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저자 소개
2. 책의 목차
제1장 탈레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제2장 마키아벨리에서 칸트까지
제3장 헤겔에서 가다머까지
2. 책의 목차
제1장 탈레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제2장 마키아벨리에서 칸트까지
제3장 헤겔에서 가다머까지
본문내용
해서 그는 일단 세상의 모든 현상에 대해 판단 중지를 내린다. 그러고 나서 그는 지식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세상의 모든 현상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우리의 지식을 형성하는 의식 구조로 향할 수밖에 없다.
후설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노에시스-노에마 강관관계’의 구조로 되어있다. 그리스어로 사유란 뜻의 노에시스는 생각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노에마는 그리스어로 사유된 것이란 뜻으로, 생각의 대상을 가리킨다. 이 둘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밀접하게 붙어 있으며, 이 같은 구조에서 세상의 모든 지식이 생겨난다. 후설은 바로 이러한 순수 의식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모든 학문을 엄밀하게 만들 수 있는 기초를 세우려 했다. 378
*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탐구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존재’자체이다. 존재를 밝히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연구했다. 세상에는 돌, 꽃, 나무, 동물 등 수많은 ‘존재자’가 있다. 이런 것들은 근야 존재하고 있을 뿐,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묻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에 대해, 즉 있음과 없음을 구별할 수 있으며 왜 자신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런 뜻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은 존재의 의미가 드러나는 존재자, 즉 현존재라고 보았다. 존재에 대해 밝히려면 바로 존재를 알고 있는 존재, 즉 현존재인 인간을 탐구해야 한다. 386
* 사상계의 제임스 딘-사르트르
사르트르는 인간이 놓인 극단적인 허무의 현실을 완전한 긍정으로 탈바꿈시켰다. 1943년에 발표한 <존재와 무>에서, 이유없이 세상 398
에 던져져 목적 없이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오히려 그 때문에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창조적 존재로 거듭난다.
인간에게는 본질이 없다. 인간은 세상에 그냥 던져져 있을 뿐이다. 한 다른 사물과 달리,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 극단적인 허무를 깨닫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펼칠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원래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를 본질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존재이다. -399쪽 유명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 모든 물음은 가치가 있다-하버마스
그는 억압 없는 해방된 사회를 위해 이상적인 언어 모델에 주목했다. 언어도 하나의 행위다. 예를 들어, ‘내일 그곳에 갈게’라는 말은 그렇게 하겠다는 행동의 약속을 담고 있다. 이 약속이 지켜지는 이유는 서로가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 그 말이 진실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이런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인류의 해방을 향한 열쇠를 발견한다. 그는 합리성을 단순히 논리적 사고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토론에서 찾는다.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라는 새로운 이성의 잣대를 세운 것이다. 411
* 문명의 비밀코드 광기, 성, 병원, 감옥 -미셸푸코
푸코는 역사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실증적인 문헌을 들이대며 철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기의 광기란 이성과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광기를 질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야나 고흐, 니체에게서 보듯, 광기는 이성을 뛰어넘는 혜안을 주기도 한다. 광기를 배제한 우리의 문명은 이성 혼자서 독백하는 것과 같다. 이성적인 것이 곧 최선이고 바람직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광기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통제하기에 앞서, 우리는 광기 앞에서 우리의 이성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418
* 열린 사회를 꿈꾼 비판적 합리주의자 -포퍼
열린사회는 닫힌 사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닫힌 사회에서 사회의 도덕과 법률은 마치 자연법칙과 같이 절대적이어서 비판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닫힌 사회는, 역사란 법칙에 따라 어떤 목표를 향해 발전한다는 역사주의에 기초해 있다. 국가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알고 있다. 일상생활에 빠져 지내는 개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직 국가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기에, 431
국가는 개인들의 삶을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한다. 또한 대화보다 힘의 우위에 의한 폭력과 제재가 효과적인 설득 수단이라 믿는다.
닫힌 사회와 달리 열린 사회에서는 도덕과 법률을 필요에 따라 언제든 변경되는 약속 같은 것으로 본다. 또한 열린 사회는 역사를 정해진 방향에 따라 발전해 가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역사는 사람들 사이의 수많은 토론과 시행착오를 통해 점차 개선될 수 있다. 경험 부족 탓에 많은 혼란과 실수가 일어날 터다. 그럼에도, 열린 사회 사람들은 토론을 통한 세세한 조정들을 통해 오류를 점차 제거하며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다.
열린사회는 개인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비판에 귀 기울인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인류는 발전한다. 불완전하기에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으며, 노력에 의해 우리는 진리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서로의 뜻과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제도가 필요하게 된다. 자유와 평등은 이런 믿음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
또한, 열린 사회는 닫힌 사회와 같이 이상과 계획에 따라 개인들을 억누르고 희생시키면서 사회 전체를 개선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열린 사회는 ‘점진적 사회공학’을 추구한다. 개인들이 이성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며, 사회의 지배적인 견해에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점진적으로 발전해 간다. 432
* 이해는 역사적이다 -가다머
문제는, 역사적 사건의 의미는 역사적 사실과 달리 객관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황산벌 싸움이라는 사건이 한국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갈 리는 없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어떤 시대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하나의 사건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가다머가 ‘이해는 역사적’이라고 한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442
후설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노에시스-노에마 강관관계’의 구조로 되어있다. 그리스어로 사유란 뜻의 노에시스는 생각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노에마는 그리스어로 사유된 것이란 뜻으로, 생각의 대상을 가리킨다. 이 둘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밀접하게 붙어 있으며, 이 같은 구조에서 세상의 모든 지식이 생겨난다. 후설은 바로 이러한 순수 의식의 구조를 밝힘으로써 모든 학문을 엄밀하게 만들 수 있는 기초를 세우려 했다. 378
*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탐구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존재’자체이다. 존재를 밝히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연구했다. 세상에는 돌, 꽃, 나무, 동물 등 수많은 ‘존재자’가 있다. 이런 것들은 근야 존재하고 있을 뿐,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묻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에 대해, 즉 있음과 없음을 구별할 수 있으며 왜 자신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런 뜻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은 존재의 의미가 드러나는 존재자, 즉 현존재라고 보았다. 존재에 대해 밝히려면 바로 존재를 알고 있는 존재, 즉 현존재인 인간을 탐구해야 한다. 386
* 사상계의 제임스 딘-사르트르
사르트르는 인간이 놓인 극단적인 허무의 현실을 완전한 긍정으로 탈바꿈시켰다. 1943년에 발표한 <존재와 무>에서, 이유없이 세상 398
에 던져져 목적 없이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오히려 그 때문에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창조적 존재로 거듭난다.
인간에게는 본질이 없다. 인간은 세상에 그냥 던져져 있을 뿐이다. 한 다른 사물과 달리,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 극단적인 허무를 깨닫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펼칠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원래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를 본질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존재이다. -399쪽 유명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 모든 물음은 가치가 있다-하버마스
그는 억압 없는 해방된 사회를 위해 이상적인 언어 모델에 주목했다. 언어도 하나의 행위다. 예를 들어, ‘내일 그곳에 갈게’라는 말은 그렇게 하겠다는 행동의 약속을 담고 있다. 이 약속이 지켜지는 이유는 서로가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 그 말이 진실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이런 일상의 언어생활에서 인류의 해방을 향한 열쇠를 발견한다. 그는 합리성을 단순히 논리적 사고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토론에서 찾는다.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라는 새로운 이성의 잣대를 세운 것이다. 411
* 문명의 비밀코드 광기, 성, 병원, 감옥 -미셸푸코
푸코는 역사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실증적인 문헌을 들이대며 철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기의 광기란 이성과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광기를 질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야나 고흐, 니체에게서 보듯, 광기는 이성을 뛰어넘는 혜안을 주기도 한다. 광기를 배제한 우리의 문명은 이성 혼자서 독백하는 것과 같다. 이성적인 것이 곧 최선이고 바람직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광기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통제하기에 앞서, 우리는 광기 앞에서 우리의 이성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418
* 열린 사회를 꿈꾼 비판적 합리주의자 -포퍼
열린사회는 닫힌 사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닫힌 사회에서 사회의 도덕과 법률은 마치 자연법칙과 같이 절대적이어서 비판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닫힌 사회는, 역사란 법칙에 따라 어떤 목표를 향해 발전한다는 역사주의에 기초해 있다. 국가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알고 있다. 일상생활에 빠져 지내는 개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직 국가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기에, 431
국가는 개인들의 삶을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한다. 또한 대화보다 힘의 우위에 의한 폭력과 제재가 효과적인 설득 수단이라 믿는다.
닫힌 사회와 달리 열린 사회에서는 도덕과 법률을 필요에 따라 언제든 변경되는 약속 같은 것으로 본다. 또한 열린 사회는 역사를 정해진 방향에 따라 발전해 가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역사는 사람들 사이의 수많은 토론과 시행착오를 통해 점차 개선될 수 있다. 경험 부족 탓에 많은 혼란과 실수가 일어날 터다. 그럼에도, 열린 사회 사람들은 토론을 통한 세세한 조정들을 통해 오류를 점차 제거하며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다.
열린사회는 개인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비판에 귀 기울인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인류는 발전한다. 불완전하기에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으며, 노력에 의해 우리는 진리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서로의 뜻과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제도가 필요하게 된다. 자유와 평등은 이런 믿음 속에서 성장해 나간다.
또한, 열린 사회는 닫힌 사회와 같이 이상과 계획에 따라 개인들을 억누르고 희생시키면서 사회 전체를 개선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열린 사회는 ‘점진적 사회공학’을 추구한다. 개인들이 이성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며, 사회의 지배적인 견해에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점진적으로 발전해 간다. 432
* 이해는 역사적이다 -가다머
문제는, 역사적 사건의 의미는 역사적 사실과 달리 객관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황산벌 싸움이라는 사건이 한국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갈 리는 없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어떤 시대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하나의 사건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가다머가 ‘이해는 역사적’이라고 한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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