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 혁명(革命)과 학살(虐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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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칼 마르크스의 전쟁
2) 월남의 공산화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3) Russia 혁명 후에는?
4) 중국에서는
5) 한국 전쟁시에는
6) 캄보디아는

본문내용

캄보디아를 천둥과 비바람으로 휩쓸고 강타했던 공산혁명은 대략적으로 2백만 명 이상의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 비극의 역사였다. 폴포트 정권 공산치하에서 캄보디아 당시 인구 천만 명 중에 1/4 정도에 해당하는 250만 명 정도를 처형하였다.
이 엄청난 민족 대 학살의 신호탄은 1976년 9월 소집된 공산당 중앙위원 회의에서의 캄보디아 공산당 창설기념일에 대한 이견에서 시작되었다. 첫 번째 의견은 폴포트 자신이 1960년 서열 2위로 캄보디아 노동당 KWP을 창설 했을 때를 희망 했으나, 또 다른 의견은 1951년 베트맹 공산당의 지배적인 영향 하에 창설된 크메르 인민 혁명당 KPRP을 창설 일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이에 격노한 폴포트는 1951년 안에 동조했던 두 명의 고위 간부 케오 미아스( Keo Meas )와 논 수온(Non Suon)을 당 지도부를 배반 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하여 혁명정권의 악명 높은 심문센터 뚜올 슬랭(Tuol Sleng)으로 끌려가 처형 하였다.
폴포트는 두 명의 고위 당 간부를 숙청한 이후부터 미세균이 침투하여 당이 병들었다면서 악덕 세균 색출을 지시했다. 악덕 세균으로 간주되는 자들은 혁명에 반대하는 사람들, 당내 반 혁명분자, 전 정권의 관리와 군인들, 전직 교수 및 교사, 지식인, 의사와 약사, 중산층 등이 었다. 또한 베트남 국경지대인 동부지역에 연관된 관리나 그 지역 사령관이나 군인들 등이 숙청되었고, 중국의 '문화혁명'에 자극을 받은 폴포트가 공무원, 교사, 영어를 하는 자,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학생, 안경을 쓴 사람, 손에 못이 안 박힌 사람, 외국서적을 가진 사람, 양담배를 피웠던 사람 등은 부르주아로 분류되어 처형하였으며, 국내에 있던 외국인들과 월남인들까지도 간첩의 협의로 모두 처형하였다. 이 심문센터에 끌려온 사람은 거의 무고한 사람이었으며, 심문을 받은 사람은 다른 3명의 이름을 자술서에 적었고, 또 들어오는 사람은 다시 3명을 불러야 했고 심문 받은 모든 사람은 반혁명의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 되었다. 당시 이 심문센터 한 곳에서 약 2만 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심문센터 근처에 있는 노동자들은 이곳은 "들어가지만 나오지는 못 하는 곳" 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가 살아남은 사람은 약 10여명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러한 예를 볼 때 아무리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과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수립된 정부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국민의 1/4에 해당하는 인구를 무차별로 숙청하면서 과연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또 그렇게까지 할 만큼 공산주의라는 체제가 완벽한 것인가 하는 데에도 그 대답은 찾을 수 없다. 차라리 공산주의 체제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그릇된 가치관과 그 당시의 사회에 만연했던 부패상이 공산주의라는 체제를 빌미로 하여 이러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위와 같은 사살과 학살이 이루어져 왔다. '이런 무수히 많은 인명피해를 수반하면서 공산주의가 이루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루어진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때 허탈해진다.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이것은 이미 그 체제의 부당성을 설명해 주고 있다. 공산주의 혁명이 시작되었던 러시아도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으며, 중국 또한 사회시장주의를 표방하며 대내외적으로 개방을 선도하고 있다.
단지, 북한만이 고립된 구조 속에 계속적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고집하고 있을 뿐이다. 계급의 평등을 도모한다는 목적아래 새로운 계급차별을 만들어가고, 국민들을 빈곤에 허덕이게 하는 공산주의 체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현존하는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내부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우리는 공산주의 체제를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노리고 있다. 북한의 목적은 한반도의 주체 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 북한은 공산정권 수립이후 지금까지 대남 적화통일전략이라는 기조를 변함없이 고수하면서 한국에 대한 적대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게 있어서 평화통일협상은 수차례의 경험에서 보듯이 한낱 명분적 구호와 통일전선전술 차원의 투쟁의 연장일 뿐이다.
지금 세계는 이념이 대립하는 시대를 지나 경제를 중심으로 무한경쟁의 시대에 들어섰다. 한나라의 경제가 다른 나라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국가간의 상호 의존성 및 상호 보완성이 높아지는 세계화의 흐름이 전 지구촌사회를 하나로 묶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여러가지 제약으로 국제사회의 새로운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통일된 한국은 냉혹한 국제사회의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고 더 큰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된 한반도를 위하여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정치적으로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경제적으로는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의 원리를 바탕으로 민족의 번영과 발전 그리고 민족 구성원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며, 동북아지역 경제권의 중심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많은 미래, 경제학자들은 21C 세계의 경제중심이 환태평양지대와 동북아지역이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고 통일한국은 동북아에서 한반도가 갖는 지리적 이점과 고도화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아시아 태평양시대의 경제 중심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전통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려 문화 선진국의 반열에 서야 할 것이다. 한편 국제적으로는 동북아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대결상태를 해소함으로써 동북아의 번영과 발전의 기반을 구축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통일한국이 단절되었던 동북아 교통의 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하여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공산혁명에 따른 학살과 사살을 되새겨 보며 북한에 대해서도 확실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북한의 목적이 대남 적화통일이라면 우리 또한 이에 걸맞은 안보의식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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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5.26
  • 저작시기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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