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총, 균, 쇠』 _제레미 다이아몬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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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총, 균, 쇠』 _제레미 다이아몬드 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런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서 식량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까닭은 이들 지역에 가축화 작물화 할 만한 야생 동식물이 없었고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로 인해 아메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작물화 된 동식물이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량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은 가축화 작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메리카의 농업에는 유라시아 보다 불리한점이 있었다. 농업 생산량의 증가를 돕는 동물들이 없었기 때문에 씨앗도 일일이 손으로 심어야 했고 밭을 가는 것도 사람이 손으로 직접 하였으며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동물들의 분뇨조차도 없었다. 아메리카에서는 인간의 근력만으로 탈곡, 제분, 관개 등 농업에 관한 일들을 해야만 했다.
식량생산에서의 이러한 차이점은 유라시아 사회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 사이에 존재했던 불균형의 주된 궁극적 원인이기도 하였으며 정복의 직접적 요인들도 여기서 파생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병원균, 문자, 기술, 정치조직의 차이였다. 이 가운데 식량 생산과 직업적 관계가 있는 것은 병원균 이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대부분 가축의 질병이 진화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라시아인들은 이러한 전염병에 대해 면역성 또는 유전적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라시아에는 아메리카 보다 가축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질병이 많았고 유라시아인들은 아메리카인에 비해 더 많은 전염병에 대해 면역성이나 유전적 저항력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반면 아메리카대륙에서는 가축도 없고 세균도 없었다. 그리고 전염병이 적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유행병의 번식지인 촌락의 발생이 유라시아에 비해 수천년이나 늦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럽인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의 기술적 차이도 정복의 직접적 요인이었다. 1492년에 이미 유라시아의 모든 복잡한 사회에서는 금속이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서는 안데스를 비롯해 일부지역이 금속으로 만든 장신구들이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도구의 주재료는 돌과 나무와 뼈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라시아가 군사적으로 훨씬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라시아의 말은 공격과 신속한 운송으로 유라시아의 가장 큰 군사적 이점이었다. 또한 유라시아는 기계를 돌리는 동력 공급원에서도 매우 유리하였다. 유라시아는 소, 말, 당나귀 등 동물의 힘을 이용한 반면에 아메리카는 인간의 근력을 이용하였다. 해상운송에서도 차이가 났는데 유라시아의 일부 사회는 대형범선을 만들어 냈고 그 중 일부는 역풍을 받으면서도 항해 할 수 있었는데 반해 아메리카는 뗏목에 불과 했다.
정치조직에도 차이가 있다. 중세 말기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미 유라시아의 대부분 지역이 조직화된 국가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유라시아 국가 들은 서로 다른 국가들을 정복 합병함으로써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거대한 복합국가로 성장했다. 이것을 제국이라고 부른다. 유라시아의 많은 제국이나 국가에는 국가적 응집력을 향상시키는 국교가 있었는데 그 목적은 정치적 지도자를 정당화하고 타국에 대한 전쟁에 찬동하는 일이었다. 아메리카에도 아스텍과 잉카 두 제국이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은 부족 또는 무리사회의 수준이었다.
마지막으로 문자의 차이이다. 유라시아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국가에 문자를 아는 관료들이 있었고 일부국가에서는 상당수의 대중도 문자를 알고 있었다. 문자는 정치적 행정 및 경제적 교환 등을 도왔고 탐험 및 정복의 동기를 부여하고 길잡이가 되었다. 또한 머나먼 시대나 장소에 대한 정보와 사람들의 경험을 알 수 있게 해줌으로써 유럽사회에 힘을 부여했다. 반면에 남북아메리카에서는 문자사용이 중앙아메리카의 한 작은 지역의 엘리트에게 국한 되어있었다.
유라시아가 앞선 출발을 하고 그 확산이 빨랐던 것은 바로 축 때문이었다. 동서축은 위도변화와 그에 따른 환경 변화를 겪지 않고도 각 종문물이 확산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는 남북축으로 발전의 확산이 환경적 변화를 겪어야 했고 사막이나 산맥에 의해 확산이 더욱 늦어 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과 같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보다 더 빨리 발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유라시아가 훨씬 빨랐다는 점, 유라시아에는 작물화 할 동식물이 훨씬 많았으므로 결국 유라시아의 식량생산이 더 우수했다는 점, 그로인한 여러 분야의 발전, 그리고 유라시아는 대륙 내의 확산을 방해하는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이 적었다는 점이다.
A. D. 1000년 당시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주요 다섯 인종은 일반인들이 대충 흑인, 백인, 아프리카 피그미족, 코이산족, 아시아 인종으로 부르는 사람들이다. 전 세계 인종을 다섯으로 구분할 때 다섯 인종이나 살고 있었다. 아프리카 인들이 이렇게 다양한 것은 지리적 환경이 다양하고 선사시대의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프리카는 원래 모두 흑인이었던 것은 아니며 대규모 인구이동으로 인해 대부분이 흑인이 되었던 것이다.
흑인들은 A. D. 1400년 경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지역인 사하라 남부를 포함한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코이산족과 그들의 언어는 현재의 분포지역인 남아프리카보다 훨씬 북쪽까지 뻗어 있었다. 그러나 반투족의 팽창으로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남쪽으로 가장 깊숙이 내려온 코이산족은 케이프타운 동쪽800m 지점에 있는 피시강에 머물렀다. 반투족은 코이산족을 모두 괴멸시키지는 못하였고 쫓겨난 코이산족의 일부가 반투족의 농업에 부적합한 남아프리카 일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중앙아프리카의 강우림에는 피그미족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피그미족의 분포지역은 매우 분산되어 있다. 오늘날 20만 명의 피그미족은 1, 2억 명의 흑인들 틈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피그미족의 언어는 흑인들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점은 피그미족이 침략해온 흑인들에 의해 고향을 빼앗겼다는 것을 말해준다. 피그미족과 코이산족은 남아프리카에 살고 있었으며 남아프리카의 야생식물은 작물화하기 어려운 것들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코이산족과 피그미족은 농경생활을 할 수 없었고 농경민인 반투족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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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2.28
  • 저작시기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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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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