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목 차 -
들어가기 전에
1. 역사로 보는 프랑스 음식
2. 프랑스 지역별 음식의 특징
3. 프랑스의 와인과 치즈
4. 프랑스의 3대 진미
5. 프랑스의 미식 문화
들어가기 전에
1. 역사로 보는 프랑스 음식
2. 프랑스 지역별 음식의 특징
3. 프랑스의 와인과 치즈
4. 프랑스의 3대 진미
5. 프랑스의 미식 문화
본문내용
랑스의 요리 (Cuisinier Francai)\"라는 책이 출판되어 10,000부를 찍어냈다. 이어서 부르주아 사회와 외국의 궁중에 수출할 수 있는 프랑스적인 모델을 만들고 구조화한 미시알로(Missialot)가 1691년 \"궁중요리와 부즈죠와 요리-(Cuisine Royal et Bourgeois)\"를 써서 그 뒤를 따랐고, 미식가였던 루이 14세와 15세의 시대를 거치 며 프랑스 요리는 완성기에 도달하게 된다.
또 한편의 흐름으로는 1654년에 니꼴라 드 본 퐁스(Nicolas de Bonne Pons)가 \" 샴페인의 섬세함(Le Delica de Champagne)\"을 써서 음식의 맛이 조리로 가려져서는 안되고 단순한 자연적 조리로 해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 18세기와 오늘날 누벨 뀌진(Nouvelle Cuisine)의 초석을 다진다.
17세기 중반의 이러한 사상으로 요리를 단순화하고, 과도한 데코레이션을 배제하며 맛에 치중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후 17세기 말에는 차, 커피, 코코아, 아이스크림 등이 출현하여 대변혁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17세기의 요리에 대한 사상들이 실천되는 것은 18세기부터이다. 혁명으로 얼룩진 기간이 지나고, 왕정복고와 더불어 풍요와 사치의 시대가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17세기의 가장 커다란 변화는 또한 수도사였던 피에르 동뻬리니용(Pierre Dom Perignon)이 샴페인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5.혁명기와 왕정복고 시대
1789년 프랑스 대혁명까지 프랑스의 궁정은 위대한 요리의 도가니였고, 테이블은 정부와 정치적 영향력의 한 방법이 되었다. 이는 실제로, 1520년 \"금으로 된 시트 캠프(Camp du Drap d\'Or)\"에서 프랑수아 1세가 샤를르 퀸트(Charles Quint) 황제에 대항하는 동맹을 목적으로 영국의 헨리 8세를 감동시키기 위하여 놀랄만한 연회를 연 것에서부터, 캄바세레(Cambaceres) 정치가들에게 보내진 나폴레옹의 연회까지, 식탁의 예술은 오늘날까지 외교적인 리셉션을 통해 정치적인 문제에 공헌하고 있다.
왕정복고시대가 되면서 드디어 프랑스 요리의 진정한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마리 앙뚜안 카렘이 등장한다. 그는 가난한 석공의 16번째 아들로 태어나 길가에 버려진 무지한 사람이었으나, 요리에 관한 재능과 근면함으로 요리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파리의 유명한 제과점인 바일리 가게에서 일 하던 중 이곳의 단골이었던 나폴레옹 1세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후 그의 유능함을 듣고있던 당시의 외무대신 탈레랑의 조리장으로 들어가 이후 20년간 외교관 및 외국의 귀족들의 식도락을 훌륭하게 만족시켜 주었다. 조리사인 동시에 제빵사, 이론가였던 그는 여러가지 맛들을 조화롭게 배합하고 불필요한 재료나 조리법을 배제한 최초의 요리사였다. 후에 알렉상드 1세는 탈레탕에게, \"카렘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먹던 요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고 회상하며 그를 왕들의 요리사이며, 요리사중의 왕\" 이라 칭송하였다. 많은 이론서로 요리업계에 커다란 공헌을 한 그는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프랑스 요리고전 의 창시자로 추대 받고 있다.
17세기나 18세기 초, 궁중요리는 귀족들만이 누리던 특혜였고, 일반 서민들은 빵 과 감자로 배를 채우는데 급급했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과 더불어 요리도 커다란 혁명을 맞이하게 된다. 혁명으로 귀족사회가 붕괴되고 귀족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자 이들의 개인소유였던 요리사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먹고살기 위하여 레스토랑을 차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즉, 혁명은 그동안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요리를 길거리로 내려오게 하였으며, 서민들 가까이로 다가가게 해주었다. 1765년 파리 최초의 레스토랑인 \"부이용(Bouillon)\"을 오픈한 요리사 보빌리에 (Beauvilliers)는 그 선구자로 테이블보가 덮힌 작은 테이블에 손님을 앉히고 자 신이 만든 요리를 내놓아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선두로 1970년부터 1814년 사이에 많은 레스토랑들이 확산되고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에샬로뜨(echalote:마늘의 일종)나 시불(Ciboule:파의 일종)같은 프랑스적 향신료 , 엔쵸비(anchois), 또는 송로버섯(Truffe)과 같은 향이강한 프랑스적 향료들이 17세기서부터 향신료를 대신하기 시작하였다. 짠맛과 단맛 사이의 대조(단맛은 16세기 이태리의 영향하에 도입되었다)는 20세기까지 프랑스적인 맛의 대표적인 성격중의 하나로 남게 된다. 또한 이태리에서 귀족들의 요리에 사용되기 시작한 버터는 프랑스 상류사회의 특징으로 여겨졌다.
6. 근대·현대
20세기가 되면서 드디어 현대 프랑스 요리의 창시자인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Auguist Escoffier)가 나타난다. 이 요리사는 프랑스 요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현재 우리가 레스토랑에서 쓰고 있는 주방시스템을 창시하고, 부분화 되어있던 레스토랑의 운영을 통합하여 운영하도록 시도하였다. 러시아식 서빙방식을 도입하여 현재의 음식 서브순서를 정하고, 주문지를 3장으로 만들어 주방, 웨이터, 케셔에게 각각 1장씩 가는 방식을 고안한 것도 그였다. 에스코피에는 1920년 국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레지용도뇌르 훈장을 받음으로써 조리사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데도 기여하였다. 1966년 그의 집은 조리예술박물관으로 지정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의 조리법 은 요리업계의 표본이 되고 있다.
이처럼 끊일 줄 모르는 연회와 끝없는 메뉴로 만들어진 제3공화국(1870-1940)의 풍성하고 부르주아적인 요리는 영양학에 정통한 <<누벨뀌진:nouvelle cuisine>>이 나타나기 전인 1970대까지 계속되었다. 17세기의 단순한 자연적 조리 이래로, 근대를 지나며 이런 사상이 지속되어오다가, 현대에 와서 알랭 샤펠(Alain Chapel)은 이런 조리법에 누벨뀌진이라는 한 장르를 개척했다. 두 명의 요리비평가인 크리스티앙 미이요와 앙리 골트는 1973년에 요리사들에게 소스를 가볍게 하고, 새롭게 하며, 재료들의 맛을 간직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 혁명은 15년안에 프랑스와 전 유럽 사회에 번졌다. 폴 보뀌즈(Paul Bocuse), 알랭 샤
또 한편의 흐름으로는 1654년에 니꼴라 드 본 퐁스(Nicolas de Bonne Pons)가 \" 샴페인의 섬세함(Le Delica de Champagne)\"을 써서 음식의 맛이 조리로 가려져서는 안되고 단순한 자연적 조리로 해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 18세기와 오늘날 누벨 뀌진(Nouvelle Cuisine)의 초석을 다진다.
17세기 중반의 이러한 사상으로 요리를 단순화하고, 과도한 데코레이션을 배제하며 맛에 치중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후 17세기 말에는 차, 커피, 코코아, 아이스크림 등이 출현하여 대변혁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17세기의 요리에 대한 사상들이 실천되는 것은 18세기부터이다. 혁명으로 얼룩진 기간이 지나고, 왕정복고와 더불어 풍요와 사치의 시대가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17세기의 가장 커다란 변화는 또한 수도사였던 피에르 동뻬리니용(Pierre Dom Perignon)이 샴페인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5.혁명기와 왕정복고 시대
1789년 프랑스 대혁명까지 프랑스의 궁정은 위대한 요리의 도가니였고, 테이블은 정부와 정치적 영향력의 한 방법이 되었다. 이는 실제로, 1520년 \"금으로 된 시트 캠프(Camp du Drap d\'Or)\"에서 프랑수아 1세가 샤를르 퀸트(Charles Quint) 황제에 대항하는 동맹을 목적으로 영국의 헨리 8세를 감동시키기 위하여 놀랄만한 연회를 연 것에서부터, 캄바세레(Cambaceres) 정치가들에게 보내진 나폴레옹의 연회까지, 식탁의 예술은 오늘날까지 외교적인 리셉션을 통해 정치적인 문제에 공헌하고 있다.
왕정복고시대가 되면서 드디어 프랑스 요리의 진정한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마리 앙뚜안 카렘이 등장한다. 그는 가난한 석공의 16번째 아들로 태어나 길가에 버려진 무지한 사람이었으나, 요리에 관한 재능과 근면함으로 요리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파리의 유명한 제과점인 바일리 가게에서 일 하던 중 이곳의 단골이었던 나폴레옹 1세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후 그의 유능함을 듣고있던 당시의 외무대신 탈레랑의 조리장으로 들어가 이후 20년간 외교관 및 외국의 귀족들의 식도락을 훌륭하게 만족시켜 주었다. 조리사인 동시에 제빵사, 이론가였던 그는 여러가지 맛들을 조화롭게 배합하고 불필요한 재료나 조리법을 배제한 최초의 요리사였다. 후에 알렉상드 1세는 탈레탕에게, \"카렘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먹던 요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고 회상하며 그를 왕들의 요리사이며, 요리사중의 왕\" 이라 칭송하였다. 많은 이론서로 요리업계에 커다란 공헌을 한 그는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프랑스 요리고전 의 창시자로 추대 받고 있다.
17세기나 18세기 초, 궁중요리는 귀족들만이 누리던 특혜였고, 일반 서민들은 빵 과 감자로 배를 채우는데 급급했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과 더불어 요리도 커다란 혁명을 맞이하게 된다. 혁명으로 귀족사회가 붕괴되고 귀족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자 이들의 개인소유였던 요리사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먹고살기 위하여 레스토랑을 차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즉, 혁명은 그동안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요리를 길거리로 내려오게 하였으며, 서민들 가까이로 다가가게 해주었다. 1765년 파리 최초의 레스토랑인 \"부이용(Bouillon)\"을 오픈한 요리사 보빌리에 (Beauvilliers)는 그 선구자로 테이블보가 덮힌 작은 테이블에 손님을 앉히고 자 신이 만든 요리를 내놓아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선두로 1970년부터 1814년 사이에 많은 레스토랑들이 확산되고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에샬로뜨(echalote:마늘의 일종)나 시불(Ciboule:파의 일종)같은 프랑스적 향신료 , 엔쵸비(anchois), 또는 송로버섯(Truffe)과 같은 향이강한 프랑스적 향료들이 17세기서부터 향신료를 대신하기 시작하였다. 짠맛과 단맛 사이의 대조(단맛은 16세기 이태리의 영향하에 도입되었다)는 20세기까지 프랑스적인 맛의 대표적인 성격중의 하나로 남게 된다. 또한 이태리에서 귀족들의 요리에 사용되기 시작한 버터는 프랑스 상류사회의 특징으로 여겨졌다.
6. 근대·현대
20세기가 되면서 드디어 현대 프랑스 요리의 창시자인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Auguist Escoffier)가 나타난다. 이 요리사는 프랑스 요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현재 우리가 레스토랑에서 쓰고 있는 주방시스템을 창시하고, 부분화 되어있던 레스토랑의 운영을 통합하여 운영하도록 시도하였다. 러시아식 서빙방식을 도입하여 현재의 음식 서브순서를 정하고, 주문지를 3장으로 만들어 주방, 웨이터, 케셔에게 각각 1장씩 가는 방식을 고안한 것도 그였다. 에스코피에는 1920년 국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레지용도뇌르 훈장을 받음으로써 조리사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데도 기여하였다. 1966년 그의 집은 조리예술박물관으로 지정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의 조리법 은 요리업계의 표본이 되고 있다.
이처럼 끊일 줄 모르는 연회와 끝없는 메뉴로 만들어진 제3공화국(1870-1940)의 풍성하고 부르주아적인 요리는 영양학에 정통한 <<누벨뀌진:nouvelle cuisine>>이 나타나기 전인 1970대까지 계속되었다. 17세기의 단순한 자연적 조리 이래로, 근대를 지나며 이런 사상이 지속되어오다가, 현대에 와서 알랭 샤펠(Alain Chapel)은 이런 조리법에 누벨뀌진이라는 한 장르를 개척했다. 두 명의 요리비평가인 크리스티앙 미이요와 앙리 골트는 1973년에 요리사들에게 소스를 가볍게 하고, 새롭게 하며, 재료들의 맛을 간직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 혁명은 15년안에 프랑스와 전 유럽 사회에 번졌다. 폴 보뀌즈(Paul Bocuse), 알랭 샤
추천자료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서 (도자기 문화, 주거문화, 건축문화, 음식문화)
[독일문화][독일의 문화][독일 문화정책][독일의 독서문화][독일의 음식문화][독일의 맥주문...
[러시아문화][러시아의 문화][러시아 결혼문화][러시아 음식문화][러시아 음주문화][러시아 ...
[일본문화][일본의 문화][일본][일본인]일본의 꽃꽂이문화, 술문화(음주문화), 음식문화, 결...
[중국문화][중국 차문화][중국 술문화][중국 음식문화][중국 자전거문화][결혼문화][의복문화...
[한국의 문화][한국문화][음주문화][음주][술문화][술][음식문화][반상문화][개고기문화][개...
[제주도문화][제주도 의식주][제주도 의복문화][제주도 음식문화][제주도 주거문화][제주도 ...
[조상][선조][절약정신][슬기로움][노동풍습][물문화][의복문화][음식문화]조상(선조) 절약정...
[중국 의복문화][중국 체면중시문화][중국 소비문화][중국 식사문화][중국 음식문화][차문화]...
[중국][중국문화][중국의 문화][음식][결혼][소림사][관광명소]중국의 의복문화, 중국의 주거...
[스위스][스위스문화][스위스의 음식문화][스위스의 치즈][스위스의 언어][스위스의 주민][스...
[북한][북한문화][의복문화][음식문화][주거문화][스포츠][애국가]북한의 의생활(의복문화), ...
각국의 음식문화 - 13개 국가의 음식문화와 점심문화
[세계문화 비교] 인사문화, 초대문화, 선물문화, 음식문화 및 음주문화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