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체육 역사 및 철학 (근대사 체육, 근대 스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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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대 체육 역사 및 철학 (근대사 체육, 근대 스퐃)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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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운동가를 군자라고 한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처럼 근대적 스포츠맨 정신을 우리의 전통사상과 접합하려는 노력은 운동경기에서 스포츠맨 정신을 강조하여 일제에 의해 왜곡된 근대 문화를 정상적으로 수용하려 한 것임과 동시에, 서구적 가치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에 알맞게 수용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당시 운동계의 도덕과 정신이 결핍해진 원일을 교육자들이 운동경기를 교육의 한 방식으로 간주하지 않고 청년들의 일종의 발열수단으로 간주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하고, 운동정신으로서 노동 실행의 정신, 실력, 자신, 용감, 정직을 들고 있다.
3) 여성체육의 장려
이 시기 체육사상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여성들의 체육활동을 적극 권장한 것을 들 수 있다.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체육은 민족의 체력을 개선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의 체력이 모성의 체력으로서 중요시 되고 있었다. 즉, 국민의 체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체력을 좋게 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 운동선수는 조선 민족 건강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었다. 민족적 보건을 말하는 동시에 모성의 체육을 역설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여성의 체육은 우리 민족 체력의 향상과 직결된 문제였다.
여성체육에 대한 강조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라는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성을 사회적으로 해방시켜 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적이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유교사회의 여성 억압을 과감히 부정하고 여성과 남성을 평등한 관계로 설정한 것이고, 이러한 관계 설정은 우리나라 체육발달과정에서 가장 시급하게 성취해야 할 과제였기 때문이다. 모성, 즉 여성의 체력도 민족이 진전하는 것과 동일하게 발전하여야 된다는 필연성을 지적한 것이다.
4) 체육학의 성립
구한말의 체육사상은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서가 아니라,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서 주로 교육학이나 위생학의 한 갈래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3.1 운동 이후 체육학은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면서 전개되었고, 교육학이나 위생학을 체육학의 보조 학문으로 이용했다.
체육의 효과가 구체적으로 주의력 배양, 강건한 기상의 함양, 자신력의 배양, 기민하고 정확한 판단력의 양성, 인내력의 양성, 단결정신의 함양, 상호부조 신의 배양, 책임과 의무 관념의 양성에 있다고 했다. 이를 제대로 성취하가 위해서는 운동경기가 선수위주, 기록 위주에서 벗어나 일반인의 체력 향상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체육의 소극적 해석에 얽매여 피교육자의 본성과 흥미를 돌보지 않는 체육을 체조교사 위주의 체조교육이라고 비판하면서, 체육에 대한 적극적 해석을 시도해야 하며 체육에 관한 논문도 많이 나와야 체육이 발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은 체육을 독자적인 학문으로 정착시키고자 했던 노력의 소산이었다.
3. 민족주의적 체육단체의 결성과 활동
1) 조선체육회
- 결성
1920년 6월 16일, 고려구락부를 토대로 하여 고원훈, 이동식, 장두현 외 47인이 명월관 지점인 별유천지에서 발기인회 개최 → 10여 인의 창립위원 선출, 취지서와 규칙서 제정
1920년 6월 28일, 조선체육회 창립위원회 개최
1920년 7월 13일, 중앙예배당에서 발기인 70여명이 모여 창립총회 개최, 발족
- 창립 목적 : 조선사회의 개개의 운동단체를 후원하고 장려하여 조선인의 생명을 원숙창달케 하는 것
- 임원 : 초대 회장 장두현, 이사장 고원훈, 이사 장덕수 외 7명, 평의원장 임경재, 평의원 19명, 회계감독 김규면 및 김욱, 운동부장 현흥운 외 부원 11명
- 사업
① 체육에 관한 조사 및 선전
② 체육에 관한 도서 발행
③ 체육에 관한 각종 경기대회 주최 및 후원
④ 기타 체육회의 목적에 합당한 사업 등
※ 조선체육회 주최 경기대회 :
1. 전조선야구대회(1920∼33), 2. 전조선정구대회(1921∼33)
3. 전조선축구대회(1921∼33), 4. 전조선육상경기대회(1924∼33)
5. 전조선빙상경기선수권대회(1925∼36), 6. 전조선씨름대회(1927∼34)
7. 전조선수상경기대회(1930∼35), 8. 전조선역기대회(1930∼34)
9. 전조선농구선수권대회(1931∼37)
10. 전조선아마추어권투선수권대회(1931, 1933)
11. 풀 마라톤대회(1933∼36), 12. 전조선종합경기대회(1934∼37)
※ 운동경기 연구 : 陸上競技規則及附錄(1924)
2) 관서체육회
- 1924년 3월 16일 평양 동아일보사 지국에서 창립
- 실행부서(1934년 현재) : 축구부, 빙상부, 야구부, 수영과 일광욕부, 농구부, 정구부, 배구부, 탁구부, 육상부
- 활동(1934년 현재) : 전조선축구대회(1월), 전조선씨름대회(6월), 전조선수상경기대회(7월), 서조선야구대회(8월), 관서체육회 체육대회(9월), 전평양농구연맹전(10월), 전조선탁구대회(11월)
- 축구통제령(1934. 1. 3) 반대 : 회장 조만식, 민간단체의 활동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비판, 이에 대한 대책 강구 및 전달 → 조선총독부 보류
3) 조선체육연구회
- 1931년 6월 22일, 장권, 이경석, 이길용, 이병삼 등에 의해 ‘체육의 연구 지도’를 목적으로 창립
- 주요 사업 :
① 체육에 관한 학술연구
② 체육에 관한 역사적 연구
③ 조선 고유의 체육에 관한 연구
④ 체육원리 및 실제에 대한 연구
⑤ 운동생리, 위생 및 해부에 관한 연구
⑥ 만중에게 적절한 체육운동의 연구
⑦ 체육에 관한 통계조사
⑧ 체육에 관한 도서, 잡지 간행
⑨ 체육에 관한 전람회, 강연회, 강습회 및 체육대회 개최
※ 이원용이 개인 차원에서 체육계의 연구, 지도, 보도 등을 목적으로 ‘조선체육계(朝鮮體育界)’ 발행(1933. 7)
※ 1919년부터 1937년까지 조선인, 일본인 단체 포함 약 160개 단체 결성(조선총독부 등록)
4) YMCA의 체육활동
- 각종 스포츠의 도입 및 보급 : 탁구, 권투, 씨름, 캠프, 수영
- YMCA농구단의 원정시합 : 1920년 3월(2승3패), 1923년 1월(5승 4패), 1927년 4월(6승 2패), 1929년 4월(2승 2패), 1932년 4월(5승 4
  • 가격3,000
  • 페이지수25페이지
  • 등록일2010.11.30
  • 저작시기2010.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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