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첫번째 문제의식 : '가요(歌謠)'라는 용어
Ⅱ. 주류(mainstream)대중음악의 본질과 역사(1)
Ⅲ. 주류(mainstream)대중음악의 본질과 역사(2)
Ⅳ. 주류(mainstream)대중음악의 본질과 역사(3)
Ⅴ. 새로운 연대기의 시작 - 김민기 그리고 신중현
Ⅶ. 75년 긴급조치 시대의
Ⅸ. 가객 정태춘과 음유시인 조동진의 등장
Ⅹ. 한국 록 음악의 비조 신중현
- 단절과 봉합 : 산울림의 의의
-캠퍼 스 밴드의 백가쟁명
Ⅱ. 주류(mainstream)대중음악의 본질과 역사(1)
Ⅲ. 주류(mainstream)대중음악의 본질과 역사(2)
Ⅳ. 주류(mainstream)대중음악의 본질과 역사(3)
Ⅴ. 새로운 연대기의 시작 - 김민기 그리고 신중현
Ⅶ. 75년 긴급조치 시대의
Ⅸ. 가객 정태춘과 음유시인 조동진의 등장
Ⅹ. 한국 록 음악의 비조 신중현
- 단절과 봉합 : 산울림의 의의
-캠퍼 스 밴드의 백가쟁명
본문내용
바로 그와 같은 이 작곡가의 유일무이한 원칙 때문이다. 이것은 그럴듯한 선율을 만들어 놓고 역시 그럴듯한 노래말을 붙여 해결하려는 안이한 작곡 기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며 또한 그것은 우리가 중심지 대중음악의 무의식적 지배 사슬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첫번째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한 것이다.
이 작품이 태어난 지 십칠년이 흘렀건만 공식적으로는 아직 \'리바이벌\'도 \'리메이크\'도 되지 못했다. 1993년 네 장의 음반으로 그의 노래들이 묶일 때도 이 역사적인 \'노래굿\'은 제외되었다. 다만 이 노래굿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세상 어딘가에>가 1990년 김민기가 주관한 \'겨레의 노래\'에 송창식과 조경옥, 그리고 노찾사의 목소리로 담겨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의 후속 사건은 1984년 아동용 뮤지컬 <사랑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착수되었다가 1995년 가을에 이르러서야 록 오페라 <개똥이>로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는 그의 뒤에 오는 이들에게 가장 많은 숙제를 남긴, 그러나 여전히 그 숙제를 지치지 않고 풀고 있는 우리 대중음악사의 반딧불인 것이다.
Ⅸ. 가객 정태춘과 음유시인 조동진의 등장(1)
<<공장의 불빛>>이 발표된 1978년, 언더그라운드의 뛰어난 연주자들로 구성된 사랑과 평화는 신선한 리듬감과 하모니를 갖춘 <한동안 뜸했었지>로 세련된 서구의 감수성을 선보였지만 조용필과 같이 곧바로 대마초로 인해 퇴장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다. 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촛불을 밝힌 두 사람 - 정태춘과 조동진이 등장한다. 70년대 전반기의 통기타 혁명을 주도했던 거개의 아티스트들, 가령 김민기와 한대수, 그리고 양병집과 이장희 같은 이들이 노래할 자유를 잃었을 때 한국 모던 포크의 정신을 계승할 수호자는 경기도 평택군에서 김민기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했던 정태춘과 다운타운의 음악홀의 은자 조동진이었다.
정태춘,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오랜 음악적 동반자인 박은옥의 음악이 지난 이십년 동안 우리의 가슴 속을 아로새겨 왔던 무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물 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촛불>이나 듀오로 부른 <사랑하는 이에게3> 같은 스탠더드 발라드로 이들에 대한 기억을 호명할 지도 모르며 80년대의 전 반을 이 부부의 음악과 동행한 또 다른 이들은 <떠나가는 배>나 <북한강에서> 같은 유장한 서정시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감수성을 발현시켰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87년 시민항쟁 이후 세대들은 또한 분명하게 정태춘과 그의 음악을 전 투적인 음유시인으로서의 뜨거운 문제의식으로 뇌리 속에 파종되어 있을 것이 다.
그리고 정태춘이 70년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긴 최대의 공적은 또한 대중음악 의 상상력을 목졸라온 사전심의라는 이름의 검열을 거의 혼자만의 투쟁으로 이 루어낸 것이다. 모두가 \'알아서 기고\' 있을 때 마치 돈키호테처럼 식지 않은 젊 음의 열정으로 이루어낸 사전 심의의 위헌 판정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과소평 가될 수 없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한 법 개정 투쟁을 벌이는 \'전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회적 문제의식과 동반하는 그만의 독 창적인 음악적 문제의식이 처절하게 아롱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태춘, 그리고 박은옥의 음악은 이 모든 것이면서 그 이상이다. 70년대의 감 수성을 지배했던 모던 포크의 통기타 울림은 1978년 정태춘이 등장하면서 새로 운 반전의 계기를 맞는다. 그는 모던 포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대학 과는 아무런 인연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유신 말기의 폭압에 숨을 죽여야 했 던 대학가는 이 새로운 싱어송라이터의 출현을 경이롭게 바라 보았다. 데뷔작 이자 백조의 노래가 된 김민기의 앨범에 비견되는 정태춘의 데뷔 앨범은 한국 적 포크의 비등점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보편적 정서까지 포섭하는 대단 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고풍스런 재킷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이 앨범에 대해 당시의 포크의 지지자들은 권력의 폭행 속에서 위안을 받았으며 1979년 \'MBC신인가수상\' 수상에서 알 수 있듯이 주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출 발도 무척 순조로운 것이었다. 평균적인 취향을 가진 대중은 <촛불>의 애틋한 소야곡에 만족했으며, 이 노래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은 <시인의 마을>과 <서해에서>의 질박한 미의식을 존중했다.
하지만 별다른 정치적 슬로건을 탑재하지 않은 이 앨범에 대해 권력의 하수 인이던 공윤은 대단히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 검열의 가위손은 <시인 의 마을>의 노래말이 분명 어떤 다른 시인의 글을 도용했을 것이라는 이상한 혐의를 두어 판정을 보류시켰고(이 노래말이 정태춘의 것으로 판명되자 공윤은 관념적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결국 수정지시를 내리고 만다) <사랑하고 싶소 >의 투박한 표현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이들의 못마땅함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태춘의 노래는 \'세련된 순응성\'의 질서에 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뷔 앨범부터 시작된 공윤과의 불협화음, 그리고 그의 \'연예인답지 않음\'을 조롱한 브라운관의 편견은 정태춘 으로 하여금 머리 속의 비판의식이 아니라 바로 가슴 속에 거역과 분노의 불꽃 을 지피게 하는 현실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데뷔 앨범의 이듬해에 평생의 동반자가 되는 박은옥을 만나 자신의 곡 으로 또 하나의 훌륭한 데뷔 앨범을 완성한다. 70년대 전반 양희은과 박인희에 의해 표상되는 여성 포크 보컬의 계보가 78년 <어디쯤 가고 있을까>의 전영에 의해 통속화되던 시점에서 이루어진 박은옥의 출현은 신선한 파장을 몰고 왔 다. 앨범의 앞면과 뒷면을 대조적으로 장식하고 있는 <회상>과 <윙윙윙>을 주목하자. 작곡가로서의 이른 만개를 여실히 보여 주는 <회상>이 박은옥의 신 중하고 탈세속적인 보컬로 전개될 때 우리는 송창식의 <사랑이야>(78년)와 함 께 고급음악으로서의 가곡의 쇠퇴에 대응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예술적인 성취 를 확인한다.
농촌 출신이지만 바이올린과 기타라는 서구 악기를 통해 음악에 입문했던 그 의 노래는 그러나 본능적으로 이 땅의 숨결을 포착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이 그로 하여금 서구적이고 도시적인 감수성에 기반해 있었던 한국 모던 포크라는 논에 대는 새로운 물줄기가 되게 하었다. 그는
이 작품이 태어난 지 십칠년이 흘렀건만 공식적으로는 아직 \'리바이벌\'도 \'리메이크\'도 되지 못했다. 1993년 네 장의 음반으로 그의 노래들이 묶일 때도 이 역사적인 \'노래굿\'은 제외되었다. 다만 이 노래굿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세상 어딘가에>가 1990년 김민기가 주관한 \'겨레의 노래\'에 송창식과 조경옥, 그리고 노찾사의 목소리로 담겨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의 후속 사건은 1984년 아동용 뮤지컬 <사랑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착수되었다가 1995년 가을에 이르러서야 록 오페라 <개똥이>로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는 그의 뒤에 오는 이들에게 가장 많은 숙제를 남긴, 그러나 여전히 그 숙제를 지치지 않고 풀고 있는 우리 대중음악사의 반딧불인 것이다.
Ⅸ. 가객 정태춘과 음유시인 조동진의 등장(1)
<<공장의 불빛>>이 발표된 1978년, 언더그라운드의 뛰어난 연주자들로 구성된 사랑과 평화는 신선한 리듬감과 하모니를 갖춘 <한동안 뜸했었지>로 세련된 서구의 감수성을 선보였지만 조용필과 같이 곧바로 대마초로 인해 퇴장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다. 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촛불을 밝힌 두 사람 - 정태춘과 조동진이 등장한다. 70년대 전반기의 통기타 혁명을 주도했던 거개의 아티스트들, 가령 김민기와 한대수, 그리고 양병집과 이장희 같은 이들이 노래할 자유를 잃었을 때 한국 모던 포크의 정신을 계승할 수호자는 경기도 평택군에서 김민기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했던 정태춘과 다운타운의 음악홀의 은자 조동진이었다.
정태춘,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오랜 음악적 동반자인 박은옥의 음악이 지난 이십년 동안 우리의 가슴 속을 아로새겨 왔던 무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물 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촛불>이나 듀오로 부른 <사랑하는 이에게3> 같은 스탠더드 발라드로 이들에 대한 기억을 호명할 지도 모르며 80년대의 전 반을 이 부부의 음악과 동행한 또 다른 이들은 <떠나가는 배>나 <북한강에서> 같은 유장한 서정시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감수성을 발현시켰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87년 시민항쟁 이후 세대들은 또한 분명하게 정태춘과 그의 음악을 전 투적인 음유시인으로서의 뜨거운 문제의식으로 뇌리 속에 파종되어 있을 것이 다.
그리고 정태춘이 70년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긴 최대의 공적은 또한 대중음악 의 상상력을 목졸라온 사전심의라는 이름의 검열을 거의 혼자만의 투쟁으로 이 루어낸 것이다. 모두가 \'알아서 기고\' 있을 때 마치 돈키호테처럼 식지 않은 젊 음의 열정으로 이루어낸 사전 심의의 위헌 판정의 역사적 의미는 결코 과소평 가될 수 없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한 법 개정 투쟁을 벌이는 \'전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회적 문제의식과 동반하는 그만의 독 창적인 음악적 문제의식이 처절하게 아롱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태춘, 그리고 박은옥의 음악은 이 모든 것이면서 그 이상이다. 70년대의 감 수성을 지배했던 모던 포크의 통기타 울림은 1978년 정태춘이 등장하면서 새로 운 반전의 계기를 맞는다. 그는 모던 포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대학 과는 아무런 인연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유신 말기의 폭압에 숨을 죽여야 했 던 대학가는 이 새로운 싱어송라이터의 출현을 경이롭게 바라 보았다. 데뷔작 이자 백조의 노래가 된 김민기의 앨범에 비견되는 정태춘의 데뷔 앨범은 한국 적 포크의 비등점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보편적 정서까지 포섭하는 대단 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고풍스런 재킷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이 앨범에 대해 당시의 포크의 지지자들은 권력의 폭행 속에서 위안을 받았으며 1979년 \'MBC신인가수상\' 수상에서 알 수 있듯이 주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출 발도 무척 순조로운 것이었다. 평균적인 취향을 가진 대중은 <촛불>의 애틋한 소야곡에 만족했으며, 이 노래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은 <시인의 마을>과 <서해에서>의 질박한 미의식을 존중했다.
하지만 별다른 정치적 슬로건을 탑재하지 않은 이 앨범에 대해 권력의 하수 인이던 공윤은 대단히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 검열의 가위손은 <시인 의 마을>의 노래말이 분명 어떤 다른 시인의 글을 도용했을 것이라는 이상한 혐의를 두어 판정을 보류시켰고(이 노래말이 정태춘의 것으로 판명되자 공윤은 관념적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결국 수정지시를 내리고 만다) <사랑하고 싶소 >의 투박한 표현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이들의 못마땅함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태춘의 노래는 \'세련된 순응성\'의 질서에 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뷔 앨범부터 시작된 공윤과의 불협화음, 그리고 그의 \'연예인답지 않음\'을 조롱한 브라운관의 편견은 정태춘 으로 하여금 머리 속의 비판의식이 아니라 바로 가슴 속에 거역과 분노의 불꽃 을 지피게 하는 현실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데뷔 앨범의 이듬해에 평생의 동반자가 되는 박은옥을 만나 자신의 곡 으로 또 하나의 훌륭한 데뷔 앨범을 완성한다. 70년대 전반 양희은과 박인희에 의해 표상되는 여성 포크 보컬의 계보가 78년 <어디쯤 가고 있을까>의 전영에 의해 통속화되던 시점에서 이루어진 박은옥의 출현은 신선한 파장을 몰고 왔 다. 앨범의 앞면과 뒷면을 대조적으로 장식하고 있는 <회상>과 <윙윙윙>을 주목하자. 작곡가로서의 이른 만개를 여실히 보여 주는 <회상>이 박은옥의 신 중하고 탈세속적인 보컬로 전개될 때 우리는 송창식의 <사랑이야>(78년)와 함 께 고급음악으로서의 가곡의 쇠퇴에 대응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예술적인 성취 를 확인한다.
농촌 출신이지만 바이올린과 기타라는 서구 악기를 통해 음악에 입문했던 그 의 노래는 그러나 본능적으로 이 땅의 숨결을 포착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이 그로 하여금 서구적이고 도시적인 감수성에 기반해 있었던 한국 모던 포크라는 논에 대는 새로운 물줄기가 되게 하었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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