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종말론(게할더스보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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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바울의 종말론(게할더스보스) 요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장 - 바울 종말론의 구조

2장 - 종말론과 구원론의 상호작용

3장 - 바울 종말론의 종교적 윤리적 동기

4장 - 주의 “강림”과 그 전조들

5장 - 불법의 사람

6장 - 부활

7장 - 바울의 부활 교훈에 있어서 발전을 추정하는 견해에 대하여

8장 - 부활 - 변화

9장 - 부활의 범위

10장 - 바울에게 있어서의 천년왕국 문제

11장 - 최후의 심판

12장 - 영원한 상태

서평

본문내용

.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마이어가 주장한 그와 같은 은밀한 보충 이론에서 어느 정도의 독단적인 인상을 받는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고전 15:51의 가장 단순한 구문상 제기할 수 있는 또 다른 해석은 부정사ο의 위치를 바꾸어 해석하는 일이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즉 우리가 다 잠잘 것이라고 했을 때 이는 전부가 아니라 단지 일부만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마지막 날에 변화하리라고 했을 때 이것은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바울은 죽은 자나 산 자 모두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성령이 과연 부활한 자들로 하여금 여전히 앞에 놓여 있는 변화는 살아있는 자들과 공유하도록 하실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또한 “변화”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는 그 언어가 종종 총칭적으로 변화의 두 국면들을 지칭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감히 어떤 긍정적인 단언을 내릴 수가 없다.
9장 - 부활의 범위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부활의 범위”가 모든 죽은 자들이 마지막에 다시 부활할 것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이 마지막 이전에 죽게 될 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제한된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천년왕국의 문제와 조금은 관련이 있다. 즉 궁극적인 종말 이전 경과할 과거, 현재, 미래의 중간기에 속하는 모든 신자들의 부활에 대해서는 모든 종말론 학파마다 의견을 같이 한다.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부분적인 부활이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날 죽은 자들 모두가 다 부활할 것인가 하는 두 문제는 본질적으로 상호 모순적이지 않다.
부활함을 입은 자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자”,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부활한 것이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자들은 성령을 소유하지도 않고 성령에 의해 소유된 바 되지도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있어서 기독교인의 상태를 논의할 때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것과 성령에게 속했다는 것이 동일한 사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울이 신자들의 부활에 몰두되어 다른 편(즉 불신자들)의 부활에 대해서는 간과해 버린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그가 조직적인 완전성을 논리적으로 무시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그랬다는 것을 생각나게 해준다.
우리의 판단으로는 바울이 의식적으로 악한 자의 부활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회피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곧 “부활”용어의 사용 회피는 사도 바울이 예전에는 이 용어의 특별히 성령적인 요소들은 부인한 채 이 용어로써 선인과 악인들의 부활을 무분별하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는 잔존의 사상을 떨쳐버렸다는 원리의 증거로서 해석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분적인 부활이야말로 순전히 바울의 교리라는 사실을 옹호하는 주장은 이 주제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개념으로 믿어지는 사실에서 유추되어 왔다.
바울에게 있어 의인들의 부활뿐 아니라 악인들의 부활 모두를 포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유일한 명백한 증거를 바울이 펠릭스에게 행한 연설에서 찾을 수 있다. (행24:15)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는 율법과 선지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다고 선포하고 있다. 바울이 여기서 율법과 선지서를 주장한 것은 분명히 토라의 분명한 증거만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선지서의 주장은 전혀 염두에 두려고 하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불신앙에 대항하여 바리새인들과 같은 신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바울은 율법과 선지서에 근거한 이 신앙의 중요한 내용으로서 바울은 그의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언급한다. 이것은 또한 유대인들 역시 바라던 소망인 바,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여기서는 부활의 이중적 성격이 주장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강조를 소망적인 면, 즉 의인의 부활에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악한 자의 부활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는 바울이 불신자들이 부활 후에 있을 심판대 앞에 서 있다고 주장한 것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주장이 확정적이지 않은 까닭은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혼에게 내리는 심판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과 실제로 앞에서 보았듯이 유대 자료에 그렇게 나타나는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논의한 문제가 아직 철저히 해결이 되지 않는 한, 누구나 부활과 심판 모두 (부활의)몸을 입지 않은 상태의 악한 자들과 관계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적극적으로 생각건대, 확실히 바울에게는 이러한 사상을 시사하는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단순히 추상적인 가능성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심판에 관한 교리를 다룰 때 만나게 된다.
10장 - 바울에게 있어서의 천년왕국 문제
천년왕국 문제는 기독교 종말론의 구조에 있어서 아주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특히 전천년주의가 주로 문제되는 바, 이에 대해서 명확히 거부한다든지, 아주 동감적으로 시인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물론, 바울의 종말론만을 명확히 드러내려는 입장에서 보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천년왕국주의”란 말은 “일천”을 뜻하는 숫자 “킬리오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좀더 시사적인 명칭을 찾는다면 “전천년주의”란 말이 더 선호될 만하다. 그러나 “전천년주의”중에서 전접사 전이 무엇을 지칭하는가 하는 것이 분명치 않고, 라틴어 “millennium”역시 그 기간을 확정시키는 데 있어서 헬라어 “χιλιοι”보다 더 분명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용어는 덜 분명한 용어이다.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출발점은 “파루시아”에 있다. 여기서부터 천년이란 기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천년왕국론”이 파루시아에 뒤따르는 종말론적 미래를 서로 다른 두 개의 단계로 나누어, 그 하나는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또 하나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정통신학의 전통적 견해나 근자의 바울 해석에 의하면 종말론적 전망에 이러한 이원론이 있지 않다. 그것에 의하면 영원한 상태가 정확히 주의 재림에서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천년왕국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고 논의되는 구절들은 고린도 전서 15:23-28, 데살로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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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7.11
  • 저작시기2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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