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답사 후기
1) 답사 경로 및 활동
2) 다산 정약용 생가 답사 후 느낀점
Ⅱ.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
1) 정약용-인물 소개
2) 그의 정치, 경제적 개혁 사상과 그 의의
3) 주요 저서와 저서 내용
4) 정약용의 사상이 현대에 미친 영향
Ⅲ. 참고문헌
1) 답사 경로 및 활동
2) 다산 정약용 생가 답사 후 느낀점
Ⅱ.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
1) 정약용-인물 소개
2) 그의 정치, 경제적 개혁 사상과 그 의의
3) 주요 저서와 저서 내용
4) 정약용의 사상이 현대에 미친 영향
Ⅲ. 참고문헌
본문내용
방과 바로 연결되는 문들과 좁은 마루가 있는 면에 여(與)유(猶)당(堂) 이라고 써있는 것 같은데 워낙 약간 흐르는 듯한 글씨체라서 그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둘러보니 전에는 조선시대 양반 계층의 가옥을 이렇게 자세히 본 게 처음이어서 그런지 좀 생소했습니다. 그동안 본 것은 민가거나 궁이라서 다른 점이 눈에 많이 뜨였습니다. 하지만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기둥과 마루 등을 보면서 상당한 실재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좀 좁고 칸칸이 나누어져 있더군요. 문하고 창문은 또 엄청 많이 나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겨울엔 추울텐데라고 생각도 해봤고, 또 겹문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에도 겹문이 있었나 이 좁은 방에 웬 겹문이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생활하기에 상당히 비좁아 보였습니다.
마루라고 해야 할까 나무 바닥으로 된 널찍한 방이 있었는데 거기서 집안 일을 했나 봅니다. 귀퉁이마다 온돌용 화덕이 있어서 땔감이 충분했다면 따뜻했을 것 같았습니다. 밖에서 슬쩍 보면 상당히 사람이 산 듯한 집 한 채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이 살지 않아 좀 썰렁하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장독대는 안보였습니다.
다음은 생가 옆에 있는 사당에 갔는데 사당도 담에 둘러싸여 있었는데요, 정약용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었습니다. 최근에 한 듯한 좀 인공적인 분위기 나는 단청 색칠을 해놓아서 그런지 세월의 맛이 안 나는 사당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곳은 생가와 묘 그리고 사당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기념관과 문화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생가와 좀 떨어져 앞쪽에 있는 두 건물이었는데 흰 벽과 어두운 기와의 대조가 깨끗해 보이는 한국식 기와집처럼 지은 건물이었습니다.
그쪽으로 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언덕에 있는 나무와 곳곳에 나있는 대나무들이 상당히 정취가 있어 보였습니다. 밋밋한 평지에 덩그라니 생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참 풍경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언덕이 작지만 상당히 높아서 집의 배경으로 참 보기 좋았습니다.
일단 기념관안으로 들어가니 정약용이 살았던 곳의 지도와 그림들 그리고 그가 수원성 건축시 설계해서 썼던 거중기 모형이 있었습니다. 정약용이 있었던 강진의 다산초당 사진과 강진의 약도 마현 마을 능내리의 약도가 있었고, 정약용 선생의 그림이 한폭 걸려 있었습니다.
설명을 보니 마현 마을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로서 수상 무역의 요지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구석진 마을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당히 사람이 많이 다니는 붐비는 곳이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또 유배지인 강진의 약도와 가족이 그리울 때면 올라가서 바다를 보았다는 최근에 재건축한 천일각과 다산초당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정약용이 다산 초당에서 가르치면서 상당히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상당히 좋아했다는 걸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그래서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원성 건축때
그리고 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좀 좁고 칸칸이 나누어져 있더군요. 문하고 창문은 또 엄청 많이 나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겨울엔 추울텐데라고 생각도 해봤고, 또 겹문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에도 겹문이 있었나 이 좁은 방에 웬 겹문이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생활하기에 상당히 비좁아 보였습니다.
마루라고 해야 할까 나무 바닥으로 된 널찍한 방이 있었는데 거기서 집안 일을 했나 봅니다. 귀퉁이마다 온돌용 화덕이 있어서 땔감이 충분했다면 따뜻했을 것 같았습니다. 밖에서 슬쩍 보면 상당히 사람이 산 듯한 집 한 채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이 살지 않아 좀 썰렁하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장독대는 안보였습니다.
다음은 생가 옆에 있는 사당에 갔는데 사당도 담에 둘러싸여 있었는데요, 정약용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었습니다. 최근에 한 듯한 좀 인공적인 분위기 나는 단청 색칠을 해놓아서 그런지 세월의 맛이 안 나는 사당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곳은 생가와 묘 그리고 사당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기념관과 문화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생가와 좀 떨어져 앞쪽에 있는 두 건물이었는데 흰 벽과 어두운 기와의 대조가 깨끗해 보이는 한국식 기와집처럼 지은 건물이었습니다.
그쪽으로 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언덕에 있는 나무와 곳곳에 나있는 대나무들이 상당히 정취가 있어 보였습니다. 밋밋한 평지에 덩그라니 생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참 풍경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언덕이 작지만 상당히 높아서 집의 배경으로 참 보기 좋았습니다.
일단 기념관안으로 들어가니 정약용이 살았던 곳의 지도와 그림들 그리고 그가 수원성 건축시 설계해서 썼던 거중기 모형이 있었습니다. 정약용이 있었던 강진의 다산초당 사진과 강진의 약도 마현 마을 능내리의 약도가 있었고, 정약용 선생의 그림이 한폭 걸려 있었습니다.
설명을 보니 마현 마을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로서 수상 무역의 요지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구석진 마을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당히 사람이 많이 다니는 붐비는 곳이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또 유배지인 강진의 약도와 가족이 그리울 때면 올라가서 바다를 보았다는 최근에 재건축한 천일각과 다산초당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정약용이 다산 초당에서 가르치면서 상당히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상당히 좋아했다는 걸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그래서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원성 건축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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