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커피란 무엇인가?
2. 커피의 역사
(1) 커피의 어원
(2) 커피의 발견
(3) 커피의 발전
(4) 커피의 전파
①이탈리아
②네덜란드
③프랑스
④영국
⑤미국
3.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
①비극의 역사에서 커피가 시작
②미군부대와 인스턴트 커피
③70년대 이후
4. 스타벅스 - 새로운 문화
①커피가 아닌 문화를 파는곳
②우리사회에 미친 영향
5. 한잔의 커피 - 원두와 과정
6. 커피의 생산과 소비
7. 커피와 건강
2. 커피의 역사
(1) 커피의 어원
(2) 커피의 발견
(3) 커피의 발전
(4) 커피의 전파
①이탈리아
②네덜란드
③프랑스
④영국
⑤미국
3.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
①비극의 역사에서 커피가 시작
②미군부대와 인스턴트 커피
③70년대 이후
4. 스타벅스 - 새로운 문화
①커피가 아닌 문화를 파는곳
②우리사회에 미친 영향
5. 한잔의 커피 - 원두와 과정
6. 커피의 생산과 소비
7. 커피와 건강
본문내용
가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④ 영국
1650년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유태인 야곱에 의해 옥스퍼드에 문을 열었다. 에드워드 로이드에 의해 1688년 런던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는데 오늘날 세계적인 로이드 보험회사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그 후 커피하우스의 인기가 날로 좋아져 1715년에 런던에 2,000여개의 커피하우스가 성업을 이루게 된다.
⑤ 미국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차를 주로 마셔왔으나 미국 독립의 계기가 된 보스톤 차 사건 이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1668년 미국에 커피가 소개 되었으며 뉴욕, 필라델피아 가은 동부지역에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게 된다. 1691년 미국 최초의 커피숍 커트리지 커피하우스가 보스턴에 문을 열었다.(‘보스턴 홍차사건’ - 1773년 보스턴에 정박중인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를 미국인들이 습격하여, 선적되어 있던 홍차를 바다에 던진 사건 - 유럽에서 미국으로 커피를 전해준 사람은, 존 스미스 선장이라고 한다. 17세기 그는 터키를 여행하다 커피를 알게 되고, 그 후 약 100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버지니아주에 상륙했다. 그곳에서 식민지 제임스 타운을 건설했을 때, 커피가 처음으로 전해졌다. 그 후 미국 대륙의 식민지에서 커피의 수요는 서서히 증가했지만, 미국을 ‘커피의 나라’로 변모시킨 결정적인 일은 18세기말에 일어났다. 17세기 이후 영국은 커피 무역전쟁으로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패배하여, 홍차무역으로 전환해간다. 이는 식민지 미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영국 정부는 식민지에도 ‘차조례’를 반포, 수입홍차를 독정하여 가격을 올리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반발한 미국인들이 1773년에 일으킨 사건이 ‘보스턴 홍차사건’이다. 이후 미국에서는 홍차의 인기가 하락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나라로 바뀌어갔다. 영국의 일련의 식민지 경시는, 이윽고 미국 독립전쟁의 배경이 되어갔다. ‘커피의 나라’ 미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억에 새로운 것은, 아폴로 13호에서의 에피소드이다. 1970년 우주선 아폴로 13호는, 발사되고 56시간의 시점에서 산소탱크가 파열되는 사고가 일어나서, 서둘러 지구로 귀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긴박한 우주선 내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기를 꺼, 실내 온도가 영하에 가깝게 내려갔다. 추위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우주인들의 귀에 들린 휴스톤에서의 격려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힘내세요! 여러분들을 위한 따뜻한 커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긴장의 38만4천km의 여행. 한 잔의 따뜻한 커피의 이미지는, 마이홈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3. 우리나라의 커피역사
- 단일왕조로서 꽤나 장수하였던 이씨 조선왕조의 실질적인 마침표를 찍는 사건, 야속하게도 이 비극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가 시작된다. -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으로 소개된 시기는 대략 1890년 전후로 추정되며, 전파경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공식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고종황제가 1896년에 아관파천(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시해된 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가 1896년 2월11부터 약 1년간 왕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관에 거쳐한 사건)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전한다. 러시아 공사인 베베르가 고종황제에게 커피를 소개한 것이다.
-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 : 궁으로 돌아온 후, 광무4년(1900)에 고종은 덕수궁 내의 동북쪽 경치 좋은 곳에 ‘정관헌’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관을 짓게 한다. 한국적 분위기가 나는 로마네스크풍의 이 건물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고종은 이곳에서 대신들과 함께 서양 고전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다과를 즐겼다고 한다.
- 손탁 호텔(Sontag Hotel)
1902년 10월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자리에 들어선 서울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 구한말 역사를 보면 명성왕후와도 가깝게 지냈던, 4개 국어를 능숙히 구사했던 손탁(孫鐸)이라는 독일계 러시아인 여성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로비스트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1885년 10월, 러시아 공사관 베베르가 서울로 부임되어 올 때 함께 온 인물이다. 베베르의 소개로 구한말의 궁중에 뛰어든 그녀는 타고난 처세술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을 얻게 되며(아관파천시에는 고종의 음식과 개인용품등을 관리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1895년에 고종으로부터 정동의 건물 한 채를 하사받게 된다. 이 건물은 외교관들의 사교와 로비의 장소로 활용되었고, 특히 미국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반일 성향의 외교관 사교 클럽인 ‘정동구락부’의 집회 장소로 사용된다. 당시 극동아시아 외교의 중심지였다. 이후 이 건물을 헐어내고 현대식 건물을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손탁호텔이다. 이 호텔의 1층에 ‘정동구락부’라고 불려졌던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이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는 호텔 커피숍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왕실의 커피가 드디어 백성들에게 소개된 것이다. 비록 외교관과 특권층들만 드나들었던 곳이지만, 그래도 백성들은 입소문을 통해 ‘가배차’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1905년 을사조약, 1910년 국권피탈(한일합방)을 거치면서 손탁 호텔은 퇴락의 길을 걷게 되며 1918년 문을 닫는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종로, 명동, 충무로에 ‘깃사텐’이라는 일본식 다방들이 들어서게 된다. 커피와 함께 다양한 차를 팔았는데, 일본인과 소수의 한국인들이 고객이었다. 1927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이었던 ‘이경손’이 종로의 관훈동에서 다방 ‘카카듀’를 개업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개업한 최초의 다방이다. 1929년 11월 3일 종로 2가 YMCA 근처에 ‘멕시코’라는 다방이 문을 열고, 뒤이어 소공동에 ‘낙랑’이 생기면서 서서히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방 문화가 자리를 잡아간다.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다방도 문화, 예술, 문학, 철학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배우 복혜숙의 ‘비너스’다방이 문을 연 것도 이즈음이다. 당대내노라 하는 문화 예술인의 집합소였다. 따로 약속할 필요도 없이 그곳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런 곳이었다. 당시의 커피는 모두 원두 커피이었다. 커피가 귀했던 시절이라 사골국물 끓이듯이 검은물을 우려낼
④ 영국
1650년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유태인 야곱에 의해 옥스퍼드에 문을 열었다. 에드워드 로이드에 의해 1688년 런던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는데 오늘날 세계적인 로이드 보험회사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그 후 커피하우스의 인기가 날로 좋아져 1715년에 런던에 2,000여개의 커피하우스가 성업을 이루게 된다.
⑤ 미국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차를 주로 마셔왔으나 미국 독립의 계기가 된 보스톤 차 사건 이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1668년 미국에 커피가 소개 되었으며 뉴욕, 필라델피아 가은 동부지역에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게 된다. 1691년 미국 최초의 커피숍 커트리지 커피하우스가 보스턴에 문을 열었다.(‘보스턴 홍차사건’ - 1773년 보스턴에 정박중인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를 미국인들이 습격하여, 선적되어 있던 홍차를 바다에 던진 사건 - 유럽에서 미국으로 커피를 전해준 사람은, 존 스미스 선장이라고 한다. 17세기 그는 터키를 여행하다 커피를 알게 되고, 그 후 약 100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버지니아주에 상륙했다. 그곳에서 식민지 제임스 타운을 건설했을 때, 커피가 처음으로 전해졌다. 그 후 미국 대륙의 식민지에서 커피의 수요는 서서히 증가했지만, 미국을 ‘커피의 나라’로 변모시킨 결정적인 일은 18세기말에 일어났다. 17세기 이후 영국은 커피 무역전쟁으로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패배하여, 홍차무역으로 전환해간다. 이는 식민지 미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영국 정부는 식민지에도 ‘차조례’를 반포, 수입홍차를 독정하여 가격을 올리고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반발한 미국인들이 1773년에 일으킨 사건이 ‘보스턴 홍차사건’이다. 이후 미국에서는 홍차의 인기가 하락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나라로 바뀌어갔다. 영국의 일련의 식민지 경시는, 이윽고 미국 독립전쟁의 배경이 되어갔다. ‘커피의 나라’ 미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억에 새로운 것은, 아폴로 13호에서의 에피소드이다. 1970년 우주선 아폴로 13호는, 발사되고 56시간의 시점에서 산소탱크가 파열되는 사고가 일어나서, 서둘러 지구로 귀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긴박한 우주선 내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기를 꺼, 실내 온도가 영하에 가깝게 내려갔다. 추위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우주인들의 귀에 들린 휴스톤에서의 격려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힘내세요! 여러분들을 위한 따뜻한 커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긴장의 38만4천km의 여행. 한 잔의 따뜻한 커피의 이미지는, 마이홈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3. 우리나라의 커피역사
- 단일왕조로서 꽤나 장수하였던 이씨 조선왕조의 실질적인 마침표를 찍는 사건, 야속하게도 이 비극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가 시작된다. -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으로 소개된 시기는 대략 1890년 전후로 추정되며, 전파경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공식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고종황제가 1896년에 아관파천(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시해된 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가 1896년 2월11부터 약 1년간 왕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관에 거쳐한 사건)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전한다. 러시아 공사인 베베르가 고종황제에게 커피를 소개한 것이다.
-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 : 궁으로 돌아온 후, 광무4년(1900)에 고종은 덕수궁 내의 동북쪽 경치 좋은 곳에 ‘정관헌’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관을 짓게 한다. 한국적 분위기가 나는 로마네스크풍의 이 건물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고종은 이곳에서 대신들과 함께 서양 고전음악을 들으며 커피와 다과를 즐겼다고 한다.
- 손탁 호텔(Sontag Hotel)
1902년 10월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자리에 들어선 서울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 구한말 역사를 보면 명성왕후와도 가깝게 지냈던, 4개 국어를 능숙히 구사했던 손탁(孫鐸)이라는 독일계 러시아인 여성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로비스트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1885년 10월, 러시아 공사관 베베르가 서울로 부임되어 올 때 함께 온 인물이다. 베베르의 소개로 구한말의 궁중에 뛰어든 그녀는 타고난 처세술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을 얻게 되며(아관파천시에는 고종의 음식과 개인용품등을 관리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1895년에 고종으로부터 정동의 건물 한 채를 하사받게 된다. 이 건물은 외교관들의 사교와 로비의 장소로 활용되었고, 특히 미국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반일 성향의 외교관 사교 클럽인 ‘정동구락부’의 집회 장소로 사용된다. 당시 극동아시아 외교의 중심지였다. 이후 이 건물을 헐어내고 현대식 건물을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손탁호텔이다. 이 호텔의 1층에 ‘정동구락부’라고 불려졌던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이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는 호텔 커피숍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왕실의 커피가 드디어 백성들에게 소개된 것이다. 비록 외교관과 특권층들만 드나들었던 곳이지만, 그래도 백성들은 입소문을 통해 ‘가배차’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1905년 을사조약, 1910년 국권피탈(한일합방)을 거치면서 손탁 호텔은 퇴락의 길을 걷게 되며 1918년 문을 닫는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종로, 명동, 충무로에 ‘깃사텐’이라는 일본식 다방들이 들어서게 된다. 커피와 함께 다양한 차를 팔았는데, 일본인과 소수의 한국인들이 고객이었다. 1927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이었던 ‘이경손’이 종로의 관훈동에서 다방 ‘카카듀’를 개업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개업한 최초의 다방이다. 1929년 11월 3일 종로 2가 YMCA 근처에 ‘멕시코’라는 다방이 문을 열고, 뒤이어 소공동에 ‘낙랑’이 생기면서 서서히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방 문화가 자리를 잡아간다.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다방도 문화, 예술, 문학, 철학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배우 복혜숙의 ‘비너스’다방이 문을 연 것도 이즈음이다. 당대내노라 하는 문화 예술인의 집합소였다. 따로 약속할 필요도 없이 그곳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런 곳이었다. 당시의 커피는 모두 원두 커피이었다. 커피가 귀했던 시절이라 사골국물 끓이듯이 검은물을 우려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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