품분석
결론 : 송영 연구의 맺음말과 요약
본문내용
1,2차 검거사건으로 두 차례에 걸쳐 피검되었다. 이 시기에 송영의 희곡세계를 대표할만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1935년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에도 카프 해산에 적극 반대를 하다가 3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대중극 중심의 상업극단에 참여하면서 작품성향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1937년 동양극장 문예부원으로 들어가 대중 연극계에 들어선 이후 김태진, 박제행과 함께 인생극장을 창단 하였다. 이 당시에 창작한 작품을 보면 카프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시기보다는 풍자성이나 비판성이 많이 약화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43년대에는 국민연극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하며 해방 이후에는 카프를 결성하고 다시 풍자문학의 성향으로 돌아가 친일 자본가를 대상으로 한 ‘황혼’을
발표하여 좌파로 다시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왕성한 활동의 전면에서 1946년 그는 문단과 연극계의 경력과 연륜에 의해서 좌익연극인들의 옹립을 받아 월북을 통해 새롭게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함께 월북한 박영호 등과 함께 북한연극 기본조성에 앞장섰다. 월북한 뒤로도 그는 작품 활동을 계속 하는데 6.25전쟁 때까지 그는 ‘인민은 조국을 지킨다’ 등을 발표했다. 6.25 이후에도 극히 조직적인 승전극을 몇 편 쓰고는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송영이 비록 카프작가로서는 최고 원로였지만 월북 후에는 어쩔 수 없이 북한의 노동당에서 지령한 주제를 기계처럼 쓰다가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프시대부터 활동하다가 월북한 작가의 말로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1979년 정신질환으로 사망하였다.
<송영의 작품세계>
송영의 초기 작품에 나타난 특징은 사회 계급적이기 보다는 일본에 대한 반감에 작품의 포커스를 맞췄다는 것이다. 보통 카프문학 , 즉 계급문학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반면 송영은 일본에 대한 반감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와 지주를 중심으로 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원적인 입장이 아니라 민족의식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초기 작품을 보면 이 땅에서 일자리를 못 찾고 일본의 공사판으로 가서 노동자의 삶을 굳힌다든가 거기에서 마저 제자리를 못 찾고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최후의 저항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초기 작품에서는 노동자들의 밑바닥 삶을 비극적으로 묘사하였다.
중기 작품에 들어서서는 초기 작품과는 달리 노동자들이나 실직 인텔리의 삶을 묘사하면서도 희극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호신술)만 하더라도, 동맹파업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묘사하면 서도 그것을 비극 아닌 희극적 기법으로 표현하였다는 데에 이와 같은 점들이 증명된다.
예를 들어, 호신술에서는 대부분의 극중 인물들이 넘어지기, 웃음, 엉뚱한 인물의 갑작스러운 출현, 성내기, 엄살과 고함 등의 소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춘보의 희극적 역할, 아이들의 노래를 통한 김상룡 사장의 풍자가 희극성을 강화해 주는 기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송영의 희극 작품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여러 종류의 인물 중에서 위선적인 종교인이나 권력자는 전혀 나오지 않고 오로지 유산자(사장)와 무산자(인텔리)가 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프로레탈리아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송영도 30년대 중반부터는 노동 쟁의 보다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우자와 현자로 양분해서 이들 둘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일깨우는 동양적 윤리관의 입장에서 세태 풍자극으로 나아간다.
‘황금산’, ‘가사장’, ‘윤씨일가’ 등의 희곡들이 그러한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황금산’ 은 독립운동가에게 출가하여 혼자된 장녀와, 사기한에게 출가하여 역시 홀로 된 딸에 실망한 아버지 실업가가 막내딸만은 대금업자의 외동아들인 황금산에게 출가시키려 하나, 이러한 실업가 아버지의 계획이 당사자의 완강한 저항과 주위 사람들의 반대로 좌절된다는 내용이다.
‘윤씨 일가’는 돈과 직위를 위해 딸을 첩으로 주려고 하는 부모, 자신의 안락을 위해 반도덕적인 행위도 거침없이 하려드는 늙은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자녀의 끈질긴 저항으로 부모는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되어 정상으로 돌아가는 해결점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들 작품들은 모두가 잘못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속물근성과 중상모략에 빠져 있는 천박하고 경솔한 사회를 묘사했다. 이러한 작품들을 일컬어 풍속희극이라 하며, 이런 희극에는 방해꾼들에게 역점을 두는 형식과 발견과 화해에 역점을 두는 형식이 있다.
송영은 이런 두 가지 형식을 절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악함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 상대의 우매함을 지적하려고 한다. 연극의 진행과정을 통해서 방해꾼의 비이성적 사고나 착각을 드러내어 총명하게 살도록 상황을 조성한다.
일반적으로 희극적 인물에는 기만적인 인간 (알라존), 자기비하자 (에이론), 어릿광대(보물로초스) 등 세 가지 유형이 나타나지만 송영의 작품에는 에이론과 알라존만 등장한다. 특히 이 알라존이 방해꾼으로서 끝까지 극적 긴장을 조성한다.
송영의 희극에는 부자(녀) 지간의 충돌이 축이 되어 극이 전개되는데 대체로 젊은 자식들을 감싸고 보호하는 쪽으로 흐르게 되고 늙은이들은 무언가 사회나 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나타내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예를 들어, ‘황금산’의 두 집 아버지들은 돈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속물 근성의 소유자들이고, 딸을 부유한 집의 백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윤씨일가’ 에서도 부모는 돈과 직위를 위해 딸을 첩으로 주려고까지 한다. 그러다보니 진실을 도덕률의 우위에 놓는 자녀와 충돌을 빚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의 끈질긴 저항으로 부모는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화해의 해결점을 찾게 된다. 이렇듯 그의 작품 곳곳에서는 가진 자에 대한 증오심과 혐오감이 나타난다. 그러나 철저한 카프 작가로서 초기에 발표한 작품들에서 보더라도 가진 자에 대해서 혐오감 정도를 나타냈을 뿐 파괴까지는 이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는 온건한 사회주의자였지 과격한 혁명론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45년 민족 해방과 함께 그는 시류를
1935년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에도 카프 해산에 적극 반대를 하다가 3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대중극 중심의 상업극단에 참여하면서 작품성향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1937년 동양극장 문예부원으로 들어가 대중 연극계에 들어선 이후 김태진, 박제행과 함께 인생극장을 창단 하였다. 이 당시에 창작한 작품을 보면 카프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시기보다는 풍자성이나 비판성이 많이 약화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43년대에는 국민연극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하며 해방 이후에는 카프를 결성하고 다시 풍자문학의 성향으로 돌아가 친일 자본가를 대상으로 한 ‘황혼’을
발표하여 좌파로 다시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왕성한 활동의 전면에서 1946년 그는 문단과 연극계의 경력과 연륜에 의해서 좌익연극인들의 옹립을 받아 월북을 통해 새롭게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함께 월북한 박영호 등과 함께 북한연극 기본조성에 앞장섰다. 월북한 뒤로도 그는 작품 활동을 계속 하는데 6.25전쟁 때까지 그는 ‘인민은 조국을 지킨다’ 등을 발표했다. 6.25 이후에도 극히 조직적인 승전극을 몇 편 쓰고는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송영이 비록 카프작가로서는 최고 원로였지만 월북 후에는 어쩔 수 없이 북한의 노동당에서 지령한 주제를 기계처럼 쓰다가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프시대부터 활동하다가 월북한 작가의 말로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1979년 정신질환으로 사망하였다.
<송영의 작품세계>
송영의 초기 작품에 나타난 특징은 사회 계급적이기 보다는 일본에 대한 반감에 작품의 포커스를 맞췄다는 것이다. 보통 카프문학 , 즉 계급문학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반면 송영은 일본에 대한 반감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와 지주를 중심으로 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원적인 입장이 아니라 민족의식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초기 작품을 보면 이 땅에서 일자리를 못 찾고 일본의 공사판으로 가서 노동자의 삶을 굳힌다든가 거기에서 마저 제자리를 못 찾고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최후의 저항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초기 작품에서는 노동자들의 밑바닥 삶을 비극적으로 묘사하였다.
중기 작품에 들어서서는 초기 작품과는 달리 노동자들이나 실직 인텔리의 삶을 묘사하면서도 희극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호신술)만 하더라도, 동맹파업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묘사하면 서도 그것을 비극 아닌 희극적 기법으로 표현하였다는 데에 이와 같은 점들이 증명된다.
예를 들어, 호신술에서는 대부분의 극중 인물들이 넘어지기, 웃음, 엉뚱한 인물의 갑작스러운 출현, 성내기, 엄살과 고함 등의 소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춘보의 희극적 역할, 아이들의 노래를 통한 김상룡 사장의 풍자가 희극성을 강화해 주는 기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송영의 희극 작품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여러 종류의 인물 중에서 위선적인 종교인이나 권력자는 전혀 나오지 않고 오로지 유산자(사장)와 무산자(인텔리)가 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프로레탈리아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송영도 30년대 중반부터는 노동 쟁의 보다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우자와 현자로 양분해서 이들 둘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일깨우는 동양적 윤리관의 입장에서 세태 풍자극으로 나아간다.
‘황금산’, ‘가사장’, ‘윤씨일가’ 등의 희곡들이 그러한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황금산’ 은 독립운동가에게 출가하여 혼자된 장녀와, 사기한에게 출가하여 역시 홀로 된 딸에 실망한 아버지 실업가가 막내딸만은 대금업자의 외동아들인 황금산에게 출가시키려 하나, 이러한 실업가 아버지의 계획이 당사자의 완강한 저항과 주위 사람들의 반대로 좌절된다는 내용이다.
‘윤씨 일가’는 돈과 직위를 위해 딸을 첩으로 주려고 하는 부모, 자신의 안락을 위해 반도덕적인 행위도 거침없이 하려드는 늙은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자녀의 끈질긴 저항으로 부모는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되어 정상으로 돌아가는 해결점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들 작품들은 모두가 잘못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속물근성과 중상모략에 빠져 있는 천박하고 경솔한 사회를 묘사했다. 이러한 작품들을 일컬어 풍속희극이라 하며, 이런 희극에는 방해꾼들에게 역점을 두는 형식과 발견과 화해에 역점을 두는 형식이 있다.
송영은 이런 두 가지 형식을 절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악함을 지적하는 것보다는 , 상대의 우매함을 지적하려고 한다. 연극의 진행과정을 통해서 방해꾼의 비이성적 사고나 착각을 드러내어 총명하게 살도록 상황을 조성한다.
일반적으로 희극적 인물에는 기만적인 인간 (알라존), 자기비하자 (에이론), 어릿광대(보물로초스) 등 세 가지 유형이 나타나지만 송영의 작품에는 에이론과 알라존만 등장한다. 특히 이 알라존이 방해꾼으로서 끝까지 극적 긴장을 조성한다.
송영의 희극에는 부자(녀) 지간의 충돌이 축이 되어 극이 전개되는데 대체로 젊은 자식들을 감싸고 보호하는 쪽으로 흐르게 되고 늙은이들은 무언가 사회나 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나타내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예를 들어, ‘황금산’의 두 집 아버지들은 돈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속물 근성의 소유자들이고, 딸을 부유한 집의 백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윤씨일가’ 에서도 부모는 돈과 직위를 위해 딸을 첩으로 주려고까지 한다. 그러다보니 진실을 도덕률의 우위에 놓는 자녀와 충돌을 빚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의 끈질긴 저항으로 부모는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화해의 해결점을 찾게 된다. 이렇듯 그의 작품 곳곳에서는 가진 자에 대한 증오심과 혐오감이 나타난다. 그러나 철저한 카프 작가로서 초기에 발표한 작품들에서 보더라도 가진 자에 대해서 혐오감 정도를 나타냈을 뿐 파괴까지는 이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는 온건한 사회주의자였지 과격한 혁명론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45년 민족 해방과 함께 그는 시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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