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리더의 리더십 연구 <이순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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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선정이유 3
가. “현재가 아닌 과거에도 창의적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았을까?” 3
나. “최고경영자가 아닌 부하의 위치에서도 창의적 리더십은 발휘될까?” 3
다. “그 사람은 5단계 리더십의 조건까지 충족하는가?” 3
2. 이순신은 누구인가? 3
3. 이순신, 5단계의 리더십 4
가. 헌신과 열정 4
나. 겸양의 미덕 5
4. 거북선, 그리고 이순신의 리더십 5
가. 거북선 5
나. 이순신의 리더십 6
1) 머리 – 진취적, 카리스마, 전략적 6
2) 등 - 부하와 백성을 보호하고 수평적인 역할 9
3) 노 – 협력의 모습, 신하의 모습, 13
5. 결론 14

본문내용

일이 있은 후 이순신은 좌천되었으며, 일년 반 후에는 결국 파면되고 말았다. 또한 이순신이 부당하게 8계품이나 강등당해서 다시 미관말직의 무관으로 근무하면서 활 쏘기 연습에 열중하던 시절에 지금의 국방장관 격인 병조판서가 이순신의 화살을 넣는 전통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하자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거절하였다.
이 전통을 대감에게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감이 이 전통을 받으면 사람들이 대감을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또 제가 이를 드리면 사람들은 저를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별 것 아닌 전통 때문에 대감과 제가 수치스러운 말을 듣는다면 몹시 죄송할 따름입니다.
부정, 부패, 시기와 모함으로 얼룩진 세태 속에서 이순신의 곧은 자세와 행동은 빛을 발하기는커녕 그에게 3번의 파직과 2번의 백의종군이라는 고난의 인생역정을 가져다 주었다.
노 협력의 모습, 신하의 모습,
인재등용은 능력에 따르라
워렌 베니스라는 리더십의 대가는 ‘위대한 그룹을 만들기 위해 리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각각의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위대함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인재를 찾아 최대한의 능력을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순신은 명량해전 이후 군량의 확보와 수군의 모집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이때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하여 위임토록 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이의온이라는 인물은 이언적의 손자로 20세에 불과했지만 학문과 지략이 뛰어났고 멸사봉공의 정신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그는 해로통행첩(고하도라는 곳에 돌로 성을 쌓아서 적의 배를 구별하고,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지나가는 배에게 식량을 받아내는 통행첩)이라는 것을 발행하여 군량미를 비축하였다.
거북선을 건조할때도 나대용이라는 설계자를 활용하였다. 그는 1592년 4월 12일 거북선을 진수하여 발포실험을 성공함으로써 당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함을 건조하게 되었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에 창선이라는 철갑선과 해추선이라는 쾌속선을 고안하는등 우리나라의 탁월한 조선기술자였다.
부하정신
부하된 자로서 처세에 항상 조심했다.
이순신은 선조 9년 병자(丙子, 1576)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등용에 대한 청탁을 하지 않았으므로 급제한 지 오랜 뒤에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가 되었다. 당시 병조판서 김귀영(金貴榮)이 서녀(庶女)를 두고 있었다. 김귀영은 이순신의 인품을 알고 자기의 서녀를 그의 첩으로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를 사양하였다. 내 처음으로 벼슬길에 올랐으니, 어찌 권세 있는 가문에 장가를 들겠는가
- 상게서 p.253
부하된 자로서 항상 자기규율이 탁월 했다.
난중일기를 기록한 자체가 그 단적인 예이며,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이 쓴 일기를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쓰지 않는다. 자기스스로의 반성을 위해서 작성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임금의 부하임을 항상 잊지 않았고, 백성들을 위한 공직자라는 생각을 망각하지 않고서, 자기의 모든 행동을 항상 절도 있게 하였다.
한번 상관은 영원한 상관으로 따르고자 했다.
충무공은 기축년(己丑年, 1589) 정읍 현감에 임명되었다. 이때 전라 도사(都事) 조대중(曺大中)이정여립(鄭汝立)의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 역모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의금부 도사가 조대중의 문서를 조사하다가 이순신의 서찰을 발견하고, 이순신에게 그 서찰을 몰래 빼내어 없애 버리겠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이순신은 의금부도사의 호의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조대중에게 보낸 글에는 별다른 뜻이 담긴 것이 없으며, 또이미 그 글이 발견되었으니 있는 그대로 보고하여 처리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순신은 조대중과 주고받은 서찰은 그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대중이 처형되어 그의 영구가 정읍을 지나가게 되자, 이순신은 제물을 마련하여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그가 자기죄상에 대하여 불복을 하고 죽었으니, 그가 정말 그러한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잠깐 동안이라도 본도의 도사를 지냈으니, 내가 어찌 모르는 체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정승인 정언신(鄭彦臣) 역시 정여립의 친척이라 하여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마침 이순신은 공무로 서울에 올라갔다가 그 사실을 알고, 정언신이 옛날 자기의 직속상관이었다 하여 감옥으로 그를 찾아가 문안을 드렸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은 이순신의 그러한 행동을 의롭게 여겼다.
- 상게서 p.244
스스로 왕과 국가의 부름을 받은 몸임을 항상 잊지 않고, 겸손했다.
[1595년 5월 29일. 辛丑] 비바람이 그치지 않고 종일 퍼부었다.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님의 총애를 받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친다. 장수의 직책을 띤 몸으로 티끌만한 공로도 바치지 못했으며, 입으로 교서를 외우지만 얼굴에는 군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 이순신, 최두환 역 난중일기 (학민사, 1996. p.219)
결론
必生卽死 死卽必生 (필생즉사 사즉필생)의 리더십-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라는 한자성어로 나라를 구해내고야 말겠다는 열화와 같은 헌신적 의지와 모든 사람들이 포기하였을 때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지닌 열정, 그리고 공을 ‘부하들’이나 ‘천운’으로 돌리는 겸손함과 큰 공을 세워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 5단계리더십의 요소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진취적이고 카리스마적이며, 전략적인 모습 , 부하와 백성을 보호하고 소통하는 수평적 모습, 조직문화와 신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우리는 必生卽死 死卽必生의 리더십을 나타내고 있다고 결론을 지었다.
참고문헌
경제전쟁 이순신을 말하다. (2003. 11 , 지용희 저, 디자인 하우스)
레인보우 리더십 이순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 2008.6 , 전도근, 김형준 공저, 무한)
이순신 장군의 전략적 리더십 ( 2010.11, 박상만)
충무공 정신과 이순신 리더십 ( 2010.11, 윤세한)
이순신 리더십 ( 2011.2, 이성우)
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 연구 ( 2005, 허남성, 박균열 공저, 국방정책연구)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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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2.28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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