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문학교육의 의미
Ⅲ. 문학교육의 예술성
Ⅳ. 문학교육의 목적
Ⅴ. 문학교육의 소통
Ⅵ. 문학교육과 비교문학
Ⅶ. 문학교육과 가치관중심 문학교육
Ⅷ. 문학교육의 방법
Ⅸ.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Ⅱ. 문학교육의 의미
Ⅲ. 문학교육의 예술성
Ⅳ. 문학교육의 목적
Ⅴ. 문학교육의 소통
Ⅵ. 문학교육과 비교문학
Ⅶ. 문학교육과 가치관중심 문학교육
Ⅷ. 문학교육의 방법
Ⅸ. 결론 및 제언
참고문헌
본문내용
상으로 문학을 이끌어 들일 때라야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점이다. 문학이 매개항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에서, 앞에서 제시한 인간상이 모색될 수 있는가하는 물음은 문학교육의 목표에 조회될 때라야 그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Ⅱ. 문학교육의 의미
문학 교육 연구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를 해명하는 데에 무게 중심이 놓여야 한다. 그리고 이 요건들은 교육이 실천적으로 진행되는 모든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는 모든 국면에는 교육의 이념 즉 이데올로기가 알게 모르게 깊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라는 내용 영역에서는 교육의 체계를 이루는 제도와 그 체계를 지탱하는 교육 정책에 깊이 작용하고 있으며, 어떻게의 방법적 측면에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구성원들의 관계와 교육 매체(텍스트나 여타의 교육 vehicle)의 선정에 작용한다. 또한 왜라는 문제는 교육의 가치와 효용성을 결정하는 근본 문제로, 교육의 포괄적인 목표가 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교육의 이념에서 자유스러울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라는 방법의 측면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내용이든지 교육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그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과 목표가 설정되더라도 방법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면 예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즉 문학 작품의 감상(이해, 분석, 해석)의 다양한 방법 중에서 어떤 관점을 택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이런 문학 작품 감상 방법의 다양성은 교육과 연구의 무정부주의로 해석되기도 했고, 그런 혐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후기 산업 사회의 다원적 사고와 맞물려서 이런 혐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여러 방법론들 속에는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 감상에 작용하는 작가 ─ 텍스트 ─ 독자라는 의사소통 과정의 틀이 교사 ─ 텍스트 ─ 학생이라는 문학 교육의 틀로 변이되어 절대적인 역할을 하면서 깊이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교사는 이 사이에 작용하는 제도적 장치이자 권위적인 존재로 작용한다. 아무리 자율 학습을 강조하더라도 교사의 자리와 그 역할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학생은 이런 교사의 가르침(지식)을 수용적용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본다면 학습자가 문학 작품을 수용하는 과정에는 교사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문학 작품을 학습하고 수용하는 과정에는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학 연구 방법론이라는 지식 체계 또는 문학 이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학습에 작용하는 여러 요인들 중에서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능력을 구비한 자는 교사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은 아직 그런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초보적이고 인상적인 분석 능력밖에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을 가진 교사와 이런 교사의 지배를 받는 그렇지 못한 학생과의 관계는 일방통행이 손쉽게 선택된다. 그러나 교육은 일방통행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올바른 교육은 학습의 과정을 통하여 학생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학생 스스로 작품을 분석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적용 능력, 창의성, 표현력을 증진시키고 열어주어야 한다.
또한 문학 교육은 문학 작품을 매개로 하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 즉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요구된다. 아울러 정확한 분석을 기초로 한 의미화 작업이 요구된다. 이에 비하여 그 동안의 문학 수업은 문학 작품의 분석 자체나 편향된 분석 시각의 전달에 머물렀다. 그러나 바람직한 문학 수업은 텍스트라는 교육의 내용(대상)을 분석하는 외에도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인 의미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때 의미화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내면화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Ⅲ. 문학교육의 예술성
문학에 대한 연구나 문학교육에 대한 논의가 복잡성을 띠는 원인은 문학의 속성에 있다. 문학은 예술의 영역에 든다고 설명한다. 문학이 예술에 든다면, 예술이라는 것의 기본 조건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문학이 예술로서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이는 다른 예술과 어떻게 다르고, 그러한 대비를 통해 문학의 속성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문학교육은 문학의 이러한 속성을 바탕으로 해서 모색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예술이라고 하면 음악이나 그림 조각, 무용 등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어느 찻집에서 작곡자도 알 수 없고 누가 지휘하는 어느 교향악단의 연주인지도 알 수 없지만 한 소절의 협주곡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안히 가라앉거나 즐거움이 샘솟는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는 어떤 그림을 보면서 튼튼한 구도와 현란한 색채에 놀라워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무용수의 손동작이나 몸놀림에 경탄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들 예술은 감상자들에게 직접적인 즐거움을 준다. 여기서 말하는 직접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수용되는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한 점에서 감각적 수용이 예술의 일차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나 사상은 일차적인 문제로 부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일상생활에서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예술가는 일반적으로 생활의 도덕이나 윤리를 위반하는 경우라도 너그럽게 넘어가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생활의 기본 능력과도 거리가 있는 것처럼 접어 두기도 한다. 어디가지가 실용적인가 하는 데는 정확히 갈라보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음악을 들으면서 답답함을 푸는 것도 실용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림을 가지고 바람막이를 한다든지 도자기를 가지고 술단지를 한다든지 하는 실용성을 뜻한다. 물론 고려자기 병에 든 술을 이조백자 잔에다 따라 마시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물건의 기본 용도나 그 용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실용성 중심으로 정향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학의 경우는 형편이 다르다. 문학에서 직접적인 감각 차원에서 수용되는 것은 백지 위에 활자로 인쇄된 글자들이다. 물론 아폴리네르가 말(le cheval)이라는 시에서 앞파
Ⅱ. 문학교육의 의미
문학 교육 연구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를 해명하는 데에 무게 중심이 놓여야 한다. 그리고 이 요건들은 교육이 실천적으로 진행되는 모든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는 모든 국면에는 교육의 이념 즉 이데올로기가 알게 모르게 깊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라는 내용 영역에서는 교육의 체계를 이루는 제도와 그 체계를 지탱하는 교육 정책에 깊이 작용하고 있으며, 어떻게의 방법적 측면에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구성원들의 관계와 교육 매체(텍스트나 여타의 교육 vehicle)의 선정에 작용한다. 또한 왜라는 문제는 교육의 가치와 효용성을 결정하는 근본 문제로, 교육의 포괄적인 목표가 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교육의 이념에서 자유스러울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라는 방법의 측면일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내용이든지 교육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그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과 목표가 설정되더라도 방법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면 예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즉 문학 작품의 감상(이해, 분석, 해석)의 다양한 방법 중에서 어떤 관점을 택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이런 문학 작품 감상 방법의 다양성은 교육과 연구의 무정부주의로 해석되기도 했고, 그런 혐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후기 산업 사회의 다원적 사고와 맞물려서 이런 혐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여러 방법론들 속에는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 감상에 작용하는 작가 ─ 텍스트 ─ 독자라는 의사소통 과정의 틀이 교사 ─ 텍스트 ─ 학생이라는 문학 교육의 틀로 변이되어 절대적인 역할을 하면서 깊이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교사는 이 사이에 작용하는 제도적 장치이자 권위적인 존재로 작용한다. 아무리 자율 학습을 강조하더라도 교사의 자리와 그 역할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학생은 이런 교사의 가르침(지식)을 수용적용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본다면 학습자가 문학 작품을 수용하는 과정에는 교사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문학 작품을 학습하고 수용하는 과정에는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학 연구 방법론이라는 지식 체계 또는 문학 이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학습에 작용하는 여러 요인들 중에서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능력을 구비한 자는 교사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은 아직 그런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초보적이고 인상적인 분석 능력밖에는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을 가진 교사와 이런 교사의 지배를 받는 그렇지 못한 학생과의 관계는 일방통행이 손쉽게 선택된다. 그러나 교육은 일방통행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올바른 교육은 학습의 과정을 통하여 학생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학생 스스로 작품을 분석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적용 능력, 창의성, 표현력을 증진시키고 열어주어야 한다.
또한 문학 교육은 문학 작품을 매개로 하는 교육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 즉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요구된다. 아울러 정확한 분석을 기초로 한 의미화 작업이 요구된다. 이에 비하여 그 동안의 문학 수업은 문학 작품의 분석 자체나 편향된 분석 시각의 전달에 머물렀다. 그러나 바람직한 문학 수업은 텍스트라는 교육의 내용(대상)을 분석하는 외에도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인 의미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때 의미화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내면화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Ⅲ. 문학교육의 예술성
문학에 대한 연구나 문학교육에 대한 논의가 복잡성을 띠는 원인은 문학의 속성에 있다. 문학은 예술의 영역에 든다고 설명한다. 문학이 예술에 든다면, 예술이라는 것의 기본 조건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문학이 예술로서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이는 다른 예술과 어떻게 다르고, 그러한 대비를 통해 문학의 속성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문학교육은 문학의 이러한 속성을 바탕으로 해서 모색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예술이라고 하면 음악이나 그림 조각, 무용 등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어느 찻집에서 작곡자도 알 수 없고 누가 지휘하는 어느 교향악단의 연주인지도 알 수 없지만 한 소절의 협주곡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안히 가라앉거나 즐거움이 샘솟는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는 어떤 그림을 보면서 튼튼한 구도와 현란한 색채에 놀라워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무용수의 손동작이나 몸놀림에 경탄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들 예술은 감상자들에게 직접적인 즐거움을 준다. 여기서 말하는 직접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수용되는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한 점에서 감각적 수용이 예술의 일차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나 사상은 일차적인 문제로 부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일상생활에서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예술가는 일반적으로 생활의 도덕이나 윤리를 위반하는 경우라도 너그럽게 넘어가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생활의 기본 능력과도 거리가 있는 것처럼 접어 두기도 한다. 어디가지가 실용적인가 하는 데는 정확히 갈라보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음악을 들으면서 답답함을 푸는 것도 실용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림을 가지고 바람막이를 한다든지 도자기를 가지고 술단지를 한다든지 하는 실용성을 뜻한다. 물론 고려자기 병에 든 술을 이조백자 잔에다 따라 마시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물건의 기본 용도나 그 용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실용성 중심으로 정향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학의 경우는 형편이 다르다. 문학에서 직접적인 감각 차원에서 수용되는 것은 백지 위에 활자로 인쇄된 글자들이다. 물론 아폴리네르가 말(le cheval)이라는 시에서 앞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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