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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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약성서 신학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교는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현존하신다고 믿는 것을 일종의 우상숭배로 보고 배격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유대교의 편협한 민족주의 및 지역주의의 탈피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4)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경향
이방 기독교는 그당시의 헬라사상, 특히 영지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지주의는 영과 육, 정신과 물질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면서 오직 영과 정신만을 선으로 보고 육과 물질은 악으로 보는 사상이였다. 이방 기독교가 이런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은 관계로 특히 기독론과 관련해서 이방 기독교인들은 육신을 가진 인간적인 예수(랍비, 예언자 혹은 메시야)보다는 오히려 영적인 그리스도, 곧 예수의 신적인 면에 더많은 관심을 갖고 예수를 주님으로,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또는 하나님으로 믿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태초부터 계셨던 분,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으로 증거되고 있는 것도(요 1:1-3) 바로 이런데서 나온 것이였다.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서 특히 빌립보 2장에서 \"예수는 본래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지만...이 땅에 내려왔다\"고 강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영지주의자들이 말하고 있는 소위 \"구세주 신화\"(the Redeemer Myth)의 영향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렇게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이방 기독교의 \"선재(先在) 기독론\"이나 “성육신 기독론”, 즉 ”고급 기독론“(the high christlogy)은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유대 기독교의 “에비오니즘적 기독론” 혹은 \"양자 기독론\" 같은 ”저급 기독론“(the low christology)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제 4 과 초기 공교회(Early Catholicism)와 그 주요 신학적 특징들
이미 일세기 말 경에 이르러 초대 기독교는 이미 유대 기독교와 이방 기독교 간의 차이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또 초기의 카리스마적 운동의 성격도 많이 탈피한채 점차로 통일된 하나의 공교회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초대 기독교는 점점 제도화된 기독교, 혹은 조직화된 기독교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회가 이처럼 제도화 혹은 조직화되기 시작하면서 초기 공교회의 신앙과 신학은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서 또는 초대 교회의 상황의 변화로 인해서 초기 유대 기독교나 이방 기독교의 신앙이나 신학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들을 보여주게 되었다. 신약성서 문서들 중에서 이 시기에 나타난 것은 주로 목회 서신들과 일반 서신들, 그리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일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런 문서들에서 나타는 주요 특징들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지적되고 있다.
1) 임박한 종말 사상의 약화
초기 공교회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초대 교회 시절에 그토록 강렬했던 임박한 종말 기대가 눈에 뜨이게 퇴조 혹은 약화된 것이다. 예수 당시에는 그리고 초대 교회의 초기 단계에만 하더라도 유대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모두 자기들의 시대가 이 세상의 마지막 때라고 믿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곧 임할 것으로 믿었고, 초대 기독교인들은 특히 자기 시대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이런 임박한 종말 사상은 예수 자신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근거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 죽기 전에 인자가 혹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다\"(막 9:1과 그 평행 구절들). 신약성서 문서들 중 가장 최초의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데살로니가 전서에 보더라도 바울은 “주의 날이 마치 밤중의 도둑같이 온다”(5:2)고,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그 때에 갑자기 그에게 멸망이 덮칠 것입니다”(5:3)라고 말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었던 임박한 종말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말씀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수십년이 지나면서, 즉 종말이 마냥 지연되고 세상은 여전히 계속되는 상황 가운데서 임박한 종말 기대는 점차로 약화될 수 밖에 없었다. 임박한 종말 기대의 퇴조 현상은 이미 바울의 생애가 끝나기 전에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주의 재림이 곧 있을 것을 그토록 강조하던 데살로니가 전서와는 달리 이미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종말이 곧 오는 것이 아니라는 암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가 영으로나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벌써 왔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마음이 쉽게 동요되거나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에 여러분은 그들에게 속지 마시오.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겠고 또 불법자 곧 멸망이 자식이 나타날 것입니다“(살후 2:2-3). 주의 날이 오기 전에 있을 멸망의 자식이나 불법자들의 출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나, 주의 날이 왔다고 말하는 것에 속지 말라는 훈계는 임박한 종말 기대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누가복음의 저자는 한 발자욱 더 나아가 \"임박한 종말 사상\"을 전하는 자를 오히려 거짓 예언자로 정죄하면서 \"너희는 그들을 따르지 말라\" (눅 21:8)고 가르치고 있다.
\"지연된 종말 사상\"이라고 일컬어 지는 이런 경향은 일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복음서 중에서는 누가복음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에서는 거짓 선지자의 특징이 ”내가 곧 그이다“(막 13:6)인데, 누가는 거기에 ”때가 가까왔다“(눅 21:8)는 말을 첨가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누가에서는 때가 가까왔다고 종말의 임박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적 그리스도요 거짓 예언자인 셈이다. 그리고 목회서신 중 에베소서에서는 임박한 종말의 기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주의 재림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다. 사도행전에서 ”마라나타“ 곧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란 간구문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도 사도행전이 초기 공교회의 문서임을 반영해주고 있다.
이처럼 종말의 지연이 전제되면서 초대 교회는 한편으로 종말을 점차 먼 미래로 미루어 놓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있을 종말을 현재적으로 해석하여 현재화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런 경향은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가령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말씀의 형태로 \"내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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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7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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