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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훈민정음(한글) 역사적 의미, 훈민정음(한글) 배경, 훈민정음(한글) 중요성, 훈민정음(한글) 원리, 훈민정음(한글) 사성법, 훈민정음(한글) 태극사상기원설, 훈민정음(한글)과 한글정책, 훈민정음과 세종대왕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훈민정음(한글)의 역사적 의미

Ⅱ. 훈민정음(한글)의 배경

Ⅲ. 훈민정음(한글)의 중요성

Ⅳ. 훈민정음(한글)의 원리

Ⅴ. 훈민정음(한글)의 사성법

Ⅵ. 훈민정음(한글)의 태극사상기원설

Ⅶ. 훈민정음(한글)과 한글정책
1. 문화적인 방면
1) 「용비어천가」편찬
2)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월인석보」편찬
2. 정치적인 방면
3. 경제적인 방면
4. 운서 정리 방면

Ⅷ. 훈민정음(한글)과 세종대왕상

참고문헌

본문내용

암흑의 민족 문화사가 이어진 역사적 현실을 직관하면서 고유 문자인 ‘훈민정음’의 창안의 쪽을 택함은 세종 대왕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당연한 당위적인 선택이었다. 훈민정음의 머리말에는 그 기본 정신이 글자를 만든 까닭으로 잘 반영되어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말소리는 중국과 다르므로 중국 글자인 한자로는 우리말을 적을 수가 없다.”고 했다. 여기에서는 세종 대왕의 자주 정신을 읽을 수가 있다. 태종까지만 해도 명나라에 대한 사대사상과 모화사상이 지배하던 현실에서, 중국에 대하여 민족 자주 선언을 했다는 것은 정통성에 대한 혁명적 사상이라 하겠다.
둘째,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의사를 나타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배우기 쉬운 28자를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쉽게 배워서 날마다 편안하게 쓰게 하고자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는 세종 대왕의 위민 정책에 의한 민본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민본 정신은 귀천을 묻지 않고 과감한 두뇌 집단을 등용하여 집현전(1420, 궁중에 설치)을 연구와 토론과 결정의 자리로 움직였다. 세종 대왕 자신은 뛰어난 음성 청취 능력과 음운 이론에 달관한 언어학자이면서, 유능한 두뇌 집단의 협력을 얻어 세계에 유례없는 과학적인 글자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러한 민본 정신을 정인지의 서문(훈민정음 발문)에서 보면, “이제까지는 옥을 다스리는 이가 그 곡절을 통하지 못했는데, 이제 모든 사람이 송사에서 제 뜻을 펼 수 있다.”고 했다. 이 또한 대왕의 위민 사상을 대변한 것이다. 이러한 세종 대왕의 자주, 민본의 정신 아래, 1443년에는 글자를 다 만들었으나 더 다듬고 검정기간까지 거쳐서, 1446년 10월 9일(정통 11년 9월 상한을 양력으로 환산)에 반포했으니 그 막중한 역사적 사업의 신중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수적인 특권층과 사대사상에 젖은 이들의 반대는 극악에 달하였다. 그 중에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반대 상소는 이성을 잃은 것이었다. 그 요지를 두어 개만 들어 놓는다.
[1] 사대 모화사상에 어긋나는 일이다.
[2] 글자를 만들어 쓰는 것은 오랑캐가 되는 것이다.
세종 대왕은 언어학자로서, 중국의 운학 관계도 많은 연구를 했다. ‘홍무정운역훈’과 ‘동국정운’ 등은 신숙주, 성삼문 등 석학으로 하여금 연구 편찬케 한 것이나, 세종의 운학 이해의 힘이 뒷받침되어 얻어진 연구 결과이다.
Ⅳ. 훈민정음(한글)의 원리
훈민정음은 중국 성운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음절에 대한 개념차이가 있다. 즉, 중국 성운학의 음절은 2분법으로 초성 자음과 중종성의 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훈민정음의 음절은 3분법으로 초성중성종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훈민정음 창제당시 한국어의 음운과 음성에 대한 연구가 상당한 수준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훈민정음은 자음 17자, 모음 11자로 창제되었다. 자음은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소리 값이 가장 여린 기본자를 만들고, 소리의 거센 정도에 따라 획을 더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모음은 상호 대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원리를 이용하여, 천(天)지(地)인(人)을 형상화하여 기본자를 만들고, 기본자를 결합하여 모음을 만들되 상호 대립적으로 구성되도록 만들었다.
자음은 아음(牙音), 설음(舌音), 순음(脣音), 치음(齒音), 후음(喉音)으로 나누고, 각 음의 발음상태를 상형하여 만들었다. 아음은 혀의 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따서 ‘ㄱ’을 만들고, ㄱ보다 센 ‘ㅋ’을 만들었다. 설음은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따서 ‘ㄴ’을 만들고, 세기에 따라 획을 더해 ‘ㄷ’과 ‘ㅌ’을 만들었다. 순음은 입술의 모양을 본따 ‘ㅁ’을 만들고, ‘ㅂ’과 ‘ㅍ’을 만들었다. 치음은 아랫이의 모양을 본따 ‘ㅅ’을 만들고, ‘ㅈ’과 ‘ㅊ’을 만들었다. 후음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따 ‘ㅇ’을 만들고, ‘ㆆ’과 ‘ㅎ’을 만들었다. 자음 가운데 가획(加)의 원리로 만들지 않은 글자가 있는데, 아음의 ‘ㆁ’은 후음의 ‘ㅇ’과 발음이 비슷하여 ‘ㅇ’과 비슷하게 만들었고, 설음의 ‘ㄹ’과 치음의 ‘ㅿ’은 설음의 기본자 ‘ㄴ’과 치음의 기본자 ‘ㅅ’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가획의 원리로 만든 글자는 아니다. 이렇게 하여 자음 17자가 만들어졌다.
모음은 천(天)지(地)인(人)을 형상화하여 기본자 ‘’, ‘ㅡ’, ‘ㅣ’를 만들고, 와 ㅡ가 결합하여 ‘ㅗ’, ㅣ와 가 결합하여 ‘ㅏ’, ㅡ와 가 결합하여 ‘ㅜ’, 와 ㅣ가 결합하여 ‘ㅓ’를 만들었다. 그리고, ㅣ에서 시작하여 각각의 초출자(初出字)와 결합하여 재출자(再出字)를 만들었는데, ㅣ로 시작한 ㅗ는 ㅛ, ㅣ로 시작한 ㅏ는 ㅑ, ㅣ로 시작한 ㅜ는 ㅠ, ㅣ로 시작한 ㅓ는 ㅕ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모음 11자가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모음은 상호 대립적으로 존재하는데, ‘ㅗㅏㅛㅑ’는 하늘()과 같은 종류로 합(闔) 즉, 원순모음이고, ‘ㅜㅓㅠㅕ’는 땅(ㅡ)과 같은 종류로 벽(闢) 즉, 비원순모음이다. ‘ㅗㅏㅛㅑ’의 동그라미()가 ㅡ의 위와 ㅣ의 밖(우측)에 놓인 것은 하늘()에서 생겨나서 양(陽)이 되기 때문이고, 이들 모음은 양성모음이 된다. ‘ㅜㅓㅠㅕ’의 동그라미()가 ㅡ의 아래와 ㅣ의 안(좌측)에 놓인 것은 땅(ㅡ)에서 생겨나서 음(陰)이 되기 때문이고, 이들 모음은 음성모음이 된다.
Ⅴ. 훈민정음(한글)의 사성법
훈민정음 合字解에 諺語(한글)에 平上去入은 如활爲弓而其聲이 平이요, :돌爲石而其聲이 上이요,갈爲刀而其聲이 去요, 붇爲筆而其聲이 入之類니라.
【우리말의 평, 상, 거, 입성은 가령 ‘활’은 궁(弓)이 되므로 그 소리가 평성이요 ‘:돌’은 석(石)이 되므로 그 소리가 상성이요 ‘갈’은 도(刀)가 되므로 그 소리가 거성이요 ‘붇’은 필(筆)이 되므로 그 소리가 입성이 되는 유와 같다】 고 하였으니 활, 돌, 갈, 붇을 반복하면 우리말의 평, 상, 거, 입성을 쉬이 짐작 될 수 있다.
※갈 …… 칼(刀, 劍). 붇 …… 붓(筆)
凡字之左에 加一點이면 爲去聲하고 二點이면 爲上聲하고 無點이면 爲平聲이니라 而文(漢文)之入聲은與去聲으로 相似나 諺(국문)之入聲은 無定하야 或似平聲하니 如긷爲柱요 녑爲脅이요 或似上聲하니 如:낟爲穀이요 :깁爲繒이요 或似去聲하니 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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