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를 중심으로 본 북한의 외교정책 결정요인 - 북한은 왜 핵을 가지고자 하는가?
본 자료는 9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해당 자료는 9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9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북핵 위기를 중심으로 본 북한의 외교정책 결정요인 - 북한은 왜 핵을 가지고자 하는가?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1> 주제 선택 이유와 목적
<2> 북핵위기 전개과정
1> 1차 북핵위기
2> 2차 북핵위기

2. 본론

① 대외적 요인(국제체계차원에서의 변수)

<1> 안보위협 극소화
<2> 대미협상카드로서의 핵카드 활용

② 대내적 요인

<1> 사회차원의 변수
<2> 정부차원의 변수
<3> 역할차원의 변수
<4> 개인차원의 변수

3. 결론

<1> 전체 정리
<2> 북 핵 문제에 관한 6자 회담국(한, 일, 중, 러)의 입장
<3> 오바마 이후 한반도

4. 부록
비핵개방 3000의 문제점 그리고 향후과제

본문내용

잠재적인 후계자라며 김 위원장의 맏아들인 김정남과 특별히 가깝다고 말했다.
김 계 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교관)
북핵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합의문을 타결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부터 6자회담과 핵문제, 대미. 대일 대서방 외교 등 중요한 정책들을 능숙하게 처리하였다. 북미 전략적 관계는 북한에 도움이 되고 지역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 수립을 희망하고 있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강 석 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
1994년 강석주 제1부부장과 갈루치 차관보과 제네바북미기본합의문에 사인하고 있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외교부문의 측근이다.
강석주 제1 부상은 지난 94년 제네바 핵 합의를 이끌어낸 뒤 대미 외교의 핵심 업무를 맡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 지금까지 북한 외교계의 최장수 측근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강석주가 이처럼 오래 동안 현직을 유지해 오고 있는 이유는 1980년대 후반부터 가시화된 북한의 대미, 대서방 외교와 무관치 않다.
김 영 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했으며 1956년 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서기장과 1962년 외무성 부상을 역임한 외교통이다.
1991년 북한 정부대표 단장으로 UN총회에 참가하는등 대
외활동에 자주 얼굴을 비친 인물이다. 꼼꼼하고 기억력이 비상한 인물로 알려지고,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기본노선
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원칙론자다다.
1995년 “북한이 한반도의 통일을 책임지고 해낼 것이며
동시에 프랑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외국과의 경제협력관계도 증진시키기를 희망한다“ 고 발언한 바 있다.
1980년대에는 제3세계권 국가들과 협력관계강화에 힘썼으며 사회주의국가 및 비동맹국가들에 대한 적극적 방문외교를 수행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위원장직은 북한 헌법상 대외적인 일을 수행하는 국가원수이다. 지도간부 서열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다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철해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총국장, 인민군 대장)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루마니아에서 유학했다. 1995년 대 장으로 진급하여 1996년 1월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조직부국 장에 임명됐다. 1995년 군사대표단장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6.25 당시 최고사령부 직속 호위군관으로 근무한 사실이 있 다. 조용한 성격으로 김정일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기사> 김정일 위원장 대외활동 수행 1위는 현철해
올 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외행사 때 수행을 가장 많이 한 북측 인사는 현철해 인민무력부 상무부국장으로 나타났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언론에 보도된 김 위원장의 대외 활동은 모두 75회였다. 이 가운데 군 관련 행사는 42회, 경제 관련 19회, 대외 관계 5회, 기타 9회 등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대외 행사 때 김 위원장을 수행한 인사는 모두 28명으로 이중 현철해 상무부국장이 32회로 가장 많았다. 대외활동 수행은 김 위원장의 신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권력 서열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인민군 차수)
만주비행학교와 소련비행학교 졸업. 공군조종사 출신으로 공군 사령관을 지냈다. 업무추진력이 뛰어나고 급한 성격에 직선적 이다. 청렴결백과 관료주의적인 성향으로 공군에서는 호랑이로 통한다.
1993년 페리 미 국방장관의 ‘영변폭격\' 발언이 나오자, 삼지연 비행장에서 미그기 조종사들과 함께 결사전을 선포했다. 당시 그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폭탄을 장착하고 미국 7함대 에 옥쇄하자”며 대대적인 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현 북한 군 부 실세다.
3. 결론
가. 정리
북한의 핵은 대외적으로, 탈냉전이후 급격히 화해국면으로 들어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간의 변화된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적 고립과, 체제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내적으로는 북한의 1970년 후반부터 급격히 악화된 경제난 그 중에서도 에너지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외교정책의 주요결정요인으로는 주체사상의 고안자인 김정일을 들 수 있으며 당과 군부가 실질적인 외교정책결정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즉, 당과 군부, 주체사상이라고 하는 북한의 독자적인 색깔을 지닌 사상은 외교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6자회담국(한, 일, 중, 러) 의 북핵문제에 대한 반응
① 한국
비핵개방 3000을 통한 북 핵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비핵화를 전제로 하고 비핵화가 이루어졌을 경우 북한 국민소득 3,000달러를 달성해 주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대북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다.
② 일본
납치문제가 양보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북핵 협상을 우려하고 있으며 6자회담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북핵과 미사일은 기본적으로 일본안보와 직결되어있는 문제이며 기본적으로 일본이 자신들의 가장 큰 우방이라고 생각하는 미국과 북핵문제를 통한 마찰을 통해 관계를 악화시킬 위험성은 적다고 보여지므로 전체적인 틀을 깨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③ 중국
중국은 6자회담국의 의장국이자, 미국과 북한의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북핵문제해결을 통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가?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 안정화이다.
동북아 지역에 대해 안정적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반도 안정화는 중국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으며, 북한체제에 대한 불안요인이 가중화될 경우, 혹은 북한붕괴의 경우 북한에서 많은 인구가 중국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중국은 큰 혼란을 떠안게 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테러 지정국 해제에 있어 국방전략연구소 주최하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한 중국측근의 시나리오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은 흥미롭다.
그 내용은 북한위기 상황발생 경우 중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즉, 한국이나 북한이 전쟁 상황이 발표되면 중국이 개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미북 협상이 중간에 결렬

키워드

  • 가격3,000
  • 페이지수27페이지
  • 등록일2011.03.28
  • 저작시기201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6075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