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서울 점령 후 3일간의 지체 원인과 전쟁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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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한 전쟁설(서울 제한 점령론)
민중 봉기 대기설
스탈린 또는 마오쩌둥 개입설
도하 장비의 부족
춘천 전투

본문내용

문제의 3일

6.25전쟁 당시 인민군이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한 뒤 6월 30일까지 한강을 남쪽으로 진격하지 않았다.

인민군의 전세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태였다

3일 지체의 원인분석(가설)

제한 전쟁설(서울 제한 점령론)
-> 북한이 남한 전역을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을 끝내려 했다는 것.

-> 남한 내 남로당의 봉기로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남한을 점령하고자 함

-> 서울 진주 후 국회소집을 통해서 통일정부를 수립하려고 더 이상 남하하지 않고 서울에 체류,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신속한 남하로 이것이 불가능해졌다.

-> 추격전의 전개

민중 봉기 대기설

-> “서울을 장악하면 남한 전체에서 인민 봉기가 일어나 스스로 붕괴할 것이다.” (민중들의 공산주의 운동으로 남조선을 해방시키고자 했다는 것)
-> 그러나 수십만 남로당원은 48~49년에 존재하였고, 50년대 중반에는 각종 무모한 혁명의 시도로 남로당의 세력은 이미 약화되어있었다.

(*남로당 : 남조선 노동당 – 설립목적은 남한의 공산화 공작으로 민족의 분열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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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11.11.20
  • 저작시기2011.11
  • 파일형식기타(pptx)
  • 자료번호#715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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