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프랑스의 지리적 배경
1) 위치
2) 기후
3) 프랑스의 영토
I. 프랑스인은 누구인가?
1) 프랑스 민족? 국민?
2) 프랑스는 인종의 전시장
II. 프랑스의 종교
프랑스인의 기질, 국민성...
1) 프랑스인들의 기질과 국민성
(1) 이중적 기질
3) 프랑스인은 개성파
4) 오직 자유를 위하여
5) 평등의 나라
6) 모랄에 대해서도 자유롭다
프랑스의 언어
1) 프랑스어의 기원
2) 프랑스어의 형성과 발전
3) 프랑스어 사용권역(La Francophone)
4) 프랑스인의 모국어 사랑
5) 생활 속의 프랑스어
6) 프랑스어의 특징
1) 프랑스어의 특징
역사
프랑스의 어제와 오늘
1) 선사시대의 프랑스
2) 골(Gaule)족의 정착 :
3) 갈로-로맹 문명과 이민족의 침입 :
4) 중세의 프랑스:
5) 백년 전쟁:
6) 프랑스의 르네상스:
7) 절대 왕정의 시기:
8) 계몽시대와 대 혁명 :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
-파리의 역사
-샹젤리제(Champs-Elysées)와 개선문(Arc de Triomphe) : 이 밑으로 나오는 문화제 이름들만...
-몽 마르트르(Montmartre) 언덕과 성심사원(Sacré Coeur)
-까르티에 라땡(Cartier Latin)
-시테 섬(Ile de Cité )
프랑스의 교육제도
유치원 교육
초등교육
중학교 교육
고등학교 교육
대학교육
그랑제꼴
1) 위치
2) 기후
3) 프랑스의 영토
I. 프랑스인은 누구인가?
1) 프랑스 민족? 국민?
2) 프랑스는 인종의 전시장
II. 프랑스의 종교
프랑스인의 기질, 국민성...
1) 프랑스인들의 기질과 국민성
(1) 이중적 기질
3) 프랑스인은 개성파
4) 오직 자유를 위하여
5) 평등의 나라
6) 모랄에 대해서도 자유롭다
프랑스의 언어
1) 프랑스어의 기원
2) 프랑스어의 형성과 발전
3) 프랑스어 사용권역(La Francophone)
4) 프랑스인의 모국어 사랑
5) 생활 속의 프랑스어
6) 프랑스어의 특징
1) 프랑스어의 특징
역사
프랑스의 어제와 오늘
1) 선사시대의 프랑스
2) 골(Gaule)족의 정착 :
3) 갈로-로맹 문명과 이민족의 침입 :
4) 중세의 프랑스:
5) 백년 전쟁:
6) 프랑스의 르네상스:
7) 절대 왕정의 시기:
8) 계몽시대와 대 혁명 :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
-파리의 역사
-샹젤리제(Champs-Elysées)와 개선문(Arc de Triomphe) : 이 밑으로 나오는 문화제 이름들만...
-몽 마르트르(Montmartre) 언덕과 성심사원(Sacré Coeur)
-까르티에 라땡(Cartier Latin)
-시테 섬(Ile de Cité )
프랑스의 교육제도
유치원 교육
초등교육
중학교 교육
고등학교 교육
대학교육
그랑제꼴
본문내용
부르는 공포정치로 이어져 갔다.
1792년 9월 22일 마침내 프랑스는 제1공화국을 선포하고 그레고리력 대신에 혁명력을 사용한다. 1793년 7월 2월 21일 루이 16세는 꽁꼬르드(Concorde) 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되는데 이에 분노한 전 유럽이 제1차 동맹에 가담하고 방데와 리용에서는 왕당파가 봉기한다. 쟈코벵(Jacobin)을 밀어내고 극좌에 섰던 지롱드당(Gironde)은 다시 산악당에 의해 우익으로 밀려난다. 이때부터 국민공회 내에서 온건파인 지롱드당과 강경파인 산악당 사이의 불화가 시작되는데 산악당은 온건파를 모두 처형시키고 만다. 이렇게 해서 실권을 잡은 산악당의 수장 로베스삐에르(Robespierre)는 전쟁에 최선을 다하면서 공포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급진 좌파와 온건 좌파로 분열되는데 로베스삐에르는 당똥(Danton)과 같은 비교적 온건한 동지들을 모두 단두대에 보내고 더욱 철저한 공포 정치를 실시하였으며 실질적인 프랑스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신도 테르미도르 반동(94년 7월 77일)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되는데 이로써 공포정치는 막을 내리게 된다. 대혁명은 프랑스의 모든 분야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1790년 제헌 의회는 최고의 학자들을 모아 미터법을 만들었으며 그랑제꼴과 루브르 박물관도 혁명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1880년부터 혁명기념일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 되었으며 자유, 평등, 박애라는 대혁명의 좌우명은 모든 공공 건물의 정면이나 화폐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들의 완벽한 실현은 아직도 이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프랑스는 혁명세력들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면서 반전을 거듭하는 동안에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며 또한 혁명의 확산을 두려워하는 이웃나라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
프랑스의 수도이자 유럽의 중심 도시인 파리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시와 낭만의 도시, 유행과 패션의 도시, 예술과 역사의 도시, 세계 제 1의 관광도시... 파리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 파리는 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도시일까? 파리가 좋다는 것은 자연이나 기후가 좋아서일까? 무엇보다 파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히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서 만든 도시이기 때문이다. 파리에는 건물, 길, 광장 하나마다, 돌멩이 하나 하나에도 정성어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인간의 정성과 숨결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센느 강을 무심코 가로지르는 다리에도 찬양이 넘치고, 센느강의 물결 속에도 인간의 사랑을 담고, 심지어는 우중충한 파리의 날씨에조차도 \'파리의 음울\'(Spleen de Paris, Baudelaire)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파리의 건물에는 종종 \'몇 년부터 몇 년까지 누구누구가 여기 살았다\'라는 표시가 되어있다. 또 길 이름, 광장 이름, 지하철 역 이름은 유명한 전쟁이나, 역사적 사건, 전 세계의 역사, 지리, 문학, 예술을 반영하는 이름을 담고있다. 파리에는 약 7000개의 길이 있다. 길 이름은 대부분이 역사 속의 위인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비롯하여 세계의 유명한 정치인은 물론 문학가, 미술가, 음악가 등등 모든 예술인의 이름이 들어있다. 길 이름을 보고 있으면 전세계의 역사·지리·문학·예술을 공부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세계의 유명한 정치인으로서 빠진 사람이 있다면 히틀러·뭇솔리니 등 독재자들 뿐, 월슨·루즈벨트·케네디 거리가 있다. 베토벤·모짜르트·슈베르트의 거리가 있으며 몰리에르·스탕달·빅토르 위고·톨스토이·졸라 등 수 많은 문인의 이름으로 된 길이 있다. 또 레오나르도 다빈치·루벤스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의 거리가 있으며, 레닌그라드·스탈린그라드·뉴욕·나폴리·로마·런던·모스크바·사이공 등 외국 지명도 들어 있으며 1986년 한불수교 100주년을 계기로 \'서울 광장(Place de Seoul)\'이, 작년(2002년 3월 25일)에는 파리 불로뉴 숲속에 \'서울 공원\'이 설립되었다. 모든 성자와 모든 유명한 전쟁 등의 이름도 들어 있다. 프랑스인들의 문화와 역사, 예술에 대한 취향, 그리고 외국에 대한 애정과 외국과의 교류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사소한 사물 하나 하나에도 의미를 붙여 역사 속에 묻어두지 않고 오늘에 되새기고 떠올려 미래에 대한 지표로 삼아가고 있다. 무릇 인간의 삶이란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들에 의미를 붙여가며 해석하는 행위가 아닐까? (어떻습니까? 우리 대학의 경우는? 가좌동으로 캠퍼스가 옮겨온 지 20년이 넘었으나 아직 우리는 그저 21동, 17동..으로, 우리 학교내의 주요 거리는 이름이나 있습니까? 학생정신은 무엇입니까? 학교 사랑은 곳곳에 혼과 정신을 불어넣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찬양해 나갈 때 생기는 것입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후 프랑스의 자존심을 국제 사회에 드높인 샤를르 드골 대통령의 이름을 딴 프랑스의 국제적 관문인 샤를르 드골 공항, 독일치하에서 숭고하게 저항하다 처형된 레지스땅스의 지도자 쟝 물렝의 이름을 딴 쟝 물렝 거리, 위대한 음악가 드뷔시에서 따온 드뷔시 거리 등등.. 이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서 그냥 멀리, 나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드골, 물렝, 드뷔시가 아니라 오늘에 살아, 현재 우리와 함께, 그들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는 현존하는 역사의 위인들인 것이다. 이 모두가 프랑스 국민의 문화의식,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파리에는 시(詩)가 있고 노래가 있고 낭만이 있고 인간미가 넘치는, 그래서 파리는 인간을 위한 도시다. 파리는 시가지 전체가 조화를 이룬 하나의 완전한 예술품이고 박물관이다.
파리는 프랑스의 일부이며 동시에 전부다. 파리를 빼고는 프랑스를 생각할 수 없다. 파리가 없는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 파리만 보고도 프랑스를 보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파리엔 프랑스의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파리는 오래 전부터 프랑스의 중앙 집중화된 수도이다. 반면 독일이나 이태리의 경우는 다르다. 베를린만을 보고 독일을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프랑크푸르트·본·
1792년 9월 22일 마침내 프랑스는 제1공화국을 선포하고 그레고리력 대신에 혁명력을 사용한다. 1793년 7월 2월 21일 루이 16세는 꽁꼬르드(Concorde) 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되는데 이에 분노한 전 유럽이 제1차 동맹에 가담하고 방데와 리용에서는 왕당파가 봉기한다. 쟈코벵(Jacobin)을 밀어내고 극좌에 섰던 지롱드당(Gironde)은 다시 산악당에 의해 우익으로 밀려난다. 이때부터 국민공회 내에서 온건파인 지롱드당과 강경파인 산악당 사이의 불화가 시작되는데 산악당은 온건파를 모두 처형시키고 만다. 이렇게 해서 실권을 잡은 산악당의 수장 로베스삐에르(Robespierre)는 전쟁에 최선을 다하면서 공포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급진 좌파와 온건 좌파로 분열되는데 로베스삐에르는 당똥(Danton)과 같은 비교적 온건한 동지들을 모두 단두대에 보내고 더욱 철저한 공포 정치를 실시하였으며 실질적인 프랑스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신도 테르미도르 반동(94년 7월 77일)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되는데 이로써 공포정치는 막을 내리게 된다. 대혁명은 프랑스의 모든 분야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1790년 제헌 의회는 최고의 학자들을 모아 미터법을 만들었으며 그랑제꼴과 루브르 박물관도 혁명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1880년부터 혁명기념일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 되었으며 자유, 평등, 박애라는 대혁명의 좌우명은 모든 공공 건물의 정면이나 화폐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들의 완벽한 실현은 아직도 이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프랑스는 혁명세력들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면서 반전을 거듭하는 동안에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며 또한 혁명의 확산을 두려워하는 이웃나라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
프랑스의 수도이자 유럽의 중심 도시인 파리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시와 낭만의 도시, 유행과 패션의 도시, 예술과 역사의 도시, 세계 제 1의 관광도시... 파리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 파리는 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도시일까? 파리가 좋다는 것은 자연이나 기후가 좋아서일까? 무엇보다 파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히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지혜를 짜내서 만든 도시이기 때문이다. 파리에는 건물, 길, 광장 하나마다, 돌멩이 하나 하나에도 정성어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인간의 정성과 숨결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센느 강을 무심코 가로지르는 다리에도 찬양이 넘치고, 센느강의 물결 속에도 인간의 사랑을 담고, 심지어는 우중충한 파리의 날씨에조차도 \'파리의 음울\'(Spleen de Paris, Baudelaire)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파리의 건물에는 종종 \'몇 년부터 몇 년까지 누구누구가 여기 살았다\'라는 표시가 되어있다. 또 길 이름, 광장 이름, 지하철 역 이름은 유명한 전쟁이나, 역사적 사건, 전 세계의 역사, 지리, 문학, 예술을 반영하는 이름을 담고있다. 파리에는 약 7000개의 길이 있다. 길 이름은 대부분이 역사 속의 위인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비롯하여 세계의 유명한 정치인은 물론 문학가, 미술가, 음악가 등등 모든 예술인의 이름이 들어있다. 길 이름을 보고 있으면 전세계의 역사·지리·문학·예술을 공부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세계의 유명한 정치인으로서 빠진 사람이 있다면 히틀러·뭇솔리니 등 독재자들 뿐, 월슨·루즈벨트·케네디 거리가 있다. 베토벤·모짜르트·슈베르트의 거리가 있으며 몰리에르·스탕달·빅토르 위고·톨스토이·졸라 등 수 많은 문인의 이름으로 된 길이 있다. 또 레오나르도 다빈치·루벤스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의 거리가 있으며, 레닌그라드·스탈린그라드·뉴욕·나폴리·로마·런던·모스크바·사이공 등 외국 지명도 들어 있으며 1986년 한불수교 100주년을 계기로 \'서울 광장(Place de Seoul)\'이, 작년(2002년 3월 25일)에는 파리 불로뉴 숲속에 \'서울 공원\'이 설립되었다. 모든 성자와 모든 유명한 전쟁 등의 이름도 들어 있다. 프랑스인들의 문화와 역사, 예술에 대한 취향, 그리고 외국에 대한 애정과 외국과의 교류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사소한 사물 하나 하나에도 의미를 붙여 역사 속에 묻어두지 않고 오늘에 되새기고 떠올려 미래에 대한 지표로 삼아가고 있다. 무릇 인간의 삶이란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들에 의미를 붙여가며 해석하는 행위가 아닐까? (어떻습니까? 우리 대학의 경우는? 가좌동으로 캠퍼스가 옮겨온 지 20년이 넘었으나 아직 우리는 그저 21동, 17동..으로, 우리 학교내의 주요 거리는 이름이나 있습니까? 학생정신은 무엇입니까? 학교 사랑은 곳곳에 혼과 정신을 불어넣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찬양해 나갈 때 생기는 것입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후 프랑스의 자존심을 국제 사회에 드높인 샤를르 드골 대통령의 이름을 딴 프랑스의 국제적 관문인 샤를르 드골 공항, 독일치하에서 숭고하게 저항하다 처형된 레지스땅스의 지도자 쟝 물렝의 이름을 딴 쟝 물렝 거리, 위대한 음악가 드뷔시에서 따온 드뷔시 거리 등등.. 이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서 그냥 멀리, 나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드골, 물렝, 드뷔시가 아니라 오늘에 살아, 현재 우리와 함께, 그들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는 현존하는 역사의 위인들인 것이다. 이 모두가 프랑스 국민의 문화의식,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파리에는 시(詩)가 있고 노래가 있고 낭만이 있고 인간미가 넘치는, 그래서 파리는 인간을 위한 도시다. 파리는 시가지 전체가 조화를 이룬 하나의 완전한 예술품이고 박물관이다.
파리는 프랑스의 일부이며 동시에 전부다. 파리를 빼고는 프랑스를 생각할 수 없다. 파리가 없는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 파리만 보고도 프랑스를 보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파리엔 프랑스의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파리는 오래 전부터 프랑스의 중앙 집중화된 수도이다. 반면 독일이나 이태리의 경우는 다르다. 베를린만을 보고 독일을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프랑크푸르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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