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음식문화 에도시대의 상품화된 먹거리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일본의 음식문화 에도시대의 상품화된 먹거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목차 >
Ⅰ.序論

Ⅱ.本論
1. 和 食(わしょく)
2. 箸(はし)를 통해본 일본의 젓가락 문화
3. 바쁜 생활상이 담긴 음식들
1)오니기리 와 삼각김밥
2) 벤토 와 에키벤(驛弁)
4. 배고픔의 사연이 담겨있는 음식들
1)분식과 소바
2)돈부리 와 카레
5. 일본의 해산물 요리들
1)마구로 (まぐろ)
2)오뎅 (おでん)
6. 고기를 먹게 된 까닭
7. 빵을 먹게 된 까닭
8. 간장민족 고추장민족
9.에도시대의 상품화된 먹거리 - 덴뿌라
10. 식탁에서의 독특한 예절과 관습

Ⅲ.結論

본문내용

아서 먹는 ‘오차즈케’를 말한다. 이것을 시초로 당시 싼 다랑어의 뱃살 근육을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는 의미에서 ‘살살’을 뜻하는 ‘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1960년대 냉동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냉동다랑어는 영하 20~30도로 처러되었기 때문에 살이 검어져서 깨끗한 회가 될 수 없었다. 여기서 동원참치가 날개다랑어를 기름에 절여 캔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담백해서 일본요리에는 맞지 않았고 미국등지에서 인기가 있다.
날개 다랑어 캔은 일본에서도 수출 목적으로 제조되었지만 지금은 일본 가정에서도 미용과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다. 다랑어 뿐만 아니라 유명한 “가쓰오”도 만들고 있다. 그럼 우동국물하면 생각나는 가쓰오란 무엇인가?
우동의 국물맛을 내는데 으뜸가는 것이 바로 ‘가쓰오부시’(節)이다. 가다랭이를 넣어서 맛좋은 국물을 만든다고 한다. 또한 우동국물에는 다시마와 멸치도 들어간다고 한다.
2)오뎅 (おでん)
일본사람들의 음식중에서, 겨울에 날을 잡아서 가족들이 저녁 식탁에 둘러 앉아 모처럼 즐겁게 먹는 것이 냄비(나베)에 끓이는 오뎅(御田)이다.
오뎅은 두부와 ‘콘냐쿠’ (땅속에서 캐내는 식물인 곤약) 며 생선묵인 카마보코와 한펭, 찌쿠와에다 토란과 무우 등을 넣어서 ‘다시지루’(국물)에 넣어서 끓인것이다.
에도시대 초기에는 귀족들만의 냄비 요리였는데 워낙 여러가지 재료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이어서 서민들은 좀처럼 입에 댈 수 조차 없는 고급요리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 비법은 요리점의 생명과도 같아서 자식에게도 임종의 자리에서만 살며시 가르쳐 줄 정도라고 한다.
6. 고기를 먹게 된 까닭
앞서 말했듯이 일본은 여러가지 조건들로 인해 육식이 별로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육식을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개화시기의 일본은 육식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날고기에 굶주린 외국 병사들의 도둑질에 의해서 해제됐다. 개화를 했으니 주식이 고기인 서양인 부대가 들어와 고기를 못먹어 고생하던중에 영국의 해군이 훗카이도 농가에 들어가 소를 약탈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영국의 선장이 외국인이 필요로 하는 고기, 계란, 우유를 일본 땅에서 해결하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고기를 공급하는 정책이 성립됐고 점차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
과거에는 소가 농사에 유용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거의 잡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방인들이 일본에 와서 쇠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화를 내면서 “무엇 때문에 밭갈이 하는데 중요한 소를 잡아 먹는것이야!” 라고 힐책할 정도였다
그러나 점차 나베(냄비)에 ‘규우나베’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전에 쇠고기가 금식되었던 시절에 농민들이 몰래 소를 잡아 쟁기에 구워먹던 ‘스키야키’ ; 쇠고기가 좋다는 데서 좋아서 굽는다는 재미있는 말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4발달린 짐승의 고기를 먹으면 말라 죽게 된다는 불교적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정육점 부인이 남편의 쇠고기 판매 창업에 반대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전해진다.
7. 빵을 먹게 된 까닭
일본은 한국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빵을 소비한다. 그 배경에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湯문화와 도시락 문화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상당히 일찍부터 빵을 먹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본사람들은 메이지 시대에 신식군대가 등장했을 때부터 빵을 먹기 시작했다. 일본의 영양학은 메이지 시대에 들어 군대 식사의 서구화에 의해 만들어졌다. 병사의 식사는 음식문화로 인식되기보다는 전투에 필요한 효율적인 체력을 만드는 데 필요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직접적이고 다급했던 요인이 있었다.
바로 ‘각기병’이다. 천황의 직속부태에서 각기병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유신 정부가 처음 탄생했을 당시 관군은 모두 지방 영주의 병사들로 천황의 직속부대는 없었다. 그래서 정부는 서둘러 육군은 프랑스 식으로, 해군은 영국식으로 만들기로 했다.
프랑스 군대를 모델로 해서 만든 군대는 주로 나가사키 출신이 많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시골에서 보리밥을 주식으로 한 평민들이었다. 신 정부는 천황의 직속 부대라고 해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모두 쌀밥을 주는 특혜를 베풀었다. 그러자 예상과는 달리 각기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속출하게 되었다.
매우 놀란 정부는 중환자를 독일인이 경영하는 병원으로 보냈으나 빵이 주식이었던 서양인들에게는 각기병 환자가 없어서 치료법을 몰라 당황스러워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병원에서는 계속 관찰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로 전부 완쾌되었던 것이다. 병원에서 한 일은 식사를 쌀밥 대신 서양식으로 빵과 우유를 준 것 뿐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군대의 급식은 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인들이 빵을 먹게 된 유래고, 오늘날 자연스레 세계적으로 빵을 많이 먹는 민족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무라이들의 식량까지도 오니기리에서 빵으로 바뀐 결정적인 이유는 전쟁의 패턴 때문이었다. 근대전으로 넘어오면서 밥할 때 연기를 뿜어대는 오니기리 도시락은 적에게 위치를 발각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8. 간장민족 고추장민족
김치와 다쿠앙에서 처럼 한국인에게 고추장이 김치부터 찌개를 포함한 갖가지 음식에 들어가는 기본 양념이라면 후지산에서 재배되며 미각을 돋구어 주는 와사비(고추냉이)부터 라면과 우동 소바의 양념에까지 많은 음식에 들어가는 조미료이다.
일본인이 매일 섭취하는 식염의 45퍼센트는 조미료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 간장에서 27퍼센트, 된장(청국장과 비슷한 낫토 포함)에서 16퍼센트의 식염을 섭취하고 있으며 소금 단독으로 사용되는 것은 13퍼센트에 불과하니, 소금도 간장에서 대부분 섭취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지역별로도 차이를 보이는데, 오사카 관서 지방의 사람들은 도쿄의 우동이 너무 진해서 검정색에 가까워서 기분 나쁜 색깔이라고 말한다. 한편 관동지방 사람은 관서 지방의 “흐린 간장으로 만든 소바의 국물은 맛이 날 것 같지 않아 믿을수 없다며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관서지방에서도 색이 엷은 간장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는 색이 진한 간장을 준비해 두어 엷은 간장으로는 회를 먹지 않았다. 또한 규슈지방은 다른 지방과 비

키워드

일본,   음식,   문화,   덴뿌라,   와쇼쿠,   에키벤,   오니기리,   벤토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0.04.12
  • 저작시기200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9841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