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관념론의 기원
1. 관념은 사고의 대상이다
2. 모든 관념은 감각이나 반성에서 나온다
3. 감각의 대상이 관념의 하나의 원천이다
4. 우리의 정신의 작용이 관념의 또 하나의 원천이다
5. 우리의 모든 관념은 두 원천(감각, 반성)중의 어느 하나에서 나온다
6. 우리의 모든 지식의 기원
7. 단순관념을 받아들일 때에 오성은 대체로 수동적이다
Ⅱ. 관념론의 내용
Ⅲ. 관념론과 기독교
1. G. W. F. Hegel (1770-1831)
1) 헤겔의 초기 신학적 저술들
2) 헤겔의 기독교 개념
2. A. E. Biedermann(1860-1885)
3. Edward Caird (1835-1908)
4. John Caird (1820-1898)
Ⅳ. 관념론과 교육
1. 개념
2. 플라톤
1) 철인통치국가
2) 교육의 본질
3) 교육의 목적
4) 교육의 단계
5) 교육의 방법
Ⅴ. 관념론과 교육사상가
1. 소크라테스
2. 플라톤
1) 소크라테스와의 관계
2) 이상국가에서의 교육단계
Ⅵ. 관념론과 실재론
Ⅶ. 관념론의 평가
참고문헌
1. 관념은 사고의 대상이다
2. 모든 관념은 감각이나 반성에서 나온다
3. 감각의 대상이 관념의 하나의 원천이다
4. 우리의 정신의 작용이 관념의 또 하나의 원천이다
5. 우리의 모든 관념은 두 원천(감각, 반성)중의 어느 하나에서 나온다
6. 우리의 모든 지식의 기원
7. 단순관념을 받아들일 때에 오성은 대체로 수동적이다
Ⅱ. 관념론의 내용
Ⅲ. 관념론과 기독교
1. G. W. F. Hegel (1770-1831)
1) 헤겔의 초기 신학적 저술들
2) 헤겔의 기독교 개념
2. A. E. Biedermann(1860-1885)
3. Edward Caird (1835-1908)
4. John Caird (1820-1898)
Ⅳ. 관념론과 교육
1. 개념
2. 플라톤
1) 철인통치국가
2) 교육의 본질
3) 교육의 목적
4) 교육의 단계
5) 교육의 방법
Ⅴ. 관념론과 교육사상가
1. 소크라테스
2. 플라톤
1) 소크라테스와의 관계
2) 이상국가에서의 교육단계
Ⅵ. 관념론과 실재론
Ⅶ. 관념론의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찰의 사실을 공급받지 못하면 지식을 변형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지식을 낳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데까르트철학의 요지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 요지란, 우리에게 완전히 자명한 것으로 보여지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일이 논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우리로서는 어찌할 도리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문제를 이러한 방법으로 고찰하는 대신에 자기모순 없이는 부정될 수 없는 공식으로 학문의 제일 원리를 환원하려고 하여, 자기의 견해와 데까르트의 견해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논리학의 낡은 격식으로 되돌아갔으며, 특히 추상적 정의가 그의 철학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수행)했던 것이다. 사실은 대단히 막연한 관념을 우리가 명석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이 여기는 수가 있기도 하지만, 데까르트적 방법이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본 라이프느츠가 모든 중요한 용어의 추상적 정의를 요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처방을 생각해 내지 못하였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였다. 따라서 그는 명석한 개념과 판명한 개념의 구별을 받아들여, 판명이라는 성질을 정의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명석한 이해라고 기술하였던 것이니, 그 이후의 모든 책은 이 설을 그대로 답습해온 것이다. 그의 공상적 계획이 다시 과대평가될 위험은 없다. 정의를 분석해 보았댔자 새로운 것이라곤 하나도 배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신념은 정의를 분석하는 방법에 의하여 질서 지워질 수 있다.
그리고 질서는 모든 다른 이법의 본질적 요소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적 이법의 본질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개념과의 친숙을 명석한 이해의 제 일보로 하고, 개념의 정의를 그 제 이보로 하는 점에 있어서는 (라이프느츠의 설을 답습한) 그 책들이 옳다고 인정해도 좋다.
그러나 사상의 보다 높은 명료성(명료성)에 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책들은 백여년 전에 논파된 철학을 그대로 반용하고 있는데 불과한 것이다. 저 찬탄 받은 논리학의 장식 ― 명석과 판명에 관한 학설―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모르나, 이 구식보석을 골동상자 속에 처박아 두고 현대용으로 더 적합한 어떠한 것을 우리 몸에 걸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논리학에 대하여 우리가 당연히 가르쳐 달라고 요구해야할 제일의 과제는 우리의 관념을 명석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인데, 이것을 경시하는 것은 오히려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에 정통한다는 것은 위대하고 무게 있는 사상을 형성하는데 확고한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이 방법은 빈약하고 제한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용이하게 익힐 수 있고, 이런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개념의 진흙 속에 빠져서 구조할 수 없는 사람들보다 훨씬 다행하다. 어떤 민족이 세대가 지남에 따라, 언어 및 자연적 부수물의 과중한 부로부터 생기는 불이익, 거대하고 측정할 수 없는 관념의 깊이를 극복할는지도 모르며, 또 그것은 옳다. 그리고 그런 민족이 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그들의 학문의 형성을 서서히 완성하고 마침내 그들의 형이상학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불굴의 인내의 대가를 치르고서 정신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놀라울 만큼 높은 수순에 도달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페이지는 아직껏 그런 민족이 있어서, 언어나 관념은 적게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놀라울 정도로 사용하는 다른 민족을, 긴 눈으로 볼 때, 극복할 것인가 아닌가를 우리에게 보여준 일이 없다.
그러나 개인으로 볼 때는, 적은 수의 명석한 관념이 많은 수의 혼란한 관념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젊은 사람은 자기 사상의 일부분을 구조하기 위해서 대부분을 희생하는데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멍청스러운 머리를 가진 자는 이러한 희생의 필요성을 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생래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 자라해서 가련하게 생각하는게 보통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게 되겠지만, 명석에 관한 지적 성숙은 그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명석의 결여로 해서 과오의 결과를 크게 경험한, 인생을 웬만큼 산 사람에게는, 전도가 있는 사람보다는 명석의 효용이 적겠지만, 명석에 관한 지적 성숙이 늦어진다고 하는 것은 불행한 자연의 배치인양 여겨진다. 젊은 사람의 머리 속에 숨어 있는 오직 하나의 불명석한 관념, 오직 한의 무의미한 공식이 때때로 동맥 속의 활성없는 물질이 일으키는 장해처럼 작용해서 뇌의 영양작용을 방해하거나, 지적 활력으로 가득찬 지적 풍요의 한 가운데 있는 젊음이를 괴롭히고 폐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보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틀렸다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무의미한 관념의 애매한 그림자를 취미인양 몇 해 동안이고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 일는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은 다른 모든 일을 버리면서까지 그 관념을 열렬히 사랑하고 밤낮 없이 그것을 동반하고 다니며 그것에 자기의 지력과 생명을 다한다. 그는 그것과 더불어 살고, 그것 때문에 살며, 마침내 그것은 그의 살 속의 살이 되고, 뼈 속에 뼈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찬란한 아침 눈을 뜨고 보니 그것은 온데간데없이 동화 속의 아름다운 멜루지나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생명의 본질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다변론자들, 형이상학자들, 점성술사들의 잡스러운 이야기들이 저 멜루지나를 둘러싼 중세 유럽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아무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참고문헌
김두범 외 3명(1998), 교육학의 이해, 학이당
김형석(1994), 한 권으로 보는 서양철학사 100장면, 가람기획
김수동·공병호(1999), 교육사·교육철학, 양서원
노진호,(1999), 교육의 역사와 철학의 이해, 백산출판사
박영식(2000), 서양철학사의 이해, 철학과 현실사
신득렬(2003), 현대 교육철학, 학지사
임미원, 칸트와 헤겔의 법철학(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 105~124면
그리하여 그는 데까르트철학의 요지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 요지란, 우리에게 완전히 자명한 것으로 보여지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일이 논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우리로서는 어찌할 도리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문제를 이러한 방법으로 고찰하는 대신에 자기모순 없이는 부정될 수 없는 공식으로 학문의 제일 원리를 환원하려고 하여, 자기의 견해와 데까르트의 견해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논리학의 낡은 격식으로 되돌아갔으며, 특히 추상적 정의가 그의 철학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수행)했던 것이다. 사실은 대단히 막연한 관념을 우리가 명석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이 여기는 수가 있기도 하지만, 데까르트적 방법이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본 라이프느츠가 모든 중요한 용어의 추상적 정의를 요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처방을 생각해 내지 못하였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였다. 따라서 그는 명석한 개념과 판명한 개념의 구별을 받아들여, 판명이라는 성질을 정의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명석한 이해라고 기술하였던 것이니, 그 이후의 모든 책은 이 설을 그대로 답습해온 것이다. 그의 공상적 계획이 다시 과대평가될 위험은 없다. 정의를 분석해 보았댔자 새로운 것이라곤 하나도 배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신념은 정의를 분석하는 방법에 의하여 질서 지워질 수 있다.
그리고 질서는 모든 다른 이법의 본질적 요소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적 이법의 본질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개념과의 친숙을 명석한 이해의 제 일보로 하고, 개념의 정의를 그 제 이보로 하는 점에 있어서는 (라이프느츠의 설을 답습한) 그 책들이 옳다고 인정해도 좋다.
그러나 사상의 보다 높은 명료성(명료성)에 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책들은 백여년 전에 논파된 철학을 그대로 반용하고 있는데 불과한 것이다. 저 찬탄 받은 논리학의 장식 ― 명석과 판명에 관한 학설―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모르나, 이 구식보석을 골동상자 속에 처박아 두고 현대용으로 더 적합한 어떠한 것을 우리 몸에 걸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논리학에 대하여 우리가 당연히 가르쳐 달라고 요구해야할 제일의 과제는 우리의 관념을 명석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인데, 이것을 경시하는 것은 오히려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에 정통한다는 것은 위대하고 무게 있는 사상을 형성하는데 확고한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이 방법은 빈약하고 제한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용이하게 익힐 수 있고, 이런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은 개념의 진흙 속에 빠져서 구조할 수 없는 사람들보다 훨씬 다행하다. 어떤 민족이 세대가 지남에 따라, 언어 및 자연적 부수물의 과중한 부로부터 생기는 불이익, 거대하고 측정할 수 없는 관념의 깊이를 극복할는지도 모르며, 또 그것은 옳다. 그리고 그런 민족이 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그들의 학문의 형성을 서서히 완성하고 마침내 그들의 형이상학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불굴의 인내의 대가를 치르고서 정신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놀라울 만큼 높은 수순에 도달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페이지는 아직껏 그런 민족이 있어서, 언어나 관념은 적게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놀라울 정도로 사용하는 다른 민족을, 긴 눈으로 볼 때, 극복할 것인가 아닌가를 우리에게 보여준 일이 없다.
그러나 개인으로 볼 때는, 적은 수의 명석한 관념이 많은 수의 혼란한 관념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젊은 사람은 자기 사상의 일부분을 구조하기 위해서 대부분을 희생하는데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멍청스러운 머리를 가진 자는 이러한 희생의 필요성을 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생래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 자라해서 가련하게 생각하는게 보통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게 되겠지만, 명석에 관한 지적 성숙은 그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명석의 결여로 해서 과오의 결과를 크게 경험한, 인생을 웬만큼 산 사람에게는, 전도가 있는 사람보다는 명석의 효용이 적겠지만, 명석에 관한 지적 성숙이 늦어진다고 하는 것은 불행한 자연의 배치인양 여겨진다. 젊은 사람의 머리 속에 숨어 있는 오직 하나의 불명석한 관념, 오직 한의 무의미한 공식이 때때로 동맥 속의 활성없는 물질이 일으키는 장해처럼 작용해서 뇌의 영양작용을 방해하거나, 지적 활력으로 가득찬 지적 풍요의 한 가운데 있는 젊음이를 괴롭히고 폐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보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틀렸다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무의미한 관념의 애매한 그림자를 취미인양 몇 해 동안이고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 일는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은 다른 모든 일을 버리면서까지 그 관념을 열렬히 사랑하고 밤낮 없이 그것을 동반하고 다니며 그것에 자기의 지력과 생명을 다한다. 그는 그것과 더불어 살고, 그것 때문에 살며, 마침내 그것은 그의 살 속의 살이 되고, 뼈 속에 뼈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찬란한 아침 눈을 뜨고 보니 그것은 온데간데없이 동화 속의 아름다운 멜루지나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생명의 본질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다변론자들, 형이상학자들, 점성술사들의 잡스러운 이야기들이 저 멜루지나를 둘러싼 중세 유럽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아무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참고문헌
김두범 외 3명(1998), 교육학의 이해, 학이당
김형석(1994), 한 권으로 보는 서양철학사 100장면, 가람기획
김수동·공병호(1999), 교육사·교육철학, 양서원
노진호,(1999), 교육의 역사와 철학의 이해, 백산출판사
박영식(2000), 서양철학사의 이해, 철학과 현실사
신득렬(2003), 현대 교육철학, 학지사
임미원, 칸트와 헤겔의 법철학(법철학연구 제6권 제1호) 105~1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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