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가 선출된다.
*아리우스파
*아타나시오스파 삼위일체설 지지
3. 암브로시우스 주교
황제로 직위한 발렌티니아누스는 무장으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0년 동안 제국의 평화를 안정적으로 도모했다. 그는 율리아누스 황제를 따라 페르시아 전쟁에도 참가한 경험이 풍부한 무장이었기 때문에 황제의 자리를 혼자 짊어지기에는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황제로 직위한 후 한 달 뒤 친동생 발렌스를 부제 가 아닌 자신과 동격이 정제로 임명하여 동방 통치권을 내어준다. 발레티니아누tm는 무장 출신이기 때문에 정치보다는 전쟁에 힘을 썼다. 그래서 그는 황궁 안에서 음모를 꾸밀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는 주위가 차분하고 깨끗했다. 발렌티니아누tm는 기독교인이었지만 그것은 기독교인이 되는 편이 이익이라 개종한 것이라 기독교회와도 적절한 사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는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야만족 출신 장수였기 때문에 고등 교육을 받은 인재를 싫어했다. 당시 고등 교육을 받은 자들은 대부분이 ‘이교도’ 였는데 이들의 네트워크 조직의 중심은 원로원이었다. 이를 탐탁하게 볼 일 없는 발렌티니아누스는 원로원 의운들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물리적으로 말살하게 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이교도 세력을 더욱 쇠퇴시키는 한편 기독교인들에게 더욱 힘을 보태준 셈이 되었다. 발렌티니아누스의 황제가 급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사망하고 나서 평온했던 로마 국가에 미세한 파동이 치기 시작하는데 바로 훈족이 등장이다. 훈족은 야만족이 평한 야만족이라 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의 등장은 고트족을 이동시키게 했고 살 곳을 잃은 고트족은 로마의 하드리아노폴리스로 침입한다. 이 곳은 당시 발렌스의 통치하에 있는 곳이었지만 전쟁 경험이 없는 그에게는 큰 시련으로 들이 닥친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30살이나 어린 조카의 승전보가 들려오자 발렌스 황제는 계획없이 고트족 진형을 향하지만 참패하고 신하들과 함께 오두막에서 불에 타 죽는 최후를 맞는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의 참패는 로마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로마 제국의 게르만화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 전쟁이 되었다. 그리고 발렌스 황제 사망 후 즉위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로마 제국에 흘러드는 게르만화를 거부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그들의 이주를 공인한다. 동방과 서방을 나누어 통치하던 그라티아누스 황제와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모두 다 기독교인 이였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점점 더 기독교화 되어 간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이면서도 교리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는 이유로 이 종교는 두 분류로 나뉘어지는데 첫 번 째가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삼위일체파, 두 번째는 예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신과 동격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로 나뉘어 진다. 그 중 정통파로 일컬어 지는 삼위일체파에 힘이 쏠리게 된 것은 암브로시우스의 힘이 크다. 그는 밀라노에서 장관직을 맡고 있던 정치가였는데 삼위일체파와 아리우스파와의 싸움을 수습하는 도중 삼위일체파 눈에 띄어 주교로 선출된다.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주교 중 밀라노 주교인 암브로시우스만이 황제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을 행동을 보이며 아리우스파도 삼위일체파도 없이 암브로시우스 밑에서 한 덩어리로 뭉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종교의 승패는 결국 기독교간의 승부사로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교’ 와 ‘이단’ 의 차이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교’ 는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단’ 은 삼위일체설을 믿는 가톨릭파 이외의 모든 기
*아리우스파
*아타나시오스파 삼위일체설 지지
3. 암브로시우스 주교
황제로 직위한 발렌티니아누스는 무장으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0년 동안 제국의 평화를 안정적으로 도모했다. 그는 율리아누스 황제를 따라 페르시아 전쟁에도 참가한 경험이 풍부한 무장이었기 때문에 황제의 자리를 혼자 짊어지기에는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황제로 직위한 후 한 달 뒤 친동생 발렌스를 부제 가 아닌 자신과 동격이 정제로 임명하여 동방 통치권을 내어준다. 발레티니아누tm는 무장 출신이기 때문에 정치보다는 전쟁에 힘을 썼다. 그래서 그는 황궁 안에서 음모를 꾸밀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는 주위가 차분하고 깨끗했다. 발렌티니아누tm는 기독교인이었지만 그것은 기독교인이 되는 편이 이익이라 개종한 것이라 기독교회와도 적절한 사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는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야만족 출신 장수였기 때문에 고등 교육을 받은 인재를 싫어했다. 당시 고등 교육을 받은 자들은 대부분이 ‘이교도’ 였는데 이들의 네트워크 조직의 중심은 원로원이었다. 이를 탐탁하게 볼 일 없는 발렌티니아누스는 원로원 의운들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물리적으로 말살하게 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이교도 세력을 더욱 쇠퇴시키는 한편 기독교인들에게 더욱 힘을 보태준 셈이 되었다. 발렌티니아누스의 황제가 급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사망하고 나서 평온했던 로마 국가에 미세한 파동이 치기 시작하는데 바로 훈족이 등장이다. 훈족은 야만족이 평한 야만족이라 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의 등장은 고트족을 이동시키게 했고 살 곳을 잃은 고트족은 로마의 하드리아노폴리스로 침입한다. 이 곳은 당시 발렌스의 통치하에 있는 곳이었지만 전쟁 경험이 없는 그에게는 큰 시련으로 들이 닥친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30살이나 어린 조카의 승전보가 들려오자 발렌스 황제는 계획없이 고트족 진형을 향하지만 참패하고 신하들과 함께 오두막에서 불에 타 죽는 최후를 맞는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의 참패는 로마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로마 제국의 게르만화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 전쟁이 되었다. 그리고 발렌스 황제 사망 후 즉위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로마 제국에 흘러드는 게르만화를 거부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그들의 이주를 공인한다. 동방과 서방을 나누어 통치하던 그라티아누스 황제와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모두 다 기독교인 이였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점점 더 기독교화 되어 간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이면서도 교리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는 이유로 이 종교는 두 분류로 나뉘어지는데 첫 번 째가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삼위일체파, 두 번째는 예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신과 동격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로 나뉘어 진다. 그 중 정통파로 일컬어 지는 삼위일체파에 힘이 쏠리게 된 것은 암브로시우스의 힘이 크다. 그는 밀라노에서 장관직을 맡고 있던 정치가였는데 삼위일체파와 아리우스파와의 싸움을 수습하는 도중 삼위일체파 눈에 띄어 주교로 선출된다.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주교 중 밀라노 주교인 암브로시우스만이 황제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을 행동을 보이며 아리우스파도 삼위일체파도 없이 암브로시우스 밑에서 한 덩어리로 뭉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종교의 승패는 결국 기독교간의 승부사로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교’ 와 ‘이단’ 의 차이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교’ 는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단’ 은 삼위일체설을 믿는 가톨릭파 이외의 모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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