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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하자. 사람들은 모든 일들이 어떤 물리적인, 즉 자연적인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연이 곧 하나님인가? 그렇지는 않다. 모든 사물에 본성이 있으나 그것을 종합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된 신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사물은 신의 작품일 뿐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영원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의 관점에서조차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자연적인 현상들을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자연적 신학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의 해석에서 그 오류성을 가진다. 그렇다면 이 ‘신들의 특별한 역할에 관하여’. 하나님의 도성 제6권 9장
알아보자. 이 비열한 신들은 인간사의 여러 부분을 세분하고 있다. 이들은 불결한 행위를 자신의 제전에서 하기를 강요한다. 바로의 견해에 따르자면 그는 교묘하게 “신화적 신학”과 “도성적 신학”을 비판하며, 이것을 자연적 신학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관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보다 철저하게 논의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바로의 신화적 신학을 비판한 것보다 더 격렬하게 도성의 신학을 비판했던 세네카의 자유에 대하여’. 하나님의 도성 제6권 10장
알아볼 수 있다. “저들은 그런 것들을 신일고 부르고 있지만, 만약 그런것들이 숨을 쉬고 갑자기 사람들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괴물로 생각될 것이다.” 라는 말과 같이 그는 그 당시의 잡다한 신들에 대해서 혹평을 하고 있다. 사실 바로는 이정도까지의 자유를 향유하지는 못했다. 그는 단지 도성에 대한 신화적인 신학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을 뿐이었다.
■ 제2주제 : 하나님만이 숭배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견해에 의해서 ‘이전에 제민족의 신들이 거짓되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을때, 신들이 현세적인 일들에 관해서조차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는 형편에 있으므로 어느 누구에든지 영원한 생명을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은 의심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도성 제6권 12장
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을 줄 수 없는 자가 어찌 영원한 행복인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겠는가? 불결한 영들이 겪는 영원한 생명이란 단지 영원한 고통속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죽음일 뿐이다. 최악의 죽음은 영원한 형벌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성적인 신들은 현세적이고 세상적인 일들로 인하여 숭배되어서는 않된다.
제7권 : 영원한 생명은 “선택된 신들”의 숭배를 통해서 얻어지는가?
■ 제1주제 : 선택된 신들
‘신성이 도성적 신학에서 발견될 수 없음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신성이 선택된 신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도성 제7권 1장
에서 부터 우리의 논의를 진행해보자. 그렇다면 우선 ‘선택된 신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은 보통의 신들의 직무로부터 면제되어있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도성 제7권 2장
바로는 선택된 신을 20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야누스. 주피터. 사트루누스. 메르크리우스. 아폴로. 마르스. 불카누스. 넵투누스. 솔. 오르쿠스. 리베르. 텔루스. 케레스. 주노. 달(일반적으로 다이아나). 미네르바. 비너스. 베스타.
그렇다면 이들의 주요한 목적이 “성”에 관련된 것이라고 할때 ‘보다 고상한 직무가 많은 열등한 신들에게 위임이 되었는데, 어떤 신들이 선택되기 위하여 제시될 수 있는 이유가 어떻게 하여 없는가?’. 하나님의 도성 제7권 3장
선택된 20개의 신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인류에 도움이 되는 신들이 많은데 왜 그들이 그런 신들보다 우위에 서서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왜 ‘그 이름이 불명예와 연관되지 않는 열등한 신들은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유명한 선택된 신들보다 더 낫다고 취급되었다.
■ 제2주제 : 선택된 신들 Ⅱ
‘하나님은 세상의 영혼이지만, 세상은 그 여러 부분 안에 그 본성이 신적인 많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바로의 견해에 관하여’. 하나님의 도성 7권 6장
생각해보자. 바로는 하나님이 세상. 그리이스의 사람들은 이것을 “코스모스”라 부르고 있다.
의 영혼이며,이 세상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범신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분인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듯 보이면서도 다시 복합적인 신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바로가 주장하는 복합적인 신의 개념에 대해서 알아보자. 바로가 출발점으로 삼고있는 야누스에 대해서 우선 알아보자. ‘야누스와 테르미누스를 별개의 신으로 구분하는 것은 타당한가.’. 하나님의 도성 7권 7장
라는 문제에서 우선 출발하자. 야누스는 시작의 신이고 테르미누스는 종결의 신이다. 실제로 시작과 종말은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꼭 그것을 나누겠다면, 근심이 시작되는 “시작의 신”보다 모든 근심이 끝나는 “종결의 신”이 더 숭배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실제로 보면 야누스도 그리 대접은 받지 못했다. 왜 ‘야누스를 숭배하는 자들은 무슨 이유로 신상의 얼굴을 둘로 하였다가 때로는 넷으로 하였다 하는가?’. 하나님의 도성 7권 8장
야누스가 쌍둥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네 방위를 상정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는 ‘주피터의 능력 및 주피터와 야누스 사이의 비교에 관하여’. 하나님의 도성 7권 9장
생각해보자. 사실 둘의 능력은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피터를 영혼으로, 야누스를 신체로 묘사한다. 그러나 야누스가 육체라면 어찌 신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야누스와 주피터를 구분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나님의 도성 7권 10장
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고 답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신들에게가 아니라 하나의 동일된 신에게 언급된 주피터의 별칭’을 본다면. 그는 정복하는 ‘빅토르’이고, 정복당하지 않는 ‘인빅투스’고 멈추는 능력을 소유한 ‘스타토르’이고 안정의 ‘켄툼페다’, 만물을 양육하는 ‘알무스’ 등 등
실제로 모든 신들은 그에게 속해있어야 정상이다. 또한 ‘이교도들이 신들의 이름으로 부르는 어떤 별에 대하여’. 하나님의 도성 제7권 15장
알아보자.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것은 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달은 이미 다이아나. 달의 여신, 순결의 여신, 그리이스의 아르테미스 여신으로 아폴로
알아보자. 이 비열한 신들은 인간사의 여러 부분을 세분하고 있다. 이들은 불결한 행위를 자신의 제전에서 하기를 강요한다. 바로의 견해에 따르자면 그는 교묘하게 “신화적 신학”과 “도성적 신학”을 비판하며, 이것을 자연적 신학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관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보다 철저하게 논의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바로의 신화적 신학을 비판한 것보다 더 격렬하게 도성의 신학을 비판했던 세네카의 자유에 대하여’. 하나님의 도성 제6권 10장
알아볼 수 있다. “저들은 그런 것들을 신일고 부르고 있지만, 만약 그런것들이 숨을 쉬고 갑자기 사람들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괴물로 생각될 것이다.” 라는 말과 같이 그는 그 당시의 잡다한 신들에 대해서 혹평을 하고 있다. 사실 바로는 이정도까지의 자유를 향유하지는 못했다. 그는 단지 도성에 대한 신화적인 신학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을 뿐이었다.
■ 제2주제 : 하나님만이 숭배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견해에 의해서 ‘이전에 제민족의 신들이 거짓되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을때, 신들이 현세적인 일들에 관해서조차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는 형편에 있으므로 어느 누구에든지 영원한 생명을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은 의심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도성 제6권 12장
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을 줄 수 없는 자가 어찌 영원한 행복인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겠는가? 불결한 영들이 겪는 영원한 생명이란 단지 영원한 고통속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죽음일 뿐이다. 최악의 죽음은 영원한 형벌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성적인 신들은 현세적이고 세상적인 일들로 인하여 숭배되어서는 않된다.
제7권 : 영원한 생명은 “선택된 신들”의 숭배를 통해서 얻어지는가?
■ 제1주제 : 선택된 신들
‘신성이 도성적 신학에서 발견될 수 없음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신성이 선택된 신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도성 제7권 1장
에서 부터 우리의 논의를 진행해보자. 그렇다면 우선 ‘선택된 신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은 보통의 신들의 직무로부터 면제되어있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도성 제7권 2장
바로는 선택된 신을 20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야누스. 주피터. 사트루누스. 메르크리우스. 아폴로. 마르스. 불카누스. 넵투누스. 솔. 오르쿠스. 리베르. 텔루스. 케레스. 주노. 달(일반적으로 다이아나). 미네르바. 비너스. 베스타.
그렇다면 이들의 주요한 목적이 “성”에 관련된 것이라고 할때 ‘보다 고상한 직무가 많은 열등한 신들에게 위임이 되었는데, 어떤 신들이 선택되기 위하여 제시될 수 있는 이유가 어떻게 하여 없는가?’. 하나님의 도성 제7권 3장
선택된 20개의 신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인류에 도움이 되는 신들이 많은데 왜 그들이 그런 신들보다 우위에 서서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왜 ‘그 이름이 불명예와 연관되지 않는 열등한 신들은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유명한 선택된 신들보다 더 낫다고 취급되었다.
■ 제2주제 : 선택된 신들 Ⅱ
‘하나님은 세상의 영혼이지만, 세상은 그 여러 부분 안에 그 본성이 신적인 많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바로의 견해에 관하여’. 하나님의 도성 7권 6장
생각해보자. 바로는 하나님이 세상. 그리이스의 사람들은 이것을 “코스모스”라 부르고 있다.
의 영혼이며,이 세상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범신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분인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듯 보이면서도 다시 복합적인 신의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바로가 주장하는 복합적인 신의 개념에 대해서 알아보자. 바로가 출발점으로 삼고있는 야누스에 대해서 우선 알아보자. ‘야누스와 테르미누스를 별개의 신으로 구분하는 것은 타당한가.’. 하나님의 도성 7권 7장
라는 문제에서 우선 출발하자. 야누스는 시작의 신이고 테르미누스는 종결의 신이다. 실제로 시작과 종말은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꼭 그것을 나누겠다면, 근심이 시작되는 “시작의 신”보다 모든 근심이 끝나는 “종결의 신”이 더 숭배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실제로 보면 야누스도 그리 대접은 받지 못했다. 왜 ‘야누스를 숭배하는 자들은 무슨 이유로 신상의 얼굴을 둘로 하였다가 때로는 넷으로 하였다 하는가?’. 하나님의 도성 7권 8장
야누스가 쌍둥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네 방위를 상정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는 ‘주피터의 능력 및 주피터와 야누스 사이의 비교에 관하여’. 하나님의 도성 7권 9장
생각해보자. 사실 둘의 능력은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피터를 영혼으로, 야누스를 신체로 묘사한다. 그러나 야누스가 육체라면 어찌 신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야누스와 주피터를 구분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나님의 도성 7권 10장
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고 답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신들에게가 아니라 하나의 동일된 신에게 언급된 주피터의 별칭’을 본다면. 그는 정복하는 ‘빅토르’이고, 정복당하지 않는 ‘인빅투스’고 멈추는 능력을 소유한 ‘스타토르’이고 안정의 ‘켄툼페다’, 만물을 양육하는 ‘알무스’ 등 등
실제로 모든 신들은 그에게 속해있어야 정상이다. 또한 ‘이교도들이 신들의 이름으로 부르는 어떤 별에 대하여’. 하나님의 도성 제7권 15장
알아보자.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것은 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달은 이미 다이아나. 달의 여신, 순결의 여신, 그리이스의 아르테미스 여신으로 아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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