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 죄와 은총,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 신지식과 펠라기우스 논쟁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 죄와 은총,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 신지식과 펠라기우스 논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약력

Ⅱ.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배경

Ⅲ.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

Ⅳ.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

Ⅴ.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죄와 은총
1. 죄
2. 은총

Ⅵ.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지식

Ⅶ.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펠라기우스 논쟁
1. 역사적인 배경
2. 펠라기우스의 주장
1) 은혜
2) 죄
3) 자유의지
4) 원죄, 세례
3. 어거스틴의주장(8권)
1) 죄
2) 은혜

참고문헌

본문내용

은총
어거스틴의 죄 개념에 대응한 것이 그의 은총개념이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신이 우리를 선택한 것은 우리가 거룩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되게 하기 위해서다. 신이 어떤 인간을 선택하고 어떤 인간을 멸하느냐 하는 그 까닭은 인간에게는 없다. 일하고 있는 분이 단지 신뿐이다. 신이 결단하고, 신이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더 나아가서 용서를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난 최고선에의 현실적인 참여로 본 것이다. 영은 우리들의 그릇된 욕구 대신에 착한 욕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곧 우리 마음 속에 아가페를 퍼지게 함으로써 우리를 돕는다고 그는 말한다.
Ⅵ.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지식
성 어거스틴의 역사해석은 그의 독특한 지식론에 의해 결정된다. 성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감정(Sensation)과 이성(Reason)은 필요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비록 오류에 빠지기 쉽지만 각자가 우리 주변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이성이 발견한 것을 비준해주고 인간들에게 하나님, 우주,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준다. 결과적으로 성 어거스틴이 계시에 예속시킨 개념들은 대부분 그의 역사해석을 계산에 넣은 것들이다. 키이스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첫째는, 모든 상황들이 예정된 자리를 가지고 있는 더 오래된 세상이 있다. 이러한 결정론이 기독교적인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시적이고 불가시적인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 어떠한 사건도 그의 섭리적인 계획 밖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비록 모든 형식상의(external) 사건들이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자유의지의 여지를 약간 허용한다면, 우리는 이 필연적인 것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해야 할 것인가를 어느 정도는 선택할 수 있다.
셋째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의 세계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채택하거나 채택하도록 인도되어야 하는 일이다. 이념적으로 건전한 사람은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이론은 선교사역으로 이끌어 갈지도 모르며, 연이어 가능한 곳에서 사상을 통제하려는 호의적인 노력에로 이끌어 갈 수도 있다. 정성을 다하여 후자를 행하는 자는 강압적인 아버지의 참뜻(Value)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는, 드러난 모든 명제들은 성서의 정경들 속에서 지지자를 찾아낼 것이다. 이것은 만일 필요하다면 선험적인 해석을 후원하도록 가상적인 증거가 강요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 암시가 거짓은 아니다.
다섯째로, 우주적이고 영원한 영역의 법이 있다. 이 법은 실재들의(플라톤적인) 형태와 과정의 양상, 수학의 법칙, 그리고 어떤 도덕적인 원리들을 내포한다. 사회와 경제의 변화법칙도 분명히 포함된다. 우리의 관찰과 귀납적 추리는 우리에게 풍자화와 근사치를 보여주어 이해 가능한 세계에 이르는 길을 가리켜준다.
그러나 관찰과 귀납적 추론은 우주적이며 영원한 영역의 원리들을 결코 가리켜주지 못한다. 그것들은 더 높은 자원이 필요함을 암시해 줄 뿐이다. 이러한 형상들의 법칙과 양상은 단순히 하나님의 마음에만 실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할 때 그리고 원하는 정도로 가시적인 세계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 안에 전 진리체계를 지니고 있다. 존재와 사고의 원인과 법칙들이 한결같이 그에게 매여 있다. 하나님의 본질은 비판의 표준, 즉 진리에 대한 견고하고 변함없는 최종의 시금석이며, 영원한 진리의 법칙이고, 영원한 진리 그 자체이다. 피조된 모든 것의 발전과 행위의 침범할 수 없는 규범인 세계질서는 하나님의 본질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그에 대해 \"한 하나님, 한 진리, 하나이며 으뜸가는 지고의 본질\" 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어거스틴의 하나님은 실천이성의 요구에 따라 필연적으로 지고의 신이 될 것을 요청받고 있는 칸트의 신 과는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어거스틴의 증언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이성 부분을 신적 본질의 본래적인 필연성에 복종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7 더하기 3은 10이 되어야 하지만 그들은 10이 아니다라고 판명하지 않듯이, 하나님은 존재해야 하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
명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분명히 인간을 초월하는 기지 사항이 인간이성 속에 순전하게 현존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실존을 암시한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가지는 관념을 위한 충분한 근거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이러한 뿌리 깊은 경향성으로 인해 성 안셈(St. Anselm)과 성 보나벤추라(St.Bonaventura), 스코투스(Duns Scotus), 데카르트(Descart)의 형이상학과 어거스틴의 형이상학이 서로 연결된다.
사실 하나님은 어거스틴이 진리에 대한 개념을 그 위에 굳게 정착시킨 절대적인 바위다. 하나님은 모든 사고와 존재의 기초이다. 그는 만물의 창조주이며 법을 부여하시는 분이고 만물의 진리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 만물의 진리를 인지하는데 있어서의 원천이고 안내자이다. 그는 \"그가 보는 것(객관적인) 뿐만 아니라 시각력까지도 이해하고 수용하는 분\"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의 근원인 하나님에 대한 추구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지속적 과업이다. 신지식에 대한 인격적인 체험에서 그는 신지식이란 필연적으로 실존적이고, 이성적이며, 신앙적이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Ⅶ. 성 어거스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펠라기우스 논쟁
1. 역사적인 배경
펠라기우스는 390년경에 영국에서 로마로 왔다. 로마의 부패를 개혁하려고 한 수도사였다. 많은 로마사람이 존경했고 추종했다. 그는 도덕론자요 윤리적 기독교를 주장한 사람이다. 펠라기우스와 생사를 같이한 변호사 Caelestius 와 감독 줄리안이 펠라기우스와 평생을 같이 했다.
오트족이 로마를 침략하자 410년경 Caelestius 와 함께 로마를 떠나 북아프리카로 갔다. 북아프리카의 어거스틴을 만나려고 갔었지만, 어거스틴은 도나투스 논쟁으로 카르타고에 가 있었다. 다시 카르타고로 가서 어거스틴을 멀리서만 보았다. Caelestius 는 카르타고에서 안수 받아 자기 이론(펠라기우
  • 가격5,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1.05.14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7714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