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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이규보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가. 이규보의 생애
나. 역사적 배경
2. 이규보의 문학관(文學觀)
가. 이규보의 시관(詩觀)
나. 이규보의 의식세계와 문학
3. 생활의 애환을 노래한 시
가. 교유(交遊)
나. 몽환(夢幻)
다. 생활(生活)
라. 정회(情懷)
마. 환로(宦路)
⑴ 구관(求官)
⑵ 회의(懐疑)
⑶ 치사(致仕)
4. 자연관(自然觀)
가. 자연미의 발견
나. 감정이입의 매체
다. 귀자연 의식을 토로한 것
5. 사회관(社會觀)
가. 이규보의 당대 시기적 상황
나. 이규보의 사회의식
다. 사회관에 대한 결언
6. 이규보의 문학 비평과 그 의의
가. 문학 비평의 다원화
나. 모방에 대한 비판, 독창적 문학에 근간을 둔 비평의식
다. 시 문학 전반에 대한 비평
⑴.「백운소설(白雲小說)」에서의 시 비평
⑵.「구시마문(驅詩魔文)」과 「광변(狂辯)」에 드러난 비평의식
⑶. 비평 속에 드러난 민족의식
7. 동명왕편
가. 내용과 가치
나. 동명왕편의 소재가 된 설화와 동명왕과 삼국사기의 대조(對照)
다. 창작 동기
⑴ 대고구려주의
⑵ 감계주의
Ⅲ. 결 론
참고문헌
Ⅱ. 본 론
1. 이규보의 생애와 역사적 배경
가. 이규보의 생애
나. 역사적 배경
2. 이규보의 문학관(文學觀)
가. 이규보의 시관(詩觀)
나. 이규보의 의식세계와 문학
3. 생활의 애환을 노래한 시
가. 교유(交遊)
나. 몽환(夢幻)
다. 생활(生活)
라. 정회(情懷)
마. 환로(宦路)
⑴ 구관(求官)
⑵ 회의(懐疑)
⑶ 치사(致仕)
4. 자연관(自然觀)
가. 자연미의 발견
나. 감정이입의 매체
다. 귀자연 의식을 토로한 것
5. 사회관(社會觀)
가. 이규보의 당대 시기적 상황
나. 이규보의 사회의식
다. 사회관에 대한 결언
6. 이규보의 문학 비평과 그 의의
가. 문학 비평의 다원화
나. 모방에 대한 비판, 독창적 문학에 근간을 둔 비평의식
다. 시 문학 전반에 대한 비평
⑴.「백운소설(白雲小說)」에서의 시 비평
⑵.「구시마문(驅詩魔文)」과 「광변(狂辯)」에 드러난 비평의식
⑶. 비평 속에 드러난 민족의식
7. 동명왕편
가. 내용과 가치
나. 동명왕편의 소재가 된 설화와 동명왕과 삼국사기의 대조(對照)
다. 창작 동기
⑴ 대고구려주의
⑵ 감계주의
Ⅲ.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회시(특히 客懷시)의 일부도 이러한 성향을 띠고 있어서, 전 작품의 10분의 1 저도가 이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들 중에서도 구관시(求官시)를 비롯하여 현직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쓰여진 것들은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고, 또 과장된 칭사(稱辭)와 부화적(附和的) 미화가 주조를 이루고 있어서, 이규보 시의 한 치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시 정신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비판자들의 표적은 대개 이러한 부류의 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시인으로서의 지표(指標)를 흔히‘이문화국(以文華國)’이라고들 하지만, 그의 환로관은 그처럼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이러한 의식이 단적으로 나타난 것은 30세 때 쓴‘상최상국선서(上崔相國詵書)’라고 할 수 있다. 그 유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자신의 영달(榮達)
② 자신의 구부(拘負)의 실천으로 왕실에 보익(補益) 도모
③ 불후(不朽)의 명예보전(名譽保全)
이규보는 관직이야말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환로와 관련된 시를 소주제별로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주제
구관 (求官)
득의
(得意)
복귀
(復歸)
소신
(所信)
실직
(失職)
연민
(憐民)
유배
(流配)
자성
(自省)
치사
(致仕)
회의
(疑)
소계
작품수
17
25
7
7
15
4
22
5
13
51
166
⑴ 구관(求官)
동국이상국집에서 맨 먼저 만날 수 있는 구관시는 25세 때의 작품으로 보이는 ‘정류승선(呈柳承宣)’이다.
呈柳承宣 (정류승선)
出谷鶯猶在 (출곡앵유재) 골짜기에서 나온 꾀꼬리 아직 그대로
低徊漸下喬 (저회점하교) 나지막히 돌면서 교목에 내려 앉습니다.
禁林期託柳 (금림기탁류) 금림의 버드나무에 의탁할 것을 기대하오니
願借一長 (원차일장숙) 원컨대 긴 가지 하나 빌려 주십시오. 이동철, 『이규보임재 시의 연구』, 형설출판사, 1994 p.90
無官嘆 (무관탄) 벼슬이 없어 탄식하다
常無官常無官 (상무관상무관) 언제나 벼슬이 없어
四方口非所歡 (사방호구비소환) 사방으로 걸식함을 즐기는 바 아니라
圖免居閑日遣難 (도면거한일견난) 해 보내기 지루함을 면하고자 함이라
噫噫人生一世賦命何酸寒 (희희인생일세부명하산한)아 한평생 받은 운명 어찌 그리 괴 로운가.
그의 초기의 구관시들은 관직에 대한 유혹과 산수에 대한 향수 사이를 오가는 갈등의 심정이 노정되어 있다. 30대를 넘어서면서 환로욕(宦路慾)이 산수욕(山水慾)을 압도하더니, 60대 후반에 와서는 다시 산수욕(山水慾이) 우세하기 시작하여 만년에까지 연장되었다.
초기의 구관시들은 완곡한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다가 차츰 직설적 표현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발군(拔群)의 인재임을 은연 중 강조하였다. 그의 구관시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전반부에서는 상대방이나 그들의 가문 자녀들에 대한 칭송으로 되어 있고, 후반부는 자신의 간곡한 구관의 뜻을 담고 있다. 그의 구관시들은 아유문학(阿諛文學)이라는 평(評)을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규보 시의 한 오점으로 남게 된다. ibid., p. 107
⑵ 회의(疑)
이규보의 환로시(宦路詩)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서 약 1/3에 해당된다. 이러한 시들은 공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겪게 된 애로와 갈등의 심정, 갖가지 부정적 상념들을 읊고 있다. 회의시(懷疑詩)를 다시 세분하면 ① 공무 수행의 애로를 읊은 것 ② 청빈한 생활의 고충을 읊은 것 ③환로에 대한 후회를 읊은 것 ④ 징관(官)의 비애를 읊은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의 환로시(宦路詩)에는 두 개의 이색적인 환로관이 나타나 있다. 하나는, 승진이란 순리와 신중에 의거해야 되겠다는 점, 다른 하나는 환로는 생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莫爲州樂 4수(首) 중 제 1수
莫爲州樂 (막도위주락) 고을살이 즐겁다 말하지 마라
爲州乃反憂 (위주내반우) 고을살이 오히려 근심뿐이네.
公庭喧似市 (공정훤사시) 공관 뜰은 시끄러워 시장같고
訟牒委如丘 (송첩위여구) 소송장은 산같이 쌓여 있다네.
忍課殘村稅 (인과잔촌세) 가난한 마을에 차마 세금 부과하랴.
愁看滿獄囚 (수간만옥수) 감옥에 가득 찬 죄수들 보기에 딱하구나.
也無開口笑 (야무개구소) 입에 웃음띨 날 없는데
況奈事遊 (황내사오유) 어찌 마음놓고 노닐 수 있으랴. 『백운거사 이규보 시집』, 차충환 김진영 역주, 민속원, 1997 p. 129~132.
이 시는 이규보가 전주목사록(全州牧司錄)으로 재직할 때 쓴 작품으로 공무 수행의 애로를 토로하고 있다.
元日朝會退來有感 (원일조회퇴래유감) 설날 조회에서 물러나와 수감을 읊다.
久貪名利夢方 (구탐명리몽방감) 오랫동안 명리 구하며 꿈에 취해서
未去田園面自慙 (미거전원면자참) 전원으로 못 돌아간 것 부끄럽구나.
白首猶居百寮尾 (백수유거백료미) 늙은 몸이 아직도 백관들 뒤에서
藍衫木板朝參 (남삼목판진조참) 푸른 적삼에 나무 홀 달고 조례에 참석하네. ibid., p. 260.
‘원일조회퇴래유감(元日朝會退來有感 )’은 직위의 미미함을 한탄한 시이다. 전주목사록(全州牧司錄)에서 파직되었다가 수년 만에 다시 관계에 복귀되어 직한림원(直翰林院)에 권보(權補)된 사실, 그 후 4년이 지나서야 고작 천우참군(千牛參軍)으로 승진된 사실을 한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전원으로 가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⑶ 치사(致仕) 이동철, 『이규보임재 시의 연구』, 형설출판사, 1994 p. 108.
이규보의 치사시(致仕詩)는 걸퇴(乞退)의 어려움과 자책, 퇴임의 정회, 치사 후의 감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치사시(致仕詩)에는 최우에 대한 감사의 정이 도처에 나타나 있다. 그가 걸퇴(乞退)를 늦추게 된 가장 큰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실토하고 있다. 치사 후의 감회를 읊은 시에서는 인생에 대한 소박한 회고(回顧)와 자신의 포부가 어느 정도 실천되었다는 득의의 심정이 은연 중에 나타나고 있다. 그의 치사시의 지배적 정조는 허무 의식이다.
十一月日夜直內省臥吟不覺至累首 十一月日夜直內省臥吟不覺至累首(십일월일야직내성와음불각지루수). 이 작품은 원래 4수인데, 『동문선』에는 ‘內省夜直’이라는 제목으로 1수만 실려 있음.
내성에서 숙직하다가
이러한 시들 중에서도 구관시(求官시)를 비롯하여 현직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쓰여진 것들은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고, 또 과장된 칭사(稱辭)와 부화적(附和的) 미화가 주조를 이루고 있어서, 이규보 시의 한 치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시 정신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비판자들의 표적은 대개 이러한 부류의 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시인으로서의 지표(指標)를 흔히‘이문화국(以文華國)’이라고들 하지만, 그의 환로관은 그처럼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이러한 의식이 단적으로 나타난 것은 30세 때 쓴‘상최상국선서(上崔相國詵書)’라고 할 수 있다. 그 유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자신의 영달(榮達)
② 자신의 구부(拘負)의 실천으로 왕실에 보익(補益) 도모
③ 불후(不朽)의 명예보전(名譽保全)
이규보는 관직이야말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환로와 관련된 시를 소주제별로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주제
구관 (求官)
득의
(得意)
복귀
(復歸)
소신
(所信)
실직
(失職)
연민
(憐民)
유배
(流配)
자성
(自省)
치사
(致仕)
회의
(疑)
소계
작품수
17
25
7
7
15
4
22
5
13
51
166
⑴ 구관(求官)
동국이상국집에서 맨 먼저 만날 수 있는 구관시는 25세 때의 작품으로 보이는 ‘정류승선(呈柳承宣)’이다.
呈柳承宣 (정류승선)
出谷鶯猶在 (출곡앵유재) 골짜기에서 나온 꾀꼬리 아직 그대로
低徊漸下喬 (저회점하교) 나지막히 돌면서 교목에 내려 앉습니다.
禁林期託柳 (금림기탁류) 금림의 버드나무에 의탁할 것을 기대하오니
願借一長 (원차일장숙) 원컨대 긴 가지 하나 빌려 주십시오. 이동철, 『이규보임재 시의 연구』, 형설출판사, 1994 p.90
無官嘆 (무관탄) 벼슬이 없어 탄식하다
常無官常無官 (상무관상무관) 언제나 벼슬이 없어
四方口非所歡 (사방호구비소환) 사방으로 걸식함을 즐기는 바 아니라
圖免居閑日遣難 (도면거한일견난) 해 보내기 지루함을 면하고자 함이라
噫噫人生一世賦命何酸寒 (희희인생일세부명하산한)아 한평생 받은 운명 어찌 그리 괴 로운가.
그의 초기의 구관시들은 관직에 대한 유혹과 산수에 대한 향수 사이를 오가는 갈등의 심정이 노정되어 있다. 30대를 넘어서면서 환로욕(宦路慾)이 산수욕(山水慾)을 압도하더니, 60대 후반에 와서는 다시 산수욕(山水慾이) 우세하기 시작하여 만년에까지 연장되었다.
초기의 구관시들은 완곡한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다가 차츰 직설적 표현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발군(拔群)의 인재임을 은연 중 강조하였다. 그의 구관시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전반부에서는 상대방이나 그들의 가문 자녀들에 대한 칭송으로 되어 있고, 후반부는 자신의 간곡한 구관의 뜻을 담고 있다. 그의 구관시들은 아유문학(阿諛文學)이라는 평(評)을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규보 시의 한 오점으로 남게 된다. ibid., p. 107
⑵ 회의(疑)
이규보의 환로시(宦路詩)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서 약 1/3에 해당된다. 이러한 시들은 공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겪게 된 애로와 갈등의 심정, 갖가지 부정적 상념들을 읊고 있다. 회의시(懷疑詩)를 다시 세분하면 ① 공무 수행의 애로를 읊은 것 ② 청빈한 생활의 고충을 읊은 것 ③환로에 대한 후회를 읊은 것 ④ 징관(官)의 비애를 읊은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의 환로시(宦路詩)에는 두 개의 이색적인 환로관이 나타나 있다. 하나는, 승진이란 순리와 신중에 의거해야 되겠다는 점, 다른 하나는 환로는 생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莫爲州樂 4수(首) 중 제 1수
莫爲州樂 (막도위주락) 고을살이 즐겁다 말하지 마라
爲州乃反憂 (위주내반우) 고을살이 오히려 근심뿐이네.
公庭喧似市 (공정훤사시) 공관 뜰은 시끄러워 시장같고
訟牒委如丘 (송첩위여구) 소송장은 산같이 쌓여 있다네.
忍課殘村稅 (인과잔촌세) 가난한 마을에 차마 세금 부과하랴.
愁看滿獄囚 (수간만옥수) 감옥에 가득 찬 죄수들 보기에 딱하구나.
也無開口笑 (야무개구소) 입에 웃음띨 날 없는데
況奈事遊 (황내사오유) 어찌 마음놓고 노닐 수 있으랴. 『백운거사 이규보 시집』, 차충환 김진영 역주, 민속원, 1997 p. 129~132.
이 시는 이규보가 전주목사록(全州牧司錄)으로 재직할 때 쓴 작품으로 공무 수행의 애로를 토로하고 있다.
元日朝會退來有感 (원일조회퇴래유감) 설날 조회에서 물러나와 수감을 읊다.
久貪名利夢方 (구탐명리몽방감) 오랫동안 명리 구하며 꿈에 취해서
未去田園面自慙 (미거전원면자참) 전원으로 못 돌아간 것 부끄럽구나.
白首猶居百寮尾 (백수유거백료미) 늙은 몸이 아직도 백관들 뒤에서
藍衫木板朝參 (남삼목판진조참) 푸른 적삼에 나무 홀 달고 조례에 참석하네. ibid., p. 260.
‘원일조회퇴래유감(元日朝會退來有感 )’은 직위의 미미함을 한탄한 시이다. 전주목사록(全州牧司錄)에서 파직되었다가 수년 만에 다시 관계에 복귀되어 직한림원(直翰林院)에 권보(權補)된 사실, 그 후 4년이 지나서야 고작 천우참군(千牛參軍)으로 승진된 사실을 한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전원으로 가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⑶ 치사(致仕) 이동철, 『이규보임재 시의 연구』, 형설출판사, 1994 p. 108.
이규보의 치사시(致仕詩)는 걸퇴(乞退)의 어려움과 자책, 퇴임의 정회, 치사 후의 감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치사시(致仕詩)에는 최우에 대한 감사의 정이 도처에 나타나 있다. 그가 걸퇴(乞退)를 늦추게 된 가장 큰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실토하고 있다. 치사 후의 감회를 읊은 시에서는 인생에 대한 소박한 회고(回顧)와 자신의 포부가 어느 정도 실천되었다는 득의의 심정이 은연 중에 나타나고 있다. 그의 치사시의 지배적 정조는 허무 의식이다.
十一月日夜直內省臥吟不覺至累首 十一月日夜直內省臥吟不覺至累首(십일월일야직내성와음불각지루수). 이 작품은 원래 4수인데, 『동문선』에는 ‘內省夜直’이라는 제목으로 1수만 실려 있음.
내성에서 숙직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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