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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놀음][꼭두각시놀음 역사][꼭두각시놀음 발전단계][꼭두각시놀음과 탈춤의 비교]꼭두각시놀음 어원, 꼭두각시놀음 특징, 꼭두각시놀음 역사, 꼭두각시놀음 발전 단계, 꼭두각시놀음과 탈춤의 비교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꼭두각시놀음의 어원

Ⅲ. 꼭두각시놀음의 특징
1. 장단, 춤사위
2. 연희자(演戱者)
3. 옛 놀이판, 현 전수소

Ⅳ. 꼭두각시놀음의 역사

Ⅴ. 꼭두각시놀음의 발전 단계

Ⅵ. 꼭두각시놀음과 탈춤의 비교
1. 개요
1) 민속극의 구비요건
2) 연극의 구비요건
2. 연구
1) 김재길
2) 조동일
3) 임재해
4) 박진태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면치 못할 운명이다]라고 하면서[엉터리 무대 표현은 신극에 취미를 가진 사람은 불소가 없을 것이라고까지 하여 민속극이 갖는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라는 본질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조동일과 임재해에 의해서 판 받는데 조동일은 탈춤은 서구적 근대극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고 임재해는 꼭두각시놀음은 연극사를 통하여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연구, 발전 되어 온 구성 양식들을 거의 같은 시대에 자생적으로 이룩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2) 조동일
허름한 할미와 영감이 등장해서 대립, 갈등을 일으키는 거리가 두루 보인다. 진행에 있어 다같이 극중 인물과 악사 사이에 대화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그 구체적 양상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서사적 성격을 지닌 정도에 있어서는 꼭두각시놀음이 탈춤보다는 서사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주제면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일상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고,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권위와 관념을 파괴하며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재길의 중국 기원설을 부인하고 주제의 동질성을 인정하면서 그 창조 계층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구체적인 표출의 양상은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 강조하는 양상으로 보았을 때에는 차이가 있으니 무당굿 놀이는 일상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며, 꼭두각시놀음은 권위와 관념을 파괴하는 데 치중하고 탈춤은 현실주의적 사고방식을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데 더욱 과감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결의 양상에 있어서는 무당굿 놀이는 부정도 긍정도 강하지 않아서 그 전개가 완만하고 꼭두각시놀음은 부정은 강하지만 그 부정에 대한 반격이나 부정을 넘어선 긍정은 강하지 않아서 대결이 일방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탈춤에서는 부정도 강하고 그에 대한 반격이나 부정을 넘어선 긍정도 강해서 대결이 쌍방의 작용으로 긴박하게 전개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공통점이나 차이점은 바로 이들 민속극들의 창조자들인 무당, 사당패, 농민이나 상민, 이속들의 사회적 위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들은 다 같이 양방이 아니라 민중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 표현한 주제에 공통점이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무당은 사회적 불만이나 반감이 그다지 강하지는 않으므로 적극적인 대결의 의지가 약하지만 사당패는 그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여건이 무당보다는 훨씬 어려웠기 때문에 대사회적 반감이나 불만 역시 그만큼 강할 수밖에는 없으며 농민이나 상인은 그들이 직접 생산에 종사하면서 기존의 사회 질서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사회를 개조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인식하기 때문에 부정을 위한 대결이나 긍정을 위한 대결이 둘 다 치열하게 전개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무당굿 놀이의 핵심은 흉내이며 꼭두각시놀음의 핵심은 파괴이며 탈춤의 핵심은 싸움이라고 본 것이다.
3) 임재해
지금까지 꼭두각시놀음의 모든 거리들을 같은 차원에서 획일적으로 다루어 왔던 방법론을 비판하고 각 거리들을 온전히 연극이라고 할 수 있는 거리들과 그렇지 못한 거리들을 나누어 논의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김재길의 중국 기원설을 부정하고 꼭두각시놀음은 탈대신에 인형을 표현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과 전문놀이 집단이 공연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탈춤과 같은 범주에 귀속될 수 있는 것이며 민중 의식의 성장과 함께 보다 발전된 연극으로 변모하면서 우리의 생활과 현실 사회 문제를 나름대로 독특한 양식으로 표현하고 형상화한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것으로 보았다.
4) 박진태
판소리사설「변강쇠가」와 가면극의 미얄과장 그리고 꼭두각시놀음의 평양감사에서 공통점을 찾아내어 변강쇠, 미얄, 평양감사의 죽음이 개인적 차원의 종교적, 철학적 의미보다는 역사적, 사회적 차원에서의 민속적 원형적 상징 의미를 보다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강쇠, 미얄, 평양감사를 불합리하고 모순 되고 부패하고 생명력과 창조력을 상실한 낡은 인간상, 낡은 관념과 제도, 낡은 질서, 낡은 세력을 대변하는 반민중적 인물 군들로 보고 뎁득이, 남강노인, 홍동지를 그 낡은 세력을 제거, 퇴치하는 새 시대의 주인공 내지는 예언자로 부각시킴으로써 새로운 질서와 시대를 갈망하는 민중의 꿈과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 냈다. 변강쇠, 미얄, 평양감사의 죽음이 비명횡사인 점, 그 죽음들이 희화화되어 나타난 점, 치상과정이 나타난 점, 치상의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뎁득이, 남강노인, 홍동지의 존재 의의에 어떤 역사적, 사회적 동질성이 있다는 점이다.
Ⅶ. 결론
꼭두각시놀음은 현재까지 구비전승 되고 있는 전통적인 인형극으로 구비전승되는 민속을 찾아 보존하려는 움직임과 더불어 그 존재가 인정되기 시작했다. 꼭두각시놀음의 후대 모습인 박첨지놀이는 서산 지역에서 연희되던 인형극으로 625 이후 서산군 음암면 문당리 지역에 전승된 꼭두각시놀음의 다른 이름으로 추정된다. 박첨지놀이의 전승자 김동익 씨는 625 당시 강원도에서 피난 온 주연산 씨에 의해 인형 만들기 및 놀이가 전해진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뒷받침 해 주는 근거로 현재까지 조사된 자료를 종합해 보면, 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패와 같은 유랑집단에서 연희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전승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강원도 지역의 경우, 춘천, 양양군, 강릉, 정선군, 영월군, 원주, 홍천군, 철원군, 평강군 등지에서 연희되었다는 보고는 유의할 만 하다. 이 지역에서 꼭두각시놀음의 명칭은 대체로 ‘박첨지홍동지놀이’로 통용되었다. 이로 보아 서산에 정착된 인형극은 강원도 지역에서 연희되던 꼭두각시놀음으로 명칭이 ‘박첨지놀이’라는 것과 현대에 전승된 것이니 만큼 특이한 변이 양상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김익두, 꼭두각시놀음의 의미와 그 한계
서연호, 꼭두각시놀음의 역사, 연극과인간, 2000
이두현, 한국의 가면극, 일지사, 1979
임재해, 꼭두각시 놀음의 이해, 한국한술정보, 2002
조동일, 탈춤의 역사와 원리, 기린원, 1989
최상수, 한국 인형극의 연구, 성문각, 1988
채희완, 한국의 탈춤, 민속사진출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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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7.20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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