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회사(심창섭 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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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 교회사(심창섭 저)요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로 교회와 거룩한 의식과 성직자들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피조물과는 본성적으로나 존재양식으로나 전혀 다른 초월자로서 인간 세상과 그 역사에 대해서도 초월자로서 간접적인 개입을 한다는 주장이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와서 그에게로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 역사적인 과정에서 운동을 돕고 인도해야 할 하나님의 대역이 있어야 하는데 그 대역이 바로 교회이며 성직계급의 신분들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신분의 최고의 군위자가 교황이라고 하였다. 교황은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이며 실재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식되었다. 고로 교황이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의 총체적인 책임자이며 지도자로 인식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은 현세의 정치, 사회, 문화 영역 등 인간의역사의 전 영역에 있어서 초월자 하나님의 대리자로 다스리며 이는 하나님의 간접적인 역사 개입으로 인식하였다. 교황은 실질적인 신수권을 지니고 있었고, 하나님의 나라의 열쇠를 쥔 지상과 영적인 세계의 지배권한도 부여 받은 것으로 인정되었다.(이장식, pp.187-199) 3. 16세기 이후의 교회 중세교회의 역사관은 지나친 교권주의의 개입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상실한 교회지상주의적인 사관이었다. 지상교회의 위상과 권위가 역사를 지배하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가 곧 교회와 일치되는 사관을 형성하였다. 사람들은 중세사회(Christendom)가 곧 하나님의 나라 역사인양 왜곡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중세교회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견해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탄생 시키기 위한 준비의 역사였다. 토인비는 이런 맥락에서 중세역사를 정의하였다. \"악마의 도전에 대응하여 하나님은 참으로 그의 창조된 역사를 잠시 위험속에 던져 두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무엇을 창조키 위한 기회를 획득하기 위해서였다.\"(Shankel, 1972, p.186) 종교 개혁시대에 접어 들면서 하나님의 나라역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종교 개혁이야 말로 역사상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충분히 경험한 시대였다.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직접적으로 이해하고 경험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하에 있었고, 또한 역사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임을 인정하였다. 개혁자들의 개혁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절대 복종하는 하나님 중심(Theocentric)의 신앙을 기초로 시작되었다. 칼빈의 개혁의 목적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대 Gloria)을 위한 다는 슬로건을 내건 것도 이러한 의도에서였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이 제정치 아니한 권세는 존재치 아니한다고 [기독교 강요] 단호하게 선포하였다.(Inst. 4.20.4) 하나님이 국가 체제와 위정자를 세운 것은 인간 사회의 번영과 평화와 정의의 구현을 위한 외적 구원의 수단(extra media salutis)으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 절대 주권사상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 역사를 성취하기 위한 어떤 방해도 용납하지 아니하는 신정국 이론을 낳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쳐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기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 영역은 바로 일반 은총의 카테고리속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자연세계든지 은총의 세계든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소원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은 영적인 양식인 성경연구와 설교 그리고 성례전의 개혁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의 참여해도 깊이 관여하였다. 그는 병원과 학교를 세웠으며 제네바에 몰려온 프랑스의 개신교 피난민들의 주택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환자와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다. 이것이 그의 구빈원 사역이었다.(Graham, 1978, p.65-173) 총체적인 역사관을 가진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의 정신은 계몽주의 이후 근대서구의 이성을 중심으로한 합리주의 등장과 과학주의 방법의 역사이해를 통해 본고의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서구의 기독교적 사관은 인본주의 역사관으로 변화하였다. 한편으로 이성주의자와는 달리 경건주의자들은 지나친 내적 신앙의 강조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사회성을 간과하는 사관을 전승시켰다. 이들은 모두 주관적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창조와 섭리와 종말적인 기독교적인 사관을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V. 결론 기독교적 역사관은 창조와 진행과 종말이라는 삼각관계속에서 시작과 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사람들의 통속적인 개념인 역사라는 표현 보다는 칼 발트(karl Barth)의 묘사처럼 하나님의 나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세속역사와 교회의 역사를 이원화하지 하니 아니한다. 오직 두 개의 축이 다른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도 타락한 후에 파생된 기현상이며 타락 이전에는 이러한 구분이 없이 전체의 창조역사가 하나님의 나라였다. 이런 의미에서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타락이후의 창조세계의 전부도 하나님의 나라에 포한된다. 바로 그리스도는 이러한 전체의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회복키 위해 오셨다. 고로 그의 구속은 기독교적 역사관의 중심을 이루며 피조세계와 인간의 모든 영역 미치는 구원의 사역이었다. 기독교적 역사관에는 이런 의미에서 이원론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은 분명히 환상적이고 피안적인 소망에서만 그것의 시체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현 역사 속에서도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총체적인 기독교적인 하나님 나라의 사관을 외면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구속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극히 좁은 의미로 이해해 왔다. 그리고 이원론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 세속역사의 구속에는 관심이 결여되어 있었고, 세속역사란 단순히 크리스챤이라는 순례자가 하늘나라로 가는 무대로만 간주하였다. 그리고 속죄의 개념을 개인의 영혼에만 제한 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개인 구원 이상의 큰 사역이었다. 인류 역사의 전부를 구속하는 사역이었다. 기독교적인 사관은 바로 이러한 총체적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섭리하시는 하나님 나라 회복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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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10.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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