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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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롯데민속박물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1. 민속박물관 소개
(1) 전시개요
(2) 전시특징
(3) 전시구성
2. 역사전시관
(1) 입구홀/ 영상실
(2) 선사시대실
(3) 고구려실
(4) 백제실
(5) 가야실
(6) 신라실
(7) 고려실
3. 모형촌
(1) 모형관
(2) 임진왜란관
4. 놀이마당
(1) 놀이마당
(2) 동헌
(3) 일제시대실
5. 저자거리
(1) 전통공방가
(2) 난장
6. 이용안내

본문내용

것은 건축분야로 통구, 평양 등에 세워진 국내성, 장안성, 안학궁터를 비롯하여 수만기가 넘는 돌무지무덤, 돌방무덤에서 그 기술의 선진성을 알 수 있으며, 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장신구류, 마구(馬具), 그릇류 등에서 당대 공예 기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전시구성
모형 : 안악 제3호 고분, 대행렬도, 수렵도 등
전시 : 수막새, 명문벽돌, 푸줏간, 복식 등
고구려 벽화 고분의 현 실태
고구려 벽화 고분은 현재 집안에 20여기, 평양 근처에 30여기가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집안에 있는 벽화 고분은 중국 당국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벽화가 훼손되고 변형되어
버렸다. 유명한 수렵도나 무용도의 모습은 일제 시대때 찍은 사진들로만 감상할 수 있을 정도
로 심각한 상태이다. 이들 벽화는 이제 그 형체만 경우 남아 있을 정도이다.
집안의 고구려 고분은 1만2천여기, 그 중에서 제대로 발굴된 고분은 극소수이고 중국
당국의 의도적인 방치로 유적은 훼손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한 당국의 벽화 고분 관리는 철저하다. 중국 당국이 철문으로 고분 입구를
막는 방식과 달리, 북한은 고분 내에 사면을 유리벽으로 만들고 온도 조정 장치와 입구 조정
등을 통하여 벽화 보존에 노력하였다.
고구려 벽화는 세계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런 유적의 중요성을 느낀 일본인도
북한 당국과 협력하여 유네스코에 고구려 벽화를 세계 유산에 등록하기 위하여 협의하고
있다 더 이상 고구려 벽화 고분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서, 훼손되어 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남.북한이나 중국 모두 이해 관계를 떠나 벽화 고분 보존에 모두 노력을 해야 한다.
고구려 벽화 고분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아주 귀중한 유적이지만, 이제는 우리 것만이 아닌
세계 모든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유적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다.
(4) 백제실
소개
백제는 고조선 멸망 후 부여, 고구려의 이주민들이 한강유역과 반도의 남쪽으로 이동하여 백제를 이루고 있다가 마한지역을 통합하여 성장한 나라로,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4) 때는 북으로 고구려와 싸워 영토를 넓히고 남으로는 마한을 병합, 전라도 해안까지 그 세력을 확대하였다.
백제의 정치제도는 중앙집권식으로 초기에는 왕 아래 16등급의 중앙 관리와 6좌평을 두었으며, 후기에는 중앙에 22부, 지방에 22개 담로를 두어 나라를 다스렸다. 경제생활은 농업생산이 확대되고 수리시설이 확충되어 벼농사를 많이 지었으며, 종교에 있어서는 침류왕 원년(枕流王 元年, 384)에 들어온 불교와 함께 도교가 전파되어 발달하였다.
한편, 백제의 미술은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것이 특징이며, 그 문화에 있어서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으나 일본에까지 그 문화를 전파하여 기틀을 마련해 줄 만큼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
전시구성
모형 : 무령왕릉, 정림사 등
전시 : 서산마애삼존불, 백제 서민과 귀족의 생활 모습, 복식, 수막새, 고리칼 등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
국보 제84호, 7세기 중엽, 주존불높이 280cm, 충청남도 서산군 가야산 계곡의 암석 동면에 삼존불을 조각하였다. 중후한 신체가슴의 띠 매듭백호 등의 표현에서 고구려 혹은 북위의 불상 양식이 보여지는 태안 마애삼존불의 조형수법이 진전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작수법은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으로 전승된다. 좌우협시보살의 도상이 다른 보살상과는 다른 봉지보주(捧持寶珠)관음보살상과 상현좌의 반가사유상으로 백제의 독창적인 도상이라 하겠다. 삼존불에 표현되어 있는 상호에 배어 있는 깊고 환한 미소와 생동감 있는 얼굴백제 와당에서 볼 수 있는 부드럽고 넓은 연꽃무늬율동적인 불꽃무늬의 두광통인의 두툼한 손통견의 대칭적인 옷주름부드럽고 풍만한 연화좌애교스러운 반가사유상 등은 백제 석조 미술의 백미이다
(5) 가야실
▲ 가야실의 <말머리가리개>
소개
가야는 낙동강(洛東江) 지역에서 변한(弁韓)을 모체로 일어난 국가로 금관가야, 대가야 등이 연맹하여 6가야를 형성, 초기에는 그 세력이 강성하였으나 고구려백제신라와 같이 왕권국가로 통일하지 못한 채 대가야를 끝으로 신라에 병합되었다.
가야문화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미가 뛰어나고, 독창적인 예술성을 갖는 것이 특징으로 신라에 병합되면서 신라 문화에 흡수되어 신라의 문화 발달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이러한 관계로 가야와 신라의 두 문화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소 다른 특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전시구성
전시 : 화로모양토기, 등잔, 기마장군상, 금동제 말띠고리와 꾸미개,
말머리가리개 등
(6) 신라실
▲ 신라실의 <감은사>모형
소개
1세기 후반부터 왕국으로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신라는 6세기경 불교문화를 수용하고 골품제도화백제도화랑제도 등의 사회제도를 기반으로 국력을 키워 진흥왕(眞興王, 540~576) 때에는 가야를 병합, 한강유역을 신라의 영토로 하는 등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문무왕(文武王) 대에는 당(唐) 나라와 연합하여 660년에는 백제를 멸망시켰고, 이어 668년에는 고구려를 함락하여 삼국을 통일하였다. 삼국 통일 후 100년간은 신라의 불교미술이 극치를 이루었는데, 이때 불국사(佛國寺)를 창건하였으며, 안압지와 석굴암 등의 조영을 비롯하여 수많은 석탑, 석비, 부도, 당간지주 등 많은 문화유산을 남겨 놓았다.
전시구성
모형 : 석굴암, 안압지, 감은사 등
전시 : 서민의 생활, 토우, 귀면와, 토기뼈단지, 금관 등의 유물
(7) 고려실
▲ 황해도 안악3호고분
▲ 고분벽화의 대행렬도를 기초로 만들어진 모형
▲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금속공예품들이 전시
▲ 고려시대 왕궁인 만월대의 모형
▲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작은 모형으로 설명해 놓았다.
소개
918년 송악군(松嶽郡)의 호족(豪族) 왕건이 태봉(泰封)의 왕 궁예를 몰아내고 세운 고려는 태조 18년(935)에 신라를 병합하고, 다음해에 후백제를 멸하여 삼국을 통일하였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숭상하는 동시에 나라를 다스리는 길을 유교에서 찾아 유학을 중심으로 한 과거제도가 이때 시작되었고, 성종(成宗) 11년(992)에는 국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국자감이 설치되었다.
고려의 문화와 예술은 호화스러운 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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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19
  • 저작시기2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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