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ꊱ 서론
A. 일본영화의 특징
1. 일본영화란?
2. 한계 예술로서의 영화
3. 인접 장르와의 교류
4. 전통 연극과의 관계
5. 문화적 혼합성
ꊲ 본론
A. 일본영화의 년도별 변천과정
1. 50년대 - 일본 영화의 황금기
2. 격변의 60/70년대 - 독립영화의 탄생
3. 80년대 - 개인 영화 시대
<색채와 형태의 미학 / 스즈키 세이쥰, 오구리고헤이>
<애니메이션의 활약>
<재패니메이션>
4. 1990년대
<비관론-영화 산업의 전반적인 문제>
<낙관론-1990년대 ‘슈퍼웨이브’의 등장>
<폭력 이미지/기타노 다케시, 사카모도 준치>
<이미지 중심의 영화 / 트카모토 신야, 이와이 순지>
<오즈 전통의 부활/수오 마사유키>
<중견 감독의 활약>
B. 신구 전통이 공존하는 일본 영화
ꊳ 결론
A. 한국내에서 일본영화의 영향 및 현주소
B. 일본영화의 영향
1. 일본영화
2. 한국영화 동반자이자 라이벌
*참고문헌*
A. 일본영화의 특징
1. 일본영화란?
2. 한계 예술로서의 영화
3. 인접 장르와의 교류
4. 전통 연극과의 관계
5. 문화적 혼합성
ꊲ 본론
A. 일본영화의 년도별 변천과정
1. 50년대 - 일본 영화의 황금기
2. 격변의 60/70년대 - 독립영화의 탄생
3. 80년대 - 개인 영화 시대
<색채와 형태의 미학 / 스즈키 세이쥰, 오구리고헤이>
<애니메이션의 활약>
<재패니메이션>
4. 1990년대
<비관론-영화 산업의 전반적인 문제>
<낙관론-1990년대 ‘슈퍼웨이브’의 등장>
<폭력 이미지/기타노 다케시, 사카모도 준치>
<이미지 중심의 영화 / 트카모토 신야, 이와이 순지>
<오즈 전통의 부활/수오 마사유키>
<중견 감독의 활약>
B. 신구 전통이 공존하는 일본 영화
ꊳ 결론
A. 한국내에서 일본영화의 영향 및 현주소
B. 일본영화의 영향
1. 일본영화
2. 한국영화 동반자이자 라이벌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지 일본영화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당면한 두 번째 문제는, 과연 각 시대마다 일관된 공통항이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노에 마쓰노스케가 주연한 <아뢰야>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살다가다> 사이에는 기법이나 주제를 넘어 영화의 자기 인식 차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와 쓰카모토 신야의 <철 사 나이>에 이르러서는 더욱 간격이 벌어져 그 사이에는 어두운 심연이 존재 한다. <아뢰야> 부류의 영화로는 동시대에 프랑스에서 촬영한 <그리스도 수난극>과 인도의 파르케가 만든 <크리슈나의 탄생>을 들 수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은 비토리오 데시카의 <옴베르토 D>로 대표되는 네오리얼리즘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 또 쓰카모토 신야가 그린 악몽의 세계는 공포-괴기 영화난 기가의 회화 작품을 연상시켜 일본인이 대개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일본과는 거리가 있다.
2. 한계 예술로서의 영화
19세기가 끝날 무렵에 시작된 일본영화는 다음 한 세기를 통해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오락의 하나로 자리 잡아 왔다. 이것은 어쩌면 너무 간단하게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유보해 두겠다. 하지만 예술 장르로 간주했을 경우, 사회 안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높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양적인 근대화를 지향하는 일본에서 가장 규범적인 예술가는 어디까지나 구도자적인 분위기를 띠며, 종교적이기까지 한 정념의 신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영화가 그러한 신화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전후에 들어서 미조구치 겐지(1898~1956)나 구로사와 아키라가 국제적인 각광을 받은 후의 일이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영화 회사가 세워진 것은 1912년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 회사가 설립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이다. 하지만 전자가 소규모의 가내 공장이라면 후자는 근대적인 거대한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이미 1910년대에 정형화된 화법이나 카메라 기법, 여배우 스타라는 시스템을 받아들인 것은 겨우 1920년대에 들어서이다. 후에 독자적이 스타일로 비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으로 평가 받는 오즈야스지로1903~1963)의 영화에도 1920년대의 초기 작품에서는 버터 냄새가 난다, 즉 서구적인 냄새가 난다고 야유할 정도로 미국영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영화를, 할리우드 영화와 같이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 형식으로 세계를 재패하면서 스스로의 보편성을 이데올로기로 삼아 전 세계에 선전하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아무리 예술적으로 세계적인 평가를 받은 경우에도 일본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영화처럼 정치적 음모나 권력 투쟁 과정에 매체로 이용된 적도 없다. 영국 영화 같이 미국 영화로부터 언어적인 압박을 받은 일도 없이, 일본어라는 폐쇄된 틀 속에서 제작과 배급, 향수가 조성되어 왔다.
3. 인접 장르와의 교류
일본은 18세기 무렵부터 세계에서 드물 정도로 대중적인 읽을거리 즉 대중소설류가 융성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만담의 속기록을 비롯하여 야담에서 신문 소설, 어린이 동화까지 온갖 읽을거리가 넘쳐났고, 높은 식자율로 두터운 독자층을 보증하는 상황이 오래 동안 계속되었다. 금세기까지도 프랑스 소설을 번역하여 신문에 게재해야 했던 이탈리아나, 식민지 지배아래에서 언어적인 다양성이 커다란 장해가 되었던 인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본은 소설류가 매우 발전해 있었다.
이러한 대중 소설 등의 읽을거리는 영화에 원작을 제공할 뿐 아니라 관객에게 모노가타리 즉 이야깃거리를 시각화하고 싶다는 잠재적 욕망을 환기시켰다. 또한 반대로 영화는 대중소설의 창작 기법에 영향을 끼쳤으며, 대중에게 모더니즘의 분위기를 심어 주었다. 영화의 원작으로서의 야담본이 대중소설로 대용되었고, 시대극에서 점차 황당무계한 요소가 사라진 것은 1920년대 중반이다.
발성영화 혁명이 일단락된 1930년대 중반에는 순수 문학을 적극적으로 영화화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에 걸쳐 진행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즈의 무희>의 영화화 과정을 비교해 보면, 영화와 고급 예술인 순수문학과의 관계의 변화를 알 수 있다. 반대의 경우로, 1935년에 발표된 소설<설국>의 서두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체 글에서도 영화의 이중 묘사 수법을 확인할 수 있다.
4. 전통 연극과의 관계
일본영화가 확립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예술 장르는 연극과 음악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영화관을 아직도 극장이라 부르고, 게다가 영화 업계에서는 영화관을 가리켜 소극장이라는 뜻으로 고야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쓰고 있으며, 영화관의 이름을 극단 명칭에 쓰는 00좌(座)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가부키 종사자은 당초 영화를 멸시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에도 시대의 대중 연극인 가부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쟁전의 시대극은 배우의 예명부터 분장, 메이크업, 세밀한 행동과 발성에 이르기까지 가부키 배우의 영향을 받았고, 스토리의 소재에서도 가부키와 분라쿠(근세에는 닌교조루리라 하던 전통인형극)의 많은 소재를 활용했다. 18세기에 무대에서 대성공을 거둔 주신구라라는 소재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80편 이상이나 영화화되어 인도의 고대 서사시의 영화화에 필적할 만한 커다란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1920년대 초반까지 일본 영화에 본격적으로 여배우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가부키를 모방해서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 배우, 즉 온나가타가 여자 배역을 연기해 왔기 때문이다. 또 미조구치 겐지의 <잔기쿠 이야기>부터 이마무라 쇼헤이(1926~)의 <도둑맞은 욕정>에 이르기까지, 가부키배우나 유랑 예인의 이야기는 여러 번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5. 문화적 혼합성
모든 일본 영화가 일본 전통 문화의 영향아래서 제작된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영화에 시선을 돌려 볼 때, 우선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문화적 하이브리드성, 즉 다른 종류의 문화적 원천을 서로 중복 시켜 전혀 다른 새로운 혼합체를 만들어 내는 혼합성이 압도적이다. 한 편의 영화 속에 얼마나 많은 문화적 원천이 숨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야마
다음으로 당면한 두 번째 문제는, 과연 각 시대마다 일관된 공통항이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노에 마쓰노스케가 주연한 <아뢰야>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살다가다> 사이에는 기법이나 주제를 넘어 영화의 자기 인식 차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와 쓰카모토 신야의 <철 사 나이>에 이르러서는 더욱 간격이 벌어져 그 사이에는 어두운 심연이 존재 한다. <아뢰야> 부류의 영화로는 동시대에 프랑스에서 촬영한 <그리스도 수난극>과 인도의 파르케가 만든 <크리슈나의 탄생>을 들 수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은 비토리오 데시카의 <옴베르토 D>로 대표되는 네오리얼리즘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 또 쓰카모토 신야가 그린 악몽의 세계는 공포-괴기 영화난 기가의 회화 작품을 연상시켜 일본인이 대개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일본과는 거리가 있다.
2. 한계 예술로서의 영화
19세기가 끝날 무렵에 시작된 일본영화는 다음 한 세기를 통해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오락의 하나로 자리 잡아 왔다. 이것은 어쩌면 너무 간단하게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유보해 두겠다. 하지만 예술 장르로 간주했을 경우, 사회 안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높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양적인 근대화를 지향하는 일본에서 가장 규범적인 예술가는 어디까지나 구도자적인 분위기를 띠며, 종교적이기까지 한 정념의 신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영화가 그러한 신화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전후에 들어서 미조구치 겐지(1898~1956)나 구로사와 아키라가 국제적인 각광을 받은 후의 일이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영화 회사가 세워진 것은 1912년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 회사가 설립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이다. 하지만 전자가 소규모의 가내 공장이라면 후자는 근대적인 거대한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이미 1910년대에 정형화된 화법이나 카메라 기법, 여배우 스타라는 시스템을 받아들인 것은 겨우 1920년대에 들어서이다. 후에 독자적이 스타일로 비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으로 평가 받는 오즈야스지로1903~1963)의 영화에도 1920년대의 초기 작품에서는 버터 냄새가 난다, 즉 서구적인 냄새가 난다고 야유할 정도로 미국영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영화를, 할리우드 영화와 같이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 형식으로 세계를 재패하면서 스스로의 보편성을 이데올로기로 삼아 전 세계에 선전하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아무리 예술적으로 세계적인 평가를 받은 경우에도 일본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영화처럼 정치적 음모나 권력 투쟁 과정에 매체로 이용된 적도 없다. 영국 영화 같이 미국 영화로부터 언어적인 압박을 받은 일도 없이, 일본어라는 폐쇄된 틀 속에서 제작과 배급, 향수가 조성되어 왔다.
3. 인접 장르와의 교류
일본은 18세기 무렵부터 세계에서 드물 정도로 대중적인 읽을거리 즉 대중소설류가 융성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만담의 속기록을 비롯하여 야담에서 신문 소설, 어린이 동화까지 온갖 읽을거리가 넘쳐났고, 높은 식자율로 두터운 독자층을 보증하는 상황이 오래 동안 계속되었다. 금세기까지도 프랑스 소설을 번역하여 신문에 게재해야 했던 이탈리아나, 식민지 지배아래에서 언어적인 다양성이 커다란 장해가 되었던 인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본은 소설류가 매우 발전해 있었다.
이러한 대중 소설 등의 읽을거리는 영화에 원작을 제공할 뿐 아니라 관객에게 모노가타리 즉 이야깃거리를 시각화하고 싶다는 잠재적 욕망을 환기시켰다. 또한 반대로 영화는 대중소설의 창작 기법에 영향을 끼쳤으며, 대중에게 모더니즘의 분위기를 심어 주었다. 영화의 원작으로서의 야담본이 대중소설로 대용되었고, 시대극에서 점차 황당무계한 요소가 사라진 것은 1920년대 중반이다.
발성영화 혁명이 일단락된 1930년대 중반에는 순수 문학을 적극적으로 영화화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에 걸쳐 진행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즈의 무희>의 영화화 과정을 비교해 보면, 영화와 고급 예술인 순수문학과의 관계의 변화를 알 수 있다. 반대의 경우로, 1935년에 발표된 소설<설국>의 서두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체 글에서도 영화의 이중 묘사 수법을 확인할 수 있다.
4. 전통 연극과의 관계
일본영화가 확립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예술 장르는 연극과 음악인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영화관을 아직도 극장이라 부르고, 게다가 영화 업계에서는 영화관을 가리켜 소극장이라는 뜻으로 고야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쓰고 있으며, 영화관의 이름을 극단 명칭에 쓰는 00좌(座)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가부키 종사자은 당초 영화를 멸시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에도 시대의 대중 연극인 가부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쟁전의 시대극은 배우의 예명부터 분장, 메이크업, 세밀한 행동과 발성에 이르기까지 가부키 배우의 영향을 받았고, 스토리의 소재에서도 가부키와 분라쿠(근세에는 닌교조루리라 하던 전통인형극)의 많은 소재를 활용했다. 18세기에 무대에서 대성공을 거둔 주신구라라는 소재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80편 이상이나 영화화되어 인도의 고대 서사시의 영화화에 필적할 만한 커다란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1920년대 초반까지 일본 영화에 본격적으로 여배우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가부키를 모방해서 여자 역할을 하는 남자 배우, 즉 온나가타가 여자 배역을 연기해 왔기 때문이다. 또 미조구치 겐지의 <잔기쿠 이야기>부터 이마무라 쇼헤이(1926~)의 <도둑맞은 욕정>에 이르기까지, 가부키배우나 유랑 예인의 이야기는 여러 번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5. 문화적 혼합성
모든 일본 영화가 일본 전통 문화의 영향아래서 제작된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영화에 시선을 돌려 볼 때, 우선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문화적 하이브리드성, 즉 다른 종류의 문화적 원천을 서로 중복 시켜 전혀 다른 새로운 혼합체를 만들어 내는 혼합성이 압도적이다. 한 편의 영화 속에 얼마나 많은 문화적 원천이 숨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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