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이스라엘의 상징
Ⅱ. 이스라엘의 종교
Ⅲ. 이스라엘의 7대절기
1. 유월절
1) 일반지식(레23:5)
2) 신약적 해석
2. 무교절
1) 일반지식
2) 신약적 해석
3. 초실절
1) 일반지식(레23:10-11)
2) 신약적 해석
4. 오순절(칠칠절, 맥추절)
1) 일반지식(레 23:6)
2) 신약적 해석
5. 나팔절
1) 일반지식
2) 신약적 해석
6. 속죄일
1) 일반지식
2) 신약적 해석
7. 초막절(수장절, 장막절)
1) 일반지식
2) 신약적 해석
Ⅳ. 이스라엘의 야드바셈(YAD VASHEM)
1. 건립목적
2. 건립연도
3. 관리주체
4. 감독 및 주관부처
5. 운용방법
6. 위치
7. 주요시설
8. 주요활동
Ⅴ. 이스라엘의 영재교육정책
1. 교육예산
2. 영재교육
1) 시기
2) 방법과 수준
3) 내용
3. 영재판별 시험
4. 영재교육기관 프로그램
1) 할렌스쿨
2) 오펙스쿨
3) 어린이 창의성과 우수성 계발 연구소
4) 이스라엘 예술과학 아카데미
Ⅵ. 이스라엘의 육아교육법
Ⅶ. 이스라엘의 종교분쟁
참고문헌
Ⅱ. 이스라엘의 종교
Ⅲ. 이스라엘의 7대절기
1. 유월절
1) 일반지식(레23:5)
2) 신약적 해석
2. 무교절
1) 일반지식
2) 신약적 해석
3. 초실절
1) 일반지식(레23:10-11)
2) 신약적 해석
4. 오순절(칠칠절, 맥추절)
1) 일반지식(레 23:6)
2) 신약적 해석
5. 나팔절
1) 일반지식
2) 신약적 해석
6. 속죄일
1) 일반지식
2) 신약적 해석
7. 초막절(수장절, 장막절)
1) 일반지식
2) 신약적 해석
Ⅳ. 이스라엘의 야드바셈(YAD VASHEM)
1. 건립목적
2. 건립연도
3. 관리주체
4. 감독 및 주관부처
5. 운용방법
6. 위치
7. 주요시설
8. 주요활동
Ⅴ. 이스라엘의 영재교육정책
1. 교육예산
2. 영재교육
1) 시기
2) 방법과 수준
3) 내용
3. 영재판별 시험
4. 영재교육기관 프로그램
1) 할렌스쿨
2) 오펙스쿨
3) 어린이 창의성과 우수성 계발 연구소
4) 이스라엘 예술과학 아카데미
Ⅵ. 이스라엘의 육아교육법
Ⅶ. 이스라엘의 종교분쟁
참고문헌
본문내용
타인은 현재 이스라엘 영토인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겠다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알 아크사 사원 등 이슬람 성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유대인의 정신적 고향이라며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로 버티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무려 20일간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9월 28일 이스라엘의 리쿠르드당 지도자 아리엘 샤론이 알 아크사 사원이 있는 성전 언덕을 방문하면서였다. 알 아크사 사원은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교의 성전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기네 성전을 이스라엘 지도자가 찾자 화가 났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은 요즘 독립 국가를 세우려고 준비 중인데, 수도를 동예루살렘으로 정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스라엘은 절대 반대였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 지도자가 동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사원을 찾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항의의 뜻으로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던 유대인들에게 돌을 던졌다.
이스라엘은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을 힘으로 진압했다. 팔레스타인도 맞서 싸웠다. 양측은 서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700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피해를 입었다. 12세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 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장면이 전 세계에 TV에 방영된 것도 이무렵이다. 분노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요르단 강 서쪽 네불루스에 있는 유대교의 성지인 요셉의 묘를 파괴하고 유대 경전을 찢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즉각 이슬람교 시설에 대한 보복을 시작했다. 예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48시간 후 강력 대응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전쟁의 기운이 점점 거세지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세계 여론을 등에 업고 지난 16일, 이번 사태를 끝내기 위한 6자 회의가 이집트의 휴양 도시인 샤름 알 셰이흐에서 열렸다.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비롯, 클린턴 미국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오랜 진통 끝에 1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그 동안의 유혈 사태를 끝내기로 합의했다고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발표문에서 평화로 가는 길이 멀고 어렵지만 그래도 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핵심쟁점은 동예루살렘 관할권 문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양도하는 영토의 범위와 시기 및 난민귀환 문제 등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 와이협정 등을 체결하여 양측의 평화협상에 진척을 보인바 있으나 위의 3가지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동예루살렘 관할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역사 종교적 이해가 얽힌 핵심쟁점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동예루살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 때 이스라엘에 의해 합병된 이후 관할권 문제를 두고 지속적인 다툼을 보여 왔다. 국제사회에서도 동 지역을 이스라엘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동예루살렘에는 이슬람의 `성역\'과 이스라엘인의 `여호아성전\'이 위치한다. 여호아성전은 기원전 957년 솔로몬왕에 의해 최초로 건립된 이래 기원전 515년 제2차 성전이 지어졌으나 로마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 제2성전의 서쪽 담, 일명 `통곡의 벽\'만 존재한다. 여호아성전은 유태인 질곡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 성전을 짓고 여호아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스라엘인들은 번창하였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하고 죄를 범할 때 성전은 무너지고 이방 민족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 따라서 유태인은 성전을 그들의 번영과 연관시켜 생각하고 중요시한다. 여호아성전 인근에 위치한 이슬람성역은 알 아크사 사원과 바위돔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슬람 제3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기를 원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관할권 이양을 극히 꺼려왔다. 바라크 전 수상은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서 여호아성전 지역을 제외한 동예루살렘 일부분에 대한 통치권 이양을 제시한바 있으나 아라파트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협상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인정하나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하였으나 역시 결렬되었다. 팔레스타인 난민귀환권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양도하는 영토의 범위 및 시기와 맞물려 있다. 팔레스타인은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 1948년 이전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영토를 사실상 포기하였다. 이에 대한 대가로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자치구역을 확보하게 되었으나 1948년 UN결의에 의해 팔레스타인에 할당된 영토의 70%수준에 머무른다. 이후 1998년 10월에 체결한 와이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1967년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을 단계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이양해야 하나 예정대로 행하지 않고 오히려 유태인 정착촌을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은 현재까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80%를 점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로부터 이양받은 지역에 약 370만 명으로 추정되는 난민을 귀환시켜 독립국가 건설를 원한다. 상당한 인구를 가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요르단강 서안에 건설될 경우 이스라엘은 바로 턱 밑에 언제든지 이스라엘 항전을 선포할 수 있는 국가단위 테러단체를 두는 셈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귀환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는 동예루살렘의 관할권 상당부분을 팔레스타인에게 양보하는 대신 팔레스타인 난민귀환을 포기하는 내용의 미국 중재안에 합의한 것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참고문헌
서인석 - 이스라엘 지혜문학의 토착화 과정, 서울 : 기독교 사상
존 브라이트 - 이스라엘 역사,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4
제임스 F. 루이스 - 세계의 종교와 관습 RELIGIOUS TRADITIONS OF THE WORLD, 은성, 1995
최종진 - 구약성서개론, 소망사 출
한정국 - 이스라엘의 선교사 소명, 미전도종족 선교의 기초 강의안,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2000
G. Fohrer, 방석종 역 - 이스라엘 역사, 서울 : 성광문화사, 1986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무려 20일간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9월 28일 이스라엘의 리쿠르드당 지도자 아리엘 샤론이 알 아크사 사원이 있는 성전 언덕을 방문하면서였다. 알 아크사 사원은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교의 성전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기네 성전을 이스라엘 지도자가 찾자 화가 났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은 요즘 독립 국가를 세우려고 준비 중인데, 수도를 동예루살렘으로 정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스라엘은 절대 반대였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 지도자가 동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사원을 찾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항의의 뜻으로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던 유대인들에게 돌을 던졌다.
이스라엘은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을 힘으로 진압했다. 팔레스타인도 맞서 싸웠다. 양측은 서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700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피해를 입었다. 12세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 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장면이 전 세계에 TV에 방영된 것도 이무렵이다. 분노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요르단 강 서쪽 네불루스에 있는 유대교의 성지인 요셉의 묘를 파괴하고 유대 경전을 찢었다. 이스라엘인들은 즉각 이슬람교 시설에 대한 보복을 시작했다. 예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48시간 후 강력 대응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전쟁의 기운이 점점 거세지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세계 여론을 등에 업고 지난 16일, 이번 사태를 끝내기 위한 6자 회의가 이집트의 휴양 도시인 샤름 알 셰이흐에서 열렸다.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비롯, 클린턴 미국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오랜 진통 끝에 1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그 동안의 유혈 사태를 끝내기로 합의했다고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발표문에서 평화로 가는 길이 멀고 어렵지만 그래도 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핵심쟁점은 동예루살렘 관할권 문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양도하는 영토의 범위와 시기 및 난민귀환 문제 등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 와이협정 등을 체결하여 양측의 평화협상에 진척을 보인바 있으나 위의 3가지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동예루살렘 관할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역사 종교적 이해가 얽힌 핵심쟁점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동예루살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 때 이스라엘에 의해 합병된 이후 관할권 문제를 두고 지속적인 다툼을 보여 왔다. 국제사회에서도 동 지역을 이스라엘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동예루살렘에는 이슬람의 `성역\'과 이스라엘인의 `여호아성전\'이 위치한다. 여호아성전은 기원전 957년 솔로몬왕에 의해 최초로 건립된 이래 기원전 515년 제2차 성전이 지어졌으나 로마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 제2성전의 서쪽 담, 일명 `통곡의 벽\'만 존재한다. 여호아성전은 유태인 질곡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 성전을 짓고 여호아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스라엘인들은 번창하였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하고 죄를 범할 때 성전은 무너지고 이방 민족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 따라서 유태인은 성전을 그들의 번영과 연관시켜 생각하고 중요시한다. 여호아성전 인근에 위치한 이슬람성역은 알 아크사 사원과 바위돔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슬람 제3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기를 원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관할권 이양을 극히 꺼려왔다. 바라크 전 수상은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서 여호아성전 지역을 제외한 동예루살렘 일부분에 대한 통치권 이양을 제시한바 있으나 아라파트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협상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인정하나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하였으나 역시 결렬되었다. 팔레스타인 난민귀환권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양도하는 영토의 범위 및 시기와 맞물려 있다. 팔레스타인은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 1948년 이전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영토를 사실상 포기하였다. 이에 대한 대가로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자치구역을 확보하게 되었으나 1948년 UN결의에 의해 팔레스타인에 할당된 영토의 70%수준에 머무른다. 이후 1998년 10월에 체결한 와이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1967년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을 단계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이양해야 하나 예정대로 행하지 않고 오히려 유태인 정착촌을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은 현재까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80%를 점령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로부터 이양받은 지역에 약 370만 명으로 추정되는 난민을 귀환시켜 독립국가 건설를 원한다. 상당한 인구를 가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요르단강 서안에 건설될 경우 이스라엘은 바로 턱 밑에 언제든지 이스라엘 항전을 선포할 수 있는 국가단위 테러단체를 두는 셈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귀환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는 동예루살렘의 관할권 상당부분을 팔레스타인에게 양보하는 대신 팔레스타인 난민귀환을 포기하는 내용의 미국 중재안에 합의한 것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참고문헌
서인석 - 이스라엘 지혜문학의 토착화 과정, 서울 : 기독교 사상
존 브라이트 - 이스라엘 역사,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4
제임스 F. 루이스 - 세계의 종교와 관습 RELIGIOUS TRADITIONS OF THE WORLD, 은성, 1995
최종진 - 구약성서개론, 소망사 출
한정국 - 이스라엘의 선교사 소명, 미전도종족 선교의 기초 강의안,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 2000
G. Fohrer, 방석종 역 - 이스라엘 역사, 서울 : 성광문화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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