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외교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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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외교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중국외교정책의 형성요인

(3)전통적 중국 외교정책

(4)중국의 외교원칙

(5)지역별 중국의 외교정책
1) 중. 일 관계

2) 중. 미 관계

3) 중. 한반도 관계

4) 대만 관계

5) 대러시아 관계

6)대유럽 관계

(6)전망 및 결론

(7)참고문헌

본문내용

다. 나아가 이러한 점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등에서도 나타났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등소평의 개혁개방에 따라 이러한 사회경제적 원칙도 변화하는데, 이에 발맞춰 외교적인 입장 역시 변했다. 큰 틀에서 봤을 때 기본적인 ‘혁명외교’노선에서 70년대에 들어서자 ‘독립자주외교’노선을 보이게 된다.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주권자의 위치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외교정책 결정은 레닌의 ‘민주 집중제’의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기본적으로 전국 공산당 대표 대회, 중앙위원회, 중앙정치국, 상무회의, 등에서 당 총서기로 이어지는 결정구조가 존재한다. 물론 최근엔 권력을 분산, 외교적인 역량이 뛰어난 공산 당원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나 외교부부장 등의 직함을 맡은 이들이 ‘외교적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최고 통수권자는 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모두 맡은 사람이며 이 사람이 외교적 결정의 가장 큰 몫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외교정책은 안과 밖의 모습이 꽤나 다르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부의 발전을 위해 외부의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념보다는 경제적 이익에 그 요점을 둔다. 이데올로기적 공생관계는 중국 내부에서도 충분히 이뤄지고 있으며, 이 또한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인 까닭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어느 정도의 중립적 위치의 외교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중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지 않았다는 주변국의 인식이다. 실제 중국 시장은 굉장히 커 2007년 작금에선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는 있지만, 이는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싼 수출을 일삼아 시장에서 차지하는 파이가 비교적 커졌기 때문이다. 원천적으로 중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비교적 다른 열강들 사이에선 고립된 측면이 강하다. 고로 외교정책의 선두자로 나서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 추출할 수 있는 점은 경제력이 국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됐으며, 이는 앞으로의 경쟁을 위해서도 주요 범위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마주하는 국제환경도 상이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혁명’의 기조를 따랐다. 그래선지 중국 내부의 반혁명 분자 축출은 미. 소 노선을 따르는 사람으로 봤다. 초강대국과의 대항과 투쟁은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외교 정책에 주는 요인은 그 시기별로 분명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보고서의 주요 골자에서도 드러나게 될 부분이다. 지도자별로 간단하게 말해본다. 모택동은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등을 호소해 이데올로기를 중시한다. 즉 그에겐 이데올로기가 ‘국가 이익’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개혁개방에 따라 외교적인 관계도 경제적인 실익을 추구하는 상황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즉 1950, 60년대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대단히 강력했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4)중국의 외교원칙
1)평화공존 5대원칙
이는 중국의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원칙이 대두된 때는 1954년에서 1959년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전쟁을 참천한 뒤 낭패를 본 중국이 제시한 하나의 히든카드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게 있어 국제적인 미. 소의 냉전체제가 더 굳어지는 시점이다. 중국의 위기란 바로 공산주의의 위기와 동일하다. 즉 공산주의에 따라 대외적인 고립에 처해지게 된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여타 나라들은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까닭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는 평화공존 5원칙을 제시했다. 사실 이 원칙은 오늘날까지도 하나의 지침으로 작용하기에 이른다. 그 다섯 가지는 첫째, 상호 주권과 영토보존의 존중, 둘째 상호불가침, 셋째 상호내정불간섭, 넷째 평등호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평화공존이다. 이 원칙을 통해서 중국의 대외정책은 어느 정도 결실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당시 파키스탄이나 네팔과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와의 국가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도 하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소련과 입장이 달랐다. 스탈린과 레닌을 벗어난 소련은 1956년 흐루시초프가 강대국의 입장을 존중해 주는 제국주의적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에 갈등을 빚었다. 실제로 평화 공존 5원칙은 이후 1955년 4워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29개국의 수뇌들이 모여 개최된 제1차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에서 평화 10원칙으로 확대된 형태로 제시됐다. 여기서 이어 나온 ‘외교 3원칙’은 사회주의 제국과의 우호 협력 관계 도모, 피압박 인민과 민족의 혁명 투쟁 지원, 그리고 각국과의 평화 공존 추구 및 제국주의 침략 정책과 전쟁 반대다. 이를 통해 중국은 대외적으로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김하중 「떠오르는 용 중국」(서울, 비전과 리더십, 2003) p219
2)독립자주 원칙
독립자주 원칙은 등소평 시대의 상징이다. 공산주의에 근간을 둔 중국의 기본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강조한 중국의 자주성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주권을 중시하는 태도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일은 반드시 중국인에 의해 처리돼야 하며 어떤 제국주의 국가도 간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저우언라이 역시 마찬가지다.’중화민족의 독립적 입장과 자주적 입장으로 대외 정책을 처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마오쩌둥 입장에서 농민의 혁명을 강조했고,’우리‘가 해내는 사회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에 대외 정책 역시 이와 매한가지의 노선을 보여줬다고 사료된다. 저우언라이도 고립에 처한 중국이 ’평화‘를 내세워 독립적인 노선을 보여야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이면을 고려했다고 본다. 이 원칙은 어떤 국가에도 의지하지 않고 중국의 의지에 반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고, 자주적인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3)반패권주의
이는 마오쩌둥이 주창한 모순론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를 알기 위해선 중국의 삼개세계론을 알아야 한다. 이는 패권 추구국인 미. 소의 제1세계와 모순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제3세계를 통일전선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반패권주의를 표방하는 것을 말한다.반패권주의엔 반강권정치 원칙도 기초한다. 즉 미국과 소련의 팩?聆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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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09
  • 저작시기2011.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07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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