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요의 갈래와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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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가요의 갈래와 성격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가 크게 울었다’라고 것은 을축년(1361)인 소해에 중대한 사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용이 바다를 떠나’란 것은 왕이 서울을 떠났다는 뜻이다. ‘옅은 물속에서 청파를 희롱하눈나’는 왕이 나라를 구해낼 생각은 하지 않고 비굴하게 난을 피해 시골에 와서 술판을 벌이고 뱃놀이만 하고 있는데 대하여 조소하고 야유한 것이다.
그 밖의 참요 「목자득국」 박기원, 「조선시대 이전의 참요」(『평사 민제선생 화갑기념논문집』동간행위원회, 1990) 참조
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시 ‘목자득국(木子得國)’으로 민간에 널리 불려진 노래이다. 노랫말 가운데 ‘목자’는 이씨위왕설(李氏爲王說)과 ‘남의 아들→나무 아들→목자’로 곧 타인자(他人子)와 목자(木+子=李) 또는 십팔자(十+八+子=李)가 득국할 것을 예상한 파자적 표현이다. 『동각잡기』의「서경성」 현종호, 『국어 고전시가사 연구』 (초판 ; 보고사, 1996), p. 261.
은 이성계가 요동 출병 도중 위화도 회군의 군변을 일으킨 1388년에 창작된 것이다. 그로 보아서 이는 고려 왕조의 마지막 징후를 반여하고 있는 참요로 짐작된다. 특히「서경성」은『문헌비고』상위고에 ‘서경성 밖에 불이 나다’라는 이름으로 이성계를 형상한 민요로 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군변을 반영한 것이 틀림없다. 「이원수요」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2』 (제 3판 ; 지식산업사, 1994), p. 168.
는 이성계 더러 백성을 구해달라고 하는 말이 직접 표출되어 있다. 이성계 관련 참요들은 왕위에 오르기 이전에 집중되어 있다. 이성계의 관심이든 당대 민중들의 관심이든 이성계의 쿠데타는 현실 정치의 영향권 안에 놓여 있다. 따라서 참요의 속성과 그 양상은 조선 건국 이전부터 시작하여 개국을 향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쪽보다는 그 반대로 현실 정치의 힘과 그 영향으로부터 출발하는 성격을 보여준다.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서동요」는 위의 참요 작품들과는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다르지만 예언한다는 점에서 참요로 분류된다.
善化公主主隱 선화공주(善化公主)니믄
他密只嫁良置古 그지 얼어 두고,
薯童房乙 맛둥바
夜矣卯乙抱遣去如 바 몰 안고 가다 http://myhome.naver.com/qseo/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맛동(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http://myhome.naver.com/qseo/
이 노래는 선화 공주의 비행을 발설하여 왕궁에서 쫓겨나게 함으로써 마침내 자기의 아내로 맞을 수 있게 한 일종의 참요이다.
(5) 참요의 문제점
참요의 뜻풀이를 보면 합리적인 추론을 배제하고 말로 나타낸 사연과 거기 해당된다는 사실을 엉뚱하게 연결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숨은 내막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관심거리가 된다. 그리고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천심에 근거를 둔 변동이 참요를 통해 전달된다고 하는 것이 참요를 특히 중요시해서 열심히 수집해 해석하려고 한 의도였다.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의문이고 민간에서 실제로 부른 노래와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참요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가 문제이다. 정치적인 변동을 획책하는 쪽에서 예사 민요에 별난 뜻이 감추어져 있다고 우겼을 수도 있고 참요를 지어 퍼뜨렸을 수도 있다. 또 참요는 당대의 사회역사적조건과 창조자들의 사상의식의 제한성으로 하여 당대 사회의 부정적면과 통치자들의 부패성을 폭로, 비판하는데 그치고 그를 반대하여 용감히 싸울 사상적 기백은 나타내지 못하였다.
3) 고려속요
고려의 건국 이후 한문학이 발달하면서 향가가 쇠퇴하자 국문시가는 다시 구비전승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때문에 한시(漢詩)를 제외한 이 시기의 시가는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으며, 한글창제 이후의 몇몇 문헌에 정착된 소량의 자료만이 그 편모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한 작품 가운데서 경기체가(景幾體歌)를 제외한 국문시가들을 보통 고려속요(高麗俗謠)라 하며, 학자에 따라서는 이를 고속가(古俗歌) 장가(長歌) 별곡(別曲) 등으로 지칭한 예도 있다.
고려속요를 다루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먼저 유의할 점은 작품의 대부분이『악학궤범』(1493),『시용향악보』(16세기 초 이전),『악장가사』(16세기 중엽?)에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 악서류(樂書類)로서, 조선초기 궁중악(宮中樂)의 법도(法度), 의물(儀物), 악곡, 춤, 가사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거나 그 일부를 간추리는 가운데 고려가요를 전하고 있다. 즉, 현전 고려가요는 고려시대 시가의 전모를 두루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조 궁중악의 일부분으로 조선조에 전해지고 다시 조선 초기의 ( ) 정리 과정을 거쳐 문헌에 남겨진 작품들인 것이다. 이 점을 소홀히 한 채 현존 작품만에 근거한 해석을 성급하게 고려시대 시가 전체에로 일반화하려는 태도는 무척 위험하다.
고려속요는 형태상으로 보아 단련체(單聯體)와 분련체(分聯體)로 크게 양분된다.「정읍사」,「정과정곡」,「사모곡」은 작품 전체가 하나의 연으로 이루어진 단련체 시가이다.「청산별곡」,「동동」,「서경별곡」,「쌍화점」,「만전춘」 등 고려속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분련체 시가는 작품마다 독특한 후렴구 혹은 구음(口音)을 중간에 삽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흥규,『한국문학의 이해』(민음사, 2004), pp.41~42.
(1)「청산별곡」
살어리 살어리랏다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靑山애 살어리랏다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
멀위랑 래랑 먹고 사미 대예 올아셔
靑山애 살어리랏다 奚琴을 혀거를 드로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가다니 브른 도긔
자고니러 우러라 새여 설진 강수를 비조라
널라와 시름한 나도 조롱곳 누로기 와
자고니러 우니로라 잡와니 내 엇디 리잇고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樂章歌詞』)
잉 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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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9페이지
  • 등록일2011.08.19
  • 저작시기2010.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9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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