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론
II. 본론
새로운 문명의 태동-엘리어트
문화현상학-헤겔
문화적 부와 문명적 삶의 조건-윌리엄즈와 데리다
아놀드의 문화론-'현실적 최상'
문화적 텍스트 이해 과정-마슈레이
프랑스 혁명과 영국 산업 혁명-공모(complicity) 이론과 공모 문화
시 [문제 하나]
III. 결론-문화 문제와 해법(solution)
II. 본론
새로운 문명의 태동-엘리어트
문화현상학-헤겔
문화적 부와 문명적 삶의 조건-윌리엄즈와 데리다
아놀드의 문화론-'현실적 최상'
문화적 텍스트 이해 과정-마슈레이
프랑스 혁명과 영국 산업 혁명-공모(complicity) 이론과 공모 문화
시 [문제 하나]
III. 결론-문화 문제와 해법(solution)
본문내용
속에 표기한다.
19세기 산업 혁명은 과학과 산업 시설에 대한 새로운 감각적인 개념으로써 자본부터 노동까지 전반적으로 수행되었다. 민주주의 혁명은 과정과 절차에 초점을 두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였다―어느 쪽이 더 나은가? 수단과 목적, 어느 쪽이 더 비중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문화 혁명은 오래된 습관과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의문시하였는데, 물론 문해력(literacy)과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잘 갖추어진 기술을 뒤 배경으로 한다. 이 때쯤에 또다시 문제가 제기된다―어느 것이 더 나은가? 공장(mill)을 예로 들어, 수단 또는 목적(ends) 가운데 끝까지 문제가 되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이슈가 되는 것은 혁명의 타겟들이다―프루스트의 디자인과 평등, 환경과 안전, 산업의 조도(light)와 산업의 적정 규모(smallness), 역사적 사료와 민주주의의 단계, 축적 자본의 오랜 관습과 형식의 혁명 등. 윌리엄즈는 그러나 “이런 종류끼리의 변화”는 혁명의 반열에 올려놓을 여지가 없다고 일축하였다(LR, xii). 수단과 목적이 혼돈되고 전도된 것이다.
아주 자연히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새로운 갈등이 인간성과 동물성 사이에서, 인간 본성과 물리적 본성 사이에서 일어났다. 의문시했던 것은 진정한 인간 본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외연적 자연과 갈등을 일으켜야 하는지 여부였다. 그리고 자연의 조야함을 빌딩과 운동장과 도로 및 공원(parks)으로 개발하고 순화시키는 데서 어느 정도까지 어떤 방식으로 자연 환경을 개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적어도 맨체스터(Manchester)와 같은 산업화된 영국 도시들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 간에 공포스런 스트레스와 그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고민(distress)을 일으켰던 바, 그것이 산업 혁명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그들이 만들고 생산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던 가이며, 대답은 잘 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 발전이 더욱 진행됨에 따라 생산 수단이 생산 자체와 생산 노동자들을 통제하게 되었다. 생산품이 원료를 결정했다. 수단이 목적에 앞서고 우선한다. 판단력은 왜 그들이 열심히 일을 했는지, 또는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을 왜 고되게 일을 시켰는지 그 이유를 또는 그 목적들을 분별해 내지 않았다. 단지 혁신적인 기계와 기술 그리고 그 운용만이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고, 이들 이외는 싸울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감정과 애정의 방식과 방법이란 측면에서 19세기의 인간 관계에는 불필요한 심리적 갈등이 강조되었다.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은 젊은 남녀가 이웃한 가족들 간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애정 행각을 벌이던 것에 대해 경고를 해준다. 성경은 제일 먼저 우선 적들과 이웃을 사랑할 것을 촉구한다. 아놀드의 연작시는 외로이 걸어가는 여성 마거리트(Marguerite)를 노래하며 그녀의 운명이 “생의 바다 속에” 있다고 말한다(「마거리트에게―속편」(To Marguerite-continued, The Poems 124). 이웃을 사이에 둔 애정 행각에 대한 경고는 그것으로 족한 것이고, 어떤 경우이든 그러한 사랑의 연속에서 탈피해서 두 연인이 자발적인 사랑을 충족시키는 것이 그 다음 이야기일 것이다. 새로운 산업 질서로의 전환적 이행기에 문화와 문화론의 기능은 자연히 “무정부의 소용돌이(whirlpool)\"에 대응코자 한 것이다. ”일정한 무정부적 성향“이 목격되었던 것은 영국에서 1869년도의 일인데, 나중에 ”영국 국민들의 깊이 자리한 정신적 무정부 상태“였음이 입증되었다―산업 발전과 정신적 믿음 체계는 개인적 자유와 함께 문화 자체의 전반적 시스템을 의문시하였다. 그리고는 크게 목청을 돋우어 개인적 자유, 기독교의 어두운 형식, 개별적 수와 기계에 대한 발전적 숭배라고 주장하였다(CA, xxxiii).
결국 이것이 “산업의” 혁명적 주장의 “전제 조건”이다(Wall, 번역자의 Preface, Macherey, vii).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전제 조건의 선결 요건으로서 또 다른 문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문화는 국민들의 공통적인 삶으로부터 분출하며, 인간 정신의 일상적 토양의 배양을 의미하는 문화이다. 마슈레이는 “경제의 과학적 연구가 문학 작품들의 증거로부터 도출될 수 있음”과,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가 드러내는 두 가지 양상의 일정한 자본주의는 어린이의 군사용 쇠 장난감으로부터 성인들이 좋아하는 탱크 디자인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열성적으로 그리고 부지런히 개발되었음을 지적 한다: “비록 그〔톨스토이〕가 자본주의의 발전, 제정 러시아 귀족과 농민의 존재를 같이 위협했던 개발의 결과들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부로조아지의 권력에 맹목적이었다”(Macherey 114). 그처럼 부로조아지 권력에 맹목적으로 끌려갔던 노동 계급은 스스로 프롤레타리아의 성립을 자각하는 인식 수준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였다. 또한 잠재적 갈등의 계급적 구조도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미래의 국가에 대한 『문학 생산론』의 제 16장 「두 가지 문제들」(“The Two Questions\")에서 마슈레이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사회주의 현실 용어의 직설적 외연 개념으로 어떻게 성장한 지식인이 객관적으로 인내하고 더욱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작품을 알고 싶으면 작품 밖으로 우리가 옮겨야만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작품을 그 단정적 충만성으로 심문한다”. 문화론 독자는 진정한 복잡성과 정치성을 필터로 여과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한 독서는 “명백한 작품을 색인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는 잠재 구조가 아니라 실질적 복잡성으로 학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Macherey 101).
시 「문제 하나」
아놀드의 시 「문제 하나」(“A Question\")는 또한 창조성 그리고 인식이나 인지의 문제가 현실적이고 또 객관적임을 증명한다.
즐거움이 오고 가고, 희망의 물살이 드나드네
파도 같이
변화는 인간의 조용한 강인성을 헤짚누나.
사랑이란 것이 생명에 약간의 은총을 빌려주고
계면쩍은 슬픈 미소를 지은 후에
둘 다 하나의 차가운 공간 속에
19세기 산업 혁명은 과학과 산업 시설에 대한 새로운 감각적인 개념으로써 자본부터 노동까지 전반적으로 수행되었다. 민주주의 혁명은 과정과 절차에 초점을 두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였다―어느 쪽이 더 나은가? 수단과 목적, 어느 쪽이 더 비중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문화 혁명은 오래된 습관과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의문시하였는데, 물론 문해력(literacy)과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잘 갖추어진 기술을 뒤 배경으로 한다. 이 때쯤에 또다시 문제가 제기된다―어느 것이 더 나은가? 공장(mill)을 예로 들어, 수단 또는 목적(ends) 가운데 끝까지 문제가 되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이슈가 되는 것은 혁명의 타겟들이다―프루스트의 디자인과 평등, 환경과 안전, 산업의 조도(light)와 산업의 적정 규모(smallness), 역사적 사료와 민주주의의 단계, 축적 자본의 오랜 관습과 형식의 혁명 등. 윌리엄즈는 그러나 “이런 종류끼리의 변화”는 혁명의 반열에 올려놓을 여지가 없다고 일축하였다(LR, xii). 수단과 목적이 혼돈되고 전도된 것이다.
아주 자연히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새로운 갈등이 인간성과 동물성 사이에서, 인간 본성과 물리적 본성 사이에서 일어났다. 의문시했던 것은 진정한 인간 본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외연적 자연과 갈등을 일으켜야 하는지 여부였다. 그리고 자연의 조야함을 빌딩과 운동장과 도로 및 공원(parks)으로 개발하고 순화시키는 데서 어느 정도까지 어떤 방식으로 자연 환경을 개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적어도 맨체스터(Manchester)와 같은 산업화된 영국 도시들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 간에 공포스런 스트레스와 그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고민(distress)을 일으켰던 바, 그것이 산업 혁명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그들이 만들고 생산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던 가이며, 대답은 잘 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 발전이 더욱 진행됨에 따라 생산 수단이 생산 자체와 생산 노동자들을 통제하게 되었다. 생산품이 원료를 결정했다. 수단이 목적에 앞서고 우선한다. 판단력은 왜 그들이 열심히 일을 했는지, 또는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을 왜 고되게 일을 시켰는지 그 이유를 또는 그 목적들을 분별해 내지 않았다. 단지 혁신적인 기계와 기술 그리고 그 운용만이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고, 이들 이외는 싸울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감정과 애정의 방식과 방법이란 측면에서 19세기의 인간 관계에는 불필요한 심리적 갈등이 강조되었다.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은 젊은 남녀가 이웃한 가족들 간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애정 행각을 벌이던 것에 대해 경고를 해준다. 성경은 제일 먼저 우선 적들과 이웃을 사랑할 것을 촉구한다. 아놀드의 연작시는 외로이 걸어가는 여성 마거리트(Marguerite)를 노래하며 그녀의 운명이 “생의 바다 속에” 있다고 말한다(「마거리트에게―속편」(To Marguerite-continued, The Poems 124). 이웃을 사이에 둔 애정 행각에 대한 경고는 그것으로 족한 것이고, 어떤 경우이든 그러한 사랑의 연속에서 탈피해서 두 연인이 자발적인 사랑을 충족시키는 것이 그 다음 이야기일 것이다. 새로운 산업 질서로의 전환적 이행기에 문화와 문화론의 기능은 자연히 “무정부의 소용돌이(whirlpool)\"에 대응코자 한 것이다. ”일정한 무정부적 성향“이 목격되었던 것은 영국에서 1869년도의 일인데, 나중에 ”영국 국민들의 깊이 자리한 정신적 무정부 상태“였음이 입증되었다―산업 발전과 정신적 믿음 체계는 개인적 자유와 함께 문화 자체의 전반적 시스템을 의문시하였다. 그리고는 크게 목청을 돋우어 개인적 자유, 기독교의 어두운 형식, 개별적 수와 기계에 대한 발전적 숭배라고 주장하였다(CA, xxxiii).
결국 이것이 “산업의” 혁명적 주장의 “전제 조건”이다(Wall, 번역자의 Preface, Macherey, vii).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전제 조건의 선결 요건으로서 또 다른 문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문화는 국민들의 공통적인 삶으로부터 분출하며, 인간 정신의 일상적 토양의 배양을 의미하는 문화이다. 마슈레이는 “경제의 과학적 연구가 문학 작품들의 증거로부터 도출될 수 있음”과,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가 드러내는 두 가지 양상의 일정한 자본주의는 어린이의 군사용 쇠 장난감으로부터 성인들이 좋아하는 탱크 디자인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열성적으로 그리고 부지런히 개발되었음을 지적 한다: “비록 그〔톨스토이〕가 자본주의의 발전, 제정 러시아 귀족과 농민의 존재를 같이 위협했던 개발의 결과들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부로조아지의 권력에 맹목적이었다”(Macherey 114). 그처럼 부로조아지 권력에 맹목적으로 끌려갔던 노동 계급은 스스로 프롤레타리아의 성립을 자각하는 인식 수준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였다. 또한 잠재적 갈등의 계급적 구조도 파악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미래의 국가에 대한 『문학 생산론』의 제 16장 「두 가지 문제들」(“The Two Questions\")에서 마슈레이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사회주의 현실 용어의 직설적 외연 개념으로 어떻게 성장한 지식인이 객관적으로 인내하고 더욱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작품을 알고 싶으면 작품 밖으로 우리가 옮겨야만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작품을 그 단정적 충만성으로 심문한다”. 문화론 독자는 진정한 복잡성과 정치성을 필터로 여과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한 독서는 “명백한 작품을 색인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는 잠재 구조가 아니라 실질적 복잡성으로 학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Macherey 101).
시 「문제 하나」
아놀드의 시 「문제 하나」(“A Question\")는 또한 창조성 그리고 인식이나 인지의 문제가 현실적이고 또 객관적임을 증명한다.
즐거움이 오고 가고, 희망의 물살이 드나드네
파도 같이
변화는 인간의 조용한 강인성을 헤짚누나.
사랑이란 것이 생명에 약간의 은총을 빌려주고
계면쩍은 슬픈 미소를 지은 후에
둘 다 하나의 차가운 공간 속에
추천자료
로마사, 로마문명 조사레포트
[생명과환경 (A+완성)] 문명의 붕괴(제레드 다이아몬드, 김영사) 서평(독후감)
『다수 문명에 대한 사유 외』를 읽고
S.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리뷰 및 문제제기
문화의 개념, 문화의 특성과 문화의 역사적 발전 및 독일의 음식문화, 한국의 음식문화, 북한...
[현대국제정치] 현대 국제 정치-역사의 종말』과 『문명의 충돌』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농수산학]인류 문명과 나무 그 과거와 미래
[독후감] <문명의 충돌>을 읽고 _ 새뮤얼 헌팅턴 저
대중문화 수용자 역할, 미디어의 생산 방식, 프로슈머의 한계, 사례, 일시적 현상, 문화의 획...
[문화 접근, 자본문화, 청소년문화, 디지털TV문화]자본문화의 접근, 청소년문화의 접근, 디지...
[문화연대][문화][연대][스크린쿼터][문화연대 조직구성][문화연대 활동내용][문화연대 사례]...
경제적 요인에 따른 문명의 붕괴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