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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집안이 거의 몰락 상태였기 때문에 이순신이 문과시험을 잘 치루어도 합격할 수가 없었다. 이에 이순신은 문과시험을 합격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하고 무과시험을 치기로 마음을 바꾼다. 당시에는 무과는 문과에 비해서 승진도 어려웠고 대우 또한 형편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도 당시의 상황을 바탕으로 안 될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무과를 준비한 것은 현실을 고려한 상황파악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안 되는 것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안 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되게 하려는 것도 뛰어난 의지며 능력이지만 안 되는 것을 미리 알고 그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가능성이 있는 다른 것을 향해 열정을 쏟는 것이 더 대단해 보인다. 전자는 어떻게 보면 시간낭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과시험을 합격하기 위해 이순신은 열심히 무예를 닦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로 치룬 무과시험은 불합격이었고 두 번째 만에 합격하였다. 그는 여진족으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해 변방으로 보내어 졌다. 그곳에서의 이순신의 리더십 실천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었다. 여진족은 오랑캐이기 때문에 그들 부족만의 특성이 있었다. 그것을 적절히 파악하여 여진족의 피해로부터 최소화했다. 다음으로 처벌과 보상을 확실히 하였다. 여진족의 피해로부터 막은 병사가 있으면 이를 일일이 호명해가며 보상을 했지만 개인의 나약함 때문에 자신의 일을 수행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병사가 있으면 곤장을 치는 등의 처벌을 함으로써 그 집단을 잘 다스렸다. 하지만 이렇게 리더십을 발휘하여 여진족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열심히 지켰지만 그는 그의 시기 세력으로부터 모함을 받고 투옥하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을 투옥하다가 그의 어린 시절 부터 친구였던 유성룡의 도움으로 드디어 풀려나게 되고 이순신은 전라좌수사가 된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된 후 국내에는 일본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세력과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세력으로 나뉜다. 임금은 일본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한 세력을 믿고 특별한 정책을 취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일본이 침략할 것이라는 의도를 간파하고 미리미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리더가 갖추어야 하는 정보수집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을 하고 안하고의 유무를 나라의 임금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었는데 이순신은 뛰어난 정보수집능력을 바탕으로 일본에 대항하는 우리만의 전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본의 침략에 조선군은 일본군에 무참히 무너졌고 한나라를 잘 다스리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임금은 궁을 버리고 도망을 가게 되었다. 임금의 리더십은 이순신의 리더십과는 달랐다. 임금은 리더가 갖추어야 하는 백성을 부모, 형제, 자식처럼 아끼는 인간미도 없었고, 일본의 침략에 대해서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는 정보수집능력도 부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에 두려움을 느껴 도망까지 간 것을 보았을 때 책임의식도 없었으며, 다른 나라에 의존해서 일본을 조선으로부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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